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서는 하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개최 유무에 대한 말이 많았지만 결국 무관중 가운데 열리고 있습니다. 위험한 시기 가운데서도 스포츠 대회를 여는 것은 그만큼 운동은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운동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승패는 그 어떤 것의 결과보다도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팍팍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스포츠는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최고의 레슨이 됩니다. 신약 성경에서 바울은 믿음 생활을 운동에 종종 비유하곤 했습니다. 믿음 생활의 자세는 스포츠의 자세와 너무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스포츠는 통해서 배우는 것은 자기 복종의 레슨입니다. 모든 운동 선수들은 운동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쳐서 운동에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의 본능은 더 자고 싶고 더 먹고 싶고 더 놀고 싶습니다. 그러나 본능에 대해서 거부하고 운동을 위해서 몸을 쳐서 복종하는 사람이 상을 받습니다. 믿음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하여 옛사람 자기 욕심을 쳐서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피겨선수 김연아 선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쳐서 철저하게 운동에 복종하였습니다. 반복되고 계속되는 몸의 복종이 실력을 쌓고 마침내 승리합니다. 믿음 생활의 승패는 자기를 쳐서 복종하는 유무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 스포츠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끈질김의 레슨입니다. 운동에 승리하는 선수들은 끈질김의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운동을 하기 싫을 때에도 감정을 따르지 않고 운동의 목표를 따라 끈질기게 운동합니다. 무엇보다도 경기에 지고 그로 인해서 당장 어떤 실망스러운 결과가 있어도 끈질기게 목표를 향해서 운동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믿음 생활은 마치 장거리 경주와 같습니다. 계속해서 끈질김의 자세로 계속해서 땀을 흘리고 날마다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주변의 상황에 따라 흔들림의 유혹이 있지만 오로지 주님이 주신 목표를 향해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속해서 끈질긴 믿음의 사람이 결국은 승리합니다.
셋째, 스포츠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부지런함의 레슨입니다. 운동을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선수들을 보면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미국에 진출하였던 한국의 유명한 프로야구선수 추신수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남보다 1시간 먼저 운동장에 가서 연습하고 남보다 더 오래 운동장에 남아서 연습하였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테니스선수인 세르비아의 조쿄 비치라고 하는 남자 선수는 테니스의 참피언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개인 연습을 거르지 않고 합니다. 믿음 생활도 운동처럼 부지런하게 연습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내어서 매일 부지런하게 말씀과 기도의 연습할 때에 일상의 삶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일은 선교 주일로 지키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사실은 선교는 특별한 이벤트로 갖아야 할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의 삶이며 존재의 이유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구별해서 특별한 시간을 정한 것은 더욱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아직은 우리 교회는 미약한 형편이 있지만 더욱 선교의 영성을 통해서 점점 더 선교의 지경을 넓혀 풍성한 선교의 열매를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선교 주일을 맞이하면서 먼저 건강한 선교 영성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복음은 마음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삶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우리의 가정 가운데 선교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다음 세대인 자녀들은 우리의 최고의 선교의 대상입니다. 먼저 우리의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자녀들과 함께 선교마인드를 나누며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자녀들의 존재의 이유, 공부의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훈련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복음 안에서 실력을 키우고 세상에 당당히 나갈 수 있도록 우리는 투자하고 키워야 합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선교의 일꾼이 되도록 투자하고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음, 우리의 직장과 일터 가운데 선교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직장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전초 기지입니다. 우리의 일터는 복음을 갖고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매일 매일 치열한 복음의 전쟁터입니다. 선교의 영성이 있는 사람은 담대하고 지혜롭습니다. 그 결과 다양한 유형의 모든 사람들을 대적하여 싸우고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의 일터가 돈을 벌고 자기 성취감을 확인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장소가 되도록 선교의 영성으로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일터 가운데 더욱 복음이 보여지고 전해지고 경험되는 선교의 센터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선교의 영성은 복음을 필요로 하는 족속 모든 나라에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된 우리는 민족주의를 넘어서 모든 민족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는 주님의 마음을 갖아야 합니다. 물론 한인이민교회로 우리 교회는 먼저 같은 동족인 한국인들이 복음으로 정복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잘 세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명령대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모든 민족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과 시선을 갖아야 합니다. 더욱 복음의 빚진 자의 마음을 갖고 모든 민족을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의 선교가 우리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독립기념일은 우리 교회가 플러싱에서 사요셋으로 이사를 온지 5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교회 이름도 뉴욕침례교회에서 뉴욕마하나임선교교회로 개명을 하였습니다. ‘마하나임’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군대”란 뜻입니다. “마하나임선교교회”는 하나님의 군대로서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위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5년동안 새로운 지역인 사요셋에서 우리 교회는 사명을 향하여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지역에서 교회가 안정적으로 세팅될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먼저, 지난 5년동안 우리 교회가 가장 집중한 것은 더 깊은 질적인 영성을 위하여 내적으로 집중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감동있는 예배를 집중하고 기도에 집중하는 영성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였고 양육과 훈련을 통하여 주님의 제자를 세워가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반복되는 제자훈련을 통하여 인격적으로 주님을 더욱 체험하고 알아가는 제자들로 세워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지난 2년여의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시간에도 계속하여 양육과 훈련을 통하여 주님을 더욱 인격적으로 알고 닮아가는 시간을 통하여 은혜의 변화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둘째, 지난 5년동안 우리 교회는 어린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교육 선교에 집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플러싱에서 우리 교회는 교회학교의 어린아이의 모든 교육부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사요셋에서 영유아부,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대학부등 모든 교육부서를 세팅할 수 있었고 은혜롭게 세워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도 그동안 플러싱에서는 하지 못하였던 여름 캠프, 여름성경학교, 한국학교, 문화학교등의 시간을 통하여 교육선교에 더욱 매진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더욱 다음 세대의 교육선교를 위하여 집중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 지난 5년동안 우리 교회는 나눔과 선교에 도전하는 교회로서 집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요셋으로 무빙하여서 지역의 모든 다민족 주민들과 함께 하는 나눔의 시간을 위하여 해마다 교회가 갖았던 행사가 코리안푸드페스티발이었습니다. 아쉽게도 팬데믹 기간에는 행사를 열 수 없었지만 이 행사를 통하여 지역의 주민들과 소통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음식 뿐 아니라 다양한 한국 문화와 함께 이웃들과 소통하는 좋은 나눔을 위하여 시도할 것입니다. 또 우리 교회가 사요셋으로 이주하면서 선교적으로 확장하는 도전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해오던 중남미 선교, 아프리카 선교, 북한 선교, 신학교 선교를 넘어서 인디안 원주민 선교를 위하여 자체 단기선교를 다녀오고 새롭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지역으로 선교의 지경을 넓히면서 도전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흐르는 물처럼 계속하여 변화하고 도전하면서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균형있게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5년동안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수고한 모든 주님의 일꾼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세기적인 위기의 코로나시대를 2년여 경험하고 있습니다. 올해 6개월의 시간도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모든 것이 제한된 어려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더 빛나듯이 고통의 깊은 시간 속에서도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하나님의 깊은 섭리 속에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하나님의 언약의 시간 가운데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간 가운데서도 감사의 기회가 됩니다.
먼저, 코로나 시대는 더욱 위를 바라보는 시간이 됨을 감사드립니다. 사람들과 거리두기를 통해서 대면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하나님과는 거리두기가 제한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정황에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시대는 더욱 마음을 다해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다윗은 사방이 막힌 고난 가운데서도 위에 계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본 경험들이 시편을 통해서 고백하였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세상을 감찰하시되 특히 자기 백성들을 살펴보십니다. 코로나 시대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하나님에게 맡기며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경험하는 예배와 교제와 묵상의 시간들을 통해 영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됨을 감사드립니다.
둘째, 코로나 시대는 더욱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이 됨을 감사드립니다. 사람들과의 거리두기의 제한 속에서 거리두기의 제한이 없는 자연과 함께 더욱 교제하면서 자연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산과 나무와 강과 바다와 호수는 항상 그곳에 있으면서 누구든지 받아주고 만나주는 좋은 친구입니다. 매일 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매일 만나도 새롭습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당이 위치한 곳은 잔디와 나무와 꽃들로 꾸며진 환경이어서 너무 좋습니다. 비록 주일날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 때문에 교회당에 오지 못해 만나지 못하여도 항상 나무와 꽃들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소홀하던 자연의 모든 것들이 코로나 시대를 통해서 더 집중하여 만나고 소통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연을 통해서 마음을 더 넓히고 더 여유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됨을 감사합니다.
셋째, 코로나 시대는 더욱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됨을 감사드립니다. 일을 중심으로 바쁘고 분주한 일상적인 삶의 시간들이 코로나시대에는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서 일중심의 삶의 습관에서 탈출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몸을 움직여 일을 하던 삶에서 멈추어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깊은 내면의 문제를 살피게 되고 직면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나에게서 시작됩니다. 특히 상한 마음, 건강하지 못한 내면에서 결정됩니다. 대부분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인생을 지키지 못합니다. 마음도 쉼이 요구되고 마음 가운데 돌봄이 요구됩니다. 코로나시대에 마음을 돌아보고 새롭게 무장하고 점검하는 기회가 됨을 감사합니다.
2021년 상반기 6개월의 시간이 지나는 시점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팬데믹의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교회는 지난 6개월 동안 기도하고 고민하면서 교회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우선 매주 토요일마다 한국학교와 문화학교 사역을 했습니다. 최소 40여명의 교사와 학생들이 3개월동안 아무 사고없이 모든 과정을 잘 마쳤습니다. 장년을 중심으로 제자훈련 사역을 매주간 마다 2개반을 개설하고 함께 감당하였습니다. 성장반 7명과 사역반 4명으로 운영했던 이번 제자훈련은 팬데믹의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큰 불상사없이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제이교육관 공사를 진행하여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힘든 요인이 있었지만 순적하게 모든 공사가 예산 범위 안에서 순적하게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에게 올려드립니다.
첫째, 교회 사역은 먼저 복음 중심의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사역은 내가 무엇을 잘 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이어야 합니다. 세상 기준에서는 일을 잘 한다는 것이 실제적인 현장 기술과 능력을 기준으로 잘하고 못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일을 잘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역 속에서 먼저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실 때는 사역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의 가르침이 예수님이 드러나야 합니다. 나의 찬송이 예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얼마나 나의 사역 속에서 예수님이 드러나고 있는가?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사역이 곧 복음의 기회가 되기를 기뻐하십니다.
둘째, 교회 사역은 더 깊은 성화의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사역의 현장은 항상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 더 기도해야 하고 더 묵상해야 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보면서 나의 영성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보면서 더욱 하나님 앞에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역의 현장은 나의 영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역을 통해서 여전히 인내하지 못하는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사역의 열매가 내가 원했던 것보다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관성있게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나의 마음의 흔들림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장의 나의 모습을 직면하고 하나님 앞에 나를 직면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역을 통해서 더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는 적용이 있을 때에 우리의 영성은 더 도약할 수 있습니다
셋째, 교회 사역은 더 깊은 공동체의 관계를 경험하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나 중심으로 나의 신앙을 지켜가는 것은 덜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더 다양하고 까다로운 사람들을 대하게 됩니다. 필요가 다르고 수준도 다르고 성향도 너무 다릅니다. 그러나 다양한 필요의 사람들을 관계하면서 나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더 하나가 되는 경험이 됩니다. 결국 신앙은 나를 넘어 너와 그리고 우리를 경험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역을 하지 않으면 나의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사역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으로 깊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결국 기독교의 신앙은 공동체의 관계를 통해서 완성되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의 연장 선상입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선택이 아니라 주님이 감당하셨던 것은 사람들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사역은 교회가 해야 할 본질입니다. 그러나 교회 사역은 복음 중심으로 나를 더욱 성화 시키고 교회 공동체를 살리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간 미주남침례회 총회를 3일동안 참석하였습니다. 올해 미주한인남침례회 총회는 테네시 주 내쉬빌의 미국 침례교회를 빌려서 열렸습니다. 작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총회가 열리지 못하였고 올해도 대면 총회 개회에 대해서 분분한 이견이 있었지만 대면으로 열렸습니다. 다행히 올해 열린 대면 총회에는 200여명을 예상했는데 약 600여명이 참석하여서 은혜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한인 총회가 열렸던 내쉬빌에서는 미국남침례교단의 총회가 약 2만여명이 모여서 열렸습니다. 총회 둘째 날 오후에는 미국 남침례교단의 총회에 참석하여서 총회장 선거 투표에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총회에 참석하면서 느낀 것은 굉장히 생산적이고 건전한 모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3일간 진행되는 총회의 대부분의 시간은 세미나, 집회 그리고 교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다른 교단의 총회의 경우에는 반복되는 회의와 더불어 고성과 심지어는 욕설이 난무하는 모습들의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회의 분위기는 조용하면서도 은혜와 재충전의 수련회의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초청된 강사들은 열정적인 인도와 더불어 목회자와 사모 그리고 목회자 자녀들에게 필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잘 준비된 강의와 설교로 큰 은혜를 끼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회 기간 동안 진행되는 많은 은혜의 시간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시간은 둘째날 저녁의 국내 선교의 밤 그리고 셋째 날 저녁의 해외 선교의 밤이었습니다. 남침례회 총회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결국 교회 개척과 해외 선교였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많은 목회자들 중에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난 분도 있고 어려운 교회들이 문을 닫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가 개척되고 있었고 해외에 선교사들이 파송 되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총회에서 태국과 쿠바로 각각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파송 받는 선교사 가정 중에는 지역 교회를 조기 은퇴하고 해외 선교사로 파송 받는 열정을 통해서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총회 기간 동안 미국 전역에 흩어져 목회하는 다양한 목회자들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면서 교제를 통해 각각 다른 환경에서 어렵고 힘든 사역을 나누면서 위로와 힘을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교제 중에 만난 목사님 중에는 몰몬교의 성지로 알려진 미국 유타에서 목회를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오히려 몰몬교가 정통이고 기독교가 이상하게 취급을 받는 분위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묵묵히 복음과 함께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섬김과 사역을 통한 간증과 삶을 나누면서 도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미군들과 결혼한 노년의 한국 여성들만이 있는 작은 시골에서 겪는 목회의 어려움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감사한 것은 모두가 어렵고 힘들지만 목회자로서 긍지를 갖고 열정과 사명으로 섬기는 모습들이 아름다웠습니다.
총회 참석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건전하고 좋은 교단에 속한 것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육과 선교에 집중하면서 다음 세대와 더불어 다양한 민족들에게 복음 중심의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얼마전 교회에서 영화 ‘미나리’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70대의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으면서 더욱 유명해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감독은 1.5세 한국인 이민자로서 자서적인 자기 과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공의 꿈을 안고 미국의 시골로 이사를 온 영화 속의 부부와 두 아이의 삶은 고단하고 힘든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갈등하는 가정의 정점에서 할머니가 조인하게 됩니다. 영화 속의 할머니는 사위 농장의 물이 흐르는 작은 개울가에 미나리를 심습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미나리같이 영화 속의 주인공 가족도 많은 고난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영화 ‘미나리’는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소개됩니다. 영화 속의 할머니와 한방을 쓰는 어린 손자는 할머니를 향해서 천진난만하게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묻는 할머니에게 다른 미국의 할머니들은 영어도 잘하고 빵이나 파스타도 만들어주고 어린 손자에게 욕도 하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한국에서 온 할머니는 영어도 못하고 욕도 하고 어린 손자에게 화투를 가르쳐주기까지 합니다. 어린 손자의 눈에 한국에서 온 할머니는 미국의 할머니들보다도 수준이 떨어진다고 여기고 창피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점차 손자는 다른 문화의 할머니를 이해하고 할머니와 화투 놀이도 하고 한가족으로서 정체성을 함께 회복하게 됩니다.
‘미나리’ 영화는 한국의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 길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미나리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가장 한국적으로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미국에서 주도적으로 사는 것이 한국의 이민자로 승리하는 길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영화 속의 할머니와 미나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미국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한국말과 한국방식으로 한국의 식물을 미국땅에 심으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그 모습이 결국은 영화 속의 위기의 가정을 세우고 관계를 회복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민자로서 미국의 다양성과 좋은 점들을 배우기는 하되 결코 미국 문화가 더 높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말 한글은 아직 영어보다는 사용성이 떨어지지만 이제는 K pop을 통해서 전세계적으로 젊은이들에게 로망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민자로서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한국말인 한글은 반드시 한국인의 정체성과 함께 가르쳐야 할 필수 언어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음식 그리고 한국의 다양한 전통 문화를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잘 보급하고 가르치면서 한국인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바른 정체성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민자로서 한국인의 바른 정체성을 갖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경험하는 도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2년여의 고통의 팬데믹 시간에서 일상의 회복의 시간들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6월부터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는 대면으로 전환을 하고 주일 예배는 대면과 온라인을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학교는 온라인과 대면을 병행하면서 앞으로 상황을 보기로 했습니다. 일상의 회복의 시간 가운데 우리가 먼저 노력하고 집중해야 할 것은 온전히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하여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온라인 예배를 드렸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예배의 집중이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온라인 예배는 예배자로 참여하기보다는 마치 영화관의 관객처럼 예배의 구경꾼이 될 위험이 많습니다. 온라인 예배는 주변의 환경적인 요인들이 예배에 집중하기에 어렵기때문입니다. 그 결과 예배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하게 체험하기에 힘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예배를 반복하면서 건성과 형식적인 습관이 될 위험이 너무 많으며 결국 무미건조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일상의 회복 가운데 먼저 우리는 대면 예배를 통해서 예배의 자리를 회복하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먼저 시간을 구별하여 공예배를 드리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는 주일에 드리는 공예배의 시간을 구별하여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우선 주일에 공예배에 집중하기 위해서 예배 시간을 잘 지키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예배 시작하기 전 기도와 침묵 속에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는 온전히 예배에 집중하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배의 방해가 되는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온전히 예배자로서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 영광을 돌리는 예배 시간에 다른 어떤 것들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예배하는 시간동안에는 오직 예배자로서 예배에 집중하는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다음, 몸을 구별하여 공예배를 드리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주일에 예배자로서 참여할 때에 각개인은 온전히 그 몸을 통하여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찬양을 드릴 때에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는 기쁘게 즐겁게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때로 손뼉을 치면서 큰 소리로 화답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 눈을 정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몸이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하여 공예배 시간 동안 우리는 셀폰을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기가 있는 가정의 경우에는 부부가 각각 1부와 2부를 따로 드리면서 아기를 돌보아 주고 각 사람이 예배를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에 두 사람이 함께 아기와 같이 예배를 드린다면 집중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하고 예배에 참여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공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시간이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야 할 시간이지만 무엇보다도 예배의 시간은 구별되게 하나님만을 위하여 구별되게 거룩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 무엇도 우상이 되지 않도록 예배 시간에는 거룩한 공예배가 되도록 나를 쳐서 복종해야 합니다. 거룩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재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에 우리는 한주간 또 세상에서 새힘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기회를 맞아 먼저 공예배를 회복하는 우리 모두의 삶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은 영적으로 더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영적으로 발란스가 잘 갖추어진 업그레이드가 되는 일입니다. 우선 중요한 영적인 발란스는 관계의 발란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과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발란스가 잘 되어 업그레이드가 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의 총체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 삶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영적으로 발란스가 업그레이드가 되면 결국 이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선 자신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발란스가 요구됩니다. 우선 주안에서 자기 긍정과 부정의 발란스가 요구됩니다. 복음은 우리를 주안에서 의롭다 하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신분과 지위를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기를 요구합니다. 자기 긍정과 부정의 요구 앞에서 발란스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긍정과 부정의 관계에서 발란스를 맞추는 사람은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나는 주안에서 복되고 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의 정체성을 항상 갖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날마다 복음 안에서 옛사람의 자기를 부정하면서 살아야 할 아직 완전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대부분 자기 부정의 발란스가 망가진 채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긍정과 부정의 관계에서 여전히 나는 주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서 나를 세워가야 합니다.
다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발란스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통해서 십자가의 구원을 경험하고 공의의 하나님을 통해 거룩한 성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랑과 공의로서 발란스를 갖고 우리에게 역사하였습니다. 먼저 죄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통해서 값없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받음으로 죄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고 난 이후에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 앞에 더욱 성화의 삶을 요구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공의의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에 대해 발란스가 무너져 있습니다. 그 결과 죄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하고 거룩과 성화의 길에서 거룩한 훈련을 게을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사랑으로 닮고 행하는 공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발란스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됩니다. 우리의 이웃은 가까이해야 하는 존재이지만 조심해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형제와 자매로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인격적으로 마음을 다해서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은 조심하여 상처를 주고 받지 않기를 위하여 말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귀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 안다고 하는 이유로 인해서 조심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가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우리의 관계가 서로 윈윈하기 위해서는 서로 인격적으로 인정으로 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도 중요하지만 상대방도 중요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 지역교회가 역사를 더해가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교회 가운데 일꾼들의 수고입니다. 지역교회가 유형교회로 건강하게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눈에보이는 일꾼들의 수고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꾼들의 수고가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숨은 일꾼들의 몸의 헌신, 재정의 헌신, 시간의 헌신을 통해서 교회 역사가 세워져가는 것을 봅니다. 이런 분들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희생하며 헌신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바라보면서 헌신하는 이런 일꾼들이 더욱 많아질 때에 교회는 건강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우선 몸으로 헌신하는 숨은 일꾼들의 수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유형교회로서 한 지역교회가 건물을 갖고 모든 예배와 교육 사역을 하기 위하는 일꾼들의 수고를 알아주어야 요합니다. 항상 몸으로 참여하여 예배와 기도로 섬기는 교회의 귀한 일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예배를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상으로 준비하는 일꾼들의 수고를 인정해야 합니다. 차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픽업하는 운전의 수고도 칭찬해야 합니다. 공적 예배를 위해서 모든 공간들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수고를 보아야 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때마다 교회 정원의 꽃을 심는 수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당 주 변의 나무 가지를 일정하게 잘라주고 손질도 해주는 수고를 인정해야 합니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준비하여 섬기는 귀한 수고도 알아 주어야 합니다. 묵묵히 그 자리에서 수고하여 주는 일꾼들이 있기에 누군가는 누리는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한 지역교회가 유형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역을 위해서는 재정적인 헌신의 수고가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에도 이름없이 재정적으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분들의 수고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감사예배를 드린 교육관 공사를 할 때에도 무명으로 많은 물질을 헌신하신 무명의 일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 선교를 위해서 귀한 물질로 자원하여 헌신하는 귀한 일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성경에서 큰 물질로 헌신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여 주셨습니다.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헌신한 여인을 예수님은 기념하라고 하셨고 바울은 물질로 헌신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공개적으로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일들은 주님를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무명의 숨은 일꾼들의 헌신을 통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이 교회속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모든 능력은 결국 성령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을 앞세우고 생각하면 우리의 몸과 물질과 시간을 희생하는 것은 너무 도 아깝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은 인간의 계산을 이기고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사도 바울의 초인간적인 모든 사역의힘은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듯이 지금도 성령님의 능력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교회 가운데 숨은 필요를 채우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헌신하는 모든 일꾼들을 인정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더욱 다음 세대 가운데 선배들의 아름다운 헌신의 계보를 이어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