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시작 1월입니다.
1월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큰풍선처럼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라 한해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해의 12월이 되면 바람빠진 풍선처럼 허무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항상 깨닫는 것은 정말 시간은 살같이 빠르다는 진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성 아우구스니티누스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가 과연 그것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시간에 관해서 웬만큼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내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솔직히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가장 잘아는 것이 시간이지만 가장 잘 모르는 것도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하여 사전적인 의미는 “시간이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며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속체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결국 시간은 삶의 사건의 연속입니다.
시간 속에서 인생을 승리하는 사람은 시간을 잘 관리합니다. 벤쟈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인생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인생이라는 것은 바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결국 인생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시간관리가 제일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시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시간을 도둑맞고 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시간을 도둑맞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미루는 습관’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2가지 유형의 미루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식적인 미루기의 습관과 무의식적인 미루기의 습관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미루는 습관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은 그 일이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즐겁고 기쁜 일을 뒤로 미루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귀찮은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를 하는 일,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 운동을 하는 일, 성경을 보는 일, 은행업무를 보는 일등은 분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썩 즐거운 일이 못되기 때문에 미루게 됩니다.
또 우리가 미루는 이유는 피곤함이나 그 일의 복잡함 귀찮음등과 같은 이유들이 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미루게 되면서 결국은 더 힘들어지게 되고 더 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무책임한 삶의 사람이 되고 그러면서 점점 시간에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시간의 실패자는 인생의 후회를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시간관리의 습관은 본인의 철저한 목표의식 속에 변화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시간 속에서 데드라인을 정하여 목표를 정하여 일처리를 해야 합니다. 매일 삶 속에서 그날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목표들은 실행에 옮기는 습관을 갖아야 합니다. 그것을 뒤로 미루게 되면 시간을 도둑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매일의 삶, 매주의 삶, 매월의 삶, 매년의 삶을 우리는 시간을 계획하면서 자신을 의미있게 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2019년을 맞이하여서 매일, 매월, 또 올해 안에 하기로 마음에 결단한 것들은 꼭 실천하여서 올 한해가 의미있는 한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또 가을이 낙엽과 함께 가고 있습니다. 빨갛고 노란 단풍과 함께 찾아왔던 가을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우리를 떠나고 있습니다. 가을이 올 때에는 그 시간이 오래 머물 것 같았는데 떠날 때에는 너무나도 한순간에 떠나는 것 같습니다. 가을의 시간은 인생의 가을을 위한 레슨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뜨거웠던 열정의 삶을 뒤로 하고 낙엽이 되는 가을처럼 조용히 떠남을 준비해야 할 때가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떠나는 가을이 결코 쓸쓸하지 않고 풍성하고 기쁜 인생의 가을로 기억되고 의미있는 추억으로 남기 위해서 반드시 맺어야 할 아름다운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우선, 나의 인생의 가을에 맺어야 할 우선적인 열매는 예수님을 닮은 인격의 열매입니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면 미숙함을 넘어서서 성숙한 예수님의 모습이 말과 얼굴과 행실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처럼 온유하심, 겸손하심의 열매의 인격이 나타나야 합니다. 설익은 인격의 모습이 젊어서는 용납이 됩니다. 그러나 열매를 기대하는 인생의 가을에 열매가 없으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큽니다. 물론 이런 인생의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젊은 날부터 믿음으로 심고 또 심을 때에 결국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다음, 인생의 가을에 바른 리더의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나의 리더쉽의 우선적인 현주소는 가정입니다. 인생의 가을에 결국 점검해야 할 것은 나의 가정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가정을 세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은 에덴동산처럼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다스리는 곳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 결과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믿음의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때로 가정의 남편과 아내로서 부모로서 우리는 하나님 중심이기보다는 사람 중심의 가정을 세울 위험이 너무 많습니다. 결국 인생의 가을에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는 다음 세대에 믿음의 가정의 열매를 맺음으로서 믿음의 선한 영향력의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인생의 가을에 부름받은 소명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명의 소명자로 부르십니다. 우선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의 소명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위하여 부름을 받고 복음을 위하여 사명자로 살도록 소명하셨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직업의 자리이든지 어떤 환경이든지 예수님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삶의 사명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을 통하여 그 사명이 감당하여야 합니다. 직업을 통하여 세상의 삶에서 그 사명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입술로 때로는 거룩한 삶으로 그 소명의 부르심의 자리에서 열매가 나타내어야 합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길질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하여 마음에 되새길질할 때에 그 말씀은 오늘 나에게 생명력있게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묵상의 과정은 성경과 지금 나의 삶의 상황의 다리놓기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동일하게 활동하십니다. 묵상을 통하여 매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에 시편1편의 기자의 고백처럼 모든 일이 형통하는 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묵상은 성경읽기로 시작합니다. 정해진 매일의 성경 본문을 기도하고 난 후에 최소한 서너번 읽습니다. 다음에는 성경 본문의 내용을 관찰합니다. 이때에 본문의 내용이 길 때에는 서너 문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성경 문단 내용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그 마음을 관찰합니다. 다음, 나에게 주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하는 의의 요소가 무엇인지 관찰합니다. 그리고 그 관찰된 내용이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해석합니다.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성경 시대 속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 의미를 통하여 오늘 나에게 주는 적용점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묵상은 노트에 기록하기가 필요합니다. 매일 묵상을 일기로 노트에 기록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성경 속에서 관찰되고 발견된 의미와 적용점을 노트에 구체적으로 기록하면서 마음에 기억할 수 있습니다. 노트에 기록하는 과정은 눈으로 본 것과 마음에 깨달은 것들이 더 구체적으로 정제되어 나의 믿음의 언어로 기록되면서 오늘 나의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노트에 묵상을 기록하는 것은 분명히 머리와 가슴을 통과한 말씀이 손을 통하여 몸으로 체득되는 새로운 믿음의 과정입니다. 손으로 기록하는 수고를 통하여 마음과 몸에 말씀이 기억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몸은 말씀의 영성으로 진보합니다.
묵상은 기도와 나눔이 필요합니다. 묵상한 말씀의 마음을 갖고 위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 말씀대로 결단과 순종의 삶이 되기를 기도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삶의 현장이 구체적인 말씀의 영성으로 성령님께서 붙들어주시기를 구할 때에 성령님의 일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묵상을 서로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눔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백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과 하나님께 영광 만을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묵상의 영성이 깊은 사람이 하나님의 힘을 깊이 경험합니다. 묵상의 영성이 있을 때에 육신을 이기면서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승리하게 됩니다. 해가 지고 꽃이 지는 세월 속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힘이 되는 매일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바쁘고 힘들수록 오직 묵상으로 나의 마음을 지키면서 일상의 삶을 이기는 도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서로 본받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누구를 본받는가에 따라서 신앙의 질과 방향이 결정됩니다. 위대한 교부 어거스틴은“누구도 인도자 없이 걸을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성경의 바울도 바나바와 같은 본받을 수 있는 좋은 멘토의 도움이 있었고 디모데와 같은 어린지도자는 바울과 같은 본받을 수 있는 좋은 멘토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과거뿐 아니라 지금 이시대에도 신앙의 길을 온전히 가기 위해서는 영적 멘토링이 필요합니다.
멘토라는 단어는 그리스 신화에서 온 것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아들을 멘토에게 맡기게 됩니다. 오디세우는 전쟁에 나가면서 아들을 멘토에게 맡기면서 “책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를 얻게 하는 데도” 책임을 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멘토는 지성과 영혼의 교육과 지혜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멘토의 본은 예수님이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의 멘토가 되실 때에 철저하게 관계를 중심으로 삶의 본과 가르침을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상황 속에서 주님의 멘토링은 무엇보다도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서 보고 듣고 알 수 있도록 멘토링을 해주신 것입니다.
멘토링 사역은 목회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평신도들에게 적용이 됩니다. 과연 멘토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보통 우리는 최고의 멘토를 공식적인 직분을 갖고 있거나 눈에 띄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멘토는 외적으로 눈에 보이는 위치로 결정되지 않고 삶의 방식을 통해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는 방식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멘토의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삶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완전에 못 미치는 우리의 삶도 다른 사람들의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멘토의 관계와 사역은 먼저 상처받을 각오를 하는 용기를 갖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시고 이땅에 오셔서 섬김으로 위대한 멘토가 되신 것처럼 멘토의 시작은 자기 비움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헨리 나우웨은 ‘상처입은 치유자’ 책에서 결국 위대한 치유자는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자라야 가능합니다. 상처받는 가운데 멘토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사람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되고 채워진 사람입니다. 결코 멘토는 해결사가 아니지만 해결의 능력이 되신 하나님으로 무장되어 도움을 받는 자들에게 길을 안내할 수 있는 멘토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멘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듣기와 더불어 홀로 있는 침묵의 시간을 많이 갖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고 듣고 알고 느끼고 경험하는 체험의 영성이 있는 깊은 은혜가 있을 때에 우리는 남을 도울 수 있는 민감한 영적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평범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반복하는 상황의 경험이야말로 제일 좋은 멘토의 자기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고 원하는 것은 교회 가운데 좋은 평신도 멘토들이 많이 세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교회 집사님들의 수고로 교회 앞뒤의 정원들이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풀도 뽑고 예쁜 꽃도 심고 주변의 나무 가지치기도 해주었습니다. 정원에 어울리지 않는 나무들은 뽑아 버리기도 했습니다. 옮겨심은 아직 피지 않는 작은 꽃들은 언젠가 아름답게 필 것입니다. 어린 나무들은 언젠가는 더 멋있게 자랄 것입니다. 정원은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원은 가꿈의 수고를 통해서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정원은 한번의 돌봄과 가꿈으로 그 아름다움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관심과 돌봄으로 지속적으로 수고할 때에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의 사랑의 수고가 결국 아름다운 꽃을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속적인 돌봄으로 언젠가 과일나무의 과일을 맺히게 될 것입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돌봄으로 어린 나무들은 커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정원의 가치는 정원을 위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돌봄을 귀찮아하지 않고 즐거움을 감당하는 수고만큼 그 가치는 우리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엉망진창이 된 인생의 현장 앞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마치 돌봄과 가꿈이 없는 정원처럼 망가진 가정, 아수라장이 된 교회, 엉망진창이 된 일터의 현실 앞에서 암담해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특히 내 신앙의 현주소를 돌아볼 때에 텅빈 정원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같은 나의 존재감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의 현실은 과거의 결론입니다. 내가 그렇게 뿌리지 않고 가꾸지 않고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안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인생 정리가 안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도 취하고 저것도 취하고 모든 것을 취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잡풀처럼 나를 아름답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오랫동안 죽은 채 서있는 나무는 뽑아서 버려야 하듯이 내 안에 죽은 나무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단호하게 치워야 합니다. 인정에 끌려서 타협하고 과거에 치우쳐서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결국 잡풀만 가득한 인생을 만들 뿐입니다. 새로운 정원같이 아름다운 인생을 꾸미는 것은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름다운 정원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아름다움을 만들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스스로 정원지기가 되어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선물을 지키며 아름다운 성경의 매뉴얼을 따라 나를 그렇게 만들어가는 수고와 연습은 날마다 스스로 즐겁게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정원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바라봄의 목표가 됩니다. 아름답게 변화된 사람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지만 변화없는 사람들은 꾸미지 않는 무질서한 정원처럼 사람들의 외면을 받습니다. 결국 인생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정원을 가꾸듯이 날마다 부지런하게 가꿀 때에 아름답게 세워집니다. 나는 지금 아름다원 인생으로 가꾸어가고 있습니까?
올해 교회 제자훈련이 지난 주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양육반과 사역반 과정으로 진행이 됩니다. 양육반 과정은 신앙의 베이직을 확인하는 과정의 훈련이고 사역반은 교회의 리더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이해와 관점을 함께 훈련 받게 됩니다. 사실 바쁘고 힘든 이민 생활에서 주중에 별도의 서너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부담과 헌신이 요구됩니다. 또 여러가지 과제를 해야 하는 부담이 요구됩니다. 많은 댓가의 부담을 안고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자훈련은 필수입니다.
왜 부담스럽게 제자훈련을 해야 합니까? 이것은 말 그대로 주님의 제자됨을 위해서 훈련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닮아가기 위해 우리의 지,정,의를 반복해서 훈련하는 것입니다. 훈련은 반복을 통해서 나의 행동과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과제입니다. 매주 훈련 과정을 통해서 성경 요절을 암송해야 하고 날마다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와 더불어 독서를 통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관점을 훈련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갖으면서 자신을 쳐서 복종함으로 주님의 제자의 길을 가는 행동과 삶을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종종 교회 가운데 너무나도 야생마같은 사람들은 많이 만나게 됩니다. 본인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인격은 믿음의 사람이 아닌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 생활은 오래 했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전히 신앙생활을 자기 성격대로 하고 자기의 과거의 습관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런 문제는 결국 자신을 쳐서 철저히 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제대로 주님 앞에 잘 훈련받은 사람들은 조련마처럼 쓰임받게 됩니다. 남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교회는 훈련된 사람들을 리더로 세워야 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구렁텅이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훈련이 안 된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 결과 교회를 세우기보다 자기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기 영광을 구하게 됩니다. 훈련안된 일꾼이 교회에 세워는 가장 큰 잘못은 결국 교회가 하나님 중심이기보다 사람 중심으로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기초는 시간이 걸려도 각 사람을 먼저 주님의 제자로 온전하게 세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예수님은 3년동안 12명을 집중적으로 양육하고 훈련하는데 투자하였습니다. 바울은 선교하고 교회를 세웠지만 그의 사역의 중심에는 좋은 일꾼을 양육하고 훈련하여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와지기 위해서는 주님을 닮은 좋은 일꾼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 자기의 죄성과 고집과 성격을 누르고 주님의 제자로 세워기지를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제자훈련에 임하는 모든 사람들이 훈련을 통해서 더욱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지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소수의 사람들이 주도하는 역사입니다. 그 소수는 거룩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다윗은 다수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골리앗에게 도전하여 마침내 승리하였습니다. 결국 한사람 믿음의 사람 다윗의 도전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믿음의 여호수아와 갈렙은 12명의 정탐꾼 중에서 이스라엘의 도전을 주장한 2명의 소수였습니다. 결국 믿음으로 도전을 선포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가나안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믿음의 느헤미야는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대하는 가운데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52일만에 재건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도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소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문제를 바라 볼 때에 그들은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을 집중할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살폈습니다. 대부분 도전을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바라보면서 결국 스스로 두려움에 빠져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거룩한 믿음의 소수는 문제와 힘든 환경 너머의 역사하실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믿음으로 도전하여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거룩한 믿음으로 도전하였던 소수의 사람들은 선행되어진 작은 승리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성경의 다윗이 골리앗에게 도전한 것은 이미 그 이전에 작은 도전의 승리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맹수들의 도전 앞에서 물맷돌을 던지면서 승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무섭고 사나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전하여 작은 승리를 경험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을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날마다 광야에서 작은 도전에 승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작은 삶의 승리가 내일의 큰 도전의 디딤돌이 됩니다. 결국 믿음으로 과거의 승리를 하고 지금을 사는 사람이 승리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거룩한 소수의 사람들은 다수의 반대와 비판을 직면해야 합니다. 이미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와 진행되어진 기독교 역사가 그것을 반증합니다. 반대하는 다수는 자기의 경험과 이성을 앞세웁니다. 때로는 환경과 현실을 앞세워 비난합니다. 그러나 반대의 상황에서 거룩한 믿음의 소수의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비젼이 그 마음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게 여기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믿음의 소수는 준비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소수를 반드시 사용하십니다. 젊어서도 준비되면 쓰임받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준비된 자를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준비된 사람은 고난의 댓가를 철저히 지불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거룩한 사람들을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고난의 댓가를 지불하고 죄와 싸우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헌신의 댓가를 지불하는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의 역사로 만들어집니다. 새봄을 맞이하여 거룩한 믿음의 소수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거룩하게 쓰임받는 일꾼으로 승리하기를 소원합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운동 중에서 테니스만한 운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테니스의 매력은 그 어떤 운동보다도 많은 운동량과 더불어 익사이팅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동안 테니스는 서구의 운동으로 대명사처럼 여겼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테니스의 변방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정현 선수가 호주 메이저테니스대회에서 4장에 오르면서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테니스는 다른 어떤 경기보다도 기본기가 중요한 운동입니다. 먼저 몸의 자세의 기본기도 중요하지만 라켓을 이용한 기본기의 자세도 잘 익혀야 합니다. 특히 라켓을 이용해서 강하고 빠른 스트로크와 서브를 하기 때문에 기본이 되는 자세를 잘 갖추지 못하면 오히려 몸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한가지 기술로는 어렵습니다. 서브도 좋아야 하고 오른쪽 왼쪽의 스트로크 그리고 스매싱, 발리들의 다양한 기술이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최소한 시합에서 서너시간을 빠르게 뛰면서 운동을 하려면 발이 빨라야 하고 다양한 스텝의 기본기를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 메이저대회 4강에 오른 정현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테니스의 기본 실력을 골고루 잘 갖춘 선수입니다. 그런데 다른 어떤 운동보다도 테니스가 어려운 것이 기본기를 갖추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기본기 잘 갖추어진 테니스 선수가 롱런하고 잘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를 잘 갖추어야 오랜 신앙 생활에서 결국은 이기는 자가 됩니다.
테니스는 그 어떤 경기보다도 멘탈이 중요한 운동입니다. 코트 안에서 네트를 두고 상대방 선수와 시합을 할 때에 빠르고 강한 볼을 제대로 치고 원하는 코스에 보내면서 시합에 이기기 위해서는 매순간 마다 강한 멘탈이 요구됩니다. 특히 더 체력의 우위에 있는 선수, 빠른 서브와 그리고 랭킹이 우위에 있는 선수와 시합을 해서 이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강한 자신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특히 시합을 하다보면 상대방의 비매너를 대할 때도 있고 마음을 흔드는 주변적인 요소들이 발생합니다. 그때에 감정을 잘 조절하고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의 멘탈이 있을 때에 이기는 시합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정현 선수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죠쿄 비치와 같은 선수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강한 멘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한 멘탈은 저절로 키워지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생각의 훈련을 통해서 자신을 설득하면서 강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에도 궁극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결국은 이기는 자가 됩니다.
테니스는 실수를 줄이는 사람이 이기는 운동입니다. 화려한 기술도 중요하지만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선수인 페더로가 37살의 노장에도 불구하고 젊은 선수들과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노련함과 더불어 실수를 줄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젊은 선수들은 화려하고 빠른 기술을 이용하여 멋있는 경기를 벌이지만 실수가 많습니다. 그것은 곧 점수를 잃게 합니다. 실수를 줄이는 방법은 빨리 점수를 얻으려는 조급함을 줄이고 정확한 테니스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정현 선수가 메이저대회 4강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실수를 줄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화려하지만 않지만 충분히 랠리를 하면서 상대방을 흔들면서 결국 실수를 유도한 결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결국은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넘어지지 않는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테니스의 원리와 신앙생활, 목회도 유사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신앙의 승리, 목회의 승리는 외적인 것에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본기가 탄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강한 마음의 다스림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실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바람은 빠른 시간 안에 우리나라 선수가 테니스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2018년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더욱 주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는 한해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2018년 새해 우리 교회는 “견고하게 세워져가는 교회“가 되기를 꿈꿉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우리의 믿음을 너무 흔드는 현실입니다. 점점 우리가 몸담고 있는 미국은 성경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현실입니다. 성경이 정확무오한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부정하고 다수의 사람들의 상대주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함께 교제하는 이민 사회는 점점 교회에 대한 신뢰를 부정하고 영적인 삶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가나안 성도들이 늘어가는 실정입니다. 이 정황에서 우리는 견고한 신앙으로 자기를 세우고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먼저 성경 말씀으로 자신을 견고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의 빛으로 내 발의 등으로 삼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지속적으로 내 마음에 말씀을 두는 시간을 갖아야 합니다. 특히 올 1년동안 성경을 1독하거나 매일 묵상을 하거나 일주일에 성경요절을 한절 이상 암송하거나 하는 자기 목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회 속에서 성경 말씀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시간에 자신을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믿음은 계속해서 채움 속에서 활동해서 자라고 변하고 새로워질 때에 더욱 견고할 수 있습니다.
다음, 주님의 성품으로 자신을 견고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대부분 우리 안에는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과거의 나의 성품이 있습니다. 새해에는 주님의 성품을 더욱 마음에 소원하면서 변하여 더욱 견고하게 세워가기를 힘쓰는 한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원하는 주님의 성품의 회복을 위해서 성령님의 능력을 구하며 날마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쳐서 복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변화를 통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능력을 더욱 경험할 것입니다.
셋째, 주의 나라와 교회를 세우는 사명의 자리를 견고하게 지켜야 합니다.
사명의 자리를 견고하게 지킬 때에 주의 나라가 이땅에 이루어집니다. 사명의 자리를 견고하게 지킬 때에 이땅의 주의 교회들이 견고하게 세워져 갑니다. 한사람 아간같은 견고하지 못한 한 사람 때문에 주의 교회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특히 영적인 최전방에 있는 교역자와 교회의 평신도 핵심 사역자들은 대적자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명의 자리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오직 주님을 바라보면서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승리해야 합니다.
한해의 영적 여정 가운데 우리는 수많은 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영적으로 견고하게 잘 준비되어 세워져 있으면 주님의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018년 한해의 여정 속에서 우리 모두가 견고한 교회로 잘 세워져가는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2017년을 돌아보며
박춘수 목사
잊게 하소서
한 해를 돌아보며
무심함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같이
마음의 추억에 후회가 조금도 남지 않게
모든 아픈 것들을 단호하게 잊게 하소서
덮게 하소서
한 해를 돌아보며
불쏘시개처럼 미움으로 타오르던
마음의 화덕이 조금도 타지 않게
모든 증오하는 것들을 미련없이 덮게 하소서
버리게 하소서
한 해를 돌아보며
큰 풍선같이 터질 것같은 크기로 부풀어오르던
하늘에 떠있던 날린 마음을 조이며
모든 욕심의 꿈들을 꼭 버리게 하소서
보게 하소서
한 해를 돌아보며
무지했던 어둠의 영혼의 미로에서
흔적없는 마음의 지경의 이정표를 새로 만들며
모든 새 삶의 갈 길을 다시 보게 하소서
견고하게 하소서
한 해를 돌아보며
너무나도 속절없던 연약한 마음으로
무너진 믿음의 마음의 제방을 다시 쌓으며
모든 인생의 말씀의 길을 견고하게 걷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