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자주 듣는 개혁이란 말에 대해서 피곤함을 느끼게 됩니다. 너무나도 여기 저기서 개혁이란 말은 너무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 됨을 간과하고 너무 다른 사람과 제도에 대해서만 개혁을 부르짖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요지 가운데 우선적으로 개혁되어야 할 대상은 나와 나의 믿음도 해당이 됩니다.
1517년 종교개혁의 중요한 도화선이 되엇던 종교개혁자 루터는 하나님의 의가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얻어지는 ‘칭의’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에 그의 믿음은 개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에 값없이 하나님의 의를 얻게 됩니다.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을 믿음으로 얻기까지 수많은 시간들을 스스로 노력과 고난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오직 믿음으로 의해서 얻어지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루터의 개혁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고민하던 문제가 결국 복음을 통해서 푸리면서 그의 삶은 혁명적인 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나의 삶에 복음에 대한 철저한 직면과 깨달음은 나의 삶을 개혁되게 할 것입니다.
루터가 스스로 개혁을 경험하고 나서 당시의 교회의 개혁을 생각했던 것은 거룩한 분노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 카톨릭의 보편화된 면죄부 판매를 목도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시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을 재건축하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당시 면죄부 판매가 너무나도 횡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면죄부 판매를 위해서 주교들은 대대적인 설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설교의 내용은 면죄부를 사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죽은 친구와 아버지와 친척들이 부르짖고 있는 애절한 소리를 듣지 못합니까? 여러분의 눈을 뜨고 여러분의 귀를 여시오…여러분은 동전이 헌금 궤 속에 들어가는 소리가 나자마자 사랑하는 영혼들은 연옥으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들은 청중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면죄부를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개혁자로서 삶은 결국 하나님이 주신 민감한 양심과 믿음으로 죄에 대한 거룩한 불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실천으로 나아기까지는 용기와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5개조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게시할 때에 그는 독일어가 아닌 라틴어로 명시하였습니다. 그것은 선동이 목적이 아니라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성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착취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루터의 이런 실천적인 행사는 불의와 거짓에 대하여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바른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갖아야 할 개혁의 삶의 모습입니다. 불의와 거짓에 대해서 저항하는 바른 신앙의 용기와 결단이 개혁자다운 신앙의 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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