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는 한달에 한번 모이는 목회자 독서모임을 갖았습니다. 주로 40-50대 뉴욕의 목회자들과 더불어 한달에 한번 독서 모임을 한지가 2년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팀 켈러 목사의 책 ‘센터 처치’를 나누고 있습니다. 각각의 목사님이 책을 잃고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고 그 후에 개인적으로 소감 및 적용점들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더욱 자신들의 부족한 생각과 지혜를 돌아보고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참석하는 모든 목사님들도 좋아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교회 제자훈련 과정에도 독서 훈련이 있습니다. 올해 가을에 진행되는 제자반의 경우에는 3달동안 2권의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게 됩니다. 제자훈련 때마다 독서 훈련을 해보지만 이민 교회의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독서입니다. 특히 조금만 어려운 책의 경우에는 집중하여 다 읽어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왜냐하면 독서를 안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책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고 믿음과 삶의 좋은 전환점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독서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의 자세입니다. 과거에 내가 보았던 어떤 분은 독서무용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자기 자신에게 갇혀있는 사람들입니다. 독서를 거부하는 분들의 경우에는 자기 고집이 세고 변화를 거부하는 분들입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생각하는 것을 정답으로 여기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열린 마음의 분들은 호기심을 갖고 더 알고 더 배우는 자세로 독서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독서를 통하여 공유하게 됨으로 더 다양하고 풍성한 것들을 공유함으로 보는 시각이 더 넓고 더 풍성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들의 삶은 분주하고 바쁘게 살아갑니다. 좋은 책을 독서하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내면이 안정을 찾고 고민하는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특히 독서는 우리의 좋은 영적 멘토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삶의 위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나의 목회에서 엄청난 독서의 빚을 졌습니다.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책을 통해서 인생의 승리의 지혜, 목회의 승리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한권의 책으로 얻은 유익은 그 책값과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의 것들이었습니다.
지속적인 독서를 위해서는 부지런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만이 그 기회를 갖을 수 있습니다. 더욱 시간을 구별하여 자기 자신의 내면의 성숙을 구하는 자들만이 꾸준히 독서할 수 있습니다. 꾸준히 독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흘러가는 시간 가운데 주님을 따라 더욱 변화하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한 권의 깊은 독서는 한해의 가을을 보내면서 내면을 더욱 풍성하게 살찌우게 될 것입니다.
믿음 생활을 교회와 더불어 하면서 직분은 교회 공동체를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직분을 처음 받을 때에는 거룩한 부담감이 우선되기도 합니다. 27년전 목사직분을 받을 때에 너무 두렵고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목사 직분을 받을 당시에 전도사를 거쳐 강도사로서 한국의 면 소재지의 제법 규모가 있는 오래된 교회의 담임 교역자로 있었습니다. 그때에 조용히 장로님에게 “이번에 목사 안수를 받지 않고 다음 번에 하겠습니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은 웃으시면서 “우리도 목사님에게 축도를 받고 싶습니다” 하면서 목사 안수를 받으라고 재촉하셨습니다. 축도를 하기 위해서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 음성이 마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알고 무거운 마음으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나는 교회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이 부르셔서 은혜로 주신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직분은 하나님이 나를 충성되이 여겨서 나에게 그 직분을 맡기시고 하나님께 충성하라는 거룩한 부르심의 자리였습니다. 목사 안수 후 지금까지 목사의 직분은 나의 전부였고 나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데 너무나도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더욱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더욱 교회를 섬기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목사의 직분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영광의 기회인가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의 직분에 대해서 항상 소명감을 갖고 사역하였습니다. 많은 대적자들이 바울의 사도 직분에 대해서 위협하고 공격하였지만 바울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도로서 자신을 이해하고 그 부르심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도직분을 맡겨주셨을 뿐 아니라 바울에게 필요한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사도로서 사역하면서 놀라운 복음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바울에게 직분을 맡기시고 능력을 공급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10월 31일 주일에 교회의 안수집사 그리고 권사 직분자를 세우려고 합니다. 인선위원회에서 후보자를 추천하고 제직회를 통하여 검증을 하고 다함께 사무총회를 통하여 투표를 통하여 직분자를 정하고 일정한 기간 훈련을 통하여 직분자로 교회에서 세우게 됩니다. 우리는 직분자를 세울 때에 하나님의 관점으로 대상자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세워야 합니다. 최소한 직분자를 세우는 자격은 성경에서 정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규약에 따라야 합니다. 일정한 자격을 객관적으로 기본적으로 갖추었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함께 이일을 위하여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모든 과정과 결과가 순적하게 진행되기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간 화요일은 지방회 총회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올해 코로나 팬데믹 2년여동안 지방회장의 리더의 자리를 감당하던 것을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홀가분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2년동안 지방회의 리더의 자리에서 큰 사건이나 문제없이 잘 마칠 수 있는 것이 감사하였습니다. 특히 위기의 시간 가운데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서 무엇보다도 나 자신 스스로의 리더쉽을 더욱 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지방회의 리더의 자리 회장은 과거 지방회의 서기, 총무로 섬기던 때와는 무게감이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회장의 위치는 보조하는 입장보다는 리드를 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 속에서 지방회를 이끌어가는 일은 사실 적지 않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에 지방회장으로 있으면서 나의 리더쉽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선 리더의 자리에서 섬김을 통해서 서로의 관계를 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리더의 자리는 자기를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드러낼 것인가 선택의 기회입니다. 종종 리더들이 범하는 실수는 너무 일을 잘 하려고 하는 욕심을 갖고 리더의 자리에서 자기를 드러낼 위험이 많습니다. 특히 젊은 리더일수록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일 중심으로 가는 것입니다. 너무 일을 잘 하려고 하다 보면 결국 일 중심의 모임이 되다 보면 관계가 깨어질 수 있습니다. 지난 2년동안 리더의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하나가 되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 나누고 섬김을 훈련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리더의 자리에서 마음을 더욱 넓히는 훈련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항상 리더로서 섬김의 시간을 갖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이기적이고 어떤 분들은 너무 교만하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더욱 마음을 넓혀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도무지 어떤 분들은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기도 할 때에는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넓혀서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을 더욱 넓히는 좋은 훈련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힘들고 어려운 관계 속에서 더욱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새롭게 하는 훈련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리더의 자리에서 항상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서 공의롭고 바르게 분별력을 갖고 대처하는 훈련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문제 앞에서 자기 이익을 앞세우고 주관성을 앞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선한 양심 앞에서 리더는 성경대로 바르게 결정하면서 공의롭게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지방회장으로 섬기면서 공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결단하고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고뇌가 따랐지만 그러나 모임을 위해서는 바르게 분명하게 결정할 것들을 결정해야 하는 자리가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10월 마지막 주일에 우리 교회는 평신도 핵심 리더를 세우는 투표를 하려고 합니다. 리더는 태어나기도 하지만 사실은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부분이 더욱 크기도 합니다. 교회의 투표를 통해서 평신도 리더들이 잘 선택되어지고 잘 훈련되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소원합니다.
올해 여름 휴가 차 뉴햄프셔의 화이트 마운틴을 들렀다가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 하룻밤 묵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 맞은 편에 오래된 미국 교회당이 있었고 안내판에 교회 사인을 보니 미국 장로교 PCUSA 였습니다. 그리고 교회 모임을 안내하는 표지판 옆에는 무지개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동성애자를 환영하는 깃발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시내를 둘러보는 가운데 많은 교회당 마당에서 무지개 색 깃발이 펄럭이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퍼블릭 공원에서도 펄럭이고 그리고 박물관에서도 무지개를 그려 넣은 장식이 있었습니다. 어떤 도로에서는 길 위에 무지개 깃발을 그려 넣기도 하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너무도 마음이 무겁고 안타까왔습니다.
왜 우리는 한 성경을 바라보면서 너무나도 서로 다른 것을 넘어서 틀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예수님 당대의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구약을 보고 해석하는 것과 예수님이 구약을 보고 해석하는 것이 너무나도 틀렸습니다. 유대인들은 문자의 보이는 의미를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문자의 진정한 영적 의미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구약에 살인하지 말라는 것을 그냥 사람의 육체의 생명을 죽이지 않는 정도로 그 의미를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형제를 보고 미워하는 자가 이미 살인하는 것으로 해석하셨습니다. 서로 같은 문장을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는 예수님은 영으로 해석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다시 세울 수 있을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대와 상황을 넘어서 성경 문자, 내용까지도 정확 무오한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한 상황에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어도 그 진리의 말씀은 절대로 변할 수 없고 바꿀 수 없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성경의 하나님의 뜻은 진리이므로 바뀔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말씀이고 진리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함께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우선 목회자들은 성경에 근거한 설교가 회복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경에 근거한 묵상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함께 성경에 근거한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근거한 제자훈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근거한 우리의 일상의 삶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과거 청교도들의 일상의 삶은 성경으로 돌아간 성경을 적용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은 변할 수 없는 거룩한 법칙이었습니다. 결국 성경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나침반입니다.
사색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다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알아가는 공부와 훈련의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신앙 생활에서 교회 수련회는 항상 마음을 기쁘게 하는 감동의 추억이 됩니다. 깊은 산속의 수양관과 같은 시설을 빌려서 며칠간 머물면서 갖는 수련회는 교회의 축제의 시간이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성도들은 휴가를 내고 전 가족이 함께 휴가 겸 수련회를 참여하여서 지친 영육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함께 웃고 떠들면서 전 교인들이 갖는 며칠의 공동체의 시간을 통해서 개인적으로는 영성을 회복하고 교회 공동체적으로는 더욱 한가족으로서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민 교회를 목회하면서 여전히 수련회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한국의 경우처럼 온 가족이 함께 며칠간 시간을 내는 것은 어려운 실정을 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2년에 1회 보통 1박 2일의 전교인 수련회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의 영성을 회복하는 기회를 갖았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관계로 시간을 단축해서 주일 저녁 시간을 통해서 집중적인 수련회의 기간을 갖으려고 합니다.
수련회를 갖으면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소속감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점점 현대 교회는 개인주의 신앙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에게 연결된 다양한 지체들과 서로 연합한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넘어 공동체의 무리들과 서로 교제하고 하나되기를 주님은 기대하십니다. 수련회를 통하여 서로 연결된 다양한 지체들과 교제하고 돌아보면서 서로 하나되는 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심으로 우리는 서로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은혜를 맛보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이 부르신 주님의 사람들도 인정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수련회 시간을 통해서 소속된 공동체의 다른 지체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교제하는 기회를 통해서 공동체의 소속감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수련회는 체험의 영성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영성은 체험의 연습을 통해서 업그레이드 됩니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제한된 시간을 갖기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수련회의 경우에는 다양한 체험의 훈련을 가지므로 체험의 영성을 훈련하는 기회가 됩니다. 올해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찬양과 기도와 세미나와 교제를 통하여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자기 훈련의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간절함을 갖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찾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수련회의 모든 시간을 통해서 나를 더욱 주님과의 깊은 관계로 드리는 깊은 영성의 체험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수련회를 통해서 섬김의 리더쉽을 확인하는 기회가 됩니다. 리더쉽의 점검의 기회는 수련회와 같은 현장에서 다양한 상황의 필요를 통해서 점검할 수 있습니다. 수련회와 같은 공동체의 훈련의 시간은 주어지지만 다양한 섬김의 필요가 발생합니다. 이런 섬김의 필요가 발생할 때에 보면 묵묵히 그 필요를 섬김으로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동체 수련회를 통해서 전혀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섬김의 리더쉽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교제의 자리에 초대하여서 섬김으로 필요를 채웁니다. 수련회같은 같은 공동체 활동을 해보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민감하게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교회에 가장 필요한 일꾼은 섬김의 리더쉽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비록 올해는 짧은 교회 수련회이지만 즐거운 추억의 기회가 되는 소중한 의미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간 여름성경학교를 은혜 중에 잘 마쳤습니다. 성경학교 기간 동안 우려했던 태풍은 첫날 오전에만 영향을 미쳤지만 다행스럽게 잘 비켜가게 되고 나머지 4일간은 순적한 날씨였습니다. 이번 여름 성경 학교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기간 중에 대면으로 열렸던 터라 많은 우려와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여름성경학교를 하지 못하였던 터라 올해까지 또 그냥 쉴 수는 없었기에 위험의 부담을 안고 열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귀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참된 하나님의 일꾼들은 몇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참된 일꾼들은 믿음으로 일하기를 기뻐합니다. 믿음으로 일하는 일꾼들은 하나님의 뜻을 마음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믿는 자들은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합니다. 만일 내 뜻대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들은 세상의 기준과 자기의 생각을 먼저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믿음으로 사역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기준이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참된 일꾼들은 믿음으로 동역자를 배려하고 높이는 자세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은 경쟁의 자세를 버리고 팀웍을 이루어서 서로를 배려하고 높이는 자세로 사역해야 합니다. 항상 교회 속에서 경험하는 것은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이 틀린 것처럼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기대할 수 있기에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서로 팀웍을 이루는 과정 가운데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하면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에 직면하여 대화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하나님을 믿는 서로를 배려하고 높이면서 일하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참된 일꾼들은 맡은 일에 대해서 사명감을 갖고 사역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하나님 나라의 일은 큰 일 작은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귀하게 여깁니다.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모두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감을 갖는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고난이 있지만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명감을 갖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은 처음도 최선을 다하지만 마지막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은 항상 완전할 수 없음도 기억해야 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일꾼들은 모든 결과는 오직 하나님께서 맡기고 하나님의 상과 판단을 소망해야 합니다.
해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여름 행사인 여름성경학교가 이번 주간에 열립니다. 내일 월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매일 오전 9시에서 오후 2시까지 교회당을 중심으로 열립니다. 올해 여름성경학교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 가운데서 대면과 비대면의 선택 속에서 여름성경학교 스텝들의 의견을 모은 결과 대면으로 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면 모임의 위험 요인을 최소화하고 안전한 진행을 위하여 최선의 준비를 하고 열리게 되었습니다. 전체인원은 5개 조를 나누어서 각 장소마다 최소의 인원을 배치하도록 하여서 접촉을 줄여서 안전하게 진행할 것입니다.
여름성경학교가 안전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적극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항상 교회의 중요하고 큰 사역이 이루어지는 곳에 사탄이 역사합니다. 여름성경학교가 이루어지는 기간 동안 안전 사고가 없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적극적인 도우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또 이런 행사를 하다보면 의의로 사소한 것 때문에 다툼과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으로 충분히 무장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할 것은 이런 행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전도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여름성경학교 행사를 위해서 우리는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미 봄부터 스케쥴을 준비해야 하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연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정적인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많은 인원들이 교육과 봉사로 참여하여 수고해야 합니다. 많은 댓가를 지불하면서 이 행사를 하는 이유는 다음세대를 키우는 매우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기도할 뿐 아니라 함께 관심을 갖고 함께 격려와 지원하면서 대가를 지불하면서 섬겨야 할 것입니다.
여름성경학교를 통해서 지역을 섬기는 선교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여름성경학교에는 우리 교회 뿐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이 참여합니다. 이미 그들 중에는 타교회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교회를 제대로 출석하지 않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기회를 통하여 그들 가운데 복음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한번 기억되고 경험되는 선교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 교회의 좋은 추억은 평생에 교회를 향한 좋은 이미지의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멀리 나가서 선교하는 일 이상으로 여름성경학교는 선교를 위한 좋은 도전이 될 것입니다. 올해도 여름성경학교를 통해서 선교의 귀한 은혜를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간 우리 교회에서 지방회 일일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매년 하던 목회자 수양회를 생략하고 대신에 일일수련회를 한 것이었습니다. 일일수련회를 맞이하여 코로나시대의 교회 회복을 위하여 교회와 예배 그리고 교회와 교육의 주제를 갖고 세미나를 갖았습니다. 그중에 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교육”이란 주제로 발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발제의 핵심은 교회 교육의 다양성과 균형의 필요성이었습니다. 교회 교육은 개인, 소그룹 그리고 대그룹의 다양성과 균형이 잘 이루어질 때에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추구하고 있는 교회 교육의 내용과 방향가 일치하는 것입니다. 삼겹줄이 끓어지지 않는 것처럼 교회는 개인 소그룹 대그룹의 삼겹줄로 무장될 때에 건강할 수 있습니다.
우선 교회는 성도 개인 한사람이 양육과 훈련을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하여 시간을 들이고 몸을 쳐서 주님의 뜻대로 양육과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각 사람이 주님 안에서 온전한 신앙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한번의 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는 훈련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치 작은 씨가 농부의 반복되는 수고와 그리고 반복되는 햇빛과 비를 통하여 잘 보살핌을 받을 때에 싹을 내고 마침내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를 위해서 본인의 열린 마음을 통한 양육과 훈련의 복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잘 돌보고 세우는 농부의 마음을 갖은 목회자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지는 변화가 나타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교회는 소그룹이 잘 세워져야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건강한 목장 모임이 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인격적인 만남의 교제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영적인 한 가족의 모임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삶 가운데 내가 경험하는 희노애락을 서로 솔직하게 나누고 베풀고 섬김으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서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세상의 불신자를 향해서 전도와 선교의 비전을 갖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목장 모임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목자의 아버지의 마음을 갖은 영적 리더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목원들이 서로 겸손함가운데 나를 내려놓고 참여하는 헌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목장을 통해서 영적 한가족공동체로서의 진정한 기쁨의 교제 가 경험되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교회는 대그룹의 공동체가 잘 세워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대그룹의 감동있는 예배가 드려져야 합니다. 감동있는 공동체 예배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예배를 준비하는 사역자들의 최선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설교자, 기도자, 찬양팀, 방송팀, 행정팀의 최선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예배를 위하여 준비하는 중보기도가 필요하고 모든 예배자들의 준비와 정성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1시간의 공예배를 위해서 최소한 수십시간의 정성이 들어가고 준비가 될 때에 예배의 감동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그룹의 영성을 위하여 다같이 찬양과 기도 그리고 선교와 전도와 각종 공동체 훈련들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교회의 성도들은 공동체적으로 함께 참여하는 교회의 양육과 훈련을 통하여 공동체성을 잘 훈련해야 합니다. 공동체 교회를 통하여 우리 교회가 더욱 건강한 영성으로 회복되고 세워지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며칠간 사역을 좀 내려놓고 쉼의 시간을 갖곤 합니다. 사역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있지만 쉼을 통해서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 사역을 수십년 해오면서 느끼는 것은 잘 쉬는 사람이 사역도 잘 할 수 있음을 경험합니다. 사역의 경험이 없던 젊은 목회 시절에는 열정이 오버해서 쉼을 갖지 않고 쉼을 사치로 여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역이 계속되면서 쉼은 사역의 연장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쉼을 통해서 사역의 기쁨을 더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쉼과 함께 더욱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쉼의 시간은 자연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쉼의 시간에 산을 찾고 계곡을 찾아서 며칠간 머무르면 큰 힘을 얻곤 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국의 추억은 여름 휴가를 맞이하여 깊은 산의 계곡으로 텐트를 갖고 야영을 갖았던 적이 있습니다. 텐트에서 잠을 자고 물을 보고 산을 보면서 사역을 잊고 그냥 쉬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춤의 시간을 갖으면서 일상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갖으면서 내 자신이 새롭게 정화되는 기회가 되곤 했습니다. 미국에 와서도 해마다 여름 휴가의 시간을 내어서 찾는 곳이 산과 계곡과 호수와 같은 자연입니다. 자연을 통해 주시는 깨달음과 은혜를 통해서 힐링이 되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산을 통해서 부족한 나의 마음과 자세를 더욱 견고하게 새롭게 하는 기회로 삼게 될 것입니다.
쉼의 시간을 갖으면서 육체를 잘 돌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선 잘 먹고 잘 보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경우에 교회 안의 잘못된 신학은 우리의 몸의 육체를 부정한 것으로 오해합니다. 영혼만 소중하고 육체를 더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때부터 전해오는 이단 사상인 영지주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을 잘 돌볼 때에 우리의 마음도 삶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삶에 항상 바쁘고 지쳐서 살다 보면 가장 먼저 육체가 피곤하고 지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에 좀 쉬면서 적절하게 먹고 잠을 취하면서 육체를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점점 인생의 후반기로 가면서 느끼는 것은 몸이 마음처럼 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쉽게 지치고 피곤하여지는 우리의 육체도 쉼을 통해서 더욱 새롭게 힐링되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쉼의 시간을 통해서 나의 일상의 삶을 재정비하는 피드백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사역을 하면서 항상 목회자로서 사역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경우에 내 자신을 스스로 잘 못볼 수 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쉼을 통해서 자신과 사역을 돌아보는 피드백의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내 안에는 숨은 욕심이 호시탐탐 나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은 불완전하고 우리의 믿음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쉼을 통해서 자꾸 나를 재정비하면서 자신을 재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쉼을 통하여 조용한 직면의 시간을 갖게 되면 인생의 좋은 재무장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한자어 중에 과유불급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지나친 것은 오히려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중국의 공자가 두명의 제자에 대하여 평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지나친 면이 있고 한 사람은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나친 사람이 더 우수한 제자입니까?” 그러자 공자가 말했습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라고 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적당히 할 수 있는 절제입니다. 이것은 신앙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절제의 습관이 잘 길들여진 경우에 우리의 삶은 안정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본능을 잘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본능적으로 더 먹는 것, 더 자는 것, 더 노는 것대로 살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적당히 자고 먹고 놀 수 있는 절제의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특히 요즘 현대인들은 먹는 것에 대하여 과도하게 본능에 충실합니다.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면서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한국 TV에서는 먹방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문제는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면서 살려고 할 때에 더 먹는 것에 욕심을 갖게 됩니다. 그 결과 더 살이 찌고 성인병에 걸리는 확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적당히 절제하면서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배가 부르도록 먹기보다는 조금 덜 먹을 때에 음식의 기쁨을 누리고 건강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은 자는 것도 노는 것도 적당한 수준에서 절제할 수 있는 삶이 될 때에 우리의 삶은 건강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잘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날씨와 같습니다.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감정이 요동칠 때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분노의 감정, 우울한 감정, 슬픈 감정이 일어날 때에 그 감정의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부정적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감정을 잊기 위하여 술을 마시고 쇼핑을 하고 음식을 먹기도 합니다. 감정과 생각은 친구입니다. 감정이 아플 때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을 다스림으로 그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스스로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는 낙심이 되고 우울하고 부정적이 되는 경우에 필요한 친구는 생각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의 감정은 마치 잔잔한 호수와 같습니다. 평안은 감정은 결국 말과 행동가운데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과 관계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친 교제는 사람의존증을 갖게 하여서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없게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힘이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결과 끓임없이 전화하고 만나고 교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집착이 되어서 결국 교제의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사람들을 만나 교제할 때도 있지만 적당히 만나고 헤어지는 습관을 절제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을 너무 기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자신과의 관계를 귀하게 여기면서 주도적인 혼자의 삶을 연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혼자 지내는 삶이 자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공부하고 청소하고 밥을 먹고 생활하는 것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를 갖을 때에도 안정감 있게 잘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