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좋은 수필로 영향을 미쳤던 김형석 교수는 올해 나이가 102세입니다. 이미 100세를 넘은 그가 행복을 묻는 사람들에게 3가지의 행복론을 말하였습니다. 첫째, 돈, 권력, 명예의 소유를 좇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고 정신적 가치를 좇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소유는 결코 만족이 없기 때문에 행복도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기적인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행복도 작을 수 밖에 없습니다. 셋째, 행복을 위해서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정신이 젊어야 몸도 젊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행복을 위하여 사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존재하는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위하여 삶을 살아갈 때에 우선 자기 자신도 행복합니다. 자기 자신이 행복한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연인과 다를 바 없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현실도 일반적인 것을 다같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행복을 위하여 노교수가 강조한 교훈은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좋은 가르침입니다.

우선, 행복을 위하여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존재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마음이 부요할 때에 인생도 부요함을 경험합니다. 물론 육체가 살기 위하여 떡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항상 먹고 입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노력하고 수고하지만 작은 것에 자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을 채우고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에 말씀이 들어가 마음을 깨울 때에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영혼이 채움을 받을 때에 마음의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을 위하여 구해야 할 것은 이기적인 삶을 버려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자기 밖에 모르는 죄성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의 문제는 작은 마음의 그릇입니다. 작은 마음의 그릇은 작은 행복 밖에 없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의 삶은 자신도 기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작은 마음을 넓힐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항상 나누고 베푸시고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치유되고 새로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경험할수록 마음은 넓어지고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행복을 위해 중요한 것은 끓임없이 배우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배울 때에 삶의 의미가 있고 희망이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너무 많습니다. 특히 노년의 나이가 되어 일을 그치고 은퇴하고 시간이 있을 때에 더욱 해야 할 것이 배우는 공부의 시간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배울 필요도 있습니다. 지성이 없는 무식한 그리스도인은 짐승과 같이 힘으로만 섣불리 행동할 수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공부를 위해서 선용할 때에 그 시간 속에서 인생의 의미는 새롭게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100세 시대의 인생이 지루하고 힘든 인생이 될 수고 있고 행복한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자세가 인생의 질을 결정합니다. 더욱 풍성하고 복된 인생을 만들어가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2021년 우리 교회 표어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교회’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힘든 지난 해에 이어 여전히 올해도 어두운 전망의 한해가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어둠이 심할수록 빛은 더욱 필요합니다. 어둠의 세상 가운데 교회는 주님의 빛의 사명이 더욱 요구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빛을 잘 받아야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내적으로는 예배의 영성, 찬양의 영성, 말씀과 기도의 영성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외적으로는 구제와 전도 및 선교의 영성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교회의 사역들을 더 집중하기도 하며 새로운 것을 준비하기도 하면서 교회가 내적으로 더욱 주님의 빛을 경험하고 외적으로 주님의 빛을 발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먼저, 주님의 빛의 사명을 충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빛되신 주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된 말씀으로 속사람이 더욱 충만하기를 힘쓰기를 지속해야 합니다. 올해는 매일 성경 1장 쓰기, 매주 성경 요절 1개 암송하기, 매일 묵상하기, 매일 기도하기 등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주님과 깊은 관계를 갖기를 원합니다. 또 공동체적으로 공적 예배를 집중하여 드리기를 힘쓰면서 주님의 임재의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특히 올해는 주일 오후 찬양 모임을 신설하여 찬양의 영성을 통하여 우리의 메마른 심령을 활성할 것입니다. 전교인 공동체 예배를 분기에 1회이상 드림으로 우리의 다음 세대 아이들과 더욱 하나되는 기회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둘째, 공동체 속에서 사랑의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먼저 내적으로 성도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빛된 교제를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특히 목장을 중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의 교제를 잘 갖기를 기대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함으로 인해서 많은 경우에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힘든 정황입니다. 교회가 대면 예배가 회복되어지면 더 마음을 열고 서로의 관계 가운데 먼저 사랑으로 섬기고 교제하면서 우리의 상한 마음이 회복되기를 기대합니다. 올해는 작년에 멈추었던 제자훈련을 다시 시작함을 통해서 더욱 주님의 제자들을 양육하고 훈련할 것입니다. 목장들이 봄, 가을 베스트 초대일을 통해서 관계를 통해서 전도하는 일에 더욱 집중할 것입니다. 한국학교를 통해서 지역을 더욱 섬기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전교인 수련회를 통해서 더욱 영적으로 교회 공동체가 하나되는 은혜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셋째, 지역을 향해서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롱아일랜드 지역 가운데 복음의 빛을 더욱 잘 발하기를 소원합니다. 먼저는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인 한국분들에게 더욱 복음의 빛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여러 다민족들에게도 교회를 통해서 복음의 빛을 발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협력하는 해외 선교사님들에게 더욱 선교를 위해서 협력하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아이티선교, 북한선교, 인디언 원주민 선교 등에 집중했던 선교의 지경을 넓혀서 올해는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정찰가 기도를 하는 기회를 갖을 것입니다. 또한 교회 교육선교의 장을 더 확장해서 아기를 갖은 엄마들을 위한 기도와 선교를 위한 준비의 기회를 갖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2021년 한해가 영적으로 충만하게 채워짐으로 복음의 빛이 더욱 공동체 교회를 통하여 밝히 증거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요금 유튜브에서는 한국의 한 선교단체가 주장하는 이상한 내용의 동영상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있습니다. 나도 어느날 어떤 분이 보내주어서 그 동영상을 열어보았습니다. 내용인즉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으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신을 맞는 순간 DNA가 조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 주장을 하는 사람은 한국의 이단성 있는 선교단체의 대표였습니다. 그는 빌 게이츠가 투자하여서 만든 것이 백신이고 그 백신을 맞는 순간 그들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앞세운 거짓가르침입니다.

역사 속에서 세상이 뒤숭숭하고 혼란스러울 때에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거짓 가르침들이 유행을 하였습니다. 거짓 가르침들의 주장을 보면 항상 성경을 왜곡되게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성경을 왜곡하는 우선 이유는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본래의 뜻을 무시하고 사람의 생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유튜브를 들어가 보면 사람의 생각을 앞세워 성경을 함부로 해석하는 문제성 있는 유튜버들이 많고 심지어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습니다. 왜냐하면 기존 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해석 같아 신선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요즘 제일 문제가 되는 성경 해석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문자주의에 집착한 성경 해석입니다. 둘째는 성경을 너무 비유적, 신비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입니다. 우선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때에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경우에는 대부분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교회가 속는 이유는 문자적으로 해석을 접근하면 마치 가장 성경적인 것처럼 여김으로 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할 때에 문자를 기록하였지만 여러 가지 양식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법과 배경을 고려하여 바르게 해석하여야 합니다. 또 성경을 어떤 경우에는 성경을 비유적으로만 해석하고 신비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경우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들의 문제는 기록된 성경의 의미와 역사와 배경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성경을 더 알고 배우고 싶어합니다. 더 알고 싶은 지적이고 영적 인 욕구들을 갖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배우는 가장 좋은 길은 본인이 몸담은 교회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제일 안전합니다. 그리고 더 성경을 알고 싶은 경우에는 공인된 학교와 기관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요즘 유튜브에는 온갖 이단들을 포함한 거짓 가르침들의 유튜버들이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막을 도리는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호기심을 갖고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든 때를 살아가면서 성경대로 믿는 바른 믿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더욱 힘써 하나님을 알고 배우는 일입니다. 우선 2가지 방식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세부적인 내용을 아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마치 숲과 나무 중에 나무를 보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묵상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본인이 먼저 묵상을 통해서 성령님의 조명을 받는 깨달음의 배움입니다. 다음은 성경의 숲을 보는 방식인 성경 읽기입니다. 성경을 차례대로 읽기를 통해 성경의 큰 그림인 숲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됩니다. 세상이 힘들고 삶이 어려워지면 마음이 혼란스러워 거짓가르침에 유혹되기 쉽습니다. 바르게 성경을 알고 배움으로 힘든 시기를 이겨나가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전에 한국에서 살 때에는 새해가 되면 등산을 도전하곤 했습니다. 특히 내가 즐겨 찾던 산은 태백산이었습니다. 겨울의 태백산은 모진 바람과 함께 눈길 떄문에 힘든 산행 이었습니다. 엉금 엉금 기다시피 오르기도 하고 때로 넘어지기도 하면서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새로운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마치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그 마음에 소망이 가득 차게 됩니다. 힘들고 고달픈 산행을 도전하는 이유는 바로 새로운 마음으로 도약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삶을 떠나서 등산을 하면 마음도 삶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익숙한 삶에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도 더 이상 새롭게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들을 귀찮게 여기고 그냥 현재에 머물러 살려고 합니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안정을 지향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동일합니다. 더 이상 고생하는 것은 회피하고 편하게 믿음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믿음은 조금도 도약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좀 고생이 되어도 우리는 새로운 영적 도약의 목표를 갖고 등산을 하듯이 새로운 영적 도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소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적 도약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내가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이미 섰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겸손함을 갖고 하나님 앞에 배우는 자세로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겸손함이 없이는 우리는 도약이 어렵습니다. 읽었던 성경이지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믿음으로 읽기를 도전해야 합니다. 그동안 기도했던 삶을 잊어버리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기도의 자리를 도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을 내려놓고 다시 독서의 자리로 나를 도전해야 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리는 경주자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이 필요합니다.

영적 도약을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마치 고구마와 감자의 뿌리와 같습니다. 믿음의 뿌리에서 결국은 모든 것이 열매로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행동하여 보기입니다. 나의 이성을 앞세운 계산을 버리고 그냥 단순하게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바라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것과 세상의 가치관들을 믿음 아래에 굴복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믿음대로 도전할 때에 더 깊은 하나님과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마침내 정상에 오를 때가 있습니다. 처음 출발하여 올라가는 과정은 너무 정상이 멀리 있고 가는 길이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뚜벅 뚜벅 한걸음씩 도전하다보면 마침내 정상에 우뚝 서는 때가 옵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이 도약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인생의 도약은 결국 믿음으로 도전하는 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축복입니다. 올 한해가 영적인 도전을 통해서 풍성한 영적인 도약을 새롭게 경험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2021년 새해 새시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시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르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살같이 빠르다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절대 머무는 법이 없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인생의 승리는 빠른 시간을 잘 사용할 때에 가능합니다. 인생의 승리는 결국 시간관리의 승리입니다.

시간 관리를 잘 하려면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합니다. 우선순위는 우선 가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우선 가치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이 하나님이 통치를 받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뜻들이 우선 가치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일터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를 소원하십니다. 먼저 우리의 삶의 시간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서 시간을 헌신해야 합니다. 매일 같이 먼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의가 지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잘 정해서 갖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일, 묵상하는 일, 예배하는 일은 우리의 시간에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매일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 관리가 있을 때에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시간 관리를 승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이 필요합니다. 해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조금도 변화가 안되고 항상 그 자리에서 정체되어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시간 계획은 엉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시간을 도둑맞고 사는 습관에 익숙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시간 계획을 위해서는 우선순위의 가치 속에 일년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들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물론 사람이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 계획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계획을 세워서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보내고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지만 열매는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시간대로 반복하여 실행에 옮기는 성실함입니다. 분명한 것은 계획이 철저하고 준비한 것만큼 더 실행에 옮길 가능성도 많습니다.

시간 관리는 낭비하는 습관을 고쳐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즘의 사람들의 삶의 트랜드는 내 마음에 끌리는 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라고 합니다. 지금 이순간을 사랑하는 마이웨이의 시대는 더 소비중심으로 쾌락중심으로 시간을 보내게 합니다. 그 결과 자기중심의 시간의 과잉투자로 말미암아 남과 이웃을 위하거나 하나님을 위하는 건전한 삶은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그것은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적절한 쉼은 필요하지만 자기 욕망을 채우는 삶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너무 시간을 일에 목표로 두고 조급하게 서두름도 문제이지만 과도하게 뒤로 미루는 것도 문제입니다. 특히 함께 사는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자기의 쾌락의 욕망을 위해서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시간을 우리는 버려야 합니다. 특히 먹고 놀고 자고 즐기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내가 감당해야 할 시간들을 뒤로 미루는 것은 고쳐야 합니다.

한해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습관대로 결정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받은 시간을 소중한 선물로 여기고 시간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위하여 소중하고 아름답게 승리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덧 한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긴 어둠의 터널같은 한해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올 해 여름이면 끝날 것이라고 했던 코로나의 위기의 시간들은 결국 가을을 지나 겨울에 이르게 되어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내년이 되어도 어느 시기까지 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변형된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하면서 모든 나라들이 더 긴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 하에서도 현상만 보고 삶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여서는 안됩니다. 사건 그 이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면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과연 이 전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에 한해를 보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한해를 보내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앞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비록 심각한 재난의 전염병일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발생한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하나님이 병을 주실 때에는 인간들의 반역과 불신앙 우상숭배 교만등에 대한 심판으로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욥과 같은 경우에는 까닧없는 고난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이 이 모든 위기를 멈추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한해를 보내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더욱 살피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원하는 것은 정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결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이 구별되어 정결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정결하게 헌신하면서 살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교만과 욕심 속에서 세상의 유행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더욱 우리 자신들의 깊은 내적인 마음의 성찰과 정결한 몸을 회복함으로 더불어 정결한 신앙으로 자신을 드리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셋째, 한해를 보내면서 이웃과의 관계를 더욱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올해는 더욱 남을 돌아보고 섬기고 나누는 덕과 사랑이 필요한 한해였습니다. 주변에 보면 물질적인 어려움, 정서적인 어려움등으로 우리의 섬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그들을 위하여 기도로 물질로 몸으로 섬김이 필요한 한해였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남몰래 섬김의 선행을 베푸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숨은 섬김의 선행자들로 인해서 세상은 힘과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욱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렵고 힘든 이웃을 향하여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더욱 마음을 넓히고 이웃들을 섬기는 일에 시간과 몸과 물질로 섬기는 구체적인 섬김의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입니다. 오늘의 역사는 내일을 향하는 좋은 발판의 기회가 됩니다. 고난 속에서 보낸 올해의 모든 삶들은 새로 맞이하는 내년을 향하여 더욱 준비하고 훈련하는 선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위기의 한해를 보내면서 더욱 새해를 믿음으로 잘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특별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기쁨이 사라진 시대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더욱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영어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라틴어 Christus와 모임의 massa의 합성어로서 의미는 그리스도 모임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예배의 날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은 소개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모임이나 규례가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주후 3세기 경부터 지킨 것으로 소개됩니다. 로마교회 대주교인 율리우스 1세가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하고 350년부터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의 축제로 인정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를 넘어서 세상적인 명절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세상사람들은 가족들과 모여 음식을 먹는 날, 선물을 주고 받는 날, 아름다운 장식을 하는 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위한 장식들과 나무들이 판매가 됩니다. 또 미국의 경우에는 크리스마스 때에 먹는 특별한 음식과 음료가 있을 정도입니다. 크리스마스 사탕, 쿠키와 같은 것들은 이미 상품화되어 판매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예수님의 탄생의 기쁨과는 관련없이 이루어지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과는 관련 없는 세상의 사람들의 자기들을 위한 축제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해서 경배를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동방박사들이 누가복음에서는 목자들이 소개됩니다. 우선 동방박사들은 구체적으로 그들이 누구인지 마태는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이스라엘의 기준에서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목자들은 당시에 이스라엘의 분위기로서는 가난하고 무시 받던 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는 자들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할 때에 철저하게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여 시간과 몸과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경배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야 합니까?

우선, 세상의 풍속을 좇지 말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우리 자신들을 기쁘게 하는 먹고 마시고 즐기고 선물받고 노는 날이 아닙니다. 점점 세상은 사람이 중심이 되고 신이 되는 세계입니다. 그 결과 사람을 기쁘게 하고 즐거워하게 하려고 합니다. 점점 교회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기보다는 사람을 먼저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크리스마스를 지키되 예수님을 즐거워하고 경배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에 교회가 우선 해야 할 일은 기쁨과 즐거움의 예배입니다. 많은 경우에 예배의 즐거움이 사라진 시대의 믿음 생활을 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기뻐할 때에 주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먼저 필요한 것은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예배입니다.

셋째,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여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받는 날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남에게 선물을 주고 나누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큰 선물인 예수님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해의 결산의 때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너무도 무력하게 시간만 흘러간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에는 교회의 재정과 행정 결산을 해야 합니다. 본격적인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이 3월부터 시작이 되었고 결국 한 해 모든 계절 내내 코로나와 동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위기를 계속되고 과연 어떻게 앞으로 전개가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정황에서 한해의 마무리 시점을 맞이한 것입니다.

첫째 재정 결산을 돌아보면 지난 1년동안 재정적으로 힘든 한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적으로 최선으로 헌금으로 충성스럽게 헌신한 분들이 계십니다. 매주 재정부를 통해서 올라오는 헌금자들의 명단과 헌금 액수를 보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어렵고 힘든 정황에서도 개인적으로 낭비 하지 않고 아껴서 헌금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직하게 십일조를 드리고 각종 목적으로 헌금을 할 수 있는 것은 물질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요 영광과 감사를 받으실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은 이렇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물질의 헌신을 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유형교회가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바울은 어렵고 힘든 환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헌금을 한 마게도냐의 교회를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물질의 헌신을 드리는 삶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드림과 심음의 기회가 되어 더 큰 하나님의 열매를 거두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재정 결산을 통하여 어려운 시기에도 함께 귀한 헌신을 담당하신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둘째, 교회 모든 사역에 대한 결산입니다. 올해는 교회의 대부분의 사역들을 계획대로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본래 내년 연초에는 안수집사와 권사들을 피택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정대로 훈련이 진행되지 못하여 1년 더 연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년 가을에 임직식을 하려고 했었는데 2022년 가을에 임직식을 연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는 모든 제자훈련을 중단하고 미루는 관계로 개인적으로는 너무 안타까왔습니다. 내년에는 제한적이지만 제자훈련을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 목장 모임과 사역들도 모두 중단되었습니다. 물론 온라인이나 간헐적으로 목장 모임이 있었지만 내실있는 모임이 진행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목장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베스트 초대의 날도 생략되었고 코리안 푸드 페스티발도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예배는 중단되지 않고 온라인과 대면으로 드리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모든 사역이 중단됨으로 말미암아 더욱 하나님과의 관계를 집중하면서 영적인 내실을 점검하고 쌓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더 풍성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실재에 대해서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기회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한해 모든 교회 사역들이 대부분 중단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한해의 결산 앞에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해를 돌아보면서 인간의 무력하고 부족함의 한계를 철저하게 경험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인도를 의지하고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직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막상 멀리서 지켜보던 고난이 나에게 올 때에 고난의 현실감은 너무 다릅니다. 남의 고난을 지켜볼 때에는 이렇게 저렇게 고난에 대한 이론을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막상 나의 고난이 되면 허둥지둥 마음의 갈피를 잡기 어렵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이기는 충분한 마음의 훈련이 안된 채로 우리는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삶에서 훈련으로 다진 삶은 두렵고 힘든 고난이지만 보다 더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를 나가서 입상을 하는 최고의 선수들의 공통점은 실전같은 연습을 하기 때문입니다. 피나는 실전같은 연습은 실전에 가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도 몸도 연습되고 훈련된 대로 자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충분하게 익숙하게 잘 훈련된 선수는 어떤 상황의 어려운 선수를 만나도 익힌 기술과 훈련된 몸으로 위급한 상황을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훈련이 없는 선수는 조그마한 고난이 와도 결국 그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삶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는 삶의 연속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나의 몸의 소욕을 거부하고 주님을 따르는 일이 연습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의 욕망은 더 편안하고 더 즐겁고 더 자기 중심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 소욕을 거부하고 주님과 함께 더 교제하고 순종하는 자리에 나가는 삶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주님과 함께 깊은 교제로 연습 된 사람은 특별한 고난의 삶도 일상처럼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에서 승리하는 삶은 일상의 삶에서 이미 결정됩니다.

일상의 삶을 주님과 함께 잘 훈련된 사람은 마음의 근육이 잘 결정되어 있습니다. 우선 일상의 삶의 훈련은 마음의 근육을 튼튼하게 합니다. 마음이 조화롭게 잘 발달된 사람은 안정감이 있습니다. 고난의 급한 상황에서도 주님으로 인한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두운 현실이지만 빛된 주님을 의지하기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주님을 일상 속에 경험한 마음은 고난 앞에서 더 능력을 발하게 됩니다. 일상의 삶의 훈련이 잘 된 사람은 고난 중에서 담대하게 직면하여 극복합니다.

성경의 사도 바울은 고난의 어려운 삶의 경기를 잘 이긴 참피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일상의 삶을 항상 훈련하는 선수처럼 잘 이겼습니다. 그 결과 사역의 고난의 현장에서도 로마 감옥의 고난의 현장에서도 고난을 항상 이기는 승자로 살았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일상 속에서 주님의 능력이 어떻게 승리로 경험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일상의 승리가 고난의 승리로 연결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고난 앞에서 승리는 일상의 삶에서 힘을 키울 때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삶을 스스로 훈련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 거룩한 소원이 필요합니다. 운동선수처럼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은 간절한 소원은 모든 것을 그 소원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매일 일상의 삶에서 날마다 바라보고 지켜보아야 것은 바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일상의 삶에서 매일 주님과 함께 살고자 할 때에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이김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승리합니다. 그 주님의 능력과 승리로 일상에서 훈련된 사람만이 고난 가운데서도 넉넉히 이기며 승리하는 경험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계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이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 매일 1000여명 이상의 사망자와 더불어 확진자율이 3%대를 넘고 있습니다. 최소 100명당 3명이상이 코로나에 걸리는 비율입니다. 문제는 겨울을 맞이하여 점점 그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안타깝게도 최근에  확진자들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적으로 확진자 집사님들과 접촉한 다수의 분들이 코로나 테스트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아직까지 다른 사람은 별다른 확진자 소식은 없는 정황입니다. 이런 정황에서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하여 바른 태도를 갖으면서 이 상황을 이겨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하여 지나친 두려움을 갖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질병이든지 지나치게 두려움을 갖는 것 자체가 그 병에 패배하는 길입니다. 두려움은 마음의 기능을 약하게 합니다. 그 결과 몸과 삶을 부정적으로 마비됩니다. 두려움을 갖는 길은 생명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입니다. 어떤 질병과 같은 상황을 만나도 두려움을 버리고 마음에 갖아야 할 자세는 두려움을 버리고 담대함을 갖아야 합니다. 심지어 지금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렸어도 이겨낼 수 있다는 담대한 마음을 갖을 때에 몸도 삶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상황에서 우리는 생명의 주관자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의지하면서 담대하게 이겨내야 합니다.

다음,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하여 지나치게 무시하는 태도를 피해야 합니다. 너무 코로나바이러스를 쉽게 생각하고 조심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면서 조심하는데 착용을 부하거나 거리 두기를 무시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경솔한 태도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코로나를 무시하는 분들 중에 하나님을 앞세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지켜주시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마치 초믿음적인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미 벌어진 상황도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이해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섭리를 조심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고난과 위험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조심하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셋째,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겨나가는 바람직한 태도는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과 더불어 우리 인간의 조심의 태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먼저 코로나바이러스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의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을 선고 받고 통곡하면서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으로 그의 생명을 연장하여 주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간절한 기도와 함께 위험한 이 시기를 하나님께 맡기면서 이겨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적으로 12월 한달 동안 코로나바이러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더 집중하여 갖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현재의 위험을 조심하면서 이겨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연약한 육체를 소유하고 있고 위험한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위험한 시기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조심의 책임을 다하면서 지혜롭고 담대하게 이겨나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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