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은 지방회의 수양회 참가와 개인적인 쉼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뉴욕에서 가까운 포코노의 미국 수양관을 빌려서 진행된 지방회 수양회의 시간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지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 수양회 이후에는 산과 함께 걷고 먹고 쉬는 시간을 통해서 일상의 반복되는 삶을 일탈하면서 자유롭게 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며칠 안되는 휴식의 시간이었지만 좋은 재충전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동역자들인 목사님들 부부와 함께 강의도 나누고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좋은 대화의 교제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처럼 함께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을 자유롭게 먹는 시간을 통해서 좋은 쉼의 기회를 갖았습니다.
성경의 예수님은 제한된 3년의 공생애 시간을 누구보다도 바쁘게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역을 뒤로 하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쉼의 시간을 갖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쉼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어쩌면 그 쉼의 시간을 통하여 사명의 삶을 더 준비하고 집중하였을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쉼의 중요성을 보여주시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를 위하여 일할 수도 있지만 주를 위하여 쉴 수도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쉼의 시간은 산과 물과 같은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아마도 어렸을 적 산과 계곡이 있는 시골에서 자란 영향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휴가 시간은 산과 계곡 그리고 휴양림이 있는 곳으로 갔었습니다. 한국에서 반복하여 찾던 곳은 충주의 월악산 국립공원 계곡, 정선의 가리왕산 계곡, 영월의 어라연 계곡 그리고 평창과 횡성 그리고 가평의 휴양림들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 나기도 합니다. 뉴욕에서 보낸 휴가의 시간들도 돌아보면 대부분 자연과 함께 보내는 쉼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인상에 남는 곳은 2번의 휴가 시간을 보낸 화이트 마운틴입니다. 미국의 동북부 지역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기도 하지만 그 주변의 계곡 그리고 주변 산골마을을 체험하는 것은 좋은 쉼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지난 과거의 중년기의 시간을 돌아보면 워크 홀릭에 걸린 것 같은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습니다. 항상 교회가 더 성장해야 하고 더 변화해야 만족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성장과 변화를 위해서 더 열심히 더 많이 사역을 하는 것을 최선의 보람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역의 후반기인 60대를 맞이하면서 돌아보는 것은 적당한 여유와 쉼도 필요한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더 온전한 성숙을 위해서는 멈춤의 쉼을 통해서 더욱 모든 것이 무르익는 기회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잠깐의 일탈이지만 소중한 쉼의 은혜의 시간을 통하여 삶의 재충전을 얻고 다시 새롭게 일상의 삶을 도전하는 기회를 갖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요즘 저녁을 먹고 주변 마을을 날마다 걷고 있습니다. 매일 코스를 바꾸어서 30분 정도 혼자 걷기를 하면서 하루를 정리합니다. 하루를 무사히 살아온 것을 감사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은 훌훌 떨어버리는 시간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이 됩니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혼자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됩니다. 단순히 몸의 근육을 다지는 운동을 떠나 마음의 근육을 다지는 기회가 됩니다. 새벽기도에는 말씀과 함께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묵상이지만 저녁 걷기의 묵상은 몸과 마음을 나를 돌보는 기회가 됩니다.
걸으면서 가장 자유를 누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없이 마음대로 속도와 방향을 정하여 오직 나만의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반응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오직 스스로의 반응에만 집중하면서 나를 누리는 시간이 됩니다. 혼자 걸으면서 점점 홀로 잘 지내는 것을 잘 감당해야 함을 배우는 시간이 됩니다. 오직 내가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할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바라보면서 기쁘게 지내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됩니다. 홀로 있다는 것이 고통이 아니고 기쁨이 되고 자유가 되는 시간을 배우는 기회가 됩니다.
걸으면서 나의 마음의 죄들을 버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렇게 반복해서 버리고 버렸던 내면의 죄성들은 여전히 아직도 날마다 자라나서 나를 괴롭히는 잡풀처럼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반복하여 죽이고 죽였지만 여전히 끈질기게 자라나는 잡풀같은 죄들을 이기는 길은 여지없이 버리고 버리는 길 밖에 없습니다. 과거 한국에서 목회 때에 교회 사택 뒤에 조그마한 밭을 가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밭에는 장로님이 심어준 고추, 오이, 토마토, 상추가 다양하게 재배되었습니다. 그때에 내가 하는 일은 밭의 잡풀을 뽑아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때에 놀란 것은 잡풀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 것인지 경험했습니다. 밭의 풀을 이기는 길은 부지런하게 뽑아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 안의 죄성도 이와 같이 날마다 부지런하게 죄의 풀들을 뽑아버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걸으면서 마음도 몸도 더 유연함을 경험합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굳어진 몸처럼 마음도 점점 더 굳어짐을 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서 더 많은 운동을 해도 젊었을 때의 유연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더 운동하지 않으면 유연성이 떨어져서 반응하기가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내버려두면 쓸모 없는 잡풀들로 가득한 황무지 같은 마음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도 더 운동해야 하고 마음도 더 운동해야 합니다. 몸의 근육과 마음의 근육이 자란 만큼 영육이 모두 건강하게 승리할 것입니다.
심리학자 에릭 번(Eric Berne)은 인간에게는 3가지의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PAC이론’을 주장했습니다.“PAC 이론”은 모든 사람에게는 어버이 마음(parental character)과 성인의 마음(adult character), 어린이 마음 (childish character)이 있다고 합니다. 3가지 마음이 각각 균형이 잘 이루고 있으면 관계가 원만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갈등의 관계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에릭 번의 이론은 마음의 균형이 잘 잡힌 사람의 경우에는 대인관계의 다양한 상황에서 관계를 잘 한다고 합니다. 마음의 균형이 잘 잡힌 사람은 어버이 역할을 해야할 상황에서는 어버이 마음이 잘 드러나고 성인의 역활을 해야 할 때에는 성인으로서 관계를 잘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이 마음이 필요한 관계에서는 어린이 마음이 잘 드러나 관계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균형잡히지 못한 마음은 결국 관계의 균형이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관계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마음은 비판적인 어버이의 마음이 발달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매사를 비판적으로 가르치는 부모의 마음을 갖고 남과 권위적인 관계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관계는 항상 나의 답으로 상대방을 가르치려고 하고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관계를 갖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과의 관계는 경직되고 형식적인 관계가 됩니다. 이런 마음이 너무 발달한 사람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비판적인 부모와 관계하며서 자란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나치게 학교 성적에 강박적인 부모, 타인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부모, 항상 경쟁적인 부모, 완벽주의 부모들의 경우에 비판적인 어버이의 마음이 많습니다. 이런 비판적인 부모들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율법적이고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따뜻한 부모의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바울은 따뜻한 부모의 마음으로 관계했습니다. 그는 사도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항상 은혜의 부모 마음으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관계를 했습니다. 살전2: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엿으니” 라고 합니다. 심지어 바울은 따뜻한 부모의 마음으로 목숨까지라도 내어줄 수 있는 사랑으로 섬기며 관계했습니다. 살전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 뿐 아니라 우리가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누가 부모의 마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은혜는 마치 봄날의 따뜻한 햇살같은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내 안에 충만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내 안에 가득 품은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따뜻한 부모의 마음으로 은혜의 관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 단기선교는 애리조나 단기선교를 떠나게 됩니다. 7월 25일부터 5박 6일간 11명이 떠나는 인디안 단기선교는 2번째 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집중적으로 가던 아이티 단기 선교가 아이티의 치안 불안으로 인해서 중단하게 되면서 미국 원주민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인디안 단기선교는 현지 선교사님의 지도를 따라 현지인 전도 및 어린이 여름 성경 학교와 지역 교회 순회 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짧은 기간에 선교를 위하여 우리 자체로서의 무슨 큰 사역을 하는 것보다도 선교 현지에 대한 안목과 선교에 대한 마음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지금 까지 한국 교회의 단기 선교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노출이 되었습니다. 우선 단기 선교의 긍정적인 면은 선교에 대한 관심의 증대입니다. 모든 교회의 단기선교를 통해서 선교 현장을 경험함으로써 선교의 산교육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 한국 교회와 한인 이민교회들의 단기 선교의 뜨거운 관심의 결과 현지의 많은 선교사들이 힘을 얻고 서로 협력하여 선교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것이 사실입니다. 단기 선교의 체험을 통하여 장기선교사로 헌신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귀한 선교헌신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선교의 동력이 된 것이 단기 선교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 선교의 부정적인 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많은 교회들의 단기 선교가 마치 선교 이벤트처럼 유행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지의 선교사들의 지도를 받지 않고 현지의 상황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인 가운데 경쟁적으로 하게 되면서 오히려 현지 선교를 힘들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단기 선교 가운데 과다한 재정을 집행하면서 낭비라고 하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단기 선교를 지금까지 하면서 3가지 입장의 초점을 맞춘 선교를 진행 중입니다. 첫째, 단기선교는 현지의 선교사와 협력하되 지도를 잘 따르는 현지 선교사 중심의 단기 선교가 될 것입니다. 둘째, 단기선교를 하되 전략적으로 특정 선교지역의 목표를 잡고 지속적인 단기선교를 통하여 어느 정도 가시적인 목표가 이룰 때까지 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과다한 재정지출의 낭비를 조심하면서 선교가 지속되고 긴 안목을 갖고 선교사들과 재정 협력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단기선교팀을 위하여 재정의 협력과 더불어 기도로 협력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최전방의 선교 전쟁을 위하여 떠나는 것임으로 뒤에서 기도하여 주어야 합니다. 특히 사탄의 집중적인 공격을 통하여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심각한 위협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그들의 영적 육체적 안전과 사역의 승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올해도 단기선교를 통해서 온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풍성하게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6월 마지막 주 토요일 새벽에 우리 교회는 처음으로 온가족 새벽기도회를 했습니다. 방학이 있는 6-8월까지 교육부서들이 돌아가면서 부모들과 함께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온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첫 번째 온가족새벽기도회는 영유아부가 주관했습니다. 영유아부 담당 사역자의 찬양 그리고 설교를 함께 나누고 기도했습니다. 한창 꿈나라에 있을 아기들이 엄마 아빠들과 함께 새벽에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내 아기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서 온가족이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온가족새벽기도회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소중한 영적 체험의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는 아이들의 조기교육을 주장합니다. 이미 지각능력이 발달하는 아기 때부터 다양한 예체능과 교육을 경험하게 하고자 합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영어와 같은 언어조기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린시절부터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무엇보다도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대리자인 부모들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아이들을 위해 함께 간구하고 축복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소중한 영적 체험의 기회가 됩니다.
온가족새벽기도회를 하면서 우리 가정의 부모들의 영성이 살아나기를 소원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겪으면서 많은 가정의 부모들의 마음이 무너지고 믿음도 떨어진 것이 현실입니다. 많은 가정의 부모들이 일과 생활에 치우쳐 살면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함께 새벽을 깨우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내면과 믿음을 깨우는 체험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정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가정의 연약한 여러 가지 문제를 위해 온가족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온가족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 가정의 아버지가 되심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목회자로 교회를 섬기면서 많은 가정들을 경험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가정이 살고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잘되는 가정들의 공통점의 핵심은 하나님을 가정의 아버지로 삼고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는 가정들입니다. 너무나도 세상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다양한 사건 사고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의지하고 소망해야 할 분은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전적으로 하나님께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가정의 아버지되심을 더욱 체험하고 소망하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에 이해심이 많이 부족했었습니다.무엇보다도 은행의 크레딧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팁을 주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거리에서 운전을 하면서 스탑 사인에서 멈추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서비스를 요청하면 너무 시간이 걸리는 것도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너무 비싼 렌트비를 내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평생을 집 모게지를 갚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생활에서 처음 좀 부족한 이해심 때문에 미국의 삶이 편안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해심이 부족할 때에 불편함으로 인하여 분노심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내마음대로 모든 것이 안되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향한 비난과 분노심 생긴 것입니다. 마치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불편한 소외감을 분풀이하듯이 스스로 마음에서 떨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적절한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모든 것들을 마음 가운데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하다고 느끼던 모든 것들을 그 입장에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해심이 늘어가면서 모든 것을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들보다 훨씬 더 다양합니다. 우선 문화적인 다양성이 큽니다. 한국의 문화 미국의 문화 그리고 두나라가 믹스된 문화등이 다양합니다. 또한 공유된 한국의 문화도 이민자의 흘러간 햇수만큼 또 서로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한국이민자들은 독특한 다양성으로 인해서 더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이한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에서는 문제가 안될 것들이 미국의 한인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뉴욕같이 기다림이 없는 도시에서는 조금이라도 다양성이 자신에게 불편한 경우에 바로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양성은 더 풍성한 이해심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내 마음도 넓어지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하는 기회만큼 내 삶의 지경은 더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 가운데 성도로서 다른 다양성의 사람들을 만날 때에 조금 더 이해심을 갖고 교제하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이해하면서 더 주님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상대방의 다양한 점들을 이해하면 더 다양한 주님을 새롭게 배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해심을 갖으면 오해가 풀리고 좋은 교제의 만남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기회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성이 이해심으로 잘 극복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은 우리 교회가 6년 전에 사요셋으로 이사한 날입니다. 6년 전에 모든 교회 짐을 이삿짐 센터의 차와 교회 밴에 싣고 이사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사하던 그날도 무척 더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에 이삿짐을 맞이하던 지금의 교회당은 좀 을씨년스러운 날씨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본당은 침침하고 냄새가 났고 식당 지하실은 곰팡이와 썩은 냄새가 진동하였습니다. 사실 처음 교회당의 내적 외적인 환경은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설픈 환경 가운데 시작하던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고 6살 유치원생같은 교회로 이제 이 지역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오직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갔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냥 하나님만 믿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사요셋으로 오직 믿음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실 때에 인간의 모든 생각과 노력을 헛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은혜와 믿음으로 일하시게 하심으로써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교회를 주님이 새롭게 세우시고 일하시는 기회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사람 중심이 되고 전통에 매이고 제도에 매이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보통 교회들이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 이렇게 헛된 세상 것들이 우선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동적인 성령님의 생명력을 제한하고 도전을 멈추게 됩니다. 새로운 지역으로 우리 교회가 이사하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이 일하시는 믿음의 도전의 기회가 되게 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지역에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꿈꾸게 하시고 비전을 갖고 도전하게 하는 경험을 지난 6년동안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흘러가는 물처럼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서 도전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만일에 교회가 뒤만 바라 보고 과거에 매이게 되거나 현재에 안주하여 변화를 거부하게 되면 결국 고인물처럼 부패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6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미 흘러간 이곳에서의 6년도 뒤의 것이 되었습니다. 오직 우리 교회는 뒤의 것을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더욱 교회공동체적으로 예수님을 더욱 나타내는 주님의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목회의 시간 가운데 수십번 정도의 베스트 초대일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고향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을 해서 베스트 초대일을 처음 시작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항상 그 한주간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갖고 전도 대상자들을 교회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로서 첫 번째 베스트 초대일을 기도하고 시작하면서 마음 가운데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놀라웁게도 하나님께서 예비한 사람들을 기대 이상으로 많이 보내주었습니다. 당시에 고향교회에서 어설픈 30대 중반의 어린 초보 목사였던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몸소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너무도 감사한 것은 고향의 교회 선배들이 열심히 발로 뛰어주어서 친구들을 여기 저기서 다 불러 교회로 온 것입니다. 처음 교회를 나온 그들 중의 몇몇은 결국 교회에 결국 정착하여 교회의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 오기 전의 나의 목회지 교회에서는 너무도 다양하고 풍성한 전도의 경험과 함께 베스트초대일의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전도를 위해서 봄, 가을로 매주 토요일이면 음료수와 간단하나 선물용 떡과 전도지를 준비한 전도팀이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거리에서 찬양을 하고 전도지와 음료 그리고 떡을 나누어주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사람들과 차가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 1시간 정도 찬양하면서 전도를 하면 아주 좋은 반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적으로 출출한 오후 시간에 음료수와 떡을 나누어 주고 또 젊은 청년들이 찬양하면서 전도하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전도하고 베스트초대일에 초대하면 그때에 전도지와 초대장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 약속한 대로 참석하는 다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교회를 왔던 사람들 중에는 결국 교회에 정착하여서 귀한 일꾼으로 세워지는 기쁨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뉴욕에서 이민 교회를 섬기면서 무엇보다도 힘든 것이 전도인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플러싱에 있을 때에 베스트 초대일을 매년 거의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와 달리 뉴욕은 이미 교회를 한번 이상 다녀 본 분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플러싱에 교회가 있을 때에는 교회에 처음 나오는 분들이 교회에 정착하는 경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주거지가 불안정하여 옮기는 경우가 많고 직장이 불안정하여 옮기는 경우가 많아서 교회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학생들의 경우에는 더 변수가 많아서 교회 정착이 어려웠습니다. 플러싱에서는 교회에 초대를 받아서 오지만 결국 안정되지 못한 삶으로 인해서 교회 정착이 어려운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안타까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롱아일랜드에서 어느새 6년의 목회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지난 2년동안의 코로나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베스트초대일을 갖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하나님은 항상 예비된 사람들을 보내어주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귀한 일꾼으로 사역하는 분들 중에는 그렇게 우리 교회와 함께 하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교회의 주인되신 주님께서는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숫자가 적든지 많든지 중요한 것은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귀한 일을 지금도 하십니다. 이번 베스트초대일을 통해서 주님이 예비하신 영혼의 만남을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기대합니다.
지난 6개월의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느낌입니다. 특히 2022년 상반기에는 세기에 겪을 법한 중요한 사건 사고가 여럿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국제 사회를 너무도 위험하고 힘든 시기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높아진 물가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외적으로 가중되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삶의 질은 떨어지고 사람들의 멘탈은 점점 망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기 가운데 교회 사역도 집중하기 어려운 시기였지만 하나님 은혜로 모든 사역들을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지난 상반기 가운데 예배 및 기도 사역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주일 대면 예배 및 주중 대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점점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의 몇몇 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온라인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힘든 시기에 대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의 은혜와 경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면서 은혜를 회복하는 모습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가운데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분들이 교회의 공예배 및 기도회의 시간들을 통하여 은혜를 회복하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다음, 지난 상반기 기간에도 여전히 교육과 훈련 사역의 헌신을 함께 감당했습니다. 올해 6개월 동안 시간 가운데 교회의 다음 세대들이 더 든든히 세워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팀웍을 이룬 중고등부 부서의 경우에 내적으로 외적으로 잘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초등부와 영유아부의 경우에도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사역을 잘 감당하게 됨을 감사합니다. 청장년의 경우에 여전히 제자훈련을 중심으로 목장 모임을 통하여 교육과 교제를 중심으로 은혜의 회복을 잘 갖게 됨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경우에 우리 교회 등록을 하고 3년 이내에 계신 분들이 상당 수 있어서 충분한 나눔의 관계를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앞으로 더욱 다른 다양성에 대해서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며 상호 공감의 시간을 더 갖아야 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 상반기 시간에 한국아카데미를 통하여 한국학교와 문화학교를 통한 교육 선교의 기회를 갖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상황에서 위험을 딛고 대면으로 3달간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올해로서 한국학교와 문화 학교는 벌써 5년여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이제 기본적인 기초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초를 놓기까지 시간과 물질과 몸으로 귀한 헌신을 한 평신도 일꾼들의 수고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제는 더욱 선교적인 사명감을 갖고 지역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질적으로 더 업그레이드하는 기회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제 바로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에는 나바호 원주민 선교가 시작되고 8월에는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됩니다. 우리 교회와 같이 작은 교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선교와 교육에 함께 기도로 동참하는 헌신이 요구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선교가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경학교가 되기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6개월 동안의 모든 교회 사역을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얼마 전에 마친 프랑스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올해 36세의 라파엘 나달 선수가 결국 우승했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이번 대회 우승 예상에서 나달 선수는 좀 비껴갔습니다. 왜냐하면 발 부상도 있고 노장의 체력이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테니스 메이저대회는 다른 투어 대회와 달리 5세트를 해야 함으로 엄청난 체력 소모전을 갖아야 합니다. 이번에 나달 선수는 8강에서 현재 남자 테니스 선수 1위인 조코비치와 경기에서 무려 4시간 정도의 체력을 소모하고 결국 이기고 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나달 선수는 모든 우려를 딛고 우승하였습니다. 그의 우승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의 체력적인 약점과 발 부상의 약점을 잘 극복하는 전략을 갖고 경기를 잘 컨트롤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모든 경기를 보면 실수 때문에 승리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수의 가장 큰 이유는 컨트롤보다는 모든 것을 너무 승리를 위해서 무리수를 두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나달이 결승에서 만난 상대 선수는 노르웨이의 24세의 젊은 선수였습니다. 발도 빠르고 에러가 없는 유능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백전 노장 나달과 결승을 하면서 그는 결국 무리한 공격으로 많은 에러를 하면서 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컨트롤을 하면서 시간을 끌면서 오히려 자신이 더 유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도 지고 만 것입니다.
나의 경우에도 20여년을 매주 테니스 운동을 하면서 가장 겪는 어려움은 컨트롤입니다. 특히 가장 볼이 컨트롤이 안되는 날은 마음의 생각이 많은 날입니다. 그 결과 마음이 집중이 안되어서 볼이 잘 컨트롤이 안됩니다. 무엇보다도 몸도 컨트롤이 안되면 순간 타이밍을 잃어버리고 결국 운동이 엉망진창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컨트롤이 잘 되는 때는 몸도 마음도 안정이 될 때에 컨트롤이 잘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특히 테니스와 같은 예민한 운동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볼에 전달이 됩니다. 그래서 나달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면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을 잘 컨트롤하는 일에 우선 승리합니다.
우리의 삶은 예측 불허의 운동경기같은 면들이 있습니다. 인생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인생 경기를 하다 보면 컨트롤이 안되어서 후회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실수를 줄이고 인생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삶의 능력은 나의 힘과 능력으로는 어렵습니다. 오직 인생 경기장에서 모든 삶을 통제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성령님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을 때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우리의 인생을 적절하게 컨트롤하셔서 능히 이기도록 일하십니다. 그 성령님의 컨트롤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매사에 성령님께 나를 내어주는 자기 복종의 사람입니다. 매일 매일 인생 경기장에서 나를 복종하여 모든 삶 가운데 컨트롤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