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도회 후 집사님들과 함께 커피 교제를 하면서 나온 주제가 ‘자기 자신을 아는 길’입니다.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직면하여 바로 아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내가 나를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나를 알기 위해서 자신을 스스로 관찰하고 분석하여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를 스스로 열심히 관찰하면 나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종 우리가 거울을 보면 나의 모습이 비쳐지게 됩니다. 그럴때에 나의 외모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보이고 주름이 보이고 피곤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도 스스로 분석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거울은 성경입니다. 성경에 나의 마음을 비추어 볼 때에 내가 보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거울이 되면 우리의 깊은 내면의 문제, 감추었던 삶의 문제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를 아는 사람은 비로서 성장 기회가 온 것입니다. 보통 누군가 나에게 좋은 가르침을 해주어도 우리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멋있고 고귀한 교훈도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깨달음을 통해서 최고의 배움을 얻게 됩니다. 중요한 관건은 내가 깨달음의 자리로 나아가기까지 많은 시간 필요하고 실패의 과정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에 스스로 깨달음을 빨리 얻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선택은 주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서 나의 생각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성경에 나를 비추어 나를 볼 때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깨닫도록 도와주십니다. 무지함에 대한 깨달음, 죄악에 대한 깨달음,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의 깨달음들이 마음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어리석과 미련한 마음을 내려놓고 회개하게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새마음과 새의지를 주십니다. 그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과 의지대로 순종할 때에 마음에 진정한 평안과 자유와 함께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내안에 빛의 생명으로 마음을 새롭게 해주어야 합니다. 견고했던 얼음이 하늘의 뜨거운 태양으로 금방 녹듯이 우리의 마음도 주님의 전적인 빛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점점 나를 아는 은혜가 있을 때에 내 삶은 풍성하고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간 교단 수양회를 마치고 청교도 유적지가 있는 플리머스(Plymouth)를 탐방하였습니다. 미국에 온지 7년이 되면서도 항상 방문을 소원했지만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하던 차에 이번에 마침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신앙의 박해를 피해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 배를 타고 고난의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이 바로 플리머스였습니다. 플리머스에 처음 도착한 청교도들의 첫흔적을 기념하는 작은 바위가 역사적인 유적으로 잘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까깝게도 그들이 타고 온 메이플라워는 새롭게 제작되는 바람에 현장에 전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1620년 12월 21일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그해 겨울 무려 44명이 추위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도착 다음해에 인디언들과 화친을 맺고 옥수수 농사 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당시에 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마을 이루면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지를 소개하는 곳이 바로 플리머스 플랜테이션(Plantation)입니다. 우리는 아침 9시 개장에 맞추어 가장 먼저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는 크게 5개의 섹션으로 되어 있었는데 3곳은 청교도들의 17세기의 삶의 모습, 2곳은 당시 미국인디언들의 삶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우리가 들린 곳은 17세기 미국 인디언들의 부락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집과 주방 그리고 당시의 배와 물고기를 잡던 모습, 사냥하던 모습을 재현하여 놓았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제의 인디언들의 복장과 생활기구들을 보면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고 환경에 걸맞는 적절한 지혜가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디언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농사방법이 청교도들의 정착과 생활에 큰 도움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
다음에는 17세기 미국에 처음으로 정착한 청교도들의 생활을 재현한 마을을 보게 되었습니다. 침대와 더불어 불을 떼어서 음식을 만들고 화덕을 만들어서 빵을 굽던 모습 그리고 짐슴을 키우고 밭을 일구어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의 생활상을 어느 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집안에서 생활하는 가난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온 것은 신앙 때문이었고 더 궁극적으로는 카톨릭과 영국 성공회의 부패하고 타락한 신앙과는 분리되는 순결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바르고 순결한 신앙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 결과 모진 핍박과 고난을 겪었지만 신앙으로 말미암는 놀라운 땅의 열매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막연하고 멀리만 보였던 이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구체적인 믿음으로 고난을 이기도 도전하여 열매를 맺은 청교도들을 다시 한번 본받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첫째 날
7월24일부터 28일까지 4박 5일간 일정으로 우리 교회 자체 단기 선교팀이 헤이티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헤이티 현지의 선교팀은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2년에 한번씩 함께 협력을 한 팀입니다. 24일 아침 7시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는 JFK 공항을 2시간 넘겨 9시 경에 출발해서 약 4시간여 비행 끝에 헤이티에 도착했습니다. 현지 선교사님의 영접을 받아 우리가 머무는 선교하우스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첫날 오후 시간은 오리엔테이션 시간과 짐정리 시간을 갖고 저녁에 함께 예배시간을 갖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둘째 날
새벽 6시에 새벽기도회와 더불어 7시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8시에 게스트 하우스를 떠나서 첫날 사역지에 도착했습니다. 세계에서 2번째로 못사는 지역이었습니다. 먼저 마을을 다니면서 축호전도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준비해간 생활용품 선물과 옷과 신발을 가정에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VBS 사역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후에는 밥을 나누어주는 사역을 했습니다. 약 200여명 이상의 아이들에게 밥과 닭고기로 된 반찬과 음료수를 배급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선교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서 저녁을 함께 나누고 8시부터 예배의 시간을 함께 드리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첫날 사역을 통해서 가장 빈곤한 지역에 복음과 밥을 나누어주면서 힘들고 어려웠지만 가장 보람된 시간을 갖았습니다.
셋째 날
아침에 사역을 위하여 약 1시간 30분 가량 이동하는 시골로 갔습니다. 그 지역은 우리가 협력하는 현지 선교팀들이 학교를 지어서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현지에 도착해서 먼저 VBS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역시 첫날처럼 밥과 닭고기를 준비해서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축호전도를 하고 생활용품과 옷 그리고 신발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첫날보다는 좀 더 환경이 나았지만 여전히 헤이티 현지의 생활은 너무도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은 감사와 더불어 무겁고 답답한 마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현지의 선교사님과 선교팀들이 이 지역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현지의 학교사역을 중심으로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섬기고 있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였습니다.
넷째 날
다시 둘째 날 사역 한 장소로 다시 조인되어 페인팅 사역과 밥주는 사역을 했습니다 . 현지의 선교사역센터의 벽과 의자들을 페인팅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밥을 나누어주는 사역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밥을 나누어주는 시간을 공지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2시간 전부터 아이들이 그릇을 들고와서 뙤약볕 가운데 기다렸습니다. 심지어 어린 3이 채 안된 어린 아이들로부터 시작하여 어린아이들이 죽기 살기로 한끼의 식사를 얻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수고의 댓가를 지불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공식적인 모든 이번 선교의 사역들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선교를 통해서 헤이티의 현지 선교사님과 우리 팀이 서로 협력하여 선교 사역들이 더 확장되고 더 보람있게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선교의 열정을 갖고 선교 사역을 멈추지 않고 계속 주님오실 때까지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함께 협력하여 주신 모든 교회의 모든 선교동역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교회 오피스에서 항상 쓰던 프린터기가 한달 동안 작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리 저리 둘러보아도 도대체 작동이 안되는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우연히 다시 체크를 하다가 전원이 연결된 선이 기기에 꽂혀는 있었지만 살짝 빠져 있는 정황을 발견하였습니다. 다시 정확하게 꽂고 작동 시험을 하였더니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었습니다. 세심한 점검을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인생의 순적한 작동을 위해서 우리에게 상당한 경우에는 세심하고 민감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실제의 삶에 사소한 것들의 점검이 안되어 큰 문제를 그르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항상 운전을 하면서 경험하지만 차 점검이 너무 중요한 것을 보게 됩니다. 기름이 제대로 채워져 있는지, 타이어의 바람이 괜찮은지, 엔진 오일이 적당한지, 냉각수가 적당하게 있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점검을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의 수고와 더불어 구체적인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적당하게 무시하고 넘어가다가 결국 더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내 인생의 어떤 부분의 문제들도 사전에 충분하게 점검이 되어 고치고 수정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고장난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점검하지 않고 그냥 잘못된 대로 반복하였을 때에 나는 불량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잘못된 것들의 점검을 통해서 바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빨리 바르게 대처하는 점검을 통해서 새롭게 도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세심한 점검이 필요한 곳은 인간관계입니다. 사랑하는 부부이지만 서로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내면을 자꾸 싸매어주고 알아주면서 관계해야 합니다. 상당한 경우에 이미 익숙한 관계로 인해서 형식적인 관계로 지내게 되면 결국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필요한 것은 진실한 마음의 나눔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힘든 부분, 어려운 부분들을 같이 대화해야 합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 자녀의 문제, 건강의 문제, 장래의 삶의 문제들을 진솔하게 대화하고 같이 점검하면서 한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만일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민감한 점검을 통해서 고치고 바르게 해할 것입니다.
함께 교회를 세워갈 때에 우리는 함께 세심하게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사역을 하는 팀원들 서로 대화하면서 같이 점검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민감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세심한 점검을 통해서 내 기준의 교회가 아닌 모두의 공동체의 교회로 함께 세워가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지속되는 관계 속에서 민감하고 세심한 영성의 교회로 세워가려면 우리 속에 민감하고 세심한 영성으로 세워져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전에 우리나라에서 건강 강의로 유명하였던 한강사는 암은 생각의 습관에서 온다고 강조했습니다. 암에 걸리는 사람은 암을 부르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암을 부르는 생각은 대개가 암이 좋아하는 부정적인 생각의 습관을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찬성합니다. 목회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경험하는 것은 생각의 습관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은 자동차의 기어와 같습니다. 차는 1단 기어를 넣으면 1단 전진합니다. 그러나 후진 기어를 넣으면 차는 후진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우리 인생도 생각에 따라 전진할 수도 있고 후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의 습관은 이미 굳고 견고하여서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더 변화가 어렵습니다. 특히 변화가 어려운 사람은 자기 고집이 견고한 사람입니다. 내가 이미 옳다라고 스스로에게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상적인 지식이 많은 사람, 나름 대로 자기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갇혀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하신 이유는 변화를 거부하는 교만한 사람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생각이 바꾸기 위해서는 스스로 높은 마음을 내려놓고 가난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변화되어서 해야 할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닮으면 우리의 인생은 행복하게 됩니다. 어떻게 연약한 피조물인 인간이 완전한 하나님의 생각을 닮을 수 있을까? 100%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닮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생각을 모방하면서 변화되어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고 깊고 넓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완전하고 지혜롭습니다. 그런측면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알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지각에 깨달음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깨달음은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서 우리의 무지로부터 새로운 마음의 앎을 경험하게 합니다. 내안에 지각을 밝혀서 오는 성령님의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생각들로 마음이 채워질 때에 우리는 마치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보는 것같이 소망이 생깁니다. 그 생각으로 선택하고 나아갈 때에 우리의 삶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가? 나의 생각인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분간하는 방법은 테스트를 해보는 것입니다. 그 생각을 먼저 실험적으로 적용하여 볼 때에 분명하게 어떤 형태로든지 징조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각의 특징은 염려와 두려움과 불안 대신에 평안과 기쁨과 감사함이 일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5월 세째주일을 교회창립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어제의 교회 역사를 우리는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미래의 다음 세대에 교회가 계속해서 잘 계승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어제의 교회 역사를 통해서 주는 교훈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 속의 교회가 오늘의 교회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 교회는 1975년-90년까지의 15년동안 잭슨 하이츠 시대와 1990년 10월부터 -2016년 7월 까지의 약 26년 동안 플러싱시대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2016년 7월이후부터 롱아일랜드시대를 새로 열게 되었습니다. 과거 교회 역사 기간동안 교회 담임목사는다 섯 분이 거쳐갔고 안수집사는 열여섯 분이 임직을 받았습니다. 본교회를 통해서 최소 일곱 분 이상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본교회에서 시무하셨던 여러분의 교역자들이 여러 개의 지역 교회를 개척하기도 하셨습니다. 모든 동기와 과정을 떠나 교회의 어제를 보면 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깨서 다양하게 일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자체의 성장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본 교회를 통해서 다양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는 어제의 교회 역사를 뒤로 하고 현재 교회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재 롱아일랜드 새로운 교회는 좋은 건물과 땅의 하드웨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 이것을 기초로 하여 교회가 먼저 집중하는 것은 우선 사람을 키우는 일인 양육,교육,훈련을 강화하는 것이고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교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의 사명은 주님의 제자를 세우는 것이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제자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선교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누구든지 꼭 참석해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에서 청소년 그리고 장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교인이 더욱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면서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닌 거듭남과 인격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열방을 품고 복음을 전하는 열정과 헌신에 쓰임받는 교회로 세워져가기를 기대합니다.
미래의 우리 교회는 결국 다음 세대의 교회로 세워져가야 합니다. 이민 1세대의 교회로부터 현재까지 왔다면 이제 이후로는 이민1.5 세대 및 그 다음 세대가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교회는 다음 세대를 키우고 투자하고 과감하게 리더로 세워서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문제는 다음 세대가 교회의 아웃 사이더가 아닌 핵심 세대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회로 투자되어야 합니다
2주간에 걸쳐서 교회 식당 2층의 창고가 새로운 모임 및 교육의 장소로 공사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공사 이전에 2층 공간은 넓은 공간이지만 짐들만 썰렁하게 차지하였던 창고였습니다. 이번 단기간의 공사로 3개의 룸과 열린 공간의 장소로 새로운 변신을 했습니다. 이제 2층 공간은 무엇보다도 다음세대를 세우는 교육과 훈련과 모임의 장소로 아름답게 사용되어질 것입니다.
본래 2층 공사는 작년에 교회당 공사를 할때에 견적을 내보았고 필요성을 이야기 했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공사의 우선순위에서 밀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필요성이 제기 되었던 이유는 교회 소그룹 공간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지하에서 주일 오후에 모든 소그룹이 집중되어 모일 때에 소음으로 인해서 효율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특히 제자훈련이나 목장 모임을 갖을 때에 같은 장소에서 탁구를 치거나 하면 소음 때문에 모임 진행이 어렵습니다.이제 완벽하지는 않지만 분리된 공간을 적절히 이용해서 다양한 모임을 동시간대에 다양하게 갖을 수 있는 장점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공사와 같은 교회 일을 하는데에는 많은 재정이 들어가게 됩니다.이번 에감사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헌금을 헌신하여 준 가정으로 인해서 모든 경비가 잘 해결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렇게 헌신함으로 교회를 세워갈 수 있도록 수고하여 준 믿음의 가정을 향하여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성경의 예수님은 300데나리온의 향유 옥합을 깨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을 공개적으로 칭찬하셨습니다. 바울은 물질로서 자기의 사역을 협력하며 동역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칭찬하였습니다. 지상의 교회를 세우데 우리는 헌신자들의 헌신을 칭찬하고 더불어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교회의 과제는 건물의 하드웨어를 잘 활용하여서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입니다. 본당과 교육관 식당 그리고 아웃도어를 충분히 활용하여서 의미있는 활동과 교육들이 채워져야 합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특히 다음 세대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 공간에 다음 세대들이 풍성하게 채워지도록 기도하고 그들을 향해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교육하고 세워가기 위해서는 많은 물질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다음 세대의 필요를 살피면서 필요한 교육기자재 그리고 교육프로그램들이 진행될 수 있도록 물질의 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세대는 구호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헌신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점점 교회는 점점 세대가 교체되어지는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아마도 우리 교회도 엄청난 세대교체가 되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대는 가도 교회는 여전히 신앙으로 세워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선배들의 신앙의 아름다운 유산이 다음 세대로 잘 계승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반복되는 만남의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잘 맺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마치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더 높은 성장의 단계로 나아가려면 갈등의 언덕의 코스를 넘어서야 합니다.지역교회는 반복되는 만남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반복되는 갈등의 관계를 거칩니다. 목장의 서로의 관계에서도 반복하여 만나다보면 갈등을 겪게 됩니다. 과연 어떻게 갈등의 코스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우선 실망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관계는 실망을 통해서 성숙됩니다. 완전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완전한 관계는 없습니다. 모든 관계 속에서 약점이 드러나고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실망의 상처를 받을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세 실망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실망을 경험하는 갈등 속에서 지독하게 힘든 시간을 갖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완전한 관계의 망상을 거두고 진정한 관계로 출발할 수 있는 시작이 됩니다. 관계는 연애가 아니라 결혼의 현실과 같이 우리 속에서 실망할 수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 관계하여야 합니다.
다음 제약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자유만을 강조하면 관계는 어렵습니다. 관계를 위해서 제약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보통 두사람이 더 깊은 관계를 위해서 더 깊은 제약이 필요합니다. 교회 속에서 관계를 잘 해가려면 교회의 제약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불편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깊은 관계를 위하여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깊은 관계를 위해서 십계명과 같은 계명의 수칙을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소그룹 목장 속에서 대그룹 공동체 속에서 더 깊은 관계를 위하여 우리에게 준 제약들을 내가 잘 수용하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무지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사람을 아는 만큼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지식의 영역이 커지는 만큼 무지도 거기에 비례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아는 그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체험할 때에 우리는 부분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도 부분적인 관계의 체험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한 경우는 부분에 머무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더 깊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더 깊은 체험의 앎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보이는 부분까지만 알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고 숨겨진 상당한 부분이 있음을 알고 수용해야 합니다. 항상 관계의 성장을 위해서 나의 무지를 인정한고 받아들인 후에 더 깊은 관계의 앎을 위해서 항상 준비하고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