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앞 정원에 심겨진 감나무가 올해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감나무에 주렁 주렁 열린 열매 때문에 보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는데 올해는 아쉬움이 큽니다. 아마도 올해는 여러 가지 날씨와 영양상태들이 열매를 맺기에는 충분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열매 없는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아님을 배우게 됩니다. 같은 감나무이지만 어떤 해에는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다른 해에는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열매의 능력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원리처럼 우리 인생의 열매를 맺는 것도 비슷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사람들 중에 보기에 아름다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매를 잘 맺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는 뿌듯하고 만족한 삶이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열매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마음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먼저 마음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인간 죄성의 본성은 돌아서면 또 올라오는 풀과 같이 멈추지 않고 우리 마음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 마음에 임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고 날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을 다스리게 하시고 항상 주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주의 은혜로 다스리는 사람은 예수님이 그 마음의 주인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이 인생의 주인으로 살지 않고 주님이 주인이 되게 살게 하시고 마음을 통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가을에 가정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가정 가운데 풍성한 관계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화목한 부부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형통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무엇보다도 주시는 생명 가운데 건강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의 열매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심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의 열매 그리고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주인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열매의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열매가 우리 가운데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종종 한식이 먹고 싶으면 가는 한국 식당이 있습니다. 항상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국에서 맛보던 특유의 맛이 꾸준합니다.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나오는 밑반찬과 꾸준한 그 집의 음식맛은 계속해서 그 집을 찾게 하는 매력입니다. 바램은 꾸준하게 그 맛을 유지하고 버티면서 경쟁에서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변하고 요동치는 까다롭고 변덕이 심한 사람들의 입맛을 붙잡는 것이 점점 어려운 시대 가운데 꾸준한 맛을 내면서 식당을 한다는 것은 왠만한 뚝심이 아니면 어려울 것입니다. 꾸준한 맛을 지키는 식당이 되려면 식당 주인의 꾸준한 삶의 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꾸준한 식당의 음식의 매력만큼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매력은 꾸준함의 영성입니다. 환경에 요동치지 않고 믿음으로 자신을 지켜가는 믿음의 꾸준함이 요구됩니다. 거센 세상의 유혹과 도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꾸준함이 요구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매사를 살아가는 순종의 꾸준함이 요구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자기 중심의 마음을 버리고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꾸준함이 요구됩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지키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는 봉사의 꾸준함이 요구됩니다. 결국 꾸준함이 그 사람의 삶의 실력입니다.

꾸준한 삶은 꾸준하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에 꾸준하게 계속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삶의 힘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혜가 있어야 꾸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꾸준한 삶은 자원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지루하지 않고 반복될 수 있습니다. 만일에 그 꾸준한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는 동시에 무의미한 반복이 되어서 매사가 더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반복되는 모든 꾸준한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삶을 더 의미있게 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 반복되는 꾸준한 매사의 삶은 매사가 예배가 되어 나를 하나님 앞에 의미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의 삶은 곧 낙엽처럼 땅으로 떨어질 때가 곧 있습니다. 이땅에서 모든 시간을 마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꾸준한 영성의 삶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그날이 더욱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하나님께 집중되는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집중되는 꾸준함이 없는 인생의 후반전은 헛된 것에 몰입하여 무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을 맞이하여 더욱 하나님 앞에 집중하는 꾸준함의 영성으로 더욱 의미있고 풍성한 인생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 여름성경학교를 지난 주간 3일동안 은혜롭게 잘 마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올해는 사흘동안 적당한 온도와 습도의 맑고 쾌청한 날씨어서 행사를 진행하기에 너무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프로그램을 준비한 대로 잘 적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또한 아이들 중에 다치거나 다툼과 갈등의 문제없이 모든 시간들이 순적하게 잘 마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모든 성경학교를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한 교역자 그리고 교사들과 보조 교사들의 수고가 컸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교사들을 위해서 식당에서 음식과 간식으로 수고하며 헌신하신 자원의 집사님들의 수고가 너무도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가 다음 세대를 위하여 여름성경학교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단의 경우에 뉴욕과 뉴저지의 교회들 가운데 여름성경학교를 할 수 있는 교회가 전체 교회의 10%내외 정도입니다. 10개 교회가 있으면 1개 교회 정도가 여름성경학교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더 큰 교단인 뉴욕의 장로교 감리교의 경우에도 전체의 20% 내외에 불과합니다. 이미 이것은 미국의 이민교회 뿐 아니라 한국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일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일은 이제 소수의 교회만이 두리는 영광이 되어 버렸습니다. 앞으로 더욱 교회가 다음 세대를 섬기는 일들을 위하여 감사로 여기면서 더욱 영광스러운 주의 일로 여기면서 감당해야 할 사역들입니다.

우리는 함께 교회의 다음 세대를 위하여 양질의 높은 교육의 섬김을 위한 교육의 비전을 갖아야 합니다. 양질의 교회 교육을 위해서는 영적인 요소인 우리의 기도와 아울러 구체적인 우리 몸의 헌신 더 나아가 물질의 헌신과 더불어 좋은 교사들이 양육되고 훈련되어야 합니다. 특히 교육은 교사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학교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교회학교 교사들이 교회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먼저 우리 교회의 경우에는 교사들은 제자훈련과 같은 구체적인 자기 훈련을 통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를 반드시 갖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도와 독서와 세미나를 통해서 지성과 영성의 발란스를 갖추는 교사로서 세워가는 훈련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온전한 성경적인 교육을 위한 교회를 위하여 많은 헌신의 눈물과 땀의 고난과 수고의 댓가가 요구됩니다. 마치 한가정의 아기가 태어나고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의 보이지 않는 고통의 댓가가 지불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의 자세입니다. 특히 자라나는 다음 세대 한 영혼 한 영혼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른도 예외가 아닙니다. 또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아직도 이 지역과 도시 안에 구원받아야 할 누군가 한 영혼이 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더욱 눈을 들어 추수할 밭을 바라보면서 영혼을 거두어 추수하는 일에 더욱 집중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 지방회 주관 목회자 수양회를 지난 주간 2박 3일 일정으로 잘 마쳤습니다. 올해는 업스테이트 뉴욕에 위치한 수양관에서 다른 해보다는 적은 숫자의 목회자 가족들이 함께 했습니다. 올해는 두 권의 책을 읽고 나누는 일정과 지방회 40주년을 돌아보고 함께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는 기회를 갖았습니다. 지금까지 뉴욕에서 반복되는 수양회를 했지만 어쩌면 올해가 가장 의미있는 수양회 시간이라고 자평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책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자기 목회를 돌아보고 목회자 자신을 돌아보는 객관적인 자기 점검의 기회를 갖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기 객관화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주의 일꾼으로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명을 감당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수양은 자기를 객관화하는 시간을 갖는 일입니다. 특히 이민교회의 경우에 대부분 어렵고 힘든 목회지의 현실에서 자기를 객관화하는 일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이렇게 자기 객관화의 시간이 결여된 목회자의 반복되는 일상은 모든 문제를 교회 탓을 하거나 외적인 환경 탓을 하면서 자기 문제를 합리화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들끼리 모임을 통해서 냉정한 자기 점검보다는 섣부른 인간적인 위로를 통해서 모든 문제들을 외부에 돌리면서 목회자 스스로의 성장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 스스로가 주관적인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자신을 객관화하는 수련의 시간의 기회를 갖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목회의 길을 달려오면서 다양한 목회자들과 교제하였습니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장로교의 배경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하면서 다양한 장로교 목회자들과 교제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침례교 목회를 하면서 다양한 침례교 배경을 갖은 목회자들과 교제하였습니다. 나라가 다르고 교단이 다른 가운데 다양한 목회자들과 교제하면서 목회를 잘하는 목회자의 공통되는 한가지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목회자 스스로 자기 훈련의 수양이 잘 된 사람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관계없이 목회를 잘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비록 환경이 다르고 사람을 다르더라도 목회자의 목회의 기본 원리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먼저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잘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목회자의 길을 가면서 자신을 수양하는 길은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목회자 앞에 많은 선택이 있고 많은 유혹이 기다리고 있지만 먼저 철저하게 주님을 먼저 바라보면서 주님을 따라가는 고독한 선택의 수양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부르심의 일꾼이었던 구약의 모세나 신약의 바울같은 하나님의 일꾼들도 결국 자기 마음을 철저하게 다스리면서 끝까지 주님의 뜻을 고독하게 순종한 것처럼 목회자의 길은 고독한 순종의 길입니다. 목회자에게 최대의 적은 다수의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일 수 있고 목회자 안에서 헛되게 품은 세상적인 성공의 야망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목회자의 길은 세상과 다른 거꾸로 살아가는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수양이 된 목회자는 모든 유혹과 도전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기 수양을 하는 일은 목회자에게 가장 우선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선택이 되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날마다 먼저 나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몇 년간 교제했던 어떤 목사님이 부탁하여 담임목회 추천서를 써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운동과 독서를 통해서 교제했던 그분의 평상의 삶 속에서 나누고 경험한 대로 최선을 다해서 추천서를 써주게 되었습니다. 평상의 삶 가운데 경험한 그 목사님의 인격과 신앙은 한 교회를 담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기에 좋은 마음으로 추천서를 써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귀면서 대화하였던 평상시의 그분의 모든 생각과 말 그리고 모든 자세를 돌아보면서 추천서에 모든 것을 마음을 담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평상의 삶으로 증명됩니다. 믿음있는 사람은 평상의 삶 가운데 승리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일 중요한 평상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정직하게 균형있는 삶으로 승리하는 모습입니다. 우선 하나님 앞에서 가정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본이 될 수 없습니다. 일터에서도 맡은 일에 있어서 승리해야 합니다. 열심히 교회 생활하는 것 이상으로 일터에서 우리는 예배자로서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정해 주신 삶의 예배처소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와 더불어 가정과 일터에서 승리하는 삶의 예배자로서 승리하는 균형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요한 평상의 삶은 관계 가운데 주님의 마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그 마음에 경험한 사람은 주님의 마음을 닮은 모습으로 이웃들과 관계합니다. 주님을 마음에 만나고 그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먼저 내가 양보하고 손해볼 줄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관계하는 분들의 모임과 만남은 화평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좋은 우선적인 증거는 주님의 마음이 그 마음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가장 증명되어야 할 곳은 이웃들과 관계하는 삶을 통해서 입니다. 내가 사는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마음이 우선 나타나할 곳이 일상 속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입니다. 평상의 삶 가운데 나의 마음이 관계를 통해서 주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곳에 주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상의 삶 가운데 가장 승리해야 할 모습은 말로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격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는 것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인격을 보려면 그 사람의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믿음을 보려면 그 사람의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추천받을만한 사람들은 말에 있어서 본이 되는 승리가 있습니다. 항상 그리스도인이 승리해야 할 말은 긍정적이고 비젼있는 말이 필요합니다.말 한대로 인생은 결정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향해서 이웃들을 향해서 평상시에 내가 하는 말대로 내가 기억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말의 승리가 곧 인생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평상의 삶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반복되는 평상의 삶 가운데 균형잡힌 믿음의 자세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세계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2024 하계올림픽경기에 웃고 울고 있습니다. 각 나라를 대표해서 출전한 다양한 운동 종목의 선수들의 승리와 패배를 보면서 함께 기쁨과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을 대표한 선수들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다양한 승전보로 인해서 온 국민들이 큰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안타깝고 가슴아픈 선수들의 패배의 소식도 있기도 합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을 위해서 대부분 선수들은 최소 4년동안 모든 시간을 오직 올림픽의 승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 고생하고 땀을 흘리면서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올림픽 현장은 기쁨과 눈물이 공존합니다. 그리고 그 올림픽의 장처럼 우리 인생의 현장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현장에서도 삶의 올림픽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보며 인간의 도전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올림픽은 전세계의 모든 선수들이 함께 모여서 실력을 겨누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장에서 승리를 하고 우승을 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너무도 희박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각 종목의 다양한 선수들이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합니다. 어느정도 운동은 객관적인 전력을 통해서 결과가 예측되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몸을 쳐서 상을 향해서 도전하는 운동자세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운동선수처럼 비록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지만 날마다 주님이 위에서 주실 그 상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나를 쳐서 도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올림픽을 보며 고통의 땀없이는 기쁨의 상을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올림픽 선수로서 준비하는 모든 시간들은 매일 매일이 처절한 고통의 시간들입니다. 그들은 잠을 제한적으로 자야 하고 먹는 것도 줄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육신의 모든 쾌락을 제한하여 경기를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연습하는 매 순간이 처절한 육체의 고통의 시간을 갖아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과 육체가 날마다 반복하여 고통의 연습을 하는 것은 받을 상에 대한 가치가 있고 목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나님이 주실 기쁨의 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상을 얻기 위해서는 전심전력하는 믿음의 삶 가운데 모든 고난들을 잘 참고 이겨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전심전력하여 날마다의 삶의 고난을 이기면서 살아갈 때에 최종적으로 주님이 주시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올림픽 경기의 모든 진행과 결과는 철저하게 경기룰을 따라야 하고 심판을 따라야 하는 시간입니다. 모든 선수들은 경기 룰을 순종해야 하고 모든 경기마다 심판을 따라야 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룰을 따르지 않으면 실격이 되어서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선수들은 그 룰을 따라 경기를 보는 심판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때로 어떤 선수들은 심판의 지시에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하기도 하면서 모든 노력들이 허사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운동 선수들은 운동을 열심히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룰을 따라 바르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심판의 지시를 잘 따를 줄 아는 자세도 연습해야 합니다. 운동선수의 순종의 자세는 그리스도인이 적용해야 할 자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따라 우리 삶의 심판자인 하나님 앞에 설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운동선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의 현장은 운동선수의 경기장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운동선수처럼 자신을 드리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상과 칭찬을 받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거룩하신 분의 말씀 안에서

In the word of the Holy One

욥기(Job) 6:1-10

안근준 목사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후보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재선을 위한 후보직을 포기하고 난 후에 대국민 연설을 통해서 이제는 새로운 세대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 때가 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연설에서 “새 세대에게 횃불을 넘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대통령 후보직 포기는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미래 세대에게 바톤을 넘기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된 것은 그의 81세의 고령의 나이였습니다. 그는 세월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59세의 새로운 후보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에 대한 논란은 중요한 요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나이에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잦은 말실수와 더불어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그의 행동들은 나이에 따른 인지 능력의 결여와 신체 능력의 문제를 충분하게 추측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인생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주관적인 의욕과 열정으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의욕과 열심을 앞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나이의 때에 따른 한계는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산다고 해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때가 되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 세대가 가고 한세대가 오는 것을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의 전방에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점점 내려놓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더 할 수 있도록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젊은 세대가 더 할 수 있도록 내려놓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내가 주장하고 내가 끌어가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흘러가는 인생의 시간 앞에서 내려놓음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제일 힘든 것이 내려놓음의 적용입니다. 요즘 뉴욕교계 연합 모임에서 회장 자리를 놓고 잡음이 심각한 것을 봅니다. 서로 내려놓지 못하는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서로 상대방에게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자신은 충분히 경험도 있고 지식도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아는 어떤 지역교회의 경우에 은퇴한 목사님이 은퇴한 교회에 대하여 여전히 내려놓지 못해 교회가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도 봅니다. 결국 천여명이상 모이던 교회가 이제는 40여명만 남았고 지금도 여전히 분쟁으로 교회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은퇴목사님의 주장은 교회 때문에 내려놓을 수없다라고 합니다. 모든 문제는 나를 내려놓을 때에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때를 따라 바르게 순응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지혜 안에서 인생의 때를 분간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삶 가운데 30대 중반부터 시작된 삶의 절제가 있습니다. 모든 식사에서 80%만 먹는 절제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더라도 그것을 지금까지 적용했습니다. 어떤 경우에 조금 더 오버해서 음식을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이 원칙을 지키는 삶을 수십년간 살게 되었습니다. 조금 모자라게 식사하는 삶의 결과 속이 편안하고 수십년간 몸무게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적용하면서 혹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처음에는 불편한 생각도 있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내 삶의 루틴이 되어 자유하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음식에 대해서 절제를 적용하게 된 우선적인 이유는 고향 교회의 담임목사님의 영향이 있기도 합니다. 그 목사님은 모든 삶을 항상 철저하게 절제하면서 사셨던 분입니다. 젊은 날 나의 삶에 가장 부족함을 느꼈던 부분이 절제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음식과 잠과 오락과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절제를 적용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없었지만 그 가치를 알기에 매일 일정하게 적용을 위해서 애쓰면서 반복되는 가운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내 앞에 있더라도 욕심을 내지 않게 되고 어느 정도 배가 차면 더 이상 먹지 않도록 몸이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음식에 대하여 절제의 적용을 멈추지 않은 스스로의 이유는 과식과 포만으로 인한 몸의 부작용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욕심을 내어 과식을 하다 보면 소화불량 때문에 고생을 하곤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배가 포만감에 쌓이는 순간에 몸과 마음이 나른해지면서 무력감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차라리 조금 배가 덜 차거나 고플 때에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깨어 있는 것을 경험합니다. 목회자로 부름을 받고 사명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절제는 고행이 아니라 사명을 위한 거룩한 선택입니다. 물론 목회자의 길은 음식뿐만이 아니라 잠과 노는 것과 모든 것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서 내 몸이 절제할 때에 주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의 80%만 먹는 절제는 나의 모든 삶의 무리수를 줄이는 절제의 연단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운동을 하더라도 절대로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80%의 힘으로 하게 되면서 부상을 줄이고 몸을 상하지 않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목회를 하더라도 너무 잘하려고 하는 욕심을 줄이게 하고 과욕을 줄이는 기회가 됩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하더라도 80%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지나치게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을 앞세워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게 합니다. 결국 모든 삶에서 나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일정하고 꾸준한 삶을 살게 하는 연단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든 삶 가운데 나의 감정과 이성과 에너지에 대한 절제를 통해서 내 안에 흐르고 있는 모든 인간의 죄성을 다스리는 기회가 되면서 하나님 앞에 나를 단련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절제는 성령님이 원하시는 삶의 열매요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음식뿐 아니라 말도 절제가 필요하고 관계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절제는 주님이 주신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옛사람 나를 부정하고 새사람 나를 회복하는 기회입니다. 절제를 통한 기쁨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삶 가운데 30대 후반부터 시작한 테니스는 나의 마음을 훈련하는 아주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테니스를 하다보면 나만 잘해서는 절대로 운동을 잘 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잘 알고 이해할 때에 운동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경쟁하고 상대방과 관계를 하면서 단순히 몸만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관계를 훈련하는 기회가 됩니다. 때로는 나보다 잘 못하는 사람과 운동을 하면서 상대방을 더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반대로 나보다 더 잘 하는 상대방과 운동하면서 부족한 나를 보면서 더욱 나 자신을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운동이든 관계이든 모든 것을 잘 하기 위해서는 남도 더 이해하고 나도 더 이해하는 삶을 항상 배울 때에 모든 것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리고 삶의 경험이 많을수록 제일 힘든 일이 이해심을 키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나의 삶 가운데 매주 최소한 한번 이상 만나는 목사님 그룹이 있습니다. 10여년 전에 함께 그룹을 이루어 운동도 하고 목회도 나누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그룹입니다. 그당시 뉴욕에 온지 얼마안된 나는 기꺼이 그 모임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10여년 동안 운동 그룹을 함께 하는 가운데 처음 시작했던 모든 분들이 대부분 그 모임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대신에 새로운 멤버의 목사님들이 조인하여 함께 교제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떠나게 된 이유는 남을 더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나보다 운동을 못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자기 생각대로 운영되지 않는 모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자기 결론과 자기 답을 갖고 나와 다른 다른 사람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때에 교제는 단절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삶 가운데 이해심을 키우는 일은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삶이 그리고 모든 관계가 결코 내 생각과 기준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해심을 위해서는 끓임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굳어져서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말할 때에 그것을 듣고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성질이 급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으로 다른 남의 생각을 바로 판단하여서 공격하거나 가르치려고 합니다. 특히 오랜 경험이 있거나 나이가 많은 경우의 분들이 더욱 그런 모습을 봅니다. 더 묵상을 하면서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더 독서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해야 합니다. 더 교제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소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이해심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 내 의견과 다를 때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순간적으로 왜 라고 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고 이해심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순간적인 나의 감정과 생각으로 나와 다른 의견의 사람을 공격하려는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조금 더 참는 것은 결코 나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운동을 하다보면 가장 범하는 실수가 조급함입니다. 이것은 관계에 있어서도 가장 범하는 실수는 바로 나의 조급한 마음과 생각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나와 다른 남에 대해서는 쉽게 불편해 합니다.

내 안의 나의 마음과 생각을 더욱 넓혀서 나와 다른 남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이해심이 있는 삶으로 성숙하게 만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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