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에 왔을 때에 이해심이 많이 부족했었습니다.무엇보다도 은행의 크레딧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팁을 주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거리에서 운전을 하면서 스탑 사인에서 멈추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서비스를 요청하면 너무 시간이 걸리는 것도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너무 비싼 렌트비를 내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평생을 집 모게지를 갚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생활에서 처음 좀 부족한 이해심 때문에 미국의 삶이 편안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해심이 부족할 때에 불편함으로 인하여 분노심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내마음대로 모든 것이 안되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향한 비난과 분노심 생긴 것입니다. 마치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불편한 소외감을 분풀이하듯이 스스로 마음에서 떨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적절한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모든 것들을 마음 가운데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하다고 느끼던 모든 것들을 그 입장에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해심이 늘어가면서 모든 것을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들보다 훨씬 더 다양합니다. 우선 문화적인 다양성이 큽니다. 한국의 문화 미국의 문화 그리고 두나라가 믹스된 문화등이 다양합니다. 또한 공유된 한국의 문화도 이민자의 흘러간 햇수만큼 또 서로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한국이민자들은 독특한 다양성으로 인해서 더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이한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에서는 문제가 안될 것들이 미국의 한인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뉴욕같이 기다림이 없는 도시에서는 조금이라도 다양성이 자신에게 불편한 경우에 바로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양성은 더 풍성한 이해심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내 마음도 넓어지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하는 기회만큼 내 삶의 지경은 더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 가운데 성도로서 다른 다양성의 사람들을 만날 때에 조금 더 이해심을 갖고 교제하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이해하면서 더 주님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상대방의 다양한 점들을 이해하면 더 다양한 주님을 새롭게 배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해심을 갖으면 오해가 풀리고 좋은 교제의 만남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기회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성이 이해심으로 잘 극복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은 우리 교회가 6년 전에 사요셋으로 이사한 날입니다. 6년 전에 모든 교회 짐을 이삿짐 센터의 차와 교회 밴에 싣고 이사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사하던 그날도 무척 더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에 이삿짐을 맞이하던 지금의 교회당은 좀 을씨년스러운 날씨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본당은 침침하고 냄새가 났고 식당 지하실은 곰팡이와 썩은 냄새가 진동하였습니다. 사실 처음 교회당의 내적 외적인 환경은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설픈 환경 가운데 시작하던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고 6살 유치원생같은 교회로 이제 이 지역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오직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갔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냥 하나님만 믿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사요셋으로 오직 믿음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실 때에 인간의 모든 생각과 노력을 헛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은혜와 믿음으로 일하시게 하심으로써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교회를 주님이 새롭게 세우시고 일하시는 기회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사람 중심이 되고 전통에 매이고 제도에 매이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보통 교회들이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 이렇게 헛된 세상 것들이 우선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동적인 성령님의 생명력을 제한하고 도전을 멈추게 됩니다. 새로운 지역으로 우리 교회가 이사하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이 일하시는 믿음의 도전의 기회가 되게 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지역에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꿈꾸게 하시고 비전을 갖고 도전하게 하는 경험을 지난 6년동안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흘러가는 물처럼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서 도전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만일에 교회가 뒤만 바라 보고 과거에 매이게 되거나 현재에 안주하여 변화를 거부하게 되면 결국 고인물처럼 부패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6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미 흘러간 이곳에서의 6년도 뒤의 것이 되었습니다. 오직 우리 교회는 뒤의 것을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더욱 교회공동체적으로 예수님을 더욱 나타내는 주님의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목회의 시간 가운데 수십번 정도의 베스트 초대일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고향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을 해서 베스트 초대일을 처음 시작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항상 그 한주간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갖고 전도 대상자들을 교회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로서 첫 번째 베스트 초대일을 기도하고 시작하면서 마음 가운데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놀라웁게도 하나님께서 예비한 사람들을 기대 이상으로 많이 보내주었습니다. 당시에 고향교회에서 어설픈 30대 중반의 어린 초보 목사였던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몸소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너무도 감사한 것은 고향의 교회 선배들이 열심히 발로 뛰어주어서 친구들을 여기 저기서 다 불러 교회로 온 것입니다. 처음 교회를 나온 그들 중의 몇몇은 결국 교회에 결국 정착하여 교회의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 오기 전의 나의 목회지 교회에서는 너무도 다양하고 풍성한 전도의 경험과 함께 베스트초대일의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전도를 위해서 봄, 가을로 매주 토요일이면 음료수와 간단하나 선물용 떡과 전도지를 준비한 전도팀이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거리에서 찬양을 하고 전도지와 음료 그리고 떡을 나누어주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사람들과 차가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 1시간 정도 찬양하면서 전도를 하면 아주 좋은 반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적으로 출출한 오후 시간에 음료수와 떡을 나누어 주고 또 젊은 청년들이 찬양하면서 전도하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전도하고 베스트초대일에 초대하면 그때에 전도지와 초대장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 약속한 대로 참석하는 다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교회를 왔던 사람들 중에는 결국 교회에 정착하여서 귀한 일꾼으로 세워지는 기쁨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뉴욕에서 이민 교회를 섬기면서 무엇보다도 힘든 것이 전도인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플러싱에 있을 때에 베스트 초대일을 매년 거의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와 달리 뉴욕은 이미 교회를 한번 이상 다녀 본 분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플러싱에 교회가 있을 때에는 교회에 처음 나오는 분들이 교회에 정착하는 경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주거지가 불안정하여 옮기는 경우가 많고 직장이 불안정하여 옮기는 경우가 많아서 교회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학생들의 경우에는 더 변수가 많아서 교회 정착이 어려웠습니다. 플러싱에서는 교회에 초대를 받아서 오지만 결국 안정되지 못한 삶으로 인해서 교회 정착이 어려운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안타까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롱아일랜드에서 어느새 6년의 목회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지난 2년동안의 코로나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베스트초대일을 갖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하나님은 항상 예비된 사람들을 보내어주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귀한 일꾼으로 사역하는 분들 중에는 그렇게 우리 교회와 함께 하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교회의 주인되신 주님께서는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숫자가 적든지 많든지 중요한 것은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귀한 일을 지금도 하십니다. 이번 베스트초대일을 통해서 주님이 예비하신 영혼의 만남을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기대합니다.
지난 6개월의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느낌입니다. 특히 2022년 상반기에는 세기에 겪을 법한 중요한 사건 사고가 여럿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국제 사회를 너무도 위험하고 힘든 시기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높아진 물가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외적으로 가중되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삶의 질은 떨어지고 사람들의 멘탈은 점점 망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기 가운데 교회 사역도 집중하기 어려운 시기였지만 하나님 은혜로 모든 사역들을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지난 상반기 가운데 예배 및 기도 사역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주일 대면 예배 및 주중 대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점점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의 몇몇 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온라인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힘든 시기에 대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의 은혜와 경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면서 은혜를 회복하는 모습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가운데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분들이 교회의 공예배 및 기도회의 시간들을 통하여 은혜를 회복하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다음, 지난 상반기 기간에도 여전히 교육과 훈련 사역의 헌신을 함께 감당했습니다. 올해 6개월 동안 시간 가운데 교회의 다음 세대들이 더 든든히 세워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팀웍을 이룬 중고등부 부서의 경우에 내적으로 외적으로 잘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초등부와 영유아부의 경우에도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사역을 잘 감당하게 됨을 감사합니다. 청장년의 경우에 여전히 제자훈련을 중심으로 목장 모임을 통하여 교육과 교제를 중심으로 은혜의 회복을 잘 갖게 됨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경우에 우리 교회 등록을 하고 3년 이내에 계신 분들이 상당 수 있어서 충분한 나눔의 관계를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앞으로 더욱 다른 다양성에 대해서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며 상호 공감의 시간을 더 갖아야 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 상반기 시간에 한국아카데미를 통하여 한국학교와 문화학교를 통한 교육 선교의 기회를 갖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상황에서 위험을 딛고 대면으로 3달간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올해로서 한국학교와 문화 학교는 벌써 5년여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이제 기본적인 기초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초를 놓기까지 시간과 물질과 몸으로 귀한 헌신을 한 평신도 일꾼들의 수고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제는 더욱 선교적인 사명감을 갖고 지역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질적으로 더 업그레이드하는 기회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제 바로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에는 나바호 원주민 선교가 시작되고 8월에는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됩니다. 우리 교회와 같이 작은 교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선교와 교육에 함께 기도로 동참하는 헌신이 요구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선교가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경학교가 되기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6개월 동안의 모든 교회 사역을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얼마 전에 마친 프랑스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올해 36세의 라파엘 나달 선수가 결국 우승했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이번 대회 우승 예상에서 나달 선수는 좀 비껴갔습니다. 왜냐하면 발 부상도 있고 노장의 체력이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테니스 메이저대회는 다른 투어 대회와 달리 5세트를 해야 함으로 엄청난 체력 소모전을 갖아야 합니다. 이번에 나달 선수는 8강에서 현재 남자 테니스 선수 1위인 조코비치와 경기에서 무려 4시간 정도의 체력을 소모하고 결국 이기고 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나달 선수는 모든 우려를 딛고 우승하였습니다. 그의 우승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의 체력적인 약점과 발 부상의 약점을 잘 극복하는 전략을 갖고 경기를 잘 컨트롤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모든 경기를 보면 실수 때문에 승리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수의 가장 큰 이유는 컨트롤보다는 모든 것을 너무 승리를 위해서 무리수를 두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나달이 결승에서 만난 상대 선수는 노르웨이의 24세의 젊은 선수였습니다. 발도 빠르고 에러가 없는 유능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백전 노장 나달과 결승을 하면서 그는 결국 무리한 공격으로 많은 에러를 하면서 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컨트롤을 하면서 시간을 끌면서 오히려 자신이 더 유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도 지고 만 것입니다.
나의 경우에도 20여년을 매주 테니스 운동을 하면서 가장 겪는 어려움은 컨트롤입니다. 특히 가장 볼이 컨트롤이 안되는 날은 마음의 생각이 많은 날입니다. 그 결과 마음이 집중이 안되어서 볼이 잘 컨트롤이 안됩니다. 무엇보다도 몸도 컨트롤이 안되면 순간 타이밍을 잃어버리고 결국 운동이 엉망진창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컨트롤이 잘 되는 때는 몸도 마음도 안정이 될 때에 컨트롤이 잘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특히 테니스와 같은 예민한 운동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볼에 전달이 됩니다. 그래서 나달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면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을 잘 컨트롤하는 일에 우선 승리합니다.
우리의 삶은 예측 불허의 운동경기같은 면들이 있습니다. 인생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인생 경기를 하다 보면 컨트롤이 안되어서 후회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실수를 줄이고 인생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삶의 능력은 나의 힘과 능력으로는 어렵습니다. 오직 인생 경기장에서 모든 삶을 통제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성령님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을 때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우리의 인생을 적절하게 컨트롤하셔서 능히 이기도록 일하십니다. 그 성령님의 컨트롤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매사에 성령님께 나를 내어주는 자기 복종의 사람입니다. 매일 매일 인생 경기장에서 나를 복종하여 모든 삶 가운데 컨트롤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한 해의 반환점 6월입니다. 한 해 반환점에 설 때에 두 마음이 일어납니다. 지난 6개월 동안의 삶을 살면서 아쉬운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고 남은 6개월의 삶을 기대하는 마음도 일어납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잘 살고 싶은 기대감이 큽니다. 그러나 기대감이 클수록 아쉬움은 더 커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같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지난 6개월 동안 잘 버티고 살아온 것을 보면 우리 자신을 향해서 “잘 했어” 라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서 또 한편으로 남은 한해의 시간들을 위해서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 질문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너무도 쉬운 질문입니다. 이미 성경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을 다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나이지만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셨던 예수님은 반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리시고 생각하면서 사셨습니다. 특히 성경의 바울은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반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소개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반복하는 삶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반복해서 질문하는 것은 나의 삶을 다시 확인하고 지켜가기 위함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에게 물으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 생각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둘째, 왜 내가 사는가?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 질문은 나의 삶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점점 시간이 흐르고 죽음은 우리 앞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나름대로 우리는 충분히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궁극적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왜 사는가? 이유를 발견한 사람이라면 하루를 살아도 그 이유를 위하여 의미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이유가 없는 사람은 살아갈수록 허무함으로 인해서 마음이 힘들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은 시간 동안 하나님이 주신 삶의 이유에 대한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삶이 의미가 있고 행복할 것입니다.
셋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삶의 지혜를 고민하는 질문입니다. 누구든지 삶을 사는 나름의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가장 잘 사는 인생의 길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적인 삶의 기준에서 돈을 잘 버는 인생, 명예와 권세를 얻는 인생을 살기 위한 사람의 지혜의 답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결국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인생이라면 하나님의 기준에서 인생을 잘 사는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인생의 중년기를 지나고 인생 후반전을 살 때에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있으면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질문에 오직 바르게 답을 할 수 있는 분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인도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주신 답을 알고 살아가는 후회 없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한국의 축구선수 손흥민의 인기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축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프로 리그에서 23골을 기록하여 올해의 최고 점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이것은 아시안 선수로는 최초의 수상이라고 합니다. 특히 그의 수상은 페널틱 킥이 없는 그라운드에서 순전히 넣은 골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오른발과 왼발을 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그가 기록한 골은 양 발에 의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특히 그가 기록한 23번째 골은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성공률이 낮은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발로 감아서 떨어지게 하는 골을 기록한 것입니다.
모든 축구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손흥민의 성공은 기본기가 잘 훈련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손흥민은 어린시절 그의 아버지로부터 축구 개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손흥민의 아버지는 그에게 기본기를 반복하여 충분히 훈련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은 체력의 기본기를 충분히 훈련하였고 어떤 기술은 그것을 매일 반복하여 훈련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의 손흥민은 피나는 훈련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어린 손흥민 선수에게 기본기 훈련에 집중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아픈 기억 때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축구 선수였지만 결국 부상을 당해서 일찍 선수의 꿈을 접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축구 선수의 길을 가는 어린 아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고 성공하는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 먼저 기본기를 충분히 훈련하는 것이 곧 성공의 길이라고 보고 그렇게 적용을 한 것입니다.
기본기의 중요성은 운동뿐 아니라 공부도 신앙도 똑같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가 먼저 잘 훈련되어야 합니다. 특히 어린시절부터 신앙의 기본기를 잘 훈련할수록 결국 신앙 생활을 잘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나이가 들어서 신앙 생활을 할 때에도 신앙의 기본을 잘 훈련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의 신앙은 그 기본기가 잘 훈련되면 승리의 능력이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말씀을 온전히 믿음으로 놀라운 영적 능력을 내 몸을 통해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기본기를 다시 점검하고 다시 무장하고 훈련하면서 나를 세워가는 삶을 통해서 인생에서 주님이 주시는 승리를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부로서 유명했던 어거스틴은 유명한 책 ‘고백록’에서 어머니에 대한 고백을 합니다. 어거스틴은 젊은 날 오랜 기간 심한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타락한 아들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였고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인도하였습니다. 결국 어거스틴은 타락에서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기독교의 유명한 교부가 됩니다. 어거스틴은 인생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의 교사였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가정에서 최대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부모야 말로 최고의 영향을 미치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어린시절부터 잘 도울 수 있도록 잘 준비된 부모는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은 먼저 자녀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는 영적 멘토가 되어야합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영적인 부분들이 필요를 채우고 훈련받는 것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미치는 부분입니다. 특히 어린시절 죄의 의지가 자라기 이전에 믿음의 의지가 자라도록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선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는 어린시절 조기교육을 강조해서 어린 시절 언어교육 악기교육 체육교육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려서 배운 것이 평생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정에서 어린 시절 영적인 필요들이 잘 채울 수 있는 영성 있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기질과 개성을 잘 살펴서 인정하고 돕는 카운슬러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각각 다르고 독특하게 태어났습니다. 가정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기질대로 아이들을 양육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적극적인 아이들은 자기를 잘 표현합니다. 그러나 소극적인 아이들은 자기를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보통 외성적인 성격의 아이들은 처음에 시작은 잘 하지만 마무리가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하는 것을 잘 훈련해야 합니다. 내성적인 소극적인 아이들은 처음에 시작하고 도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도전하고 시작할 수 있도록 부모들이 용기를 주고 잘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이들에게 주신 저마다의 고유한 능력을 잘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카운슬러로 잘 도와주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들은 바르고 매너있는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 자녀가 되도록 돕는 인생 코치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자세는 어린 시절에 배운대로 대부분 결정됩니다. 예의있고 질서있는 아이들이 되도록 가정의 부모들이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의 이유를 알게 해주고 그렇게 적용하도록 반복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종종 공공의 장소에서 예의를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행동은 사실은 그 부모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가정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훈련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옷을 입는 법, 밥을 먹는 법, 말하는 법, 대화하는 법, 함께 노는 법부터 시작하여 양보하는 법, 사과하는 법, 청소하는 법, 약자를 돕는 법들을 부모는 아이들에게 잘 코칭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마다 좋은 멘토, 좋은 카운슬러 좋은 코치의 부모로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부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로써 48주년의 역사를 맞이하게 되고 해마다 5월 셋째 주일은 창립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사람으로 치면 48세의 나이는 왕성한 중년의 나이로서 삶의 무게가 이제는 성숙하게 묻어나오는 나이입니다. 뉴욕의 많은 한인 이민 교회 가운데에 우리 교회는 오래된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뉴욕과 뉴저지의 침례 교회 가운데에는 제일 오래된 역사의 교회입니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버티면서 역사를 이어가고 교회로서 귀한 목적을 감당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무엇보다도 점점 시간이 더해질수록 여러 가지 위기를 잘 이기고 생존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조심하면서 집중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위에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공예배의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항상 예배를 사모하고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공예배의 은혜는 내가 준비된 만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주일 예배뿐 아니라 주중에 드려지는 모든 공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먼저 몸을 잘 구별해야 드려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시간을 잘 구별하여 헌신하여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형식보다도 영과 진리의 예배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만일 예배가 형식이 되고 그 결과 감동과 은혜가 없으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되고 맙니다. 더욱 우리 교회가 예배의 감동이 있는 교회로 세워져서 진정한 예배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 주님을 닮은 제자로 세워지는 교육,양육,훈련이 살아야 합니다. 세상 나라의 경우에도 비전있는 나라가 되려면 교육이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경우에도 비전이 있고 미래가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제자로 양육되고 훈련되어야 합니다. 양육과 훈련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결단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세워져가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 아래에 자기를 두는 훈련을 인격적으로 경험할 때에 변화가 가능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지정의가 새롭게 변화되어 장성한 분량이 되어지는 곳에 주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더욱 우리 교회가 양육과 훈련을 통한 제자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을 증거하는 나눔과 선교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인 복음과 그리고 사랑을 우리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복음과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더욱 우리는 받은 사랑으로 구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받은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공동체적으로 지역 가운데 사랑과 복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멀리 있는 민족에게도 가서 섬겨야 합니다. 더욱 선교의 지경이 더 풍성하게 확장되기를 기대하고 도전할 것입니다. 앞으로 바람은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필요로 하는 나라와 장소에 교회가 세워지고 학교가 세워지는 섬김도 생각합니다. 점점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선교 공동체로 세워져가기를 소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사명을 온전하게 잘 감당하면서 앞으로 더욱 건강하게 잘 세워져가기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세워가기를 소원합니다
유명한 시인 윌리암 워어즈 워드는 “모든 아이는 어른들의 아버지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누구도 어린시절의 영향력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도 어린 시절 가운데 영향력의 지배를 받곤 합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시적이든 어린 시절의 영향력이 어른의 삶에 깊은 영향력을 미치곤 합니다. 유년기를 지배했던 나의 형상이 어떤 경우에는 평생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이런 영향력을 심리학자들은 “성인 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성인 아이의 삶을 사는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어른으로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성인 아이의 치유가 절대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린 시절 좋은 영향력도 받았고 좋지 않은 영향력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좋은 영향은 괜찮지만 좋지 않은 부정적인 영향력으로 인해서 성인이 되었어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성인 아이의 모습을 갖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 가운데에 대표적인 모습은 “마마보이” “파파보이”같은 행동입니다. 성인아이같은 어른들의 특징을 보면 어린 시절 과보호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자란 경우입니다. 그결과 주도적인 인생을 살지 못하고 항상 부모의존적인 보호의 삶의 습관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항상 의존적이고 우유부단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인 아이의 모습은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성취지향적인 어린아이” “분노하는 어린아이” “의존적인 어린아이” “ 절제하지 못하는 어린아이” “고독한 어린아이”등의 유형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미숙한 성인 아이의 삶은 결국 가정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인 아이는 내면의 분노와 원망으로 인해서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상대방을 비난하고 원망합니다. 그 결과 항상 남을 탓하고 부정적인 관계를 갖습니다. 성인 아이의 어른들의 가장 문제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온전하게 양육할 수 없습니다. 치유되지 못한 부모에 대한 상처에 대한 분노는 결국 자녀들에게 투사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비난하던 부모의 모습이 자기에게서 그대로 재현되어서 아이들에게 전이될 수 있습니다. 가정 가운데 부모들의 내면이 건강할 때에 아이들의 내면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처 있는 나의 모습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내 상처가운데 부모의 영향이 분명히 있지만 부모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책임이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라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내가 믿음으로 인정하고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비록 연약한 부모로 인해서 상처받았지만 원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용서와 회복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의 은혜는 우리의 과거와 화해하고 새로운 나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성인 아이의 회복의 길은 오직 십자가 안에서 용서와 사랑의 은혜를 맛보아 아는 것입니다. 성안 아이의 치유를 통해서 가정 가운데 행복이 회복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