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는 몇 년간 교제했던 어떤 목사님이 부탁하여 담임목회 추천서를 써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운동과 독서를 통해서 교제했던 그분의 평상의 삶 속에서 나누고 경험한 대로 최선을 다해서 추천서를 써주게 되었습니다. 평상의 삶 가운데 경험한 그 목사님의 인격과 신앙은 한 교회를 담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기에 좋은 마음으로 추천서를 써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귀면서 대화하였던 평상시의 그분의 모든 생각과 말 그리고 모든 자세를 돌아보면서 추천서에 모든 것을 마음을 담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평상의 삶으로 증명됩니다. 믿음있는 사람은 평상의 삶 가운데 승리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일 중요한 평상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정직하게 균형있는 삶으로 승리하는 모습입니다. 우선 하나님 앞에서 가정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본이 될 수 없습니다. 일터에서도 맡은 일에 있어서 승리해야 합니다. 열심히 교회 생활하는 것 이상으로 일터에서 우리는 예배자로서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정해 주신 삶의 예배처소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와 더불어 가정과 일터에서 승리하는 삶의 예배자로서 승리하는 균형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요한 평상의 삶은 관계 가운데 주님의 마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그 마음에 경험한 사람은 주님의 마음을 닮은 모습으로 이웃들과 관계합니다. 주님을 마음에 만나고 그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먼저 내가 양보하고 손해볼 줄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관계하는 분들의 모임과 만남은 화평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좋은 우선적인 증거는 주님의 마음이 그 마음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가장 증명되어야 할 곳은 이웃들과 관계하는 삶을 통해서 입니다. 내가 사는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마음이 우선 나타나할 곳이 일상 속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입니다. 평상의 삶 가운데 나의 마음이 관계를 통해서 주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곳에 주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상의 삶 가운데 가장 승리해야 할 모습은 말로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격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는 것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인격을 보려면 그 사람의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믿음을 보려면 그 사람의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추천받을만한 사람들은 말에 있어서 본이 되는 승리가 있습니다. 항상 그리스도인이 승리해야 할 말은 긍정적이고 비젼있는 말이 필요합니다.말 한대로 인생은 결정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향해서 이웃들을 향해서 평상시에 내가 하는 말대로 내가 기억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말의 승리가 곧 인생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평상의 삶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반복되는 평상의 삶 가운데 균형잡힌 믿음의 자세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세계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2024 하계올림픽경기에 웃고 울고 있습니다. 각 나라를 대표해서 출전한 다양한 운동 종목의 선수들의 승리와 패배를 보면서 함께 기쁨과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을 대표한 선수들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다양한 승전보로 인해서 온 국민들이 큰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안타깝고 가슴아픈 선수들의 패배의 소식도 있기도 합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을 위해서 대부분 선수들은 최소 4년동안 모든 시간을 오직 올림픽의 승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 고생하고 땀을 흘리면서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올림픽 현장은 기쁨과 눈물이 공존합니다. 그리고 그 올림픽의 장처럼 우리 인생의 현장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현장에서도 삶의 올림픽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보며 인간의 도전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올림픽은 전세계의 모든 선수들이 함께 모여서 실력을 겨누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장에서 승리를 하고 우승을 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너무도 희박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각 종목의 다양한 선수들이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합니다. 어느정도 운동은 객관적인 전력을 통해서 결과가 예측되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몸을 쳐서 상을 향해서 도전하는 운동자세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운동선수처럼 비록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지만 날마다 주님이 위에서 주실 그 상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나를 쳐서 도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올림픽을 보며 고통의 땀없이는 기쁨의 상을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올림픽 선수로서 준비하는 모든 시간들은 매일 매일이 처절한 고통의 시간들입니다. 그들은 잠을 제한적으로 자야 하고 먹는 것도 줄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육신의 모든 쾌락을 제한하여 경기를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연습하는 매 순간이 처절한 육체의 고통의 시간을 갖아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과 육체가 날마다 반복하여 고통의 연습을 하는 것은 받을 상에 대한 가치가 있고 목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나님이 주실 기쁨의 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상을 얻기 위해서는 전심전력하는 믿음의 삶 가운데 모든 고난들을 잘 참고 이겨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전심전력하여 날마다의 삶의 고난을 이기면서 살아갈 때에 최종적으로 주님이 주시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올림픽 경기의 모든 진행과 결과는 철저하게 경기룰을 따라야 하고 심판을 따라야 하는 시간입니다. 모든 선수들은 경기 룰을 순종해야 하고 모든 경기마다 심판을 따라야 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룰을 따르지 않으면 실격이 되어서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선수들은 그 룰을 따라 경기를 보는 심판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때로 어떤 선수들은 심판의 지시에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하기도 하면서 모든 노력들이 허사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운동 선수들은 운동을 열심히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룰을 따라 바르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심판의 지시를 잘 따를 줄 아는 자세도 연습해야 합니다. 운동선수의 순종의 자세는 그리스도인이 적용해야 할 자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따라 우리 삶의 심판자인 하나님 앞에 설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운동선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의 현장은 운동선수의 경기장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운동선수처럼 자신을 드리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상과 칭찬을 받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거룩하신 분의 말씀 안에서
In the word of the Holy One
욥기(Job) 6:1-10
안근준 목사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후보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재선을 위한 후보직을 포기하고 난 후에 대국민 연설을 통해서 이제는 새로운 세대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 때가 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연설에서 “새 세대에게 횃불을 넘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대통령 후보직 포기는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미래 세대에게 바톤을 넘기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된 것은 그의 81세의 고령의 나이였습니다. 그는 세월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59세의 새로운 후보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에 대한 논란은 중요한 요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나이에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잦은 말실수와 더불어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그의 행동들은 나이에 따른 인지 능력의 결여와 신체 능력의 문제를 충분하게 추측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인생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주관적인 의욕과 열정으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의욕과 열심을 앞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나이의 때에 따른 한계는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산다고 해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때가 되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 세대가 가고 한세대가 오는 것을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의 전방에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점점 내려놓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더 할 수 있도록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젊은 세대가 더 할 수 있도록 내려놓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내가 주장하고 내가 끌어가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흘러가는 인생의 시간 앞에서 내려놓음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제일 힘든 것이 내려놓음의 적용입니다. 요즘 뉴욕교계 연합 모임에서 회장 자리를 놓고 잡음이 심각한 것을 봅니다. 서로 내려놓지 못하는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서로 상대방에게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자신은 충분히 경험도 있고 지식도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아는 어떤 지역교회의 경우에 은퇴한 목사님이 은퇴한 교회에 대하여 여전히 내려놓지 못해 교회가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도 봅니다. 결국 천여명이상 모이던 교회가 이제는 40여명만 남았고 지금도 여전히 분쟁으로 교회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은퇴목사님의 주장은 교회 때문에 내려놓을 수없다라고 합니다. 모든 문제는 나를 내려놓을 때에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때를 따라 바르게 순응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지혜 안에서 인생의 때를 분간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삶 가운데 30대 중반부터 시작된 삶의 절제가 있습니다. 모든 식사에서 80%만 먹는 절제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더라도 그것을 지금까지 적용했습니다. 어떤 경우에 조금 더 오버해서 음식을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이 원칙을 지키는 삶을 수십년간 살게 되었습니다. 조금 모자라게 식사하는 삶의 결과 속이 편안하고 수십년간 몸무게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적용하면서 혹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처음에는 불편한 생각도 있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내 삶의 루틴이 되어 자유하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음식에 대해서 절제를 적용하게 된 우선적인 이유는 고향 교회의 담임목사님의 영향이 있기도 합니다. 그 목사님은 모든 삶을 항상 철저하게 절제하면서 사셨던 분입니다. 젊은 날 나의 삶에 가장 부족함을 느꼈던 부분이 절제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음식과 잠과 오락과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절제를 적용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없었지만 그 가치를 알기에 매일 일정하게 적용을 위해서 애쓰면서 반복되는 가운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내 앞에 있더라도 욕심을 내지 않게 되고 어느 정도 배가 차면 더 이상 먹지 않도록 몸이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음식에 대하여 절제의 적용을 멈추지 않은 스스로의 이유는 과식과 포만으로 인한 몸의 부작용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욕심을 내어 과식을 하다 보면 소화불량 때문에 고생을 하곤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배가 포만감에 쌓이는 순간에 몸과 마음이 나른해지면서 무력감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차라리 조금 배가 덜 차거나 고플 때에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깨어 있는 것을 경험합니다. 목회자로 부름을 받고 사명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절제는 고행이 아니라 사명을 위한 거룩한 선택입니다. 물론 목회자의 길은 음식뿐만이 아니라 잠과 노는 것과 모든 것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서 내 몸이 절제할 때에 주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의 80%만 먹는 절제는 나의 모든 삶의 무리수를 줄이는 절제의 연단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운동을 하더라도 절대로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80%의 힘으로 하게 되면서 부상을 줄이고 몸을 상하지 않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목회를 하더라도 너무 잘하려고 하는 욕심을 줄이게 하고 과욕을 줄이는 기회가 됩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하더라도 80%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지나치게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을 앞세워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게 합니다. 결국 모든 삶에서 나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일정하고 꾸준한 삶을 살게 하는 연단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든 삶 가운데 나의 감정과 이성과 에너지에 대한 절제를 통해서 내 안에 흐르고 있는 모든 인간의 죄성을 다스리는 기회가 되면서 하나님 앞에 나를 단련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절제는 성령님이 원하시는 삶의 열매요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음식뿐 아니라 말도 절제가 필요하고 관계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절제는 주님이 주신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옛사람 나를 부정하고 새사람 나를 회복하는 기회입니다. 절제를 통한 기쁨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삶 가운데 30대 후반부터 시작한 테니스는 나의 마음을 훈련하는 아주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테니스를 하다보면 나만 잘해서는 절대로 운동을 잘 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잘 알고 이해할 때에 운동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경쟁하고 상대방과 관계를 하면서 단순히 몸만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관계를 훈련하는 기회가 됩니다. 때로는 나보다 잘 못하는 사람과 운동을 하면서 상대방을 더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반대로 나보다 더 잘 하는 상대방과 운동하면서 부족한 나를 보면서 더욱 나 자신을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운동이든 관계이든 모든 것을 잘 하기 위해서는 남도 더 이해하고 나도 더 이해하는 삶을 항상 배울 때에 모든 것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리고 삶의 경험이 많을수록 제일 힘든 일이 이해심을 키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나의 삶 가운데 매주 최소한 한번 이상 만나는 목사님 그룹이 있습니다. 10여년 전에 함께 그룹을 이루어 운동도 하고 목회도 나누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그룹입니다. 그당시 뉴욕에 온지 얼마안된 나는 기꺼이 그 모임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10여년 동안 운동 그룹을 함께 하는 가운데 처음 시작했던 모든 분들이 대부분 그 모임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대신에 새로운 멤버의 목사님들이 조인하여 함께 교제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떠나게 된 이유는 남을 더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나보다 운동을 못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자기 생각대로 운영되지 않는 모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자기 결론과 자기 답을 갖고 나와 다른 다른 사람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때에 교제는 단절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삶 가운데 이해심을 키우는 일은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삶이 그리고 모든 관계가 결코 내 생각과 기준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해심을 위해서는 끓임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굳어져서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말할 때에 그것을 듣고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성질이 급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으로 다른 남의 생각을 바로 판단하여서 공격하거나 가르치려고 합니다. 특히 오랜 경험이 있거나 나이가 많은 경우의 분들이 더욱 그런 모습을 봅니다. 더 묵상을 하면서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더 독서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해야 합니다. 더 교제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소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이해심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 내 의견과 다를 때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순간적으로 왜 라고 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고 이해심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순간적인 나의 감정과 생각으로 나와 다른 의견의 사람을 공격하려는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조금 더 참는 것은 결코 나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운동을 하다보면 가장 범하는 실수가 조급함입니다. 이것은 관계에 있어서도 가장 범하는 실수는 바로 나의 조급한 마음과 생각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나와 다른 남에 대해서는 쉽게 불편해 합니다.
내 안의 나의 마음과 생각을 더욱 넓혀서 나와 다른 남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이해심이 있는 삶으로 성숙하게 만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올해도 3박 4일간 중고등부 수련회를 잘 마쳤습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우리 교회가 호스트가 되어서 지방회 연합회 청소년 수련회를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이후에 지방회 개교회의 상황이 더 악화되고 특히 교회마다 다음 세대가 모이지 않음으로 인해서 점점 더 다음 세대의 수련회와 같은 행사가 계속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올해도 힘들고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수련회를 잘 개최하고 은혜가운데 잘 마치게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교회가 더욱 다음 세대를 함께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함을 고민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먼저 다음 세대를 위한 꾸준한 관심과 기도를 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수련회 같은 행사를 갖을 때에 먼저 교회의 모든 세대는 다함께 관심을 갖고 격려하고 기도하고 후원하면서 참가해야 합니다. 이번에 수련회를 위해서 교회의 많은 성도님들의 후원과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고 참여하시는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련회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중고등부와 같은 교회학교에 대해서 함께 관심을 갖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교회 안의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내 자녀가 이미 장성한 경우의 어른세대의 경우에는 교회의 다음 세대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의 다음 세대는 모두가 나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먼저 관심과 사랑과 기도할 때에 교회 안의 다음 세대들은 잘 정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가운데 다음 세대들이 잘 정착하고 자라기 위해서는 좋은 교사들의 섬김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도 3박 4일 수련회를 섬기기 위해서 시간과 몸과 모든 정성을 다해서 고난의 댓가를 지불한 섬김이 있었습니다. 결국 다음 세대가 영적으로 온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혜받은 교사들의 본이 필요합니다. 특히 이민 교회의 경우에 교회 가운데 다음 세대가 꾸준히 세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가운데 충성된 평신도 교사들의 준비와 헌신이 절대적입니다. 물론 다음 세대를 지도하는 교사들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먼저 준비하고 세워가는 영적인 수고와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명감을 갖고 하나님이 주신 교사의 사명을 꾸준히 순종할 때에 다음 세대 가운데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가운데 다음 세대들이 영적으로 잘 정착하고 자라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과 가치관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성경 중심의 바른 교육이 필요합니다. 아직 다음 세대는 믿음도 삶의 습관도 불안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하면서 그들이 마음과 삶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잘 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부지런하게 성경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다음 세대들의 궁금증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풀리고 더 나아가 인생의 방향과 꿈을 갖을 수 있도록 우리는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들이 어른들의 본을 통하여 그리고 성경 교육을 잘 받아서 영적으로 바르고 건강하게 세워져가고 꿈과 비전의 삶으로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선교 여행 중에 미국의 다양한 도시에 있는 한인 교회들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았습니다. 어떤 교회는 주일 예배를 통해서 경험하였고 어떤 교회는 새벽기도회를 통해서 경험하였고 어떤 교회는 방문하여서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민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과 핵심 일꾼들과 교제하면서 다양한 도시에서 미국의 한인이민교회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경험한 교회가 전부는 아니지만 미국에 있는 한인 이민 교회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었고 아울러 이민교회의 내일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선교 여행 중에 경험한 이민 교회의 현재는 대부분 깊은 침체 상태에 있는 경우가 보편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민 교회의 내일에 대해서도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없이는 소망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한인 이민교회는 이민 1세대의 헌신과 열심 속에 개척되었고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힘든 생활 가운데서 교회당도 세우고 전도를 통하여 숫자적인 성장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민 교회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교회 안의 다음 세대를 세우지 못하고 좋은 평신도 일꾼들을 잘 세우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민 교회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교회 안의 분쟁과 다툼으로 인해서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선교여행 중에 방문한 미국 지방 도시에 위치한 이민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더 힘을 잃고 이제 이민 교회의 상당수가 고령자 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과연 이민 교회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이번에 순례 중에 만난 목회자 그리고 평신도 일꾼들을 보면서 아직도 교회가 소망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만난 침례교회의 한 안수집사님은 모두가 떠나고 소수만 남은 교회를 수십년째 지키면서 전적으로 헌신하고 계셨습니다. 또 50대 초반의 목사님은 침체된 교회를 세우고 회복하기 위해서 열정을 갖고 말씀으로 양육으로 교제로 최선의 사역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이 되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구약의 포로 중의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에 느헤미야 에스라와 같은 한 사람 일꾼들을 부르셔서 큰 일을 이루신 것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주의 사람들을 통해서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큰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다양한 이민교회를 바라보면서 우리 교회가 이민 교회 가운데 바르고 건강한 교회의 좋은 모델이 되기를 더욱 꿈꾸고 기도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초대예루살렘교회처럼 성령이 충만한 교회로 세워져서 예배와 교제와 증거와 구제의 증거들이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안디옥교회처럼 주의 제자들과 일꾼들이 잘 세워지고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더욱 헌신하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더욱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가 더해지고 제자의 수가 더해지는 분명한 증거가 나타나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뉴욕마하나임선교교회가 이민 교회 가운데 좋은 모델이 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번에 약 20일 정도 일정으로 차를 운전하여서 애리조나 인디안 선교지 및 또다른 선교 현장인 미국의 다양한 한인이민교회를 체험하고 미국의 신학교를 방문하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미국의 중소도시에 위치한 한인이민교회의 경우에 많은 위기와 더불어 교회적인 전환점이 요구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목사님들 평신도 일꾼들의 경우에 위로와 힘이 필요하고 열정과 더불어 도전이 요구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선교일정 중에 켄자스시티와 오클라호마시티에 위치한 한인교회에서 예배드렸습니다. 두 교회 모두 역사가 오래된 교회였지만 성도들은 20명 내외였고 새롭게 부임한 40대 그리고 50대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목사님들의 교회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지만 현실적인 교회의 많은 어려움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안의 관계의 어려움이 공동체 교회를 세워가는데 제일 어려움인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면서 그들의 교회를 통한 하나님나라의 선교가 멈추지 않고 계속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이번 선교일정 기간 중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좋은 평신도 일꾼들을 만났습니다. 그중에 한 장로님은 한 지역교회를 개척하고 매주 2시간 이상되는 거리를 운전하여 오면서 교회를 섬겼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6년 전에 주일에 교회를 오다가 자동차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교회를 위해 시간과 몸과 물질을 헌신하면서 섬기는 모습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섬김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힘인 것을 고백했습니다. 지금도 성경 속에서 바울이 칭찬했던 믿음의 좋은 일꾼들을 하나님은 여전히 사용하시고 계심을 다시한번 기억하며 감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우리의 일정 속에서 다양한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마음을 넓히고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켄자스시티와 콜로라도의 끝없이 펼쳐진 녹색 초원과 유타주, 뉴멕시코주와 애리조나주의 한없이 넓고 황량한 사막을 보면서 하나님의 넓으신 마음과 일하심을 묵상 하였습니다. 높은 로키산 그리고 깊은 그랜드캐년의 계곡을 보면서 하나님의 높고 깊으신 능력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도시를 가로지르고 산과 들을 지나면서 끝없이 흐르는 미시시피강과 콜로라도 강물을 보면서 끈질긴 하나님의 열심을 묵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자연을 보면서 장차 우리가 고대하는 하나님 나라의 더욱 완성될 모습을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선교일정 중에 약 7천마일의 운전하면서 미국의 약 20주를 거치면서 최소 12개의 다양한 도시를 체험하였습니다. 모든 일정 가운데 함께 하시면서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뉴욕을 떠난지 5일만에 애리조나 나바호의 선교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협력하고 있는 인디언 선교사님 집은 인디언 보호구역인 나바호의 작은 도시였습니다. 우리는 선교사님 집에 머물면서 이번 단기선교 일정을 함께 갖기로 했습니다. 이번 단기 선교 일정은 3가지의 목적을 갖고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첫째, 인디언 선교를 위해 인디언 원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둘째, 현지에서 힘들고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선교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님의 선교사역에 대한 이해와 나눔을 하기로 했습니다. 셋째, 지금까지 단기 선교 사역을 점검하고 앞으로 단기 선교사역에 대한 방향성을 정비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의 인디언은 총 11개 족속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방문한 애리 조나 투바시티의 경우에 나바호족은 약 18만 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인디언 족속들중 일부는 아직도 과거 서부영화에 배경에 등장하는 지역이기도 하고 지금은 관광지로도 유명한 지역인 그랜드 캐년, 모뉴멘트 밸리등과 같은 곳에서 살고 있기도 했습니다.지금도 일부 인디언들은 사막과 계곡에서 과거의 선조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수의 인디언들은 보호구역에 살면서 미국정부에서 제공하는 교육과 의료와 직업을 통해 살아 가기도 합니다. 현지의 인디언들을 보면서 인상적인 것은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면서 인디언으로 자랑스럽게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인내의 배려와 더불어 영적으로 준비된 선교일꾼이 필요한 것을 봅니다.
인디언선교를 위해서 애쓰고 있는 이영호 선교사님 부부는 이곳에 12년전에 부임했습니다. 지난 12년동안 가장 애쓰고 힘쓴 일은 선교센터와 방과후 학교를 위한 1에이커의 땅 준비, 매주 버스를 이용하여 침 무료진료, 현지 인디언교회를 설교와 교육을 통해서 세워가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무료로 매주 금요일 진행되는 침술 사역은 지역의 인디언 원주민들로부터 복음에 대해서 마음을 열게 하고 선교사님 부부에 대하여 아주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몇 년동안 사역적으로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든 사역들이 완전한 정착은 아니지만 많은 진보가 이루어진 것을 보고 감사하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의 비전을 위해서 기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디언 단기선교를 통해서 교회의 단기선교를 돌아보는 점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교회의 단기선교를 위해서 먼저 고려할 것은 현장의 선교사와 교회가 서로 더불어 더욱 윈윈전략을 갖는 것입니다. 현장의 선교사를 무시하고 개교회가 우선되어지는 선교는 오히려 선교 현장에서 충돌을 갖기 때문에 현지 상황을 고려한 현장선교를 먼저 고려하고 교회는 도와야 합니다. 둘째, 물량주의적인 단기선교를 지향하고 선교 현장의 필요를 채워주는 섬김의 선교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의료선교와 이미용선교 방과후학교와 같은 교육선교 등의 좀더 전문화된 선교접근이 필요합니다. 셋째,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선교를 통하여 더 전문화된 선교사역자를 키우는 것입니다. 교회가 현장 중심의 상황에 전문화된 선교사역자를 발굴하고 키워서 선교 현장이 더욱 능력있는 현장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비록 짧은 선교 현장의 시간이었지만 모든 현장의 시간을 통해서 복음과 선교의 열정이 내 안에 회복되는 기회가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