교회 집사님들의 수고로 교회 앞뒤의 정원들이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풀도 뽑고 예쁜 꽃도 심고 주변의 나무 가지치기도 해주었습니다. 정원에 어울리지 않는 나무들은 뽑아 버리기도 했습니다. 옮겨심은 아직 피지 않는 작은 꽃들은 언젠가 아름답게 필 것입니다. 어린 나무들은 언젠가는 더 멋있게 자랄 것입니다. 정원은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원은 가꿈의 수고를 통해서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정원은 한번의 돌봄과 가꿈으로 그 아름다움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관심과 돌봄으로 지속적으로 수고할 때에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의 사랑의 수고가 결국 아름다운 꽃을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속적인 돌봄으로 언젠가 과일나무의 과일을 맺히게 될 것입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돌봄으로 어린 나무들은 커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정원의 가치는 정원을 위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돌봄을 귀찮아하지 않고 즐거움을 감당하는 수고만큼 그 가치는 우리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엉망진창이 된 인생의 현장 앞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마치 돌봄과 가꿈이 없는 정원처럼 망가진 가정, 아수라장이 된 교회, 엉망진창이 된 일터의 현실 앞에서 암담해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특히 내 신앙의 현주소를 돌아볼 때에 텅빈 정원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같은 나의 존재감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의 현실은 과거의 결론입니다. 내가 그렇게 뿌리지 않고 가꾸지 않고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안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인생 정리가 안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도 취하고 저것도 취하고 모든 것을 취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잡풀처럼 나를 아름답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오랫동안 죽은 채 서있는 나무는 뽑아서 버려야 하듯이 내 안에 죽은 나무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단호하게 치워야 합니다. 인정에 끌려서 타협하고 과거에 치우쳐서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결국 잡풀만 가득한 인생을 만들 뿐입니다. 새로운 정원같이 아름다운 인생을 꾸미는 것은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름다운 정원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아름다움을 만들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스스로 정원지기가 되어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선물을 지키며 아름다운 성경의 매뉴얼을 따라 나를 그렇게 만들어가는 수고와 연습은 날마다 스스로 즐겁게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정원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바라봄의 목표가 됩니다. 아름답게 변화된 사람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지만 변화없는 사람들은 꾸미지 않는 무질서한 정원처럼 사람들의 외면을 받습니다. 결국 인생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정원을 가꾸듯이 날마다 부지런하게 가꿀 때에 아름답게 세워집니다. 나는 지금 아름다원 인생으로 가꾸어가고 있습니까?

Category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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