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인생의 중요한 진로의 고민 앞에서 갈등하는 두 사람의 삶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한 사람은 갈등하는 진로의 고민 속에서 하나님의 때에 대한 기다림을 믿고 현재의 자신을 좀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현재 자신의 꿈과 도전에 대해서 좀 내려놓음으로써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한 기회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다른 한 사람은 갈등하는 가운데 진로에 대한 하나님의 명확한 인도하심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기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도전의 삶을 선택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포기하기 어렵고 저것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분은 모든 것을 하면서 원하는 길을 향해 도전하여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아브라함에게 선택을 요구하실 때에 우선 요구하는 것은 “포기”였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전부처럼 여겼던 가족과 고향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현재의 가치로 여겼던 가족중심, 평안과 안정 중심의 삶에 대해서 먼저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의 예수님께서도 제자됨의 길을 선택하는 자들에게 먼저 요구하는 것이 “포기”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자 자매나 어머니와 아버지 자식을 떠날 것을 요청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나도 혁명적인 가르침입니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얻기 위함입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설의 진리를 강조하십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하나님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먼저 역설의 진리를 실천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정들었던 가족 고향과 부모를 떠났습니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떠났고 바울은 자신의 동족 유대인들을 떠남으로 인생의 소명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떠남의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인간적으로는 매정해야 하고 세상적으로는 어리석게 보일 수 있으면 관계적으로는 외로울 수 있고 물질적으로는 손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의 복을 경험했습니다.
역설의 진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소명의 길을 위해서 먼저 “포기”를 강조함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하심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에게 내가 의지하고자 했던 모든 세상의 것들로부터 단절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연결되었던 모든 세상의 것들을 떠나라는 것은 사형선고와 같다고 여깁니다.그래서 상당한 경우에는 급진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융통성 있게 적당하게 적용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처신을 지혜롭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묘하게 세상의 합리성과 실용성에 이용당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그 안에서 나의 인생의 길을 가는 것을 선택하고자 하면 먼저 하나님의 뜻대로 여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설의 원리는 먼저 얻기 위해서는 버려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내려놓고 포기한 경험이 없이 주님이 주시는 것들을 절대적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도 얻고 저것도 얻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것을 얻으려면 이것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역설의 진리는 여전히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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