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미주남침례회 총회를 3일동안 참석하였습니다. 올해 미주한인남침례회 총회는 테네시 주 내쉬빌의 미국 침례교회를 빌려서 열렸습니다. 작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총회가 열리지 못하였고 올해도 대면 총회 개회에 대해서 분분한 이견이 있었지만 대면으로 열렸습니다. 다행히 올해 열린 대면 총회에는 200여명을 예상했는데 약 600여명이 참석하여서 은혜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한인 총회가 열렸던 내쉬빌에서는 미국남침례교단의 총회가 약 2만여명이 모여서 열렸습니다. 총회 둘째 날 오후에는 미국 남침례교단의 총회에 참석하여서 총회장 선거 투표에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총회에 참석하면서 느낀 것은 굉장히 생산적이고 건전한 모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3일간 진행되는 총회의 대부분의 시간은 세미나, 집회 그리고 교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다른 교단의 총회의 경우에는 반복되는 회의와 더불어 고성과 심지어는 욕설이 난무하는 모습들의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회의 분위기는 조용하면서도 은혜와 재충전의 수련회의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초청된 강사들은 열정적인 인도와 더불어 목회자와 사모 그리고 목회자 자녀들에게 필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잘 준비된 강의와 설교로 큰 은혜를 끼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회 기간 동안 진행되는 많은 은혜의 시간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시간은 둘째날 저녁의 국내 선교의 밤 그리고 셋째 날 저녁의 해외 선교의 밤이었습니다. 남침례회 총회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결국 교회 개척과 해외 선교였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많은 목회자들 중에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난 분도 있고 어려운 교회들이 문을 닫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가 개척되고 있었고 해외에 선교사들이 파송 되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총회에서 태국과 쿠바로 각각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파송 받는 선교사 가정 중에는 지역 교회를 조기 은퇴하고 해외 선교사로 파송 받는 열정을 통해서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총회 기간 동안 미국 전역에 흩어져 목회하는 다양한 목회자들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면서 교제를 통해 각각 다른 환경에서 어렵고 힘든 사역을 나누면서 위로와 힘을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교제 중에 만난 목사님 중에는 몰몬교의 성지로 알려진 미국 유타에서 목회를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오히려 몰몬교가 정통이고 기독교가 이상하게 취급을 받는 분위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묵묵히 복음과 함께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섬김과 사역을 통한 간증과 삶을 나누면서 도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미군들과 결혼한 노년의 한국 여성들만이 있는 작은 시골에서 겪는 목회의 어려움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감사한 것은 모두가 어렵고 힘들지만 목회자로서 긍지를 갖고 열정과 사명으로 섬기는 모습들이 아름다웠습니다.
총회 참석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건전하고 좋은 교단에 속한 것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육과 선교에 집중하면서 다음 세대와 더불어 다양한 민족들에게 복음 중심의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얼마전 교회에서 영화 ‘미나리’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70대의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으면서 더욱 유명해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감독은 1.5세 한국인 이민자로서 자서적인 자기 과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공의 꿈을 안고 미국의 시골로 이사를 온 영화 속의 부부와 두 아이의 삶은 고단하고 힘든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갈등하는 가정의 정점에서 할머니가 조인하게 됩니다. 영화 속의 할머니는 사위 농장의 물이 흐르는 작은 개울가에 미나리를 심습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미나리같이 영화 속의 주인공 가족도 많은 고난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영화 ‘미나리’는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소개됩니다. 영화 속의 할머니와 한방을 쓰는 어린 손자는 할머니를 향해서 천진난만하게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묻는 할머니에게 다른 미국의 할머니들은 영어도 잘하고 빵이나 파스타도 만들어주고 어린 손자에게 욕도 하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한국에서 온 할머니는 영어도 못하고 욕도 하고 어린 손자에게 화투를 가르쳐주기까지 합니다. 어린 손자의 눈에 한국에서 온 할머니는 미국의 할머니들보다도 수준이 떨어진다고 여기고 창피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점차 손자는 다른 문화의 할머니를 이해하고 할머니와 화투 놀이도 하고 한가족으로서 정체성을 함께 회복하게 됩니다.
‘미나리’ 영화는 한국의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 길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미나리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가장 한국적으로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미국에서 주도적으로 사는 것이 한국의 이민자로 승리하는 길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영화 속의 할머니와 미나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미국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한국말과 한국방식으로 한국의 식물을 미국땅에 심으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그 모습이 결국은 영화 속의 위기의 가정을 세우고 관계를 회복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민자로서 미국의 다양성과 좋은 점들을 배우기는 하되 결코 미국 문화가 더 높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말 한글은 아직 영어보다는 사용성이 떨어지지만 이제는 K pop을 통해서 전세계적으로 젊은이들에게 로망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민자로서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한국말인 한글은 반드시 한국인의 정체성과 함께 가르쳐야 할 필수 언어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음식 그리고 한국의 다양한 전통 문화를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잘 보급하고 가르치면서 한국인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바른 정체성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민자로서 한국인의 바른 정체성을 갖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경험하는 도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2년여의 고통의 팬데믹 시간에서 일상의 회복의 시간들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6월부터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는 대면으로 전환을 하고 주일 예배는 대면과 온라인을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학교는 온라인과 대면을 병행하면서 앞으로 상황을 보기로 했습니다. 일상의 회복의 시간 가운데 우리가 먼저 노력하고 집중해야 할 것은 온전히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하여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온라인 예배를 드렸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예배의 집중이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온라인 예배는 예배자로 참여하기보다는 마치 영화관의 관객처럼 예배의 구경꾼이 될 위험이 많습니다. 온라인 예배는 주변의 환경적인 요인들이 예배에 집중하기에 어렵기때문입니다. 그 결과 예배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하게 체험하기에 힘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예배를 반복하면서 건성과 형식적인 습관이 될 위험이 너무 많으며 결국 무미건조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일상의 회복 가운데 먼저 우리는 대면 예배를 통해서 예배의 자리를 회복하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먼저 시간을 구별하여 공예배를 드리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는 주일에 드리는 공예배의 시간을 구별하여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우선 주일에 공예배에 집중하기 위해서 예배 시간을 잘 지키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예배 시작하기 전 기도와 침묵 속에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는 온전히 예배에 집중하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배의 방해가 되는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온전히 예배자로서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 영광을 돌리는 예배 시간에 다른 어떤 것들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예배하는 시간동안에는 오직 예배자로서 예배에 집중하는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다음, 몸을 구별하여 공예배를 드리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주일에 예배자로서 참여할 때에 각개인은 온전히 그 몸을 통하여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찬양을 드릴 때에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는 기쁘게 즐겁게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때로 손뼉을 치면서 큰 소리로 화답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 눈을 정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몸이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하여 공예배 시간 동안 우리는 셀폰을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기가 있는 가정의 경우에는 부부가 각각 1부와 2부를 따로 드리면서 아기를 돌보아 주고 각 사람이 예배를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에 두 사람이 함께 아기와 같이 예배를 드린다면 집중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하고 예배에 참여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공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시간이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야 할 시간이지만 무엇보다도 예배의 시간은 구별되게 하나님만을 위하여 구별되게 거룩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 무엇도 우상이 되지 않도록 예배 시간에는 거룩한 공예배가 되도록 나를 쳐서 복종해야 합니다. 거룩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재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에 우리는 한주간 또 세상에서 새힘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기회를 맞아 먼저 공예배를 회복하는 우리 모두의 삶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은 영적으로 더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영적으로 발란스가 잘 갖추어진 업그레이드가 되는 일입니다. 우선 중요한 영적인 발란스는 관계의 발란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과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발란스가 잘 되어 업그레이드가 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의 총체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 삶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영적으로 발란스가 업그레이드가 되면 결국 이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선 자신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발란스가 요구됩니다. 우선 주안에서 자기 긍정과 부정의 발란스가 요구됩니다. 복음은 우리를 주안에서 의롭다 하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신분과 지위를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기를 요구합니다. 자기 긍정과 부정의 요구 앞에서 발란스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긍정과 부정의 관계에서 발란스를 맞추는 사람은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나는 주안에서 복되고 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의 정체성을 항상 갖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날마다 복음 안에서 옛사람의 자기를 부정하면서 살아야 할 아직 완전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대부분 자기 부정의 발란스가 망가진 채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긍정과 부정의 관계에서 여전히 나는 주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서 나를 세워가야 합니다.
다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발란스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통해서 십자가의 구원을 경험하고 공의의 하나님을 통해 거룩한 성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랑과 공의로서 발란스를 갖고 우리에게 역사하였습니다. 먼저 죄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통해서 값없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받음으로 죄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고 난 이후에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 앞에 더욱 성화의 삶을 요구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공의의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에 대해 발란스가 무너져 있습니다. 그 결과 죄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하고 거룩과 성화의 길에서 거룩한 훈련을 게을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사랑으로 닮고 행하는 공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발란스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됩니다. 우리의 이웃은 가까이해야 하는 존재이지만 조심해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형제와 자매로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인격적으로 마음을 다해서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은 조심하여 상처를 주고 받지 않기를 위하여 말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귀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 안다고 하는 이유로 인해서 조심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가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우리의 관계가 서로 윈윈하기 위해서는 서로 인격적으로 인정으로 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도 중요하지만 상대방도 중요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 지역교회가 역사를 더해가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교회 가운데 일꾼들의 수고입니다. 지역교회가 유형교회로 건강하게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눈에보이는 일꾼들의 수고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꾼들의 수고가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숨은 일꾼들의 몸의 헌신, 재정의 헌신, 시간의 헌신을 통해서 교회 역사가 세워져가는 것을 봅니다. 이런 분들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희생하며 헌신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바라보면서 헌신하는 이런 일꾼들이 더욱 많아질 때에 교회는 건강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우선 몸으로 헌신하는 숨은 일꾼들의 수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유형교회로서 한 지역교회가 건물을 갖고 모든 예배와 교육 사역을 하기 위하는 일꾼들의 수고를 알아주어야 요합니다. 항상 몸으로 참여하여 예배와 기도로 섬기는 교회의 귀한 일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예배를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상으로 준비하는 일꾼들의 수고를 인정해야 합니다. 차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픽업하는 운전의 수고도 칭찬해야 합니다. 공적 예배를 위해서 모든 공간들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수고를 보아야 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때마다 교회 정원의 꽃을 심는 수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당 주 변의 나무 가지를 일정하게 잘라주고 손질도 해주는 수고를 인정해야 합니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준비하여 섬기는 귀한 수고도 알아 주어야 합니다. 묵묵히 그 자리에서 수고하여 주는 일꾼들이 있기에 누군가는 누리는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한 지역교회가 유형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역을 위해서는 재정적인 헌신의 수고가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에도 이름없이 재정적으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분들의 수고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감사예배를 드린 교육관 공사를 할 때에도 무명으로 많은 물질을 헌신하신 무명의 일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 선교를 위해서 귀한 물질로 자원하여 헌신하는 귀한 일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성경에서 큰 물질로 헌신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여 주셨습니다.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헌신한 여인을 예수님은 기념하라고 하셨고 바울은 물질로 헌신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공개적으로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일들은 주님를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무명의 숨은 일꾼들의 헌신을 통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이 교회속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모든 능력은 결국 성령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을 앞세우고 생각하면 우리의 몸과 물질과 시간을 희생하는 것은 너무 도 아깝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은 인간의 계산을 이기고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사도 바울의 초인간적인 모든 사역의힘은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듯이 지금도 성령님의 능력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교회 가운데 숨은 필요를 채우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헌신하는 모든 일꾼들을 인정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더욱 다음 세대 가운데 선배들의 아름다운 헌신의 계보를 이어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해마다 5월 셋째 주일은 교회 창립 기념 주일로 기념하여 예배합니다. 특별한 행사는 없지만 예배 가운데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말씀을 통하여 기억하고 우리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새기는 기회를 갖습니다. 이민교회로서 우리 교회는 미국남침례교회의 정체성 위에 개척되어 지금까지 역사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를 통하여 많은 침례교회의 목사님들이 배출되었고 교회가 개척되도록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1970- 80년대 개척기의 뉴욕마하나임선교교회는 엘머스트의 미국교회당을 빌려서 당시 한국에서 온 많은 이민자들이 출석하는 숫적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의 역사들의 기록을 보면 어린아이들의 숫자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이민교회로서는 큰 교회에 해당하는 교회였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는 어른들의 나이도 젊어서 30-40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부흥의 큰 잠재력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자체 건물의 부재로 인한 모임과 교육의 한계를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1990년 이후 20년 동안 우리 교회는 플러싱으로 교회당을 구입하여 이주를 하면서 전환기 시대를 맞이합니다. 새로운 건물에서 새로운 목회자와 더불어 우리 교회는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꿈꾸며 도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기만 해도 이민자들이 많이 오는 시기였고 교회의 청장년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었기 때문에 교회 도약의 기회였습니다. 유초등부와 중고등부와 같은 다음 세대를 교육하고 어른들을 잘 양육하고 훈련하면서 전도와 선교에 집중해야 할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교회 공동체가 리더쉽의 위기와 더불어 분열의 아픔을 겪으면서 어려움의 시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대 이후 우리 교회는 상처의 아픔을 딛고 재도약하는 시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비록 고난을 통한 아픔이 있었지만 다시 개척자의 심정으로 초심을 돌아가 교회를 세워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새로운 롱아일랜드 지역으로 우리 교회는 2016년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엘머스트 시대에서 플러싱 시대를 거쳐 이제는 롱아일랜드 시대를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롱아일랜드 이주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이주하려고 했던 교회 건물의 계약을 파기하게 하시고 우리로서는 계획하지 못했던 사요셋으로 이주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곳에서 지난 5년동안 우선 집중했던 일은 교회의 양육과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교회학교의 교육 시스템을 갖추어 교회의 다음 세대를 키우고 아울러 지역을 위하여 썸머 캠프, 한국학교, 문화학교등을 통해서 섬겼습니다. 특히 올해는 제2교육관까지 수리를 마치고 새로운 교육 공간으로 준비가 되어서 더욱 좋은 섬김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청년 및 어른 세대도 치유와 양육과 훈련을 통하여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일에 그동안 집중하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의 비전과 꿈은 더욱 주님 닮은 사람을 세우고 훈련하는 일뿐 아니라 평신도의 은사를 따라 더욱 다양한 사역들이 개발되고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과 더불어 세계를 향하여 더욱 사랑으로 선교하는 일에 교회가 드려지고 세워져가기를 기대합니다.
지금은 가정이 위기인 시대입니다. 현대의 가정은 마치 고쳐야 할 차들로 가득한 자동차 정비소와 같습니다. 많은 가정 안을 들여다보면 이혼의 문제, 자녀들의 탈선의 문제, 관계 단절의 문제, 상처와 고통의 문제들로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이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에 문제가 그냥 방치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이 문제들로 인해서 더 문제가 악화되어 가정들이 해체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문제의 가정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성경 안에 그 해법이 있습니다.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은 가정을 세우시는 주인이십니다. 가정이 사람을 중심으로 세워가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으로 먼저 회복될 때에 가정은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실 때에 가정을 축복하시고 가정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주인이 된 가정은 결국 하나님의 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고 순종하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보다도 말과 삶의 본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의 부모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의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삶을 선택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으로 세워지기 위해서 가정에서 남자들이 먼저 제사장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먼저 말씀을 주시고 가정을 세우도록 부탁하셨습니다. 가정에서 남자들은 가정이 말씀으로 세워지도록 말씀을 가르쳐야 하고 말씀이 성취되기를 기도해야 하고 말씀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남자의 제사장 역할이 이루어질 때에 하나님은 믿음의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나타나게 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먼저 남자들은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는 영적 열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말씀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은 부모들이 지속적으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관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말씀과 기도로 함께 하나님과 관계하도록 초대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기도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는 인도를 받을 때에 가정은 회복되고 형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지금 여기에서 가장 기쁨으로 경험하는 장소가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은 영혼이 잘 됨 같이 육체와 범사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온전한 산 증거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은 내면의 기쁨 뿐 아니라 삶의 기쁨의 증거들로 함께 하심으로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도구로 삼습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으로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은 생명이 시작되는 곳이고 삶을 가장 먼저 배우는 곳입니다. 특별히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가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가장 예민하고 어린 시기에 경험하는 가정은 좋은 것도 배우고 좋지 않는 것도 배우는 곳이 됩니다. 부모에 따라서 가정은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합니다. 가정의 경험이 인생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고 오래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결국 남는 것은 학교의 추억보다도 가정의 추억이 더 선명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가정은 인생의 최고의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인생의 방향을 배우는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는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에게 정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방향의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나무가 방향을 위로 향하고 모든 꽂이 위를 향하여 꽃을 피우듯이 인생의 모든 공부도 일도 삶도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에게 정하는 삶을 연습하고 배워야 합니다. 부모들은 몸을 하나님에게 방향을 정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시간을 하나님에게 방향을 정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돈을 하나님에게 방향을 정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가정에서 인생의 방향을 배운 아이들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은 인생의 가치를 배우는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사람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 것을 배워야 합니다. 가정에서 이기적인 삶을 내려놓고 이웃과 서로 관계하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이 가치 있는 것임을 경험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는 삶으로 바른 가치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의 가치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의 삶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인생의 바른 가치를 바르게 배운 자녀들은 결국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정은 가치 있는 삶을 몸으로 체험하며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인생의 자세를 배우는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은 자세의 싸움입니다. 자세의 기본기가 훈련되는 곳은 가정입니다. 부모는 바른 자세의 모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세를 어려서부터 잘 훈련 받은 아이는 결국 삶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가정에서 마음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서 마음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어려서부터 가장 배워야 할 자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부모는 건강한 자기 이해의 자세를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배운 자세가 자녀의 평생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주인으로 삼은 가정 학교가 되면 가정은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방향과 자세와 가치를 배우는 가정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요즘 결혼 후 가장 오랜 시간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신학대학원 1학년 때에 아내와 결혼을 하고 올해 5월이면 벌써 31주년이 됩니다. 결혼하던 때가 어제같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데 벌써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항상 옆에서 챙겨주던 아내가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을 경험합니다. 관심밖에 여기던 것들도 새로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홀로 지내는 시간을 갖으면서 홀로서기의 삶을 잘 연습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인생은 언젠가는 홀로 남게 됩니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하고 혼자 잠을 자야 하고 혼자 걷기도 해야 합니다. 결국 혼자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홀로서기가 연습이 안되면 삶이 지옥같을 수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홀로서기가 불편하다면 더 이상 삶은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홀로 서기가 잘 준비된 사람은 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교회와 함께 홀로 서는 삶을 잘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홀로 서기의 삶이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을 의지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보통 우리는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 자꾸 우리는 스스로 해내는 습관보다는 자꾸 사람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나의 경우에도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아내에게 너무 의지하는 삶을 많이 살아왔습니다.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것에 익숙하였지 내가 스스로 식사를 만들어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아내가 챙겨주는 와이셔츠를 입고 아내가 빨아준 속옷을 입는 것에 익숙하였습니다. 이제는 점점 더 의지하기보다는 내 스스로 해결하는 연습을 많이 연습 중에 있습니다.
둘,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게으름을 버리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인생의 과정가운데 사소한 것은 없습니다.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은 누군가의 수고와 땀의 댓가입니다. 집안의 먼지를 청소하고 밀렷던 빨래를 청소기에 돌리고 건조해서 정리하는 일들은 사소하게 보여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이 홀로 사는 삶에 있어서 너무 중요한 일상입니다. 홀로서기를 잘 하려면 사소하게 여기는 일상의 일들을 부지런하게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편함의 자유함을 내려놓고 조금 더 몸을 움직이고 수고하면서 삶을 준비하는 수고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홀로 서기가 잘 되려면 더욱 부지런하게 삶을 살아내는 수고의 댓가를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셋, 그리스도인의 홀로 서기는 인간적인 외로움을 하나님과 깊은 풍성한 교제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외로울 수 있지만 영적으로는 더 풍성하고 자유한 기회가 되도록 주님과의 만남의 교제를 잘 갖아야 합니다. 만일에 홀로 되었을때에 주님없이 홀로서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삶은 너무 외롭고 삭막할 것입니다. 특히 노년에 홀로 되었을 때에 주님은 최고의 친구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는 최고의 즐거움과 기쁨을 회복하는 곳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점점 다가오는 인생 가운데 홀로 서기의 삶이 잘 준비되어져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보통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고민은 성경 말씀의 적용에 대한 문제입니다. 설교를 듣고 적용을 고민합니다. 날마다 묵상을 하면서 적용을 고민합니다. 제자훈련을 하면서도 적용에 대하여 부담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적용에 대한 고민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알기에 적용에 대해서 마음에 소원함을 갖지만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른 적용이 될 때에 참된 변화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적용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적용을 소개하는 성경의 단어는 행함 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은 적용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적용하기 원하는 명령과 교훈과 뜻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적용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이르는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풍성한 삶을 기대하십니다.
바른 적용을 위해서는 바른 마음의 동기로 성경을 묵상하거나 들어야 합니다. 반대로 바르지 못한 동기로 성경을 대할 때에 우리는 바른 적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개 묵상이나 설교가 잘 적용이 안되는 경우에는 잘못된 마음의 자세가 있습니다. 우선 집착입니다. 자기의 소원과 욕구에 집착이 된 사람은 성경을 대할 때에 자신의 왜곡된 동기가 우선이 됩니다. 그런 경우에 성경 본문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잘못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음 합리화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자기의 문제를 덮고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그런 말씀을 통한 바른 적용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동일시의 문제입니다. 자신을 성경의 인물과 동일시여기면서 자기 중심적인 잘못된 적용을 할 수 있습니다.
바른 적용을 위해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관점에서부터 종합적으로 잘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자신을 가정, 직장, 교회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충분히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지 않고서는 나의 문제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나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 안의 나를 잘 살펴볼 때에 우리는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주님의 관점에서 나를 더욱 바라보면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른 적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명의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난 뒤에 성령님으로 인하여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결과 그들은 가던 길의 방향을 돌려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적용을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적용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 바른 적용의 삶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성령님을 통해서 적용하도록 능력도 주십니다. 결국은 성령님의 도움이 있어야 바른 적용이 가능합니다. 말씀을 성령님으로 인하여 바르게 적용하는 곳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