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박 12일 동안 7년 만에 방문한 한국 여행은 고생이 되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침 방문 기간이 한국의 고유 명절 설날이 있어서 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눈과 한파로 인해서 다소 불편함도 있었지만 모처럼 좋은 만남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마음의 갈증을 푸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우선은 고향에 계시는 나이드신 어머님이 건강하게 우리를 맞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모처럼 설날을 맞이하여 어머니를 방문한 형님가족과 동생을 만나서 함께 교제하고 음식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강릉 강동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과거 정들었던 교회 식구들과 좋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 또 나의 모교회인 영월 교회에 들러서 오래된 성도들을 반갑게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교제하였던 목회자들과 만나서 그동안 밀렸던 대화를 함께 하면서 모처럼 회포를 풀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마치 어제 보았던 것같은 친근한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교제를 갖으면서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구나 하는 것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좋았던 것은 맛있는 한국 음식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우선 강릉에서 회와 초당순두부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역시 동해안에서 먹는 물회의 맛과 순두부의 맛은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월에서는 보리밥과 송어회와 곤드레 밥을 먹으면서 역시나 감동이 되었습니다. 특히 영월 송어회는 차고 맑은 물에서 자라서 회가 너무 차지고 고소한 맛이 백미입니다. 원주에 들러서는 향토 두부 정식과 인천의 소래 항구에서 대접받은 회와 인천의 돼지 갈비의 맛은 가히 일품이었습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음식은 지역마다 독특한 특색과 맛이 있어서 너무나 식도락가들에게는 좋습니다. 모처럼 한국 음식을 통해서 입이 호사하는 행복한 시간을 갖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의 다양한 지역을 다니면서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우선 강릉은 2018년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느라 많은 경기장과 아파트를 짓고 새로 전철과 길을 닦느라 분주했습니다. 경포대 호수의 아름다움과 새롭게 정비한 산책길과 공원을 통해서 더 아름답게 변화되었습니다. 영월은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오밀 조밀 도시를 잘 꾸며가고 있었고 원주는 혁신도시 관계로 새롭고 엄청난 주택단지가 들어서고 빌딩이 세워지면서 놀라운 변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인천은 새로운 섬에 신도시를 개발하고 인천 국제공항을 더 확장시키면서 이제는 서울 못지 않은 발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7년만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경험한 것은 아직은 낯설지 않는 친근하고 익숙한 분위기였습니다. 만나는 사람, 먹는 음식, 다양한 도시들이 여전히 익숙하고 친근하였습니다. 그러나 변한 것이 있다면 과거처럼 좋았지만 동경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12일동안 짧은 한국 방문의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내 안에는 미국의 뉴욕에서의 삶을 통해서 얻어지는 맛과 경험이 벌써 그리워졌습니다.한국을 방문하면서 어느덧 나도 미국과 뉴욕이 새로운 고향이 되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특별히 새로운 지역에서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는 한해가 될 것입니다. 항상 새로운 도전은 기대가 되지만 위험을 내포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다함께 변화를 위해 도전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째, 전도 및 선교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도전해야 합니다. 우선, 지역 속에서 다양한 선교의 도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선은 한국인들에게 복음과 교회를 전하기 위해서 도전할 것입니다. 지역의 식당 및 마켓을 이용해서 복음전도지 및 교회 안내지를 알리는 것입니다. 봄이 되면 매주 1회 정기적으로 전도하는 도전의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다음은 문화이벤트를 통해서 복음과 교회를 알리는 방법입니다. 봄에는 지역의 외국인들에게 한국음식을 준비해서 섬기면서 우리 교회를 알리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가을에는 좋은 음악회를 준비해서 교회를 알리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아티티에 해외 단기 선교를 우리 교회를 중심으로 도전하고자 합니다. 아이티 해외선교는 올해 3회째 도전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복음의 감격을 다시한번 경험하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둘째 교육과 훈련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도전해야 합니다. 우선 어린아이들의 교육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토요일을 이용해서 한글학교를 도전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30-40대 부모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전략를 잘 짜서 때를 따라 도전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가정 주부들을 위한 치유와 훈련 프로그램을 주중에 개설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주중에 성인들의 취미 필요를 통한 교제와 나눔의 시간을 갖을 것입니다. 일단은 등산, 테니스, 탁구 모임같은 것을 개설해서 교회를 통하여 적절한 문화 및 운동을 통한 나눔과 교제를 활성화하고자 합니다.
셋째, 영성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도전해야 합니다. 우선 개인적으로 1년에 성경을 1독 하기 위해서 성경통독을 위한 성경 문제 풀기를 다시한번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분기에 1회 시상할 것입니다. 다음 다양한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기도의 영성을 업그레이드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함깨 책을 읽고 나누는 독서를 통하여 지성있는 영성을 업그레이드할 것입니다. 그래서 균형있는 영성을 통하여 주님을 알고 배우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계속해서 제자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천함으로서 주님을 더욱 알고 배우는 기회를 갖고자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교회 속에서 핵심 지도자들을 세우는 기회를 삼고자 합니다.
넷째, 평신도 리더쉽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도전해야 합니다. 올해는 교회 속에 안수집사님과 권사를 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같이 기도하면서 합당한 평신도 리더가 세워지기를 도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세대교체의 다양한 도전에 서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교회 속에서 젊은 세대를 세워서 교회가 새롭게 되고 변화하기를 도모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큰 과제일 것입니다.

2016년 교회를 돌아보며

벌써 2016년 한해가 다 흘러갔습니다. 저물어가는 한해를 돌아보면서 지난 1년동안 함께 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마치 이스라엘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시면서 광야에서 인도하시듯이 우리 교회 가운데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교회적으로 지난 1년은 생생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 속에 놀라운 인도하심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풍성한 체험의 한해였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연약한 교회의 형편을 아시고 최적으로 도우시면서 인도하셨습니다. 지난 1년 동안에 우리가 플러싱 교회를 매각하고 사요셋으로 오기까지 그 과정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불가능했습니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것들이 부족한 우리 교회의 정황에서 하나님은 가장 합당한 때에 적절한 액수로 교회를 무빙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42년의 교회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갖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다음에 우리의 형편에 걸맞는 교회 수리를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인도하셨습니다. 제한적인 형편의 예산 속에서 교회를 수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특히 지하의 교육관의 방수문제는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의외로 모든 것들이 예상을 뛰어넘어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혜와 방법을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지금 큰 비가 와도 지하 교육관의 방수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이전 보다 큰 건물로 인하여 보험비,가스비,전기세등의 관리비를 걱정했지만 현재까지는 이전과 비교하였을 때에 비해 크게 과중되지 않게 감당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한해를 돌아보면서 감사한 것은 마음을 다해서 교회를 지키고 사랑하는 성도들의 손길을 감사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발견되는 일거리를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저마다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몸을 바치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면서 저마다 자원하여 섬길 수 있는 마음과 믿음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새교회당을 셋업하여 갈 수 있게 됨을 감사합니다. 특히 새로운 지역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심 가운데 인도하여 주시는 새가족들을 하나님이 채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이곳 교회당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분명하고 놀라운 뜻들이 더욱 펼쳐지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이제 2016년은 흘러가지만 인생의 뒤안길에서 교회 역사에 기억이 분명히 될 것입니다. 지난 1년동안 불안과 두려움의 정황에서 새로운 도전의 교회가 되도록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롭고 위대한 교회 역사를 친히 세워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장래를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찬양하면서 앞으로 더 위대하게 펼쳐질 하나님의 역사를 다함께 소망하면서 앞으로 도전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한해의 마지막 12월 앞에 서면 왠지 모를 아쉬움들이 먼저 마음을 채웁니다.
1월 앞에서 풍선처럼 부풀었던 마음과는 너무나도 다른 마음입니다. 무엇보다도 12월을 맞이하면서 한해의 뒤를 돌아보면서 정말 성경의 시편의 기자가 고백한 것처럼 살같이 빠른 시간의 흐름을 고백하게 됩니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성 아우구스니티누스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가 과연 그것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시간에 관해서 웬만큼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내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솔직히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가장 잘아는 것이 시간이지만 가장 잘 모르는 것도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하여 사전적인 의미는 “시간이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며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속체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결국 시간은 삶의 사건의 연속입니다.
시간 속에서 인생을 승리하는 사람은 시간을 잘 관리합니다. 벤쟈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인생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인생이라는 것은 바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결국 인생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시간관리가 제일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시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시간을 도둑맞고 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시간을 도둑맞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미루는 습관’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2가지 유형의 미루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식적인 미루기의 습관과 무의식적인 미루기의 습관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미루는 습관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은 그 일이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즐겁고 기쁜 일을 뒤로 미루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귀찮은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를 하는 일,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 운동을 하는 일, 성경을 보는 일, 은행업무를 보는 일등은 분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썩 즐거운 일이 못되기 때문에 미루게 됩니다.
또 우리가 미루는 이유는 피곤함이나 그 일의 복잡함 귀찮음등과 같은 이유들이 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미루게 되면서 결국은 더 힘들어지게 되고 더 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무책임한 삶의 사람이 되고 그러면서 점점 시간에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시간의 실패자는 인생의 후회를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뒤로 미루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몇가지 변화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시간 속에서 데드라인을 정하여 목표를 정하여 일처리를 해야 합니다. 매일 삶 속에서 그날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들은 해가는 습관을 갖아야 합니다. 그것을 뒤로 미루게 되면 시간을 도둑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매일의 삶, 매주의 삶, 매월의 삶, 매년의 삶을 우리는 계획하면서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을 잘 사용하는 삶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삶의 목표한 것들을 날마다 실천하기를 목표로 하면서 날마다 그것을 챙기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삶의 목표들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세운 삶의 목표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마음에 새기고 삶에 적용을 위해 열심히 수고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처럼 오해를 많이 받는 곳도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갖고 있는 독특한 정체성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예수님이 주인인 모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때문에 신비한 모임입니다. 그 결과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가 나의 이성과 합리성에 근건한 편견으로 교회를 바라볼 때에는 오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의 모임일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교회 밖에서 교회를 바라볼 때에 가장 갖는 환상입니다. 절대로 지상의 어떤 사람도 완전하지 못하듯이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단지 차이가 있는 점은 자신들의 불완전함의 죄성을 하나님께 용서받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의 사람들은 여전히 죄인들의 약점과 문제가 있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음,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교회에 깊이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오해입니다. 우리는 상처받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고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상처는 성장으로 가는 코스입니다. 어느 정도 상처를 받아야 우리의 믿음도 관계도 단련합니다. 마치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부부싸움을 하면서 두사람의 관계는 비로서 연인에서 부부로 발전하게 됩니다. 약점을 보고 참고 인내하면서 서로가 비로서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가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우리는 비로서 성숙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교회는 목사님이 알아서 끌어가고 성도들은 따라가면 된다는 오해입니다. 교회는 함께 세워가는 모임입니다. 목사는 목사의 자리가 있고 성도들은 각자의 주어진 고유한 자리가 있습니다. 교회는 팀웍을 이루어서 주님을 중심으로 말씀을 중심으로 세워가는 곳이지 일방적으로 끌어가고 따라가는 모임은 아닙니다. 이런 오해를 갖게 되면 수동적인 평신도의 입장이 됩니다. 성도의 책임을 미루고 회피하게 됩니다. 나는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으로 나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더불어 함께 세워가는 교회가 되려면 모든 성도들이 나의 은사, 직분, 사명을 따라 교회를 세워가는 소명감을 갖아야 합니다.
넷째 교회는 주일날만 나오면 된다는 오해입니다. 주일 중심의 교회 생활은 종교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기독교는 주일을 중심으로 종교적인 형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본래 사도행전의 초대예루살렘교회는 매일 서로 함께 모여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가 종교적인 주일 중심의 교회가 되면서 형식적인 기독교가 되면서 기독교는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타락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이런 형식에 습관이 되어서 교회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의 신앙과 기독교로 제한하는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매일 서로 함께 주님과 관계하면서 매일의 교회로 세워가야 합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은 감사를 배우게 하는 시간입니다. 산은 산대로 감사를 배우게 하고 하늘은 하늘대로 감사를 배우게 합니다. 모든 익어가는 열매를 통해서 물들어가는 단풍을 통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익게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도 더 성숙하게 익어가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세월의 무게만큼 믿음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더 풍성한 감사의 고수가 되어야 함을 보게 됩니다.
한해 가을을 보내면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삶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새벽기도회를 위해 도로 위를 달려오면서 감사하는 것은 평범한 하루이지만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상이 감사합니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서 평범하지만 하루를 잘 마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매주일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서 대면할 수 있는 일상도 감사합니다. 언제까지 내가 건강하게 설교자로 남아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올 한해도 아파서 힘들어서 그 자리를 감당하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그 설교자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때가 올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당연한 평범의 일상이지만 언젠가는 그리움과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의 일상들이 너무 감사할 것 밖에는 없습니다.
한해 가을을 보내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들을 돌아보면서 감사합니다. 내삶의 전부가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들입니다. 우선적인 응답은 매일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말씀으로 응답하심을 감사합니다. 지난 한해동안 내 안에 많은 말씀으로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사가 되는 말씀은 시편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였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가 되심을 더욱 기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시간이 복이요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한해 가을을 보내면서 어떤 부분에서 죄를 이기고 승리한 삶을 감사합니다. 소명을 받고 사명자로서 주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갈 때에 반복되는 내안의 연약함의 죄들이 있었습니다. 쉽게 항복하지 않는 내 안의 죄는 나의 삶의 도약에 가장 방해물이었습니다. 그 죄는 세상에 대한 나의 야망이었습니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자랑하고 나를 높이려고 하는 이기적인 욕심에 근거한 나의 야망은 더욱 그것을 이루기 위한 헛된 열심을 갖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 내려놓음을 배우게 됩니다. 나의 나된 것에 감사하고 내가 누군가와 같이 될 수 없음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과 말씀의 자리에 내 모습 그대로 서있는 것들을 배울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됩니다.
한해가 가면 또 다른 한해가 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새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면서 새삶에 대해 또 도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감사들로 충만한 한해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올 한해도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도록 감사의 삶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삶에 감사의 추억들이 더 기억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0월 31일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종교개혁기념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는 95개 조항을 담은 반박문을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 예배당 정문에 못박아 게시했습니다. 그때에 교황 레오 10세는 “ 마틴 루터는 술취한 독일인이다. 술에서 깨면 자신의 입장을 철회할 것이다”라고 간단히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미친 짓으로 보였던 루터의 행동은 결국 철옹성같은 카톨릭의 오래된 부패와 거짓된 신앙을 넘어서 교회 개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힘이었는가? 종교 개혁의 가장 힘은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루터가 당시에 죽음의 위협을 받는 위험 가운데 결코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지 않았던 힘은 바로 성경 때문이었습니다. 한번은 카톨릭의 주교가 루터에게 자신의 생각을 철회할 것을 명령받았습니다. 그때에 루터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되었소.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을뿐 아니라 결단코 아무것도 철회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이오. 오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제 내년이면 종교개혁일은 50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을 제창한 그 날로부터 500주년이 된 현재의 교회는 성경을 온전히 100%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에 대하여 공격과 거역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인정하지 않게 되면 교회의 권위는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교회가 필요한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 권위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경은 1500년간의 기간 중에 약 40여명의 저자들이 기록하였습니다 .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짝이 맞고 내용이 맞습니다. 성경자체의 온전한 증거가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입니다. 역사 속의 교회는 정경으로 66권을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인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물론 외경을 성경으로 인정하려고 하는 도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단들이 헛된 계시의 교훈들을 성경으로 더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66권의 정경만이 하나님의 권위있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교회는 인정합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교회가 강조해야 할 것은 성경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길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보다는 인간의 필요를 앞세우고 세상의 상황을 앞세우는 이 시대 속에서 교회가 사는 길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의 신앙이 성경으로 항상 세워지고 개혁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민자들의 힘들고 불안정한 삶의 중심에 교회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기대만큼 나의 관점에서만 교회를 보면 실망과 상처도 클 수 있습니다. 교회는 나를 넘어 우리의 관점에서 더 근본적으로는 주님의 관점에서 교회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교회를 세워갈 때에 텍스트(Text) 성경의 하나님의 관점에서 컨텍스트(Context)의 교회를 잘 세워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우선 교회에 대해서 언급한 교회는 마태복음에 소개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고 이에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자 교회에 대한 언급을 하십니다. 주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베드로가 고백하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 이 반석은 카톨릭에서는 베드로라고 해석하지만 개신교회에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즉 주님의 교회는 예수님을 신앙고백으로 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와 나의 주로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찬양하는 자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고백하는 영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이 머리가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적인 예배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성경에서 롤모델이 되는 교회는 사도행전에 소개되는 초대예루살렘교회이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이하에 소개되는 초대예루살렘 교회는 우리에게 공동체 교회의 좋은 롤 모델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온 성도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는 주는 섬김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풍성한 교제와 나눔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성경 속의 좋은 롤 모델의 교회는 조직과 제도가 잘 발달된 교회가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통치하심을 따라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성이 회복되는 교회입니다. 이것은 결국 이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먼저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섬김을 실천한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교회의 과제는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째 좋은 롤모델의 교회는 성경의 안디옥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역사가 짧은 가운데서도 좋은 일꾼들이 잘 양육되었고 풍성한 영성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함으로 복음을 위하여 선교사를 파송하는 좋은 모델이 됩니다. 안디옥교회는 교육과 선교의 좋은 롤 모델이 됩니다.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였을까? 그들은 결국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말씀을 잘 순종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삼으라는 말씀을 명령하셨습니다. 교회는 선교하여 예수님의 제자삼는 것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내가 위로받고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의 우선적인 과제는 주님의 제자되어 세상으로 복음이 필요한 곳으로 주님의 선교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삼아 세상으로 보낸 것처럼 교회의 사명은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선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성경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의 좋은 롤 모델이 되었던 교회들처럼 이민사회 가운데 좋은 롤 모델이 되는 교회로 재활성화되어져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42년 퀸즈 시대를 뒤로하고 롱아일랜드 시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헌당 예배를 드림으로써 이제 공식적인 그 서막의 출발이 하나님과 대내외에 알려지는 테이프를 끓게 되었습니다.이제 우리는 새환경에서 새교회당을 중심으로 새교회 역사를 세워가야 하는 때가 열린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과거의 교회 역사를 교훈삼아 새교회당을 중심으로 새교회를 개척하는 심정으로 새로운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새교회를 세우는 개척자로서 우리가 갖아야 할 몇가지 중요한 자세가 있습니다.

첫째 기득권을 갖고 주장하려고 하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세워온 수고와 공로는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물론 그 눈물과 땀과 수고를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공로를 생각하면 또 우리는 나를 앞세우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새교회당을 세워가는 것은 이제 새교회를 개척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같이 출발선에 모여서 출발하려는 마음을 갖아야 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평등한 마음을 갖고 교회를 세워간다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오랜 교회 역사의 경험자들로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 도움을 받아서 마음을 다스리면서 먼저 나를 비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둘째 열정을 갖고 자원하는 자세를 갖아야 합니다.
교회 개척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기쁜 일임에 분명합니다. 개척을 한다고 했을 때에 우리는 다른 개척교회들보다 여건이 좋은 형편입니다. 자체 땅과 건물을 갖고 나름대로 맺어진 관계의 성도들이 이미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미 갖고 있는 것들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은 안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열정을 갖기 위해서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품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곳에 건물과 땅을 허락하심을 마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열정 속에서 자원하여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거룩한 사명을 갖아야 합니다. 무어보다도 어떤 형편 속에서도 참고 희생하는 자원함의 열심을 갖고 함께 교회를 세워가기를 바랍니다.

셋째 열린 마음을 갖고 전도하고 새가족들을 환대해야 합니다.
새환경에서 새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을 갖고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물론 전도는 어렵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으면 새교회 공동체의 변화는 어렵습니다. 새사람을 개척하는 일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러나 모든 지금의 교회들이 전도로 시작했습니다. 전도할 때에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사람들을 보내주십니다. 과거에 우리 교회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에 오는 새가족들을 조건없이 환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은혜받은 대로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교회 역사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개척자의 자세를 갖고 새지역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다함께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요즘 한국 티부이 프로그램 중에 문제있는 부부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였지만 함께 살면서 상처로 인해서 부부지간이 남보다 못하고 심지어 원수 관계의 힘든 부부의 가정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다행스럽게 티이부이에 출연한 부부들은 문제를 직면하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회복의 기회를 갖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상당한 경우에 가정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상한 가정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우리의 가정이 문제로부터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경험해야 할 몇가지 과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첫째, 부정적인 기억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대개 문제있는 남편과 아내의 우선적인 문제는 상한 내면의 기억입니다. 특히 과거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과 부정적인 영향의 기억들은 오늘 현재의 남편과 아내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에 과거의 고통스러운 부모와 상처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게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조건적인 용서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치유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주님께 우리의 고통의 기억 상하고 힘든 과거의 기억까지도 맡기고 기도하면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둘째, 가정의 회복은 진실하고 성숙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개 부부관계의 우선적인 문제는 단절된 대화의 문제입니다. 대화가 없으면 서로 오해하게 되어 관계는 더 멀어지게 됩니다. 상당한 경우에 문제 있는 부부들을 보면 대화가 없고 대화를 해도 아주 초보적인 대화에서 그칩니다. 문제있는 부부들의 경우에 우선 서로가 대화가 안통한다고 생각하고 마음 문을 닫아버립니다. 부부관계가 서로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속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의 문제있는 많은 부부들의 경우에 정서적인 미숙함으로 인해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데 문제가 많습니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부부 관계는 한몸의 관계 여야 하는 데 그것은 단지 육체뿐 아니라마음과 생각도 서로 하나임을 공유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사소한 음식에서부터 아이들의 양육,교회 생활, 인생의 진로 등에 대해서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대화할 때에 서로 하나됨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가정의 회복은 두 사람 서로가 많은 배려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문제있는 부부들의 공통점을 보면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지각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나는 옳고 문제는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있는 부부들이 회복이 되는 과정을 보면 객관적인 상담가들 앞에 자신들의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함께 고치는 노력을 하면서 회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인정하고 고치기를 소원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 고통과 어려움의 댓가는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회복을 위한 고통의 치료의 댓가를 지불할 때에 행복을 회복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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