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TV에서 사이비교주 JMS를 다룬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가 한국의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이비 교주 정명석은 자신을 메시야로 자처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문제는 다수의 20-30대 위주의 지성인들 사회의 소위 엘리트층 사람들이 여기에 속았습니다. 사이비 이단에 속은 많은 사람들 중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갖고 삶을 삽니다. 다큐멘터리에 소개되는 실제의 피해자들 다수인 여자들은 JMS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심하게 당한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이비 이단에 속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힘든 휴유증을 겪게 됩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사이비 이단과 같은 가짜 종교에 속게 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의 공허함을 느낄 때에 자신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더 자극적이고 강한 종교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많은 기독교 사이비 이단들은 교묘하게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합니다. 그 결과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앞세우고 눈에 보이는 신비한 능력을 강조하고 눈에 보이는 친절한 접근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붙잡습니다. 대부분 무지한 사람들은 선동성의 사이비 이단들의 유혹하는 말과 작전에 결국은 포로가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특히 기독교를 가장한 사이비이단에 빠지는 많은 다수의 사람들의 이미 교회를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출석하지만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 이단 사이비들에게 속아서 넘어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특히 사이비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 미혹할 때에 기존 교회에서 받아보지 못했던 극진한 관심과 사랑으로 마음을 훔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성경과 기도를 강조하면서 기존교회와는 다르게 더 깊고 영적인 것처럼 위장합니다. 결국 영적으로 무지하여 분별력이 없음으로 인해서 사이비이단에 속기 때문에 아무리 성경을 갖고 바른 이야기를 해주어도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은 이단 사이비에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올바른 믿음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깨어서 분별력있는 영혼과 믿음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이단 사이비 뿐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영혼을 공격하는 사탄과 귀신들의 유혹과 공격이 너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음 생활은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바르게 지키기 위해서는 더 철저하게 깨어서 영적으로 공격하는 모든 유혹과 도전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영적으로 분별력을 갖고 미혹의 시대를 잘 이겨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요즘 교회들마다 화두는 어떻게 교회로 다시 모일까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이후에 교회들마다 교회공동체에서 멀어진 성도들을 어떻게 다시 돌아오게 할까 고민입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의 자유로운 예배에 익숙한 성도들의 경우에는 대면으로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집에서 자유롭게 온라인으로 예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과 인도에 대해서도 자신의 신앙을 제한하고 구속한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교회로 모여 교회공동체와 함께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로 모여서 함께 예배해야 합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께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입니다. 구약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동체로 광야에서 하나님께 제사하였습니다. 신약에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교회를 통하여 예배하였습니다. 교회는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마치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것처럼 교회는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모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는 모든 습관을 버리고 더욱 함께 예배하기 위해 다시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로 모여서 함께 교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이지만 서로 교제하기 위해서 모여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모여서 서로 얼굴을 보고 마음을 열고 나누면서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교회 교제는 세상적인 사람들의 교제와 구별됩니다. 세상은 돈과 지식과 권력을 따라 차별이 있는 만남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 서로 차별없이 평등하게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제하는 가운데 약자를 배려하고 잘 환영하여야 합니다. 함께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교제를 위해 우리는 다시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로 모여서 함께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함께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할 때에 더욱 주님의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여서 서도의 삶을 나누면서 기도의 제목을 나누고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항상 예수님 안에서 받은 성도의 권세와 능력에 대해서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이웃에 대한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의 삶 가운데 나를 기억하고 기도하는 교회가 있음은 인생의 큰 힘과 소망이 되는 기회입니다.
지난 주간에 장례식에서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은 교회의 중요성입니다. 죽음의 마지막 시간에 교회와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고 기도하면서 장례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교회로 모이는 우리의 믿음과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간에 목회자 독서 모임에서 나눈 책이 “죽은 교회를 부검하다”였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톰 레이너 목사인데 목회 컨설턴팅의 전문가입니다. 저자는 죽은 교회의 특징을 소개하면서 미국만 해도 해마다 10만개 정도의 교회가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14개의 교회를 자세히 조사하고 분석하여 나타나는 죽은 교회의 10가지 문제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교회가 죽은 교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 끓임없이 변화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죽은 교회인가? 살아있는 교회인가? 이 책의 저자의 주장대로 우리 교회를 부검해보면 죽은 교회는 아니라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교회도 언제든지 죽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끓임없이 변화에 대한 도전이 없으면 결국 죽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실에 안주하여 만족하고 새롭게 하지 않으면 이내 죽은 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특히 이민교회의 특성은 세우기는 힘이 들어도 무너지는 것은 너무도 잠깐인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공동체가 더욱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는 변화를 위해서 먼저 한사람 한사람 변화를 위하여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변화의 영적 도전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를 보면서 감사한 것은 새롭게 교회에 등록한 새가족들이 함께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려고 하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건강하게 살아있는 교회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몇가지 과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공동체를 세우는 신앙 변화의 도전이 필요합니다. 공동체 교회를 세우는 신앙은 우선 함께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공동체와 함께 예배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나누는 교제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주일 뿐 아니라 주중에 함께 공예배를 참석하는 신앙, 함께 합심기도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특히 주중에 함께 공동체와 일정하게 시간과 모임을 갖게 되면서 우리는 결국 공동체 교회를 세워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둘째, 자신의 은사를 활용하여 교회를 섬기는 도전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그래도 많은 평신도들이 자신의 은사를 중심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섬김의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썩이지 말고 잘 사용하여 공동체를 새롭게 하는 신앙의 도전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비록 죽은 교회는 아니지만 실상을 부검하여 보면 아직도 부족함이 많고 고쳐가야 할 연약함이 많은 교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 한사람부터 과거에 빠져 있거나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을 새롭게 하는 변화를 위한 결단과 도전이 필요합니다. 죽은 교회가 아닌 살아있는 교회로 아름답게 세워져 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교회적으로 제자훈련을 3월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상 교회의 우선 목적은 제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가 제자를 세우기 위해서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양육과 훈련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시간과 마음과 몸을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반드시 고난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쁜 삶과 역할들 때문에 고난의 댓가를 지불하면서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는 삶을 살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선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시간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로서 세워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온전히 주님을 위하여 내어드리는 댓가가 필요합니다. 물론 주중에 또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훈련하면서 드려야 할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최소한 일주일에 3시간 정도의 훈련시간의 댓가를 요구하면서 이 시간을 통해서 매주 나의 삶을 점검하고 또한 나의 앞으로 삶을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준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의 제자로 훈련받기 위한 시간을 미리 우선순위로 내어드려야 합니다.
다음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몸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사실 주님을 좇는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이 주님을 위해서 고난받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복을 받기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주와 함께 고난받고 주님의 제자로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가 훈련받으면서 자기를 쳐서 복종하는 삶을 훈련받지 못하면 결코 좁은 문 좁은 길의 주님의 제자로서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먼저 주님을 위하여 고난받는 자리로 나의 몸을 내어드리는 고난의 댓가를 지불하면서 제자훈련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순종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의 믿음은 이론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론적인 믿음은 삶의 적용을 통해서 능력있는 믿음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머리의 믿음은 가슴의 믿음 손발의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순종의 적용을 통해서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말로 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이 삶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순종하는 훈련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반복하는 순종을 통해서 훈련되어질 때에 주님의 제자로서 아름답게 쓰임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
댓가를 지불하면서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하게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은 일하십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 가운데 댓가를 지불하면서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는 교회에서 목장 컨퍼런스를 함께 갖았습니다. 2분의 목자 간증을 통해서 교회 안의 목장 모임의 중요성을 함께 공유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목장 세미나를 통하여 목장 모임의 목적과 사명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목장 설문지를 함께 나누면서 목장에 대한 개인들의 마음을 점검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목장 설문지를 통해서 다양한 분들의 각각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교회 모임의 방향을 조율하는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대부분 목장 설문지를 통해서 가정에서 목장 모임을 갖는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로는 가정에서 모임을 하면서 조금 더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분위기와 형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가정에서 모임으로 인해서 더 개인적인 삶을 더 나누고 알 수 있고 마음을 더 나누면서 교제에 더 집중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성도들의 바램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진정한 교제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마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진정한 교제에 목말라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장 설문지를 통해서 모임을 갖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인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임을 갖을 때에 자신의 집을 오픈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특히 비좁은 공간의 문제, 청소를 해야 하는 문제,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점, 너무 자신의 삶이 노출되는 점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들이었습니다. 교제가 필요하고 분명히 좋지만 또한 교제에 따른 여러 가지 불편한 것들을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여러 가지 가정에서 교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그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서로 조심하면서 만남을 갖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목장을 함께 하면서 갖는 기대감들은 목장 가족공동체로서 서로 교제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더욱 친밀하게 하나되는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특히 서로 관계하면서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는 목장 모임이 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관계는 서로 상호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 함께 노력하면서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목장이 서로 좋은 관계를 갖는 교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잘 참여하여야 할 것입니다. 비록 개인적인 스케쥴이 있어도 조정하여 함께 참여하면서 만날 때에 우리는 서로 관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시대를 겪으면서 교회가 가장 회복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교제입니다. 목장 모임은 가정에서 서로 함께 교제함으로써 멀어졌던 우리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교제의 대안입니다. 2023년 우리 교회의 목장 모임이 마음을 열고 서로 아름답게 교제하는 모임으로 잘 세워져가기를 기도하면서 기대합니다.
최근에 독일 대학교의 심리학자들이 쓴 ‘마음의 법칙’이란 책이 한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51가지 심리학이 소개됩니다. 저자는 심리학의 전문가로서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위해서 어떻게 마음을 갖아야 하는가 주목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이론들은 객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인 결과를 통해서 나온 것이므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술과 자세들은 우리의 마음을 분명히 부분적으로 새롭게 하기도 합니다.
마음을 다루는 심리학과 마음을 말씀하는 성경과는 서로 공유되는 부분도 있고 서로 대립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장 공유되는 것은 심리학과 성경 모두가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공유합니다. 그런데 심리학은 스스로의 자세와 노력으로 마음의 자세를 고치고 새롭게 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고 말씀을 믿음으로 마음이 고쳐질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과연 마음은 인간의 노력이 선행되어져야 고쳐지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되어져야 고쳐지는가? 이것은 지금도 논란거리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다루는 심리학을 통해서 분명하게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현실의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마음의 팩트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죄성의 결과 일반적인 현상들이 나에게도 분명히 일어납니다. 그리고 마음의 해법을 강조하는 심리학적인 방법도 부분적으로 옳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결과를 근거로 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부분적인 기술과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은 결코 고쳐질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찔러 쪼개며 수술합니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고 삶의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일 지속적인 말씀의 묵상은 나의 마음을 지키고 새롭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은혜가 임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비로서 하나님이 창조의 목적대로 바르게 작동됩니다. 묵상의 은혜의 힘은 강합니다. 묵상의 은혜의 힘은 지혜롭습니다. 묵상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을 받은 사람이 세상을 승리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 마음이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충만하여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이기고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더 글로리’ 드라마가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20년 뒤에 어른이 되어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가해자들이 제각기 나이가 들어서 어엿한 성인이 되어 어엿한 직업을 잡고 결혼도 하여 가정을 갖았지만 자기들의 과거 죄에 대해서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고 반성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가해자들에게 피해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철저하게 복수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학교 폭력의 문제를 고발하는 차원을 넘어서 자신의 잘못된 삶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죽은 양심을 고발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드라마에 가해자 중의 하나가 교회을 잘 출석하고 있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출석하지만 자기의 죄에 대해서는 조금도 회개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는 회개없는 기독교의 이중성을 한 여자 가해자를 통해서 고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드라마의 단편적인 모습만이 교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세상에 비친 교회의 모습은 자기 자신의 잘못과 문제점을 솔직하게 회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가해자들은 큰 악의를 갖고 남을 괴롭힌 것이 아닙니다. 그냥 무의식처럼 익숙한 그들의 악습관을 별 고민없이 습관적으로 반복한 것입니다. 그들의 무의식적인 단순한 가해의 행동이 상대방 피해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도 서로 관계하는 가운데 무의식적인 악습관으로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 관계를 깨는 몇가지 무의식적인 악습관의 태도가 있습니다. 첫째, 거절입니다. 다가오는 누군가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둘째, 냉담함입니다. 마음을 열고 관계를 구하는 상대방을 향해서 마음을 열지않고 무심하게 싸늘하게 반응합니다. 셋째, 시기심입니다. 시기심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상대방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넷째, 좁은 마음입니다. 좁은 마음의 사람은 자신만을 앞세우고 남을 포용하지 못합니다. 이런 악습관으로 관계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삶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입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나의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를 구하는 자세입니다. 둘째, 우리는 상한 마음의 상대방을 향해 진심으로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며 사과를 구해야 합니다. 셋째, 진정으로 은혜 안에서 용서하였다면 지난날을 잊고 은혜로 관계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더욱 사랑의 관계로 성숙한 관계로 회복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부터 우리 교회 목장 모임을 가정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매월 가정 모임은 세번 째 주간 가운데 요일과 시간을 정하여 가정에서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쁜 일상 가운데 모든 목장의 멤버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 날 대그룹 예배를 빠지지 않고 모이는 것처럼 목장 모임 또한 우리는 빠지지 않고 함께 모이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목장 모임은 교회 속의 작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 모임인 목장 모임을 통해서 사랑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교회의 좋은 성경적 모델이었던 예루살렘교회는 성전과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특히 가정에서 모임을 통해서 떡을 떼고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날마다 자발적인 가정 모임을 갖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백성들을 사랑한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는 박해와 고난을 이기고 사랑으로 서로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모였던 교회 가정 모임이 약화된 것은 기독교가 소위 국교화가 된 이후부터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면서 교회는 예배당 중심의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서로 가정에서 친밀하게 사랑으로 교제했던 모임이 상실되었습니다. 이제 교회는 먼저 가정에서 친밀한 사랑으로 서로 모여야 합니다.
과연 가정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목장 모임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임의 자리에서 주님은 먼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모여있는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으셨습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닌 동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로써 사랑을 말씀하신 것 뿐 아니라 친히 몸으로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는 것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가정에서 우리가 목장 모임을 갖을 때에 우선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하기로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비록 인간적으로 귀찮고 부담스러운 면이 있지만 내가 몸으로 주님이 먼저 행하시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랑을 우리는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목장 모임을 갖으면서 사랑의 시간을 갖으면 바로 우리가 주님의 한 공동체에 소속된 백성이라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교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교회 공동체 의식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장 모임을 통해서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는 서로 한 교회공동체인 것을 몸으로 경험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장 모임을 통해서 한 공동체임을 확인하면서 더욱 하나님과의 관계와 한 성도들의 모든 관계가 발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모임과 나눔을 통해서 서로 경험되어져야 합니다.
매년 새해가 온 것은 새인생을 살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 온것입니다. 물론 어제의 시간이 오늘의 시간이고 내일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잘 구속하여 인생의 기회로 삼는 것은 우리의 거룩한 습관의 선택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주시면서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엡6: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 여기에서 “세월”의 원어 의미는 “카이로스”입니다. 이것은 “기회”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아끼라” 원어의 의미는 “구속하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이 기회가 되도록 잘 구속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의 예수님은 시간의 우선순위를 따라 사셨고 승리하셨습니다. 바울도 주어진 시간을 우선순위로 선용하여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시간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합니다. 항상 시간은 일정한 분량입니다. 하루 24시간의 시간은 누구에게든 공평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몫은 우리 개인의 몫입니다. 과연 우선 순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이땅에서 바쁘고 힘든 삶을 사셨던 주님은 시간의 우선순위를 먼저 하나님과 관계하는 일에 두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루의 우선순위를 먼저 기도하는 일에 두었습니다. 막1:35 “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그리스도인의 우선 순위는 매일 잘 실천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우선순위가 매일 적용되기 위해서는 매일 잠에서 일찍 일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피곤한 일상 가운데 잠에서 스스로를 깨우는 일은 의지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피곤한 몸을 의지로 깨울 때에는 3일을 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새벽에 기도하는 일이 힘든 이유는 단지 피곤함과 분주함이 원인이 아닙니다. 모든 우리의 몸을 깨우고 움직이는 것은 믿음이고 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는 우선순위의 믿음이 나를 깨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선 만나 교제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꿈이 될 때에 우리는 몸을 깨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마음의 가치의 순위대로 정해지게 됩니다. 내삶이 매일 새벽을 깨워서 하나님의 매일 새롭게 만나는 기도로 채워지는 새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우선 순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를 하는 것으로 새벽을 깨우는 것은 계속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꿈을 좇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중보기도의 꿈이 있어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굳이 새벽에 시간을 정해서 특정한 장소에 가서 기도했습니까?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새벽을 깨우면서 하나님의 꿈을 따라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 우리의 삶은 천국을 경험합니다. 무엇보다도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면서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새해에는 기도를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의 은혜를 맛보아 아는 복된 삶이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새해에는 주님의 새 일을 더욱 보게 하소서
이스라엘에게 꿈꾸던 시온의 새 일을 보게 하신 것처럼
위대한 주의 새 일을 보게 하소서
젖뗀 아이같은 사람을 보게 하소서
에덴 동산같은 교회를 보게 하소서
새해에는 꿈꾸는 것같은 새 일을 행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소서
선한 목자로 양떼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새해에는 주의 인도를 더욱 보게 하소서
어둠의 홍해같은 세상에서 주의 인도를 보게 하소서
뜨거운 광야같은 세상에서 주의 인도를 보게 하소서
절망의 인생에서 소망을 보게 하소서
포기의 마음에서 도전을 보게 하소서
새해에는 기적같은 기쁨의 날들을 행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더욱 누리게 하소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
새해에는 주의 능력을 더욱 보게 하소서
우상의 더러운 세상에서 주의 능력을 보게 하소서
욕심의 치열한 싸움터에서 주의 능력을 보게 하소서
패배의 인생에서 승리를 보게 하소서
두려움의 인생에서 담대함을 보게 하소서
새해에는 독수리같이 비상하는 날들을 행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더욱 맛보게 하소서
깊은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돌보시는 하나님
새해에는 주의 은혜를 더욱 보게 하소서
상처의 아픔을 만지시는 주의 은혜를 보게 하소서
무너진 관계를 돋우시는 주의 은혜를 보게 하소서
좁은 강 같은 인생에서 바다같은 삶을 보게 하소서
깨어진 그릇같은 삶이 온전하게 회복됨을 보게 하소서
새해에는 물댄동산같은 삶을 베푸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