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동안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기존의 교회 패러다임에 가장 영향을 준 것이 있다면 온라인 예배입니다. 현장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온라인 예배는 교회 예배의 대안이었습니다. 과연 온라인 예배를 예배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제대로 답을 내리기에 앞서 긴박한 상황이었던 당시의 모든 교회들은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교회의 예배 현장에 참석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가정에서 컴퓨터나 셀폰 화면을 통해 드렸던 대면 예배의 시간은 기독교 역사에서 어쩌면 전무 후무할 수 있는 예배의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가 지나고 모든 것이 회복된 상황에서 온라인 예배를 과연 드려야 하는가 교회들마다 고민이 생겼습니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코로나시대 때에도 드렸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코로나시대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가능하지만 대면 예배가 가능한 상황에서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대부분 모든 교회들이 온라인예배와 대면 예배를 병행하면서 관망하는 입장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수요일과 주일과 같은 경우에 대면과 온라인예배를 병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온라인 예배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 고민이 됩니다.

분명히 예배란 하나님과 인격적, 영적 만남의 시간입니다. 무엇보다도 공동체적으로 함께 만나서 함께 몸과 마음을 연합하여 드리는 교회 예배는 대면 예배로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의 예배는 장래에 천국에서 함께 드릴 예배를 미리 맛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여서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봉헌하고 함께 말씀을 경험하면서 한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한 성령님을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온라인 예배는 함께 드리는 예배공동체를 온전히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 특별한 필요의 상황에서 드렸던 온라인 예배의 은혜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때의 모든 특별한 상황에서 일상의 삶이 다시 돌아왔듯이 우리의 예배도 대면으로 하나님 앞에 함께 예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의 몸을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의 감동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제 봄이 되어 만물이 다시 새롭게 약동함으로 싹이 피고 꽃을 내는 이 시기에 우리도 더욱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감동의 예배를 드리기를 소원합니다.

한번은 후배 목사가 “목사님은 목회자로서 제일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보편적인 목사님들의 일반적인 대답은 아마도 “설교”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매주일 여러 편의 설교를 준비하는 일은 많은 고난의 대가를 치룰 정도로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또 어떤 목사님들은 “리더쉽”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교회 일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목회자에게 제일 힘든 것은 설교도 리더쉽도 아닌 자기관리라고 생각합니다. 매일같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관리하는 것은 항상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 적용되기 때문에 제일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성경의 사도 바울은 자기관리가 철저했습니다. 그의 삶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철저하게 자기 관리가 되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이유가 분명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내가 사나 죽으라 주의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삶의 이유가 주를 위한 목적이 분명할 때에 바울의 삶은 인간적인 욕심에 지배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자기의 야망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바울의 삶은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과 시간을 아낌없이 헌신했습니다. 물론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의 경우에 바울 같은 몰입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자기 관리를 온전히 승리하기 위해서 내 삶의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건전하게 자기 관리가 온전하게 지속하기 위해서 날마다 자기 부인과 복종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하지 않으면 결코 자신을 지켜낼 수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가장 문제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마음의 변화는 삶의 변화의 지름길입니다. 마음의 변화를 위하여 마음을 위한 시간을 우리는 투자하여야 합니다. 매일 매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먼저 갖아야 합니다. 시간을 먼저 구별하여 마음의 돌봄이 우선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건전하게 자기 관리를 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열매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관리가 잘 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님의 풍성한 인격의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님의 열매가 나타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덕과 영광을 나타나게 됩니다. 둘째는 자기관리가 잘 된 사람은 주의 교회와 주의 나라를 세워가는 선한 능력의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자기 관리가 잘 된 그리스도인은 주의 몸 된 교회를 귀한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며 가정과 일터에서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의 능력이 있습니다. 결국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관리가 잘 된 사람은 성품의 능력과 더불어 삶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결과 관계도 승리할 뿐 아니라 주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도 잘 감당합니다.

바쁘고 힘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자기 관리를 통하여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의미 있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교회 제자 훈련의 우선적인 훈련이 묵상 훈련입니다. 감사한 것은 묵상훈련을 통해서 묵상의 힘을 누리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묵상의 힘을 실감합니다. 묵상 이전과 이후의 삶은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인생을 살지만 다른 삶의 질을 누리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도 묵상은 인생 밑바닥에 숨어있던 삶의 열정을 끌어올려서 하나님을 향하도록 지지하는 힘이 됩니다. 매일 묵상을 통해서 매일 새 힘을 공급받는 묵상의 사람들은 매일 하나님을 향한 열정의 삶을 살게 합니다. 묵상은 신비한 힘을 갖게 하고 신비한 인생을 살게 합니다.

묵상의 힘은 마음의 힘을 갖게 합니다. 대부분 인생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무엇보다도 허다한 지식과 여러 상처로 쪼개어진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단단한 근육으로 새롭게 하는 힘은 묵상입니다. 특히 낮아진 자존감으로 인해서 사람들을 기피하고 부정적인 감정의 지배를 받는 마음을 회복하는 길은 묵상이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후반전에 들어서면서 인생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공허한 마음으로 방황하기도 합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마음을 바로 잡아서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인도하는 길은 묵상이 답입니다. 바르고 온전한 묵상은 잘 익은 과일처럼 잘 익은 마음으로 단단하고 성숙되게 무르익게 합니다.

묵상의 힘은 비전의 힘을 갖게 합니다. 매일 묵상을 하는 것은 매일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새 길이 보이고 새 길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꿈을 잃는 이유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갇히는 사람은 꿈이 없지만 묵상으로 하나님 안에 갇히게 되는 사람은 비전을 품게 됩니다. 감옥 같은 환경에 있어도 묵상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면서 비전의 삶으로 즐겁고 행복합니다. 묵상을 온전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 때문에 살맛이 있고 하나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인생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묵상의 힘은 삶의 힘을 갖게 합니다. 묵상의 힘으로 삶의 현장에 나간 사람의 입술은 승리합니다. 묵상의 힘으로 관계하는 사람은 화평과 사랑으로 승리합니다. 묵상의 힘이 있는 가정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천국을 경험합니다. 묵상과 함께 공부하는 사람은 지식을 지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삶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묵상하는 사람에게 모든 삶에서 이길 수 있는 놀라운 삶의 힘으로 함께 하여 주십니다. 묵상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삶의 형통과 승리가 있습니다. 묵상이 없는 삶은 하나님 없는 삶이지만 묵상이 있는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경험합니다.

매일 묵상은 매일 하나님의 힘을 체험하는 길입니다. 묵상의 힘으로 마음의 힘, 비전의 힘, 삶의 힘을 누리는 형통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어느덧 나이가 60세를 넘고 목회를 시작한지도 35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시작할 때가 청년 때였던 28살이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너무도 빨리 흘러갔습니다. 젊은 시절 인생과 목회의 현장에서 가장 부족했던 것이 균형잡힌 삶을 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젊은 30대 시절 너무 목회에 빠져서 가정 가운데 아빠의 역할을 소홀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또 성경에 너무 집중하느라 기도에 집중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생후반기가 되면서 가장 집중하는 것은 발란스있는 인생과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어려움이 있지만 균형잡힌 삶을 위해서 날마다 주님 안에서 그 발란스를 이룰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됨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성경과 성령님의 균형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우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고 알기를 힘쓰는 삶이 필요합니다. 특히 성경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적용하는 삶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는 것과 더불어 성령님과 함께 기도하는 영성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이 주의 뜻대로 기도할 때에 우리의 영혼을 살 수 있습니다.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성령님의 인도로 기도하는 삶을 삽니다. 성경과 성령님의 균형을 이루는 영성의 사람은 결국 그 성품을 통해서 성령의 풍성한 열매가 나타나는 복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가정과 교회와 일터의 균형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가정 가운데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영성이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영적 가족공동체인 교회를 이루는 영성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일터 가운데 영성이 나타나기를 기대하십니다. 이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갖고 모든 삶을 온전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철저히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주권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발란스를 잃어버리고 가정의 아이들이 우상이 되거나 교회 사역이 우상이 되거나 일터의 일이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균형잡힌 영성의 사람은 주님이 주인으로서 가정과 교회와 일터 속에서 주님의 다스림 속에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일과 쉼과 누림의 균형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본래 일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주신 귀한 복입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일은 수고와 고통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일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수고 속에서 열매의 대가를 누립니다. 그리고 쉼을 통해서 우리는 안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더욱 소망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 받기도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자연만물을 누림을 통해서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하늘과 새 땅을 누릴 것을 더욱 누리는 소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삶을 위해서는 우리는 나의 욕심을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의 리더십의 문제를 보면서 리더십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은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결국 준결승에서 졸전을 벌이면서 4강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좋은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팀웍을 묶는 감독의 리더십이 많이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이번 한국 축가 국가대표팀 감독의 우선적인 실수는 팀웍을 깨는 선수들의 문제를 보면서도 그냥 방조했고 적극적으로 대처를 하지 못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수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팀의 경기력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리더는 분명히 실수할 수 있습니다. 보통 리더가 실수하는 우선적인 이유는 두려움을 직면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종종 리더는 리더십의 현장에서 문제를 만나지만 두려움으로 인해서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고 숨기고 회피할 수 있습니다. 리더의 입장에서 문제를 잘못 다루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리더의 입장에서는 문제를 수면 위에 내놓기가 두렵습니다. 그 문제를 내놓는 순간 여러 가지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리더십에 먹칠을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더의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문제가 있을 때에 용기 있게 직면해야 합니다. 리더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용기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리더는 실수를 인정하고 돌이킬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의 실수는 개인을 넘어서 팀의 패배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번에 한국 축구의 실패는 명백한 감독의 전술의 부재의 결과였다고 모두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감독은 전혀 그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핑계를 대었습니다. 만일에 이번에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을 앞으로 어떻게 해소할 지에 대한 비젼있는 대안을 제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리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족을 깨닫고 더욱 온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도전하는 리더를 사람들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리더는 실수를 통해서 더욱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제일 힘든 것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실수를 인정하면 자신의 마음을 자유하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높아진 마음을 낮추고 스스로의 능력과 경험을 앞세웠던 교만을 깨뜨리는 연단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성경에서 역사에서 수많은 리더들이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더 온전한 리더로 세워져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통해서 배우기 위해서는 실수로 인한 명백한 쓴 맛의 대가를 철저하게 책임지고 경험하는 기회를 담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점점 리더를 하면 할수록 결코 실수를 피할 수 없음을 경험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도움을 통해서 실수를 줄이고 받은 리더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선한영향을 미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소원합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일본인 사이토 다카시가 쓴 ‘60대를 위한 논어’를 보면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했다. 마흔살이 되어서는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쉰 살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 예순 살에 남이 하는 말을 순순히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일흔 살에는 마음 가는대로 자유롭게 좇아도 올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어른의 나이 60살 정도가 되었을 때에 어른의 위치가 되었을 때에 가장 중요한 자세가 ‘듣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듣지 못함을 안타까와하면서 먼저 잘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서 안타까와하면서 먼저 잘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은 나이가 들을수록 제일 힘든 것이 듣는 일입니다.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어지기 때문에 남의 말을 듣는 것이 마음에서 힘이 듭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감이 세어서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감이 없어서 남의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합니다. 인생 60세 정도를 살다보면 웬만한 것들에 대해서는 지식도 있고 경험도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나이가 60세 정도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 신앙에 대한 왠만한 지식과 경험은 다 있는 편일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도 힘들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힘이 들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어른들을 향해서 ‘꼰대’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실 이 말은 남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아버지나 어른들에 대해서 속어로 사용되었던 표현입니다. 과거 한국 사회는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가르치는 것을 허용했던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 방식대로만 가르치려고 하는 어른들이 오히려 비난을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세대는 존경받는 어른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먼저 이런 문제 앞에서 우리 기성세대는 충분한 자기 반성이 필요합니다. 지금 어른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나와 다른 다음 세대들의 의견과 생각을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힘든 삶 중에 하나가 어른이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어른의 특징은 자기 중심이 아닌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덕있는 인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존경받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충고하고 가르치려고 하는 자세 그리고 대접받으려고 하는 자세를 내려놓고 먼저 낮아져서 남의 소리를 듣고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을 종의 자리에 두고 먼저 남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고난 속에서도 자기 몸을 섬김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인생 후반기를 향해 점점 살아가면서 마음을 열고 더욱 듣기를 적용하면서 마음의 그릇을 더욱 키우는 멋있는 어른의 삶을 꿈꾸면서 도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요즈음 유튜브가 대세인 세상입니다. 유튜브는 만물 박사처럼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해 줄 정도입니다. 요즘 유튜브가 뜨면서 유튜버 직업이 가장 선호도가 높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직장을 버리고 유투버로 전환하기도 하고 젊은 학생들의 선호 직업 가운데 유튜버가 우선 순위가 되었습니다. 보통 유튜브는  여행, 음식, 건강, 언어, 노래, 신앙, 운동 등의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내용을 다루면서 관심있는 부분들의 지식과 기술과 경험을 갖도록 큰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잘 준비해서 만들어진 유튜브는 사람들의 모든 필요한 부분들을 잘 채워주면서 인생의 질을 높여주고 정서적으로 힐링을 하도록 하며 새롭게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튜브는 단순히 순수한 나눔과 알림에서 이미 떠나서 자신들의 인기와 돈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면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인기를 얻고 더 돈을 얻기 위해서 유튜브를 만들기 때문에 그 내용은 진실과 사실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자극하고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컨셉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더 자극적으로 내용을 꾸미거나 더욱 과장하여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조정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검증되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은 정보와 내용들이 정제되지 않은 가운데 유튜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유튜버의 내용들로 인해서 유익을 누리는 것도 본인의 책임이고 손해와 낭패를 당하는 것도 본인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잘 선택하고 분별력 있게 시청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모든 문화를 비판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튜브의 경우에도 우리는 비판적으로 선택하여서 보고 분별력 있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정치적인 편향성을 갖는 내용의 유튜브를 조심해야 합니다. 편벽된 신학적인 주장을 하는 유튜브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끓어야 합니다. 또한 육체의 자극적인 쾌락을 조장하는 내용의 유튜브에 대해서는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요즘 지나치게 먹기를 탐하도록 조장하는 먹방 유튜브는 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세상의 문화는 교묘하게  보이지 않는 부분을 통해서 마귀적이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하도록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삶이 유튜브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 삶의 루틴의 목표를 분명하게 갖아야 합니다. 결국 삶이 심심하고 한가롭기 때문에 유튜브에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유튜브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합니다. 유튜브에 먼저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몸을 드려야 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직접 몸으로 참여해서 땀을 흘리고 대가를 지불하는 인생을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뿌림이 없는 인생은 거둠의 역사가 없습니다. 삶의 현장이 없으면 온종일 유튜브와 보내는 유튜브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한 살이라도 더 젊고 건강할 때에 시간을 선용하고 몸을 선용하여 의미 있게 심고 뿌리는 인생을 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절제와 분별력으로 우리의 삶이 정결하고 온전하게 세워지는 인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해마다 새해가 되면 배움을 결심하곤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작심삼일로 끝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꾸준한 실천을 하기도 합니다. 평생 배움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행복하고 활기찬 삶을 삽니다. 요즘같이 100세 시대의 경우에 특히 인생 후반기에 배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만일 배움이 멈춘 노년기의 긴 시간의 삶은 무미건조하고 활력을 잃어버린채 시체같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배울 때에 마음도 새로워지고 육체도 새로워지고 새로운 인생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서 평생 배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평생 배우는 자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내가 과거에 공부했던 것으로 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과거에 배운 것으로 내가 더 알 수 있고 남들보다 더 잘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아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떤 한 분야에 박사가 되어도 그것은 지극히 작은 것을 아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무궁무진하여서 아무리 해도 끝이 없음을 봅니다. 가령 기독교 역사를 공부한다고 했을 때에 평생 공부해도 아는 것은 작은 점에 불과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배우는 자로 살아가고자 할 때에 인생은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은 주의 제자로 더 자라기 위해서 성경에 대한 배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온전한 교제를 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실패한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호6:6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 성경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뜻들이 소개됩니다. 반복되는 양육과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주님을 더욱 아는 온전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꾸준한 배움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주의 제자로 세워지는 배움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삶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의 몸은 더 쉬고 놀고 먹고 자려고 하는 쾌락의 자유의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복종하여 주의 제자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날마다 옛사람의 소욕에 대해서 따르지 않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배움을 통해서 새롭게 주의 제자로 변화되어가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기쁨을 먼저 스스로가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복종하여서 배우고 자라갈 때에 결국 하나님 앞에서 변화하고 진보하는 주님의 제자로 변화되고 더욱 주님에게 쓰임받고 이웃들에게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 인생의 부름을 받기까지 날마다 배움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되는 주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주님의 제자로 세워져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는 2023년 재정 결산과 2024년 예산을 위한 제직회를 했습니다. 지난 한해동안 우리 교회 재정은 은혜 가운데 잘 채워지는 결산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해 기도하고 계획하면서 세웠던 교회 재정이 목표 이상으로 채워졌습니다. 불경기와 고물가 가운데서 힘들었던 작년 한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좀 무리하다 싶은 목표의 교회 예산이 잘 채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일 년 동안 모든 재정 사용 계획도 순탄하게 잘 집행하여서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교회 재정을 위하여 드림의 헌신을 한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하고 궁극적으로 지난 1년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교회 재정을 위하여 먼저 잘 관리하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은 먼저 잘 사용을 위하여 준비하며 계획되어야 합니다. 한해를 맞이할 때에 교회는 한 해 교회 재정 계획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재정 계획이 잘 세워지기 위해서는 교회의 모든 각 부서의 제직들이 재정 사용에 대해서 평소에 관심을 갖아야 합니다. 특별히 각 위원회의 위원장들은 소속 팀의 팀장들과 소통하면서 필요를 잘 살펴보고 그 필요한 재정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위원장과 팀장들은 한해의 교회의 사역과 방향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핵심 일꾼들은 사역자 모임과 같은 시간에 함께 참여해서 교회의 모든 사역들의 흐름을 잘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재정을 위하여 바르게 집행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욕심이 있기 때문에 재정 관리는 신중하고 조심해서 관리되어야 합니다. 교회 문제의 상당한 경우가 재정문제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재정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와 더불어 조심하면서 섬세한 관리를 해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모든 집행된 재정은 영수증을 반드시 지참하게 합니다. 물론 보이는 영수증을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재정이 낭비되지 않도록 교회는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의 재정은 개인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자칫하면 책임감 없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교회 재정을 통해서 필요한 물품들은 구입해야 하지만 아낄 수만 있다면 아끼는 지혜를 구하면서 건전하게 재정이 집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재정을 통해서 구입한 모든 교회 물건과 기물들을 잘 사용하고 때로 보관할 수 있는 것들은 잘 보관해서 사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재정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잘 보고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분기에 1회 재정보고를 합니다. 재정 보고 시에 모든 재정 사용들이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모든 제직들은 재정이 사용되는 것을 잘 관찰하면서 교회의 재정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관심을 갖아야 하고 또 함께 기도하고 함께 드림의 헌신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재정보고를 상세하게 보고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교회 재정은 비록 작은 돈이라고 의심되게 사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사용하고 바르게 보고할 때에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의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며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머리되신 주님께서 교회를 주관하시되 재정의 은혜도 주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주신 물질에 대해서 최선의 책임을 다해서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투명하고 바르게 준비하고 관리하고 보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쁨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2024년 주신 시간 속에
꿈꾸는 것 같은 크고 놀라운 일
형언할 수 없는 높고 위대한 일
오직 믿음으로 꿈꾸며
눈물흘리며 씨를 뿌리는 언약의 백성들에게
기쁨의 산증거로 열매맺게 하옵소서

기쁨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마른 사막에 샘이 나게 하시고
푸른 바다에 길을 내게 하셔서
마침내 하나님의 땅으로 인도하시던
이스라엘의 위대한 기적의 증거를
언약을 붙들고 수고의 땀을 흘리는 믿음의 백성들에게
기쁨의 산증거로 열매맺게 하옵소서

기쁨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어둠 속에서도 비전의 열정으로 도전하며
우상 앞에 포기하지 않고 기도의 무릎을 세우고
세상 모든 유혹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따르는 그루터기 되어
하나님의 신실함을 위하는 말씀의 백성들에게
기쁨의 산증거로 열매맺게 하옵소서

기쁨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복음의 기쁨으로 뜨겁게 타오르며 앞을 향해 가며
포기할 수 없는 열정으로 몸을 헌신하고
넓고 쉬운 모든 세상길을 버리고
오직 성령님과 인도를 따라 기쁨의 땀을 흘리는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불꽃같은 모험의 백성들에게
기쁨의 산증거로 열매맺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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