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11월에 한해의 사역을 마무리합니다. 지난 11개월동안 연초에 계획했던 모든 사역들을 잘 마치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도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특히 올해는 계속되었던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그리고 심각한 인플레이션 등의 많은 외적인 어려움으로 인해서 사역의 제한과 더불어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던 한해였습니다.

첫째, 올해 우선 순위의 사역은 예배 사역이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비롯하여 모든 공예배가 영과 진리로 세워지기를 힘썼습니다. 무엇보다도 힘든 상황에서도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대부분 최선을 다해서 대면으로 참가하여 감동있는 예배를 드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새벽이나 수요일같은 정한 시간에 공예배를 드리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임을 올해도 경험하였습니다. 내년부터는 대면과 병행하던 온라인 예배를 중지하려고 합니다. 분명하게 점검하는 것은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회의적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바쁘고 어려운 시기에 공예배의 회복을 위한 과제는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인 것을 경험합니다.

둘째, 올해 교회 핵심 사역은 교회의 다음세대를 세우는 교육 사역들이었습니다. 매주일 교회학교들의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사역들이 최선을 다해서 진행되었습니다. 봄, 가을에 토요일에 진행되는 아카데미 사역과 여름 VBS 사역 그리고 올해 처음 시작되었던 홀리 윈 사역이 잘 마쳤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에 필요한 것은 성경 중심의 믿음과 세계관을 갖는 일입니다. 점점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성경을 기준으로 삼는 가치관을 갖고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들로 무장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올해 가장 아쉬움이 많은 사역은 교제와 나눔의 사역들이었습니다. 올해 목장 모임은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에서 모임으로서 좋은 교제의 장이 되었습니다. 특히 목장별로 주일 점심을 위한 섬김을 하고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함께 마음을 모아 섬기는 일들은 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목장 본연의 의미를 잘 회복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제 내년부터는 지역별로 목장들이 모임과 교제를 통해서 더욱 마음과 삶을 나누는 교제가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한해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가장 감사한 것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준 사역자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서 믿음으로 섬겨준 그들이 있었기에 모든 사역들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받은 은혜와 은사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귀한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복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2022 추수감사절을 맞아 한해 동안 우리 교회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이 베푸신 일들을 감사하게 됩니다. 다른 어떤 해보다도 힘든 시간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공동체 가운데 능력으로 일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올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가시적으로 능력으로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눈으로 다 볼 수 없지만 크고 비밀한 일들을 행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첫째, 영혼들이 더해지고 가정 가운데 새생명이 잉태되는 은혜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올해에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주님이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는 예비된 좋은 사람들이 더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시대에 귀한 새성도들을 만나게 하시고 함께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또한 올해 교회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께서 잉태의 은혜를 주셔서 두가정이 새로운 아기를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요즘 시대에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처럼 소중하고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가운데 새성도들을 더하여 주시고 새생명을 잉태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둘째, 교회의 핵심 일꾼들을 세울 수 있도록 인도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일에 목사 안수와 안수 집사 및 권사 임직식을 은혜 중에 잘 마쳤습니다. 특히 지난 1년동안 임직자들을 세우는 일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준비하였고 마침내 모든 임직식을 무사하게 잘 마쳤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주님의 좋은 일꾼들이 팀웍을 잘 이룰 때에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이민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진정한 주님의 일꾼들이 부족한 문제점입니다. 우리 교회적으로 먼저 겸손하게 교회를 섬기는 귀한 일꾼들을 세움으로 인해서 더욱 교회가 하나되어지고 건강하게 세워지는 기회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교회의 가정 가운데 기도 응답의 좋은 열매들을 맺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올해 성도들의 가정 가운데 다양하게 좋은 일들이 많이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기도하던 새집으로 이사하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직장에 취직되도록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기도하던 대학교에 입학하도록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었습니다. 도전하던 새일의 복을 갖도록 응답하여 주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응답하여 주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크고 놀라운 일들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응답하신 풍성한 새 일의 역사를 바라볼 때에 하나님께 감사로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에게 십자가로 말미암은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세상에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모든 만물이 열매를 맺는 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 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창조하실 때에 이미 열매 맺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열매를 맺도록 일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때가 되어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열매 맺게 하시기 위해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강조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열매 맺는 풍성한 존재입니다 .

어떻게 우리 가운데 열매가 맺어질 수 있을까요? 주님은 우리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강조하십니다.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가지가 나무 본체에 붙어 있게 되면 결국 열매를 맺는다고 하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열매를 맺는 비결은 오직 예수님 안에 거하고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 아래에 있을 때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내가 속한다고 열매가 금방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자연 만물의 열매를 통해서도 증명되는 일입니다. 열매는 오랜 시간 가운데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기까지는 주님의 시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열매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도 그 열매를 기다려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 아래 거하는 가운데 때가 되면 주님의 열매가 우리 가운데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닮은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에게 진정으로 속하였으면 주님을 닮은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말씀하시면서 거짓 열매도 경계하셨습니다. 주님은 “주여 주여” 말 하는 자가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여러 가지 일을 행한다고 예수님에게 속한 자가 아님을 강조하십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의 능력으로 그 심령에 새사람의 열매를 맺고 새 일을 행하는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강조합니다. 주님의 참사람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들이 반드시 맺게 됩니다. 결코 주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는 세상의 능력으로는 맺을 수 없는 하늘에 속한 신령하고 풍성한 열매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구원의 열매가 전부가 아닙니다. 구원 이후에 삶의 열매를 맺음으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뿐 아니라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자기 백성들에게 열매 맺는 풍성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매년 세월이 흘러갈수록 빈곤한 삶이 아닌 풍성하게 열매 맺는 삶이 되기를 기대하고 소원합니다.

 

벌써 한해의 11월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부터 11월에 모든 한해의 행정 결산을 하게 됩니다. 매달 1주, 3주에 모였던 목장 모임도 11월에 마감하는데 세 번째 주일이 추수감사주일이어서 첫 번째 주일에 마감하게 됩니다. 사실 올해 목장 모임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여파로 제대로 모임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목장마다 나름대로 모임과 사역으로 잘 갖게 되었고 이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목장 모임은 나이와 지역과 성별을 초월해서 각 목장이 구성되었습니다. 어떤 목장의 경우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교제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목장은 나이대가 너무 차이가 나서 불편해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목장의 경우에는 같은 또래의 모임이 오히려 불편하기도 했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목장과 같은 셀 모임을 하는 경우에 정말 힘든 것이 상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형편을 서로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한해의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올해 목장 모임 가운데 가장 감사한 것은 다른 해와 달리 더 많은 교회 봉사 사역을 담당한 것입니다. 올해는 목자들이 매주 순서를 정하여 토요일에 교회에 와서 주일 점심 음식을 준비하는 일과 주일에 목장에서 점심 배식과 설거지와 같은 궂을 일들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특별새벽기도회마다 각 목장에서 순서와 봉사를 담당하는 일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목장은 교회 안의 작은 교회와 같은 기능이 있습니다. 목자는 작은 목사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결과 목장이 작은 교회의 기능을 잘 감당하는 건강한 목장이 될 경우에 대그룹 공동체 교회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올해 목장 모임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목장 마다 충분한 교제가 어려웠던 아쉬움입니다. 특히 목장의 새가족들의 경우에는 교제가 매우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한달에 2번 모이는 시간을 통한 교제는 매우 부족하고 어렵습니다. 어떤 목장의 경우에는 집으로 초대해서 목장 단합대회나 또 야외에서 목장야유회와 같은 시간을 갖으면서 부족한 교제의 시간을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목장들마다 교제의 필요성을 공감하지만 정작 교제를 위해서 구체적인 적용과 애씀이 더 필요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교제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과 섬김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교제에 대한 필요성을 말은 할 수 있지만 적용은 쉽지 않았습니다.

내년에 목장 모임의 방향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 중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방법과 방향을 벗어나서 새로운 방향에서 고민하고 있고 그 방법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안의 작은 교회와 같은 목장 모임이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임으로 준비되어 교회 안에 자리매김되기를 소원합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사도였던 바울은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로 여기고 사도의 직분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결과 사도 바울은 모든 자신의 공로와 자랑을 내려놓습니다. 본래 바울은 율법의 행위와 공로를 앞세워서 자신의 의를 자랑했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난 뒤에 그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하나님의 직분자들이 가장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직분을 받은 자들은 오직 은혜의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 은혜 받은 직분자들은 자기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든 직분자들의 삶을 가장 대적하는 세력은 자기 자신입니다. 먼저 직분자들은 자기의를 앞세운 완전주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의 경우에도 과거에 완전주의를 내려놓지 못하여서 자신을 괴롭게 하고 교회를 힘들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교묘한 자기 의를 앞세운 완전주의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의 의를 더 앞세우고 자신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계속하여 우리의 의와 공로를 자랑하도록 우리를 공격합니다. 자기의 완전주의를 내려놓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값없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면서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승리의 관건입니다.

둘째, 은혜 받은 직분자들은 은혜받는 삶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해야 합니다. 은혜받은 직분자로서 은혜의 삶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이 우리의 삶의 승리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오직 날마다 은혜를 받을 때에 모든 직분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매일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부지런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은혜의 자리는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여서 지속하는 부지런함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목사로서 살아가면서 제일 힘든 바로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를 내가 먼저 받고 체험하기 위해서 부지런함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날마다 게으름을 물리치고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직분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십니다.

셋째, 은혜 받은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항상 꾸준해야 합니다. 은혜 안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마음이 요동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풍성한 물처럼 흘러 마음을 풍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의 현장에서 감정과 열심을 앞세워 요동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다스리면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요동칠 필요가 없습니다. 묵묵히 은혜받은 자로서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잠잠히 행하게 됩니다. 은혜 안에서 꾸준한 직분자들을 통하여 결국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은혜의 직분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모든 직분자들이 항상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은혜로서 자신을 지키고 교회 가운데 거룩하게 쓰임받고 영향력을 미치기를 소원합니다.

 

10월 30일 주일 오후에는 우리 교회 은퇴 및 임직 예배가 있습니다. 먼저 33년간 안수 집사의 직분으로서 교회를 잘 섬기신 안수집사님의 은퇴가 있습니다. 한 분의 목사 안수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분의 안수 집사님 임직과 세분의 명예 권사님 그리고 세분의 시무 권사님의 임직식이 있습니다. 임직을 받는 분들은 지난해 10월 마지막 주일에 사무총회에서 투표를 통해서 선택하였고 훈련과 시취 시험을 거쳐서 만 1년만에 임직식을 갖게 됩니다. 올해 우리가 드리는 은퇴 및 임직식은 교회적으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올해 드리는 은퇴 및 임직 예배는 귀중한 전환기의 의미가 있습니다. 올해 은퇴하시는 안수집사님은 우리 교회가 개척부터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수고한 1세대이십니다. 이제 은퇴를 하심으로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로 교회가 전환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1세대의 헌신과 수고가 없이는 오늘의 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몸으로서 철저하게 헌신의 본을 보여주시고 교회 중심의 신앙의 좋은 본을 보여주신 1세대 평신도 리더들에게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올해 은퇴 및 임직 예배는 우리 교회가 사요셋으로 이사 와서 처음 갖는 행사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롱아일랜드 시대의 교회를 세워가는 중요한 기회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님들은 여전히 플러싱과 베이사이드에 사는 성도들도 있지만 교회당이 거주하는 롱아일랜드 지역이 이제는 우리 교회의 핵심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지역에서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세워진 핵심 일꾼들은 교회가 새로운 지역에서 잘 뿌리내리도록 교회공동체를 잘 세우는 섬김의 사명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팀웍입니다. 서로 한마음으로 거룩한 팀을 이루어서 교회가 새로운 지역에서 잘 세워지도록 섬김을 감당해야 합니다.

셋째, 올해 세워지는 임직자들 중에는 다소 나이가 드신 60대에 계신 분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안수집사님들 2분과 시무 권사님들 중에도 2분이 60대이십니다. 교회가 무조건 젊은 세대로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안정 속에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의 30-40대는 교회 사역을 하기에 가정적으로 직장적으로 아직 안정이 안되었고 너무 바쁜 시기입니다. 앞으로 5년 안에 교회는 세대 교체와 더불어 리더쉽의 변화가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번 임직식을 통해서 선배들의 섬김과 희생을 통해서 결국 교회의 다음 세대의 리더쉽의 계승이 잘 준비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번 은퇴 및 임직식을 앞두고 함께 기도하면서 준비하기를 소원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예배와 예식의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우선 강조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오직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은혜로 직분을 허락하셨고 은혜로 우리에게 귀한 예식을 허락하였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기도하고 감사하는 귀한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가을은 열매를 보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농부들은 가을의 열매의 때를 기다리며 모든 수고의 최선을 다합니다. 농부는 이른 봄에 흙을 가르고 씨를 심고 김을 매고 풀을 뽑아주면서 열매를 기다립니다. 무엇보다도 농부들은 매일 밭의 곡식을 바라보면서 풍성한 열매의 소원을 갖고 애타게 추수의 때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모든 곡식의 열매의 때는 반드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여름의 충분하고 뜨거운 태양빛도 받아야 하고 가을의 시원한 바람을 받아야만 마침내 열매의 때를 갖게 됩니다. 모든 열매는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거둘 수 있습니다.

주권자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때를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 이 세상에 오셨고 때를 따라 십자가를 지시고 때를 따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사도가 되었고 때를 따라 주를 위해 살게 하셨고 결국 때를 따라 순교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예외없이 귀한 목적을 갖고 때를 따라 인도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노력하고 수고하지만 모든 인생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곡식의 열매처럼 열매를 맺게 하시는 때에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고난의 때를 거칩니다. 요셉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때는 너무도 갑작스럽고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때였습니다. 어린 요셉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때는 모든 것이 온통 절망과 실패처럼 보이는 때였지만 그 때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심 가운데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하심의 때였습니다. 모세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때는 너무도 무모한 고난의 때였습니다. 늙어서 다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같은 80세의 모세에게 애굽의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십니다. 외적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 하는 일은 인간적으로 가장 어리석고 무모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고난의 때를 통하여 하나님의 때이심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때는 실패의 때를 허락합니다. 베드로는 갈리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낙심할 때에 예수님을 만나는 때가 되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안수집사였던 스데반이 핍박으로 순교를 당하여 낙심할 때에 오히려 선교의 열매를 거둠으로 하나님의 때를 경험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질병의 약함 가운데 위축되었을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심을 그 삶과 사역에서 더욱 경험하게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많은 초대 교회들이 문제와 어려움으로 실패하였을 때에 오히려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한계를 경험할 때에 능력의 하나님이 때를 온전하게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항상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실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때를 믿어야 합니다. 너무 나타나는 지금의 결과 앞에서 초조하게 나의 결론을 내리지 말고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에 대해서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섣불리 판단과 결론을 내리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고난과 실망을 하나님께 맡기고 열매를 기다리면서 농부같은 삶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랜 시간 테니스 운동을 하면서 얼마나 자세가 중요한가를 항상 느낍니다. 바른 자세로 볼을 칠 때에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반대로 나쁜 자세에서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쁜 자세는 결과적으로 몸의 무리가 오게 되어 나중에는 운동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좋은 자세를 갖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결과적으로 운동의 만족도도 높고 그 자세의 결과 몸도 좋아지는 결과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바르고 좋은 자세는 코칭을 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보통 잘못된 자세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대부분 스스로 혼자서 자기 열심을 갖고 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코치로부터 처음에 바른 자세를 배운 사람들은 바른 자세로 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나의 경우에도 처음에 테니스를 배울 때에 코치로부터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잘못된 자세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코칭을 받으면서 꾸준하게 연습을 하면서 바른 자세를 개선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하면서도 계속하여 피드 백을 통해서 코칭을 받으면서 계속하여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코칭을 통해서 바른 자세를 배우고 반복되는 바른 자세의 교정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 자세가 나오도록 몸이 기억하도록 코칭을 통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만 시간의 법칙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 가운데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은 반복을 통해서 결국 몸도 마음도 모든 것들이 연습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른 자세에 대한 코칭을 받으면서 충분하게 연습하고 인내할 때에 마침내 바른 자세의 실력이 나오게 됩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오랜 시간 운동을 하면서 바른 자세를 갖고 운동을 하는 것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님을 느낍니다. 점점 몸이 힘들고 느려지면서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맞추어서 더 편하게 더 쉽게 하려고 합니다. 결국 바른 자세로 운동을 하기보다는 내 스타일에 맞게 자꾸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운동을 하기 이전에 몸을 더 풀고 더 준비하여서 바른 자세로 운동을 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폼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더 근력운동을 하고 더 몸을 풀고 준비하는 가운데 그래도 바른 자세가 유지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결국 계속적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을 잘 코칭해야 합니다.

점점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에게 익숙하게 됩니다. 그 결과 나의 자세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가장 필요한 믿음의 자세의 기본은 겸손입니다. 언제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것이 겸손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의 자세가 하나님 앞에서 낮추는 기본의 자세가 되어 있을 때에 모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전달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필요한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피드 백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 마음에 함께 계시는 성령님의 코치를 따라 다시 나를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날마다 나를 바르게 세워가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 봄 어느 날 새벽 기도 시간에 낯선 중년의 여성도 한 분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주일 1부 예배도 참석했습니다. 멀리 텍사스에서 뉴욕에 왔다가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몇주 뒤에 텍사스에서 한통의 메일이 나에게 왔습니다. 호기심 가운데 메일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손 편지와 함께 한 장의 체크가 있었습니다. 사연인즉 코로나 관계로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졌던 당시의 상황에서 너무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어서 우리 교회에 예배에 참석 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놀라운 회복의 은혜를 그 성도님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성도님은 편지를 통하여 고백한 것은 다시 거룩한 예배자로 살기를 소원하면서 예배의 거룩한 습관을 결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많은 성도들의 경우에 예배의 거룩한 습관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다음 몇가지 예배의 거룩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예배를 위하여 우리는 먼저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지키는 습관을 갖아야 합니다. 점점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것을 율법적이라고 하거나 너무도 소홀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구별하여 예배하는 것은 주님의 자녀로서 복음 안에서 마땅한 거룩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우선 주일을 주님의 날로 구별하여서 하나님을 구별하여 예배하는 날로 지키는 것을 우리는 거룩한 습관으로 여겨야 합니다. 물론 주님의 비판을 받았던 유대인처럼 너무 형식에 매여서 하기보다는 마음을 다해서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주일을 이용하여 여행을 하거나 오락을 즐기는 일들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정한 거룩한 공 예배의 시간을 준비하고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와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 임으로 미리 준비해야 하고 정한 시간을 지켜서 예배하는 것을 거룩한 습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모두가 약속한 시간에 와서 예배를 할 때에 나의 부주의로 인하여 늦게 참석하게 될 경우에 공 예배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불편을 끼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 예배에 일찍 참석하는 경우에 우리는 내가 편한 자리가 있을 수 있지만 나중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배려하여 교회당의 앞 좌석부터 앉는 습관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공 예배 시간에 우리는 셀 폰과 같은 기계들을 묵음으로 하거나 꺼 두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셀 폰을 이용하여 성경을 보는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의 공 예배 시간에 성경책과 찬송가 책을 이용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셀 폰을 이용하는 경우에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 같은 것들로 인하여 예배의 거룩성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위하여 우리는 바른 자세의 거룩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예배할 때에 다리를 꼬고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가장 편안한 자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나의 편안한 자세로 드리는 것이 아닌 높으신 하나님을 가장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자세의 습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더 목을 낮추고 허리를 낮추고 가장 겸손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 예배를 드릴 때에 껌을 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부채질을 하거나, 화장을 하거나 하는 등의 다른 사람들이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행동을 주의해야 합니다. 오로지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 되기 위하여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습관을 갖아야 합니다

 

요즘 한국의 넷플렉스 드라마 ‘수리남’이 전세계인들에게 인기를 크게 얻고 있습니다. 수리남은 남미 브라질 근처의 인구 50만의 작은 나라입니다. 드라마 수리남은 실제 사건을 극화한 것인데 드라마의 마약왕은 목사로 그 주변 인물들은 전도사 그리고 집사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드라마 가운데서 교회가 소개되고 성경 말씀이 빈번히 인용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도 버젖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전부 사기와 폭력과 범죄를 합리화하는 곳에 이 모든 것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교회의 모든 것들을 부정적으로 사용함으로 인해서 교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크게 부각시키는 도구가 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드라마에 대해서 유감을 느끼기 이전에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실상일 수도 있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왜 마약왕을 목사로 그리고 범죄에 이용된 사람들을 교회로 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드라마 각본을 쓴 작가는 실제 현실 속에서 드라마같은 교회의 이중성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조차도 돈을 벌고 소유하기 위해서 이중적인 거짓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결코 현실 속에서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서는 성경을 앞세워 합리화하고 인정하지 않고 부정과 사기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드라마같은 현실의 교회를 영화의 작가들과 감독같은 이들에게 어필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수리남 드라마의 마약왕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움직이는 절대적인 힘은 돈입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기와 폭력과 심지어 살인까지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성경을 주문처럼 들먹거리면서 이용하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오늘 세상 가운데 보여지는 교회가 부와 성공을 이루기 위하여 성경과 하나님을 이용한다는 보고 의도적으로 드라마를 통하여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드라마 가운데 마약왕 목사와 그 주변인물들은 현실 속의 교회가 하나님보다 더 돈을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함을 경고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드라마 수리남의 마약왕은 국정원과 미국의 경찰들과 공조하에 체포되고 마약왕과 관련된 많은 조직원들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실제 인물은 체포되어 10년의 징역의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드라마의 모든 결말은 이미 본인들이 스스로 고백했던 성경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수리남 드라마 가운데 돈에 대한 욕심을 경고하면서 성경을 인용합니다. 바로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씀입니다.돈이 주인이 된 세상에서 주님이 주인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바르게 보이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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