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누가 진짜인가? 누가 가짜인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성령의 사역을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속기가 쉽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미 초대교회 당시에도 심각했던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성령의 참된 사역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믿지 말고 분별해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4:1)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일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세상에 거짓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200년 전에 요나단 에드워드 목사는 거짓된 부흥, 거짓된 역사들을 통해서 마치 성령의 역사인 것처럼 우리가 속을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우선 사람들의 육신에 특이한 현상이 나타날 때라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갑자기 육체의 떨림이나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울거나 쓰러지거나 괴성을 지르는 현상들을 성령의 사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종종 성령 집회라고 하는 곳에서 집단적으로 소리를 크게 지르게 합니다. 그리고 뒤로 사람을 넘어뜨리게 하는 사역을 하기도 합니다. 괴성을 지르면서 감정을 고양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보이는 육체적인 현상들은 성령님이 아닌 사탄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이 영혼에 어떤 각성과 변화도 없다면 실로 거짓된 일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내면의 영혼 속에 각성을 주어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떠나게 하고 평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향하여 변화된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다음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 것으로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성경에 보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올 때에 애굽의 마술사들도 몇가지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바로 마귀에 의한 역사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선지자들이 표적과 기사를 보여서 믿는 자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강조하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지선지자들을 경계하면서 마 7장 22절에서 그날에 주님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자들에게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눈으로 보는 초자연적적인 기사를 통해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잘못된 성령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 충족성을 무시하고 지금도 특별한 계시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성령충만한 사람들을 보면 성령이 충만하면 말씀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에 순종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거짓된 성령운동을 통하여 헛된 부흥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치우치게 만들고 편향된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이성과 지성을 통하여 일어나는 깊은 깨달음의 변화에 대해서는 무시합니다. 그 결과 교회를 무조건 뜨겁게 가야 하고 큰 소리의 기도와 더불어 감정적인 느낌을 앞세우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받은 자기의 결론은 성경보다도 우위에 서게 됩니다. 그것으로 모든 잣대의 기준을 삼으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Category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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