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최고의 약은 무엇일까?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나를 지키고 건강을 지키는 비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동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운동은 의학이다” 라고 선언합니다. 그만큼 운동의 효과는 크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운동이 중요한 것은 인간은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맑은 공기와 밝은 태양과 함께 땅을 밟으면서 운동하는 것은 최고의 힐링이 됩니다.
운동을 하면서 스스로 놀라는 것은 운동이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누가 지속적으로 운동할 수 있을까?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특히 운동을 하는 가운데서도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운동을 하면서 더욱 마음을 훈련하는 기회가 됩니다. 특히 짝을 이루는 운동, 팀웍을 이루는 운동을 할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결과 운동은 근육의 운동 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까지 발달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승리합니다.
운동은 움직이는 순간부터 몸을 치료하는 기회가 됩니다. 내 몸의 안좋은 기관들이 재생되고 좋은 것들은 더 좋아지는 기회가 됩니다.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순간 우울증을 치유하고 소화기능을 증대하고 피의 흐름을 좋게 하는 것이 정설입니다. 육체 뿐 아니라 마음의 감정까지 영육을 치료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에 대한 성취감을 더 느끼게 하고 즐겁게 합니다. 운동하는 사람의 몸은 질병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운동은 삶을 훈련하는 최고의 교사입니다. 특히 승패가 있는 운동을 하면서 삶의 실패와 승리를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승패가 있는 운동을 해 보면 승리의 답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힘만 갖고 이기는 경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머리만 갖고서도 안됩니다. 단순한 운동 경기에서도 이기기 위해서는 힘, 머리, 기술 모든 것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인생의 승률을 높이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는 것처럼 한 분야의 운동경기에서 고수가 되고 운동을 통하여 승률을 높이는 즐거움을 얻기까지는 많은 것들이 요구됩니다. 운동하는 사람은 삶을 더욱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즘같이 코로나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이 운동입니다. 운동하지 않으면 삶은 더 힘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운동할 때에 삶의 질은 더욱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지속적인 운동의 적용을 위해서는 몇가지 우리에게 필요한 습관이 있습니다. 첫째, 부지런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어떤 운동이든지 부지런해야 가능합니다. 운동을 시작도 부지런해야 하지만 운동을 할 때에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 귀찮고 게으른 마음을 먼저 내려놓고 도전해야 합니다. 둘째, 인내의 습관이 필요합니다. 항상 운동을 지속하기 힘든 이유들이 있습니다. 시간도 환경도 운동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삶의 부정적인 이유들을 참고 운동해야 합니다. 셋째, 복종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운동할 때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운동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외적인 여건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필요한 것은 복종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내 몸을 쳐서 복종할 때에 운동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코로나와 함께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불편하고 힘들지만 코로나와 함께 친구처럼 사는 삶이 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불편한 친구인 코로나와 함께 사는 영적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미 마스크를 쓰는 습관, 거리를 두는 습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하는 새로운 생활 습관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을 조심하는 생활 습관을 갖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 경건의 습관을 잘 계발하여 코로나 시대를 이겨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습관은 나의 경건의 현주소입니다. 혼자의 삶 가운데 얼마만큼 영적 습관이 자리잡고 실천되는가를 보면 나의 영성의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습관은 자기 자신의 철저한 복종에 달려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부담이 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능력을 얻는 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는 일에 먼저 영적인 습관을 갖기를 소원하고 복종할때에 영적 습관은 길들일 수 있습니다.
첫째, 코로나 시대에 흔들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묵상의 영적 습관이 필요합니다. 묵상의 습관을 위해서는 시간의 우선 순위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매일의 삶에서 가장 조용하고 집중하기 좋은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묵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먼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 본문의 성경 말씀의 의미를 묻고 깨달음을 얻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럴때에 본문에서 지금 여기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고 살아갈때에 위기의 시대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코로나 시대에 결핍을 채우는 기도의 영적 습관이 필요합니다. 먼저 기도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시간, 기도의 장소를 구별해서 정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더 깊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삶의 긴급한 문제들이 더욱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내가 기도가 잘되는 장소, 가장 내가 깊이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새벽 시간을 이용하여 감람산 조용한 장소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코로나시대에 새벽 시간을 이용하여 교회당을 이용하여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도에 집중하기 가장 좋은 여건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서 시간을 정해놓고 깊은 기도의 영적 습관이 실천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코로나 시대에 외로움을 극복하는 교제의 영적 습관이 필요합니다. 코로나시대는 이제 대면하는 교제는 위험한 교제의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만남을 통하여 소통하고 나눔의 정서적인 필요가 채워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좀더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만남이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서로에게 서로가 만났을 때에 더욱 긍정적인 나눔과 교제가 되기 위하여 부정적인 대화와 비생산적인 주제들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간의 서로의 영적인 유익과 필요가 채워지는 만남을 위해서 절제된 감정으로 덕스럽고 의미있는 교제를 연습해야 합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8)
지금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무엇보다도 절제의 필요성을 많이 경험합니다. 지금까지 평상의 삶에서는 흔하고 일상적이었던 것들을 절제해야 합니다. 늘 일상적이었던 만남의 교제도 절제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방문하여 자유롭게 식사하던 것들도 절제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교회당을 자유롭게 찾아서 예배하던 기쁨의 은혜조차도 지금은 절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의 내면 속에서 발생하는 자유로운 욕망들을 절제하는 것들은 스스로 내면 가운데 갈등을 갖을 수 있습니다. 욕망을 제어하고 절제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외적으로는 우리의 욕구들을 제어하는 규칙과 법과 통제가 있어서 어느 정도 제한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안의 내면의 자유로운 욕망을 제어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욕망대로 자신의 몸과 인생을 내어주면서 방탕하게 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욕망을 절제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내면의 자유로운 욕망을 제어하고 절제하도록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나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욕심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절제하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내가 마음과 몸으로 그 성령님의 인도를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의 사도 바울은 절제의 능력으로 승리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바울은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특히 배고픔과 궁핍의 상황에서도 절제하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능력이 아닌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능력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항상 자유하고 내면의 기쁨을 유지하는 신령한 삶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성령님의 절제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께 소원해야 합니다. 내마음에 성령님의 능력을 소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욕망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민감하게 감찰하시고 그 마음의 소원을 보시고 일을 하십니다.
둘째, 성령님과 약속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성령님과 약속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고 규모있게 살기 위하여 성령님에게 약속할 때에 더욱 책임감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때에 내안에 계신 성령님과 그 약속을 지키면서 삶을 질서있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작게 실천하기입니다. 한꺼번에 절제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하루에 10잔 먹는 커피를 절제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한잔을 줄이기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잠을 10시간 이상 잔다면 먼저 하루에 30분을 줄이면서 절제하는 것입니다. 항상 밥을 몇그릇 먹는 습관이 있다면 조금씩 양을 줄이는 것입니다.
넷째, 인내하기입니다. 절제의 삶은 육체의 자유로운 욕망을 죽이는 일이므로 지루하고 육체의 다소의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하여 인내하면서 이겨내어야 합니다. 절제의 삶은 인내하면서 버티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비록 코로나 시대의 불편함과 고통이 있지만 이 시간을 통하여 절제를 잘 훈련하고 더욱 주님의 마음과 삶으로 회복되는 귀한 연단의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한달에 한번 하는 독서를 중심으로 모이는 목회자 모임을 했습니다. 한 달에 한 권 책을 선정해서 함께 읽고 소감과 적용점을 나누는 시간을 갖으면서 자신과 목회를 점검하는 유익을 얻게 됩니다.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목회자들이 모여서 독서를 하고 나누다보면 나이의 차이만큼 소감과 적용도 각각 다르게 독서의 유익을 경험하는 것을 봅니다. 점점 독서를 하면서 경험하는 것은 독서야말로 매일 먹는 식탁의 밥처럼 우리의 꼭 필요한 일상이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고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이든 그리스도인이든 우선 필요한 책은 경건의 책입니다. 하나님을 더 알고 깨닫게 하는 데 유익이 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의 좋은 고전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한 삶을 살도록 큰 도움을 줍니다. 오랜 과거의 믿음의 선조들이 쓴 책들은 지금보다 어떤 면에서 더 깊은 하나님과의 영성의 체험을 기초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고전들을 독서를 하면 결국 이 시대 가운데 더욱 깊은 영성을 쌓는 기회가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이 시대를 반영하는 트랜드의 인문 사회 관련의 책들입니다. 왜냐하면 시대와 일상은 자꾸 변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바르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가 필요한 것은 마음의 감동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대는 감성을 기초로 한 시대입니다. 과거보다 요즘은 더욱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유튜브의 컨텐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셀폰 한 대만 있으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과 영화 그리고 다양한 강연들을 쉽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이런 것들은 우리의 마음의 자극을 주지만 마음의 깊은 감동을 주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깊은 마음의 정성과 수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마음의 정성과 수고를 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서 줄을 치고 메모를 하고 때로는 반복해서 읽고 똑 읽고 하면서 마음에 채우는 독서를 하면 마음의 감동이 옵니다. 마음의 감동을 주는 독서는 인생을 설레임을 오게 하고 새롭게 사는 감동의 삶을 도전하게 합니다.
독서의 필요성은 독서할 때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무지한 채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경험을 못하였기에 그 맛도 모릅니다. 결국은 고기를 먹어 본 사람이 더 먹고 과일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알고 더 먹게 됩니다. 책을 읽어 보고 그 맛을 경험하면 그 필요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옆에서 책을 읽으라고 해도 그것을 경험하여 맛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공허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책을 멀리하는 습관을 갖았기 때문에 처음에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도전하여 한권을 읽게 되면 두권을 읽고 결국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시대를 맞이하여 혼자 있는 시간이 많는데 이런 시간을 독서의 시간으로 잘 활용하기 좋은 기회입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 가운데 상하고 지친 우리의 마음은 치유와 회복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감동을 주는 독서의 시간을 통해서 더욱 내면이 치유되고 회복되어 풍성한 가을을 보낼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코로나 시대를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한 정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마음의 감정은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정서는 과거의 유산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린 시절의 가정의 경험에서부터 유래될 수 있습니다. 피터 스카지로 목사의 책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에서는 가정의 4가지 형태를 소개합니다. 1. 고통당하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합니다. 이런 가정은 난장판의 분위기입니다. 2. 경계선에 있는 가정입니다. 독재자가 이끄는 가정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말못하는 가정의 아이는 감정적으로 상함이 많습니다. 3. 적절한 규칙이 있는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암묵적 규칙을 따라 움직이고 보이지 않는 심판관이 있는 가정입니다. 그 결과 감정적으로는 아이들 내면에 죄책감을 갖습니다. 4. 규칙은 있지만 유연성을 갖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가정입니다. 이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는 정서적으로 건강하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정서가 발달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부모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부모나 가정을 탓하는 것은 해결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의 과거의 경험이 불완전 하였다면 신앙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성경의 요셉은 상처를 준 형들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믿음으로 가족의 아픈 상처를 극복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어두운 가족을 따라 마음과 인생을 만들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 인생을 건설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분노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분노해야 하는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상한 감정은 돌봄이 필요합니다. 우선적으로 감정을 돌보기 위해서는 나의 상한 감정을 아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토해 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감정의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상하고 힘든 감정을 토해내면서 홀로 시간을 갖아야 합니다. 둘째, 왜 내가 분노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여 보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분노하고 비판하는 감정들은 생각에 근거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만 판단할 때에 우리는 쉽게 분노할 수 있습니다. 셋째, 너무 자책하지 말고 변화될 나를 기대하며 마음을 훈련해야 합니다. 누구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조절되지 못한 감정으로 쉽게 화를 낸 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나를 스스로 격려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서적으로 건강함을 키우기 위하여 하나님이 제시하는 좋은 대안은 묵상입니다. 깊은 묵상은 안정된 정서를 개발하게 됩니다. 홀로 하나님과 함께 묵상의 시간을 갖으면서 가장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묵상하면서 교제하는 자기 백성에게 그 마음을 나누시고 채워 주십니다. 이 가을에 더욱 홀로 하나님을 깊이 대면하는 묵상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배움으로 건강한 정서가 회복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시86:4)
장기간 계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 시대를 살면서 상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합니다. 상한 마음은 마치 맛을 잃은 혀처럼 인생의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마음은 마치 자동차의 엔진과 같습니다. 엔진이 망가지면 차는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엔진으로부터 모든 부품에 힘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상한 마음은 몸의 모든 곳곳을 아프게 합니다. 그 결과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영향을 줍니다.
상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만드신 분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고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몸의 의사기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의사이기도 합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고장 나면 세상의 의사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원의사는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고치는 기술을 성령님을 통해서 인도하고 성경을 통해서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통해서 마음을 고치는 일을 행하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의 인도의 처방을 받는 하나님의 일꾼들은 하나님의 법인 말씀을 공급하게 합니다. 마치 병원에서 의사가 처방을 내리듯이 약국에서 약사가 처방을 내리듯이 하나님의 성령의 일꾼들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처방을 받아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진료하게 하십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치유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대로 그대로 마음에 믿고 적용해야 합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처방하여 준 지시를 환자가 따를 때에 치료가 됩니다. 만일에 환자가 자기의 생각대로 고집하면 치료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치유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처방대로 하나님의 성령의 일꾼들이 가르쳐주고 전달하여 준 처방을 믿음을 따르는 자에게는 약속대로 고쳐지고 회복이 됩니다.
몸의 치유를 위해서 병원이 필요하고 의사가 존재하듯이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는 교회를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영혼의 의사인 목사를 허락하였습니다. 목회의 현장에서 많은 상한 마음의 성도들 중에 치유를 경험하는 성도들을 봅니다. 치유 받은 자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교회를 귀하게 여기고 목회자들의 영적인 진단의 처방을 받고 그대로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세상의 의사를 통하여 일을 하듯이 교회의 목회자들을 통하여 일을 하십니다.
상한 마음은 반드시 치유 받아야 합니다. 치유 받지 않은 상한 마음은 쓴뿌리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의 삶도 망가지게 합니다.그리고 남들에게는 부정적인 관계를 하면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영육이 건강하여서 그리스도안에서 행복한 삶으로 승리하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주간 금요일 부터 시작되는 10주간의 영적 치유의 모임을 통하여 함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히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요즘 한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재발하여 위험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가 재발되는 원인으로 교회가 집중적으로 조명되면서 세상으로부터 욕을 듣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8.15 광복절 집회에 대규모로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경우가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집회를 통하여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고 그들이 출석하는 교회를 통하여 또다시 감염되었다는 것이 뉴스와 언론의 주장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지금 한국 교회들은 다시 대면 예배가 제한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의 교회들은 정부의 예배 금지 명령을 어기고 대면 예배를 강행함으로 인해서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몰래 숨어서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되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언론에 뉴스로 교회들의 이런 모습이 방영됨으로 인해서 한국 사회에서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코로나바이러스를 맞이하여 모든 교회는 방역의 본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행과 섬김으로 세상에 희망을 주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8.15 광복절 집회 이후에 한국의 일부 교회에서는 집회 금지 명령을 정부가 교회를 박해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미 교회를 중심으로 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두명도 아니고 객관적인 많은 환자의 숫자가 나왔으면 다소 억울함이 있어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힘든 시기에 교회는 먼저 낮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정부의 명령을 따라 대면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탄합 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게 하기 위함이요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경우에 어떤 목회자들은 정치적 선동으로 교회들을 조정하려고 하고 있고 여기에 교회가 이용당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현장에서 위험을 무릎 쓰고 사회적 명령을 어기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신앙이 아니요 교만한 교회의 오기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유대의 바리새인들처럼 형식적인 종교의 오만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주님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시간을 이용하여 종교화된 교회의 관행적이 습성을 돌아보게 하는 훈련의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시대 가운데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 교회가 교회다움을 기뻐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의 교회다움은 주님같은 마음과 행실로 겸손히 낮아져서 세상을 빛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 시대 가운데 상한 영혼들을 주의 말씀으로 섬기고 병들고 지친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예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점점 길어지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시간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갑갑하고 답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중되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불안감을 가중하게 됩니다. 사회적 격리 시간을 오래 갖게 되면서 점점 마음도 삭막하게 변한다고 합니다. 특히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시간에 대한 답답함으로 삶의 즐거움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길어지고 가중되는 고난의 시간을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백성답게 의미있는 시간으로 보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오히려 불과 같은 시험의 고난의 때를 잘 통과하여 거룩하게 빛나는 보석같이 되어지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가장 고난의 삶을 잘 이겨낸 사람은 욥입니다. 욥은 자녀,재산,건강,친구등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가장 큰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 고난의 때에 욥의 우선적인 고난의 반응은 부정적인 해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먼저 찬송하고 경배하면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욥은 엄청난 고난의 때를 연단의 때로 살았습니다. 욥은 고난의 때를 잘 연단을 받게 될 때에 순금같이 되어질 것을 소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일정한 음식을 먹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기도하면서 거룩하게 하나님께 복종하면서 인내로 자신을 지켰습니다. 3명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욥을 정죄하고 공격하여도 그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켰습니다. 고난의 때를 인내하면서 믿음으로 잘 연단한 욥의 결국은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고난의 때를 자기 연단의 때로 살기를 기뻐하십니다. 성경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고난의 시간을 허용하셨습니다. 애굽의 430년, 광야의 40년, 바벨론의 70년의 고난의 때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난의 때를 자기 백성의 믿음의 연단의 때로 사용되기를 소원하셨습니다. 비록 그 고난의 때를 보내는 것은 분명히 고통스럽지만 결국은 합력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기회의 시간이었습니다. 고난의 때를 보내면서 잘 연단 되어진 사람들은 거역하던 교만한 마음을 다듬고 부드럽게 낮아지는 겸손하고 순종하는 인격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고난의 시간을 연단의 기회로 삼고 승리하면 살기 위해서 그리스도인 각자의 거룩한 결단의 영적 의지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타락된 자유의지는 고난이 와도 여전히 죄의 속성대로 자기 자유를 좇아 살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고난이 올 때에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불안한 삶 가운데 더 자기 중심을 좇아 살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더 이기적이 되고 더 본능적이 되고 더 죄의 소욕대로 자신을 내어주면서 동물적인 본능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난의 때에 하나님은 더욱 자기 백성에게 견디고 이길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고난도 허용하시지만 그 고난을 피하고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 백성들을 더욱 하나님에게 복종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난의 때를 연단을 잘 받고 통과하여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선한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10)
우리의 신앙은 몸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몸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시작은 내가 나의 몸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종종 나의 몸을 사랑하는 것을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몸을 부정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몸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적이요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역사에서 대표적인 이단 사상 중에 영지주의라고 하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의 핵심적인 주장은 당시의 플라톤의 이원론에 근거한 사상이었습니다. 당시 영지주의가 교회 속에 침투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미혹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에베소 교회의 니골라당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영지주의 주장은 한마디로 몸에 대한 잘못된 이원론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육체의 몸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영혼 만을 강조하고 몸을 부정하게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영지주의 이단은 지금까지 교회 가운데 영혼만이 귀한 것이므로 육체적인 행동을 부정하게 만드는 문제를 낳게 만들었습니다.
몸에 대한 헛된 이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꾸 영적으로만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입만 열면 객관적인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육체의 모든 활동을 무시합니다. 가장 문제점은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몸을 거룩하게 사랑하는 법을 무시합니다. 자칫 겉으로 보면 거룩하게 보이는 것처럼 오직 영적인 활동을 하는 것만이 경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과거에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몸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세상의 모든 일은 부정하게 여기고 몸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운동을 거부하고 자꾸 영혼을 앞세운 영적인 활동만을 주장합니다. 그 결과 세상에서 건강한 몸을 통한 거룩한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전된 몸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애에 근거한 몸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 몸 가운데 성령을 모시고 있기에 내 몸을 거룩하기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몸을 통해서 일 가운데 삶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기 기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내 몸을 사랑하는 기본적인 몇가지 적용이 필요합니다.
첫째, 몸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고전6:19).
둘째, 몸을 구별되게 거룩하게 하는 것이 나의 몸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벧전1:15).
셋째, 몸을 사랑하는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내 몸을 건강하게 잘 지켜내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고전10:31).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를 살아가면서 무엇보다도 몸을 건강하게 보존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건강하게 잘 보존하기를 힘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참된 예배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에덴동산에서부터 아담으로부터 예배를 받으시며 교제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지금으로 구약으로 말하면 성전이었습니다. 아담은 그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살아있는 예배를 경험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마음과 삶 가운데 신령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서 참된 예배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참된 예배를 경험하였던 대표적인 사람은 노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고 인정을 받았던 노아의 삶도 예배하는 삶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거역하였을 때에도 외롭게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삶의 바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제단을 통하여 하나님께 구별된 제단 예배를 드렸습니다. 노아는 삶의 예배도 제단 예배도 드림으로 참된 예배를 하나님에게 드렸습니다.
참된 예배를 대표하는 구약의 인물은 바벨론 포로 이후 시대의 에스라입니다. 그는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고 살아있는 예배를 회복합니다. 금식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바른 예배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에스라를 중심으로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이스라엘 제사장 중에서 결혼하였던 이방 여인들을 다 돌려보내는 결단을 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참된 예배자의 복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참된 예배의 바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수가성에서 만난 여인을 통하여 살아있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과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되 예수님을 중보자로 삼아서 성령으로 예배하고 말씀의 진리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거짓된 예배를 드리는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거룩한 분노를 보여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참된 예배를 위해서 전통과 형식을 잘 사용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하여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날이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당에서 드리던 예배가 집에서 혼자 또는 가족들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의 장소가 바뀌었어도 예수님을 중보자로 삼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있는 예배가 드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 구약에서 신약에서 참된 예배의 실패를 거울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참된 예배자로서 우리 자신들을 점검하고 바르게 세워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참된 예배는 참된 예배자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먼저 삶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참된 예배자의 삶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노아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둘째, 참된 예배자로서 형식을 따라 드려지는 공적 예배는 성령님의 인도를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는 찬송과 기도와 순종이 참된 예배를 가능하게 합니다. 셋째, 무엇보다도 공예배를 드릴 때에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참여해야 합니다. 온라인 예배의 주의점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과 몸이 참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