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은 자연을 통한 인생의 배움의 시간을 갖게 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선의 선물이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은 예수님이지만 자연도 그에 못지 않은 귀한 선물입니다. 우리는 자연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삶은 자연으로 시작해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뿐 아니라 신앙생활도 자연을 통하여 많은 것을 레슨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연을 하나님의 일하심의 교과서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시편 기자는 시편19:1 “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일반계시인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자연은 자기 분수를 지키는 법을 가르칩니다. 자연은 자기 분량만큼 존재합니다. 나무는 그 위치에서 평생을 삽니다. 그 위치가 그늘이든지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이든지 관계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 위치에서 산을 빛내고 맑은 공기를 만들어내고 때로 새들의 거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때가 되면 썩어 사라지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때는 자기 위치를 지킬 때입니다. 부모는 부모의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의 위치에서 성도는 성도의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주신 위치에서 먼저 우리는 자기의 분수를 바로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자연은 공존의 관계를 가르칩니다. 모든 자연은 서로를 품게 됩니다. 모든 나무는 서로 함께 하고 모든 꽃들은 서로 함께 어울릴 때에 아름답습니다. 모든 자연은 자기 만족을 위해서 존재하기 보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상생의 관계를 갖습니다. 자연은 끓임없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항상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며 살아갑니다.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때에는 섬길 때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섬김으로 공존의 관계가 가능합니다. 관계를 잘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욕심의 자기를 이기는 사람입니다. 관계를 잘 하는 사람들은 나를 통하여 남을 배려하고 팀을 생각하는 공존의 이유가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끓임없이 공존의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자연은 때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꽃이 피는 때는 채 2주일도 안됩니다.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벚꽃, 진달래, 매화와 같은 꽃들을 보면 피는 순간 이내 지고 맙니다. 그 잠깐의 꽃을 피우는 시간을 위해 1년 내내 뿌리부터 가지까지 모든 진액을 쏱아내며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모든 나무도 봄이 와서 잎을 내는 순간을 갖는가 하면 이내 가을이 되어 모든 잎은 쓸쓸히 떨어지는 때가 오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때가 꽃과 같고 나무의 잎과 같습니다. 피는 때가 있지만 지는 때가 속히 옵니다. 주어진 지금의 인생의 때를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나에게 주신 소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죽음의 때를 준비하고 오늘이 그 죽음 앞에 있음을 알고 항상 주님 만날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가 가장 집중적으로 기도하면서 활성화하기를 원하는 부서는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육 부서입니다. 우리 교회 교육부서는 아직은 미숙한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러나 올해 걸음마를 넘어서 잘 걷는 단계의 성장을 위해서 도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 교육을 통해서 수준별 어린이들의 다양한 영적 필요를 잘 발견하고 채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어린아이들로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각 부서들이 더 잘 조직되어져서 잘 세워지는 한해가 될 것입니다.

먼저 교회 교육을 위해서 연령별 아이들의 필요를 잘 채울 것입니다. 올해 교회에서는 아이들의 나이를 고려하여 세부적으로 교육 부서를 더 구분하여 운영하고자 합니다. 올해부터는 1-2세의 영아부를 신설하여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2층 교육관에서 예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교회학교의 유아부 유년부 및 중고등부는 미남침례교단의 영어 성경교재를 작년 연말부터 채택하여 연령대의 수준에 맞게 더욱 통일성있고 일관성있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아부 및 유아부까지는 한글로 진행하고 유년부부터 영어로 진행하여 아이들의 필요를 맞추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아이들의 필요를 잘 파악하고 채워주는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로 세워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 교육은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영성을 키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교육가운데 가장 도전이 되는 것은 부모와 자녀들의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교육방식입니다. 그것은 바로 어려서부터 부모들과 함께 회당예배를 통해서 키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1년에 몇 번 부모들과 함께 대그룹예배를 참석하여 함께 예배함으로써 어른들의 예배를 배우고 체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개별적인 존재감을 뛰어넘어서 전체의 회중공동체를 통해서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어려서부터 연합의 중요성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우리아이들이 신앙 속에서 교회를 배우고 공동체를 배우게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 교육의 질적인 성장을 위해서 계속해서 교사들의 영성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교회에서는 교육사역자들의 영성을 위해서 계속해서 교사학교를 진행할 것입니다. 교육과 관련한 이론과 실제적인 기술들을 내부강사 및 외부강사들을 통해서 교사들이 배우고 훈련하도록 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외부의 좋은 세미나와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도록 할 것입니다. 다음 세대의 우리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좋은 교사를 키우고 세우는 교회로서 더욱 힘쓰는 한해가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을 세우고 키우는 일은 마치 한그루의 나무를 심고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투자와 더불어 기다림이 요구되며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세워질 때에 교회는 든든한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키울 때에 교회의 미래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5년 10년 앞으로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다음 세대를 준비하면서 세워가는 우리 교회로 다함께 세워가기를 소원합니다.

올 해 부터 우리 교회는 성경 쓰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성경 1189장을 3년에 모두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매일 1장을 쓰면 1년이면 365장 그리고 3년이면 모두 쓸 수 있습니다. 영어든 한국어 든 관계없이 공책에 매일 정확하게 쓰기를 하면 됩니다. 물론 성경 쓰기 공책은 교회에서 지정한 것으로 하여 3년 마치는 때에는 기록한 노트를 전체 제본을 하여 가정의 아름다운 신앙의 가보가 되게 할 것입니다.

매일 쓰기 한 성경 노트는 분기의 마지막 주일에 교회로 갖고 와서 점검과 시상을 하게 됩니다. 성경 쓰기의 시상은 첫째, 목표한 성경 쓰기의 양 둘째, 바르고 정확한 쓰기의 질, 셋째, 성경 쓰기의 믿음의 자세를 보게 됩니다. 쓰기 성경 노트를 교회에 제출하면 쓰기의 양과 질을 심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 쓰기의 마음과 자세는 성경쓰기 노트를 제출할 때에 3개월간 성경 쓰기 말씀 중에서 본인에게 가장 감동이 된 부분을 적어서 제출하면 살펴보고 시상하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성경에 믿음을 매이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도전을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성경 문제 풀기, 성경 요절 외우기 등을 했고 이번에는 성경 쓰기를 합니다. 그동안 성경을 더욱 알기 위해 많은 성도님들이 열심히 참여를 했고 이번에 성경쓰기에도 많은 분들이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은 거룩한 매임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과 믿음은 보이는 외적인 훈련을 통한 매임을 통해서 더욱 거룩하게 연단 되어야 합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성경 쓰기는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고 마음을 하나님에게 매이게 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성경 쓰기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목표한 것을 성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경 쓰기를 마지막까지 잘 마칠 수 있을까? 첫째, 믿음으로 성경 쓰기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쓸 때에 믿음의 연단이 됩니다. 둘째,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의 도움이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셋째,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 1장을 쓸 때에는 그래도 쉽지만 이틀 혹은 삼 일을 미루면 벌써 부담이 됩니다. 그러면 기쁨보다는 짐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성경 쓰기를 통해 상도 받고 가정의 가보가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본은 성경을 바로 알고 믿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를 소원하십니다.날마다 성경 쓰기를 통하여 지금 여기에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으면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모두가 승리하기를 소원합니다.

요즘 한 이민교회의 인터넷신문사에서 10년 뒤의 이민교회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위한 캠페인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취지의 캠페인을 하는 것은 이민교회의 현실을 위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민교회의 현재의 실상은 마치 점점 폐가가 되는 집처럼 무너져내려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의 숫자가 없다는 것과 교회에 새신자가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교회들은 점점 노령화되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문을 닫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침체되는 이민교회의 보편적인 실상의 현실은 미국의 모든 도시에 흩어져 있는 어떤 이민교회도 예외없이 점점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이런 이민 교회의 침체 현상은 사회적인 현상과도 연결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민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점점 세상은 반교회적인 문화로 교회를 거부하고 가나안 성도들이 늘어가는 것들이 그 이유가 됩니다.그러나 궁극적인 이유는 교회 외부에 있기보다 우리 내부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내부의 문제는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누적된 결과로 오는 현실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교회 학자 죠지 바나는 20세기 때에 교회를 진단하면서 21세기 교회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의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했습니다.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불을 지피면 개구리는 죽어가는 줄 모르고 물 속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게 되면 놀라서 즉시로 튀어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망가지고 죽어가는 이유는 현실에 대한 위기의 각성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가장 문제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이민교회의 침체 현상은 먼저 우리 안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중심은 말씀과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점점 말씀 없는 기독교가 되고 있습니다. 점점 기도 없는 기독교가 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점점 말씀을 대체하고 기도를 대체하는 인본주의적인 교회 이벤트와 행사와 프로그램들이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위하여 지금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철저하게 어린아이들에게 기도와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비젼 있는 미래 교회를 위해서 지금 교회는 말씀과 기도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항상 문제는 복잡하지만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 교회의 10년 뒤의 부흥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매일 반복해서 지금 그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2007년 안식년을 맞이하여 목회의 쉼과 공부의 시간을 위해 애틀란타에서 갖았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아내와 차를 몰고 비교적 먼 목적지를 운전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네비게이션을 잘 사용하지 않던 시절이라 지도를 의지해서 목적지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방향감각이 없는 터라 속도를 내어 열심히 운전을 해서 갔지만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이었습니다. 결국 오랜 시간을 헤메고 간신히 나중에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네비게이션없이 운전을 할 때 방향 감각 때문에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러나 목적지의 방향을 좇지 않는 열심의 속도는 헛된 수고가 될 뿐입니다.

매일 우리의 신앙 생활도 운전을 하는 것처럼 먼저 방향을 바로 알고 해야 합니다. 지금은 운전을 할 때에 올바른 목적지를 위해서 네비게이션이 방향을 잘 안내하기 때문에 그 안내대로 가면 문제가 없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성경의 네비게이션대대로 방향을 설정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삶에 익숙한 우리는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대로 경험대로 방향을 설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자기가 정한 신앙의 방향으로 갈 때에 하나님의 길에서 탈선하고 배도의 길을 가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의 주님이 세상의 그리스도인의 길의 방향은 좁은 길을 가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자기 소견대로 자기의 방향대로 가는 어떤 류의 사람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을 많은 사람들이 갈 수 있는 넓은 길의 방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앙의 길을 자아 도취의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점점 현대인들은 “ 내가 나의 운명의 주인이고 내 영혼의 선장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교묘하게 이런류의 세상의 자기 방향에 초점을 모으는 사람들의 생각이 기독교 내부에 이미 침투해 버렸습니다. 그결과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인간의 영광에 맞추려고 합니다. 만일 나 중심주의 신앙의 방향을 향해 우리가 열심의 속도를 낼 경우에 결국은 허무함 뿐일 것입니다.

성경의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의 궁극적인 방향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입니다. 이미 종교개혁가들과 청교도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삶을 살았습니다. 복음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열심을 냅니다.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살고자 할 때에 마음을 지켜주시고 이길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을 주십니다. 성경에서 기독교 역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의 숫자는 항상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소수였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던 그 소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지금까지 이루셨습니다. 점점 이 시대의 기독교는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기 중심의 기독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의 신앙의 방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한해의 시작 1월입니다.
1월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큰풍선처럼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라 한해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해의 12월이 되면 바람빠진 풍선처럼 허무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항상 깨닫는 것은 정말 시간은 살같이 빠르다는 진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성 아우구스니티누스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가 과연 그것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시간에 관해서 웬만큼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내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솔직히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가장 잘아는 것이 시간이지만 가장 잘 모르는 것도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하여 사전적인 의미는 “시간이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며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속체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결국 시간은 삶의 사건의 연속입니다.
시간 속에서 인생을 승리하는 사람은 시간을 잘 관리합니다. 벤쟈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인생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인생이라는 것은 바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결국 인생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시간관리가 제일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시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시간을 도둑맞고 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시간을 도둑맞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미루는 습관’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2가지 유형의 미루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식적인 미루기의 습관과 무의식적인 미루기의 습관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미루는 습관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은 그 일이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즐겁고 기쁜 일을 뒤로 미루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귀찮은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를 하는 일,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 운동을 하는 일, 성경을 보는 일, 은행업무를 보는 일등은 분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썩 즐거운 일이 못되기 때문에 미루게 됩니다.
또 우리가 미루는 이유는 피곤함이나 그 일의 복잡함 귀찮음등과 같은 이유들이 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미루게 되면서 결국은 더 힘들어지게 되고 더 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무책임한 삶의 사람이 되고 그러면서 점점 시간에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시간의 실패자는 인생의 후회를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시간관리의 습관은 본인의 철저한 목표의식 속에 변화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시간 속에서 데드라인을 정하여 목표를 정하여 일처리를 해야 합니다. 매일 삶 속에서 그날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목표들은 실행에 옮기는 습관을 갖아야 합니다. 그것을 뒤로 미루게 되면 시간을 도둑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매일의 삶, 매주의 삶, 매월의 삶, 매년의 삶을 우리는 시간을 계획하면서 자신을 의미있게 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2019년을 맞이하여서 매일, 매월, 또 올해 안에 하기로 마음에 결단한 것들은 꼭 실천하여서 올 한해가 의미있는 한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또 가을이 낙엽과 함께 가고 있습니다. 빨갛고 노란 단풍과 함께 찾아왔던 가을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우리를 떠나고 있습니다. 가을이 올 때에는 그 시간이 오래 머물 것 같았는데 떠날 때에는 너무나도 한순간에 떠나는 것 같습니다. 가을의 시간은 인생의 가을을 위한 레슨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뜨거웠던 열정의 삶을 뒤로 하고 낙엽이 되는 가을처럼 조용히 떠남을 준비해야 할 때가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떠나는 가을이 결코 쓸쓸하지 않고 풍성하고 기쁜 인생의 가을로 기억되고 의미있는 추억으로 남기 위해서 반드시 맺어야 할 아름다운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우선, 나의 인생의 가을에 맺어야 할 우선적인 열매는 예수님을 닮은 인격의 열매입니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면 미숙함을 넘어서서 성숙한 예수님의 모습이 말과 얼굴과 행실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처럼 온유하심, 겸손하심의 열매의 인격이 나타나야 합니다. 설익은 인격의 모습이 젊어서는 용납이 됩니다. 그러나 열매를 기대하는 인생의 가을에 열매가 없으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큽니다. 물론 이런 인생의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젊은 날부터 믿음으로 심고 또 심을 때에 결국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다음, 인생의 가을에 바른 리더의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나의 리더쉽의 우선적인 현주소는 가정입니다. 인생의 가을에 결국 점검해야 할 것은 나의 가정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가정을 세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은 에덴동산처럼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다스리는 곳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 결과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믿음의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때로 가정의 남편과 아내로서 부모로서 우리는 하나님 중심이기보다는 사람 중심의 가정을 세울 위험이 너무 많습니다. 결국 인생의 가을에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는 다음 세대에 믿음의 가정의 열매를 맺음으로서 믿음의 선한 영향력의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인생의 가을에 부름받은 소명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명의 소명자로 부르십니다. 우선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의 소명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위하여 부름을 받고 복음을 위하여 사명자로 살도록 소명하셨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직업의 자리이든지 어떤 환경이든지 예수님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삶의 사명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을 통하여 그 사명이 감당하여야 합니다. 직업을 통하여 세상의 삶에서 그 사명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입술로 때로는 거룩한 삶으로 그 소명의 부르심의 자리에서 열매가 나타내어야 합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길질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하여 마음에 되새길질할 때에 그 말씀은 오늘 나에게 생명력있게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묵상의 과정은 성경과 지금 나의 삶의 상황의 다리놓기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동일하게 활동하십니다. 묵상을 통하여 매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에 시편1편의 기자의 고백처럼 모든 일이 형통하는 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묵상은 성경읽기로 시작합니다. 정해진 매일의 성경 본문을 기도하고 난 후에 최소한 서너번 읽습니다. 다음에는 성경 본문의 내용을 관찰합니다. 이때에 본문의 내용이 길 때에는 서너 문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성경 문단 내용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그 마음을 관찰합니다. 다음, 나에게 주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하는 의의 요소가 무엇인지 관찰합니다. 그리고 그 관찰된 내용이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해석합니다.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성경 시대 속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 의미를 통하여 오늘 나에게 주는 적용점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묵상은 노트에 기록하기가 필요합니다. 매일 묵상을 일기로 노트에 기록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성경 속에서 관찰되고 발견된 의미와 적용점을 노트에 구체적으로 기록하면서 마음에 기억할 수 있습니다. 노트에 기록하는 과정은 눈으로 본 것과 마음에 깨달은 것들이 더 구체적으로 정제되어 나의 믿음의 언어로 기록되면서 오늘 나의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노트에 묵상을 기록하는 것은 분명히 머리와 가슴을 통과한 말씀이 손을 통하여 몸으로 체득되는 새로운 믿음의 과정입니다. 손으로 기록하는 수고를 통하여 마음과 몸에 말씀이 기억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몸은 말씀의 영성으로 진보합니다.

묵상은 기도와 나눔이 필요합니다. 묵상한 말씀의 마음을 갖고 위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 말씀대로 결단과 순종의 삶이 되기를 기도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삶의 현장이 구체적인 말씀의 영성으로 성령님께서 붙들어주시기를 구할 때에 성령님의 일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묵상을 서로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눔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백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과 하나님께 영광 만을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묵상의 영성이 깊은 사람이 하나님의 힘을 깊이 경험합니다. 묵상의 영성이 있을 때에 육신을 이기면서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승리하게 됩니다. 해가 지고 꽃이 지는 세월 속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힘이 되는 매일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바쁘고 힘들수록 오직 묵상으로 나의 마음을 지키면서 일상의 삶을 이기는 도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서로 본받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누구를 본받는가에 따라서 신앙의 질과 방향이 결정됩니다. 위대한 교부 어거스틴은“누구도 인도자 없이 걸을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성경의 바울도 바나바와 같은 본받을 수 있는 좋은 멘토의 도움이 있었고 디모데와 같은 어린지도자는 바울과 같은 본받을 수 있는 좋은 멘토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과거뿐 아니라 지금 이시대에도 신앙의 길을 온전히 가기 위해서는 영적 멘토링이 필요합니다.

멘토라는 단어는 그리스 신화에서 온 것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아들을 멘토에게 맡기게 됩니다. 오디세우는 전쟁에 나가면서 아들을 멘토에게 맡기면서 “책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를 얻게 하는 데도” 책임을 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멘토는 지성과 영혼의 교육과 지혜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멘토의 본은 예수님이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의 멘토가 되실 때에 철저하게 관계를 중심으로 삶의 본과 가르침을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상황 속에서 주님의 멘토링은 무엇보다도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서 보고 듣고 알 수 있도록 멘토링을 해주신 것입니다.

멘토링 사역은 목회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평신도들에게 적용이 됩니다. 과연 멘토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보통 우리는 최고의 멘토를 공식적인 직분을 갖고 있거나 눈에 띄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멘토는 외적으로 눈에 보이는 위치로 결정되지 않고 삶의 방식을 통해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는 방식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멘토의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삶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완전에 못 미치는 우리의 삶도 다른 사람들의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멘토의 관계와 사역은 먼저 상처받을 각오를 하는 용기를 갖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시고 이땅에 오셔서 섬김으로 위대한 멘토가 되신 것처럼 멘토의 시작은 자기 비움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헨리 나우웨은 ‘상처입은 치유자’ 책에서 결국 위대한 치유자는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자라야 가능합니다. 상처받는 가운데 멘토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사람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되고 채워진 사람입니다. 결코 멘토는 해결사가 아니지만 해결의 능력이 되신 하나님으로 무장되어 도움을 받는 자들에게 길을 안내할 수 있는 멘토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멘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듣기와 더불어 홀로 있는 침묵의 시간을 많이 갖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고 듣고 알고 느끼고 경험하는 체험의 영성이 있는 깊은 은혜가 있을 때에 우리는 남을 도울 수 있는 민감한 영적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평범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반복하는 상황의 경험이야말로 제일 좋은 멘토의 자기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고 원하는 것은 교회 가운데 좋은 평신도 멘토들이 많이 세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교회 집사님들의 수고로 교회 앞뒤의 정원들이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풀도 뽑고 예쁜 꽃도 심고 주변의 나무 가지치기도 해주었습니다. 정원에 어울리지 않는 나무들은 뽑아 버리기도 했습니다. 옮겨심은 아직 피지 않는 작은 꽃들은 언젠가 아름답게 필 것입니다. 어린 나무들은 언젠가는 더 멋있게 자랄 것입니다. 정원은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원은 가꿈의 수고를 통해서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정원은 한번의 돌봄과 가꿈으로 그 아름다움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관심과 돌봄으로 지속적으로 수고할 때에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의 사랑의 수고가 결국 아름다운 꽃을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속적인 돌봄으로 언젠가 과일나무의 과일을 맺히게 될 것입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돌봄으로 어린 나무들은 커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정원의 가치는 정원을 위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돌봄을 귀찮아하지 않고 즐거움을 감당하는 수고만큼 그 가치는 우리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엉망진창이 된 인생의 현장 앞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마치 돌봄과 가꿈이 없는 정원처럼 망가진 가정, 아수라장이 된 교회, 엉망진창이 된 일터의 현실 앞에서 암담해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특히 내 신앙의 현주소를 돌아볼 때에 텅빈 정원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같은 나의 존재감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의 현실은 과거의 결론입니다. 내가 그렇게 뿌리지 않고 가꾸지 않고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안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인생 정리가 안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도 취하고 저것도 취하고 모든 것을 취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잡풀처럼 나를 아름답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오랫동안 죽은 채 서있는 나무는 뽑아서 버려야 하듯이 내 안에 죽은 나무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단호하게 치워야 합니다. 인정에 끌려서 타협하고 과거에 치우쳐서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결국 잡풀만 가득한 인생을 만들 뿐입니다. 새로운 정원같이 아름다운 인생을 꾸미는 것은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름다운 정원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아름다움을 만들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스스로 정원지기가 되어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선물을 지키며 아름다운 성경의 매뉴얼을 따라 나를 그렇게 만들어가는 수고와 연습은 날마다 스스로 즐겁게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정원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바라봄의 목표가 됩니다. 아름답게 변화된 사람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지만 변화없는 사람들은 꾸미지 않는 무질서한 정원처럼 사람들의 외면을 받습니다. 결국 인생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정원을 가꾸듯이 날마다 부지런하게 가꿀 때에 아름답게 세워집니다. 나는 지금 아름다원 인생으로 가꾸어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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