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주간의 한국 방문의 모든 시간들은 한국을 온 몸으로 경험하면서 힐링이 되는 좋은 추억의 시간이었습니다. 반복되는 미국의 일상을 벗어나서 모처럼 한국에서의 시간은 긴장을 풀고 모든 삶의 짐에서 벗어난 다른 자유를 경험하는 기회였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나고 보고 싶었던 것도 보고 또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을 먹고 체험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양하게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왠지 또한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드는 불편함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 중에 만난 어머니와의 만남은 한편으로는 기쁨이기도 했지만 슬픔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고령의 어머니는 치매 증상으로 인해서 교제가 어려웠습니다. 모처럼 만난 아들과 과거의 제한된 추억 가운데 교제를 갖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랫만에 만난 며느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여서 대하시고 반복적인 말만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미 미국에 있을 때에 전화 대화가 어려웠기 때문에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치매 증상은 심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의 일상의 삶은 무난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다소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국 방문 시간 동안 과거에 시무했던 교회들을 아내와 조용하게 방문했습니다. 첫번째 담임교역자로 시무했던 시골 교회는 힘들고 어려운 시골 환경이지만 여전히 잘 세워져 가고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두번째 시무했던 모교회는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대식으로 잘 세운 교회 건물과 더불어 지역의 대표적인 교회가 되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세번째 시무했던 교회는 비록 외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여전히 성장하는 가운데 잘 세워져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이전의 교회를 둘러보면서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시한번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동안 다양한 한국음식을 경험하면서 나는 찐한국인이라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한국의 맛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오직 한국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한국 토종의 맛들을 체험하는 기회였습니다. 특히 물회와 생선찜들의 음식은 과거 기억을 배신하지 않는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주로 먹었던 순두부 그리고 콩나물해장국과 같은 음식들은 여전히 과거의 맛을 기분 좋게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보다 더욱 활성화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맛은 미국이상의 퀄리티의 맛이었습니다. 음식에 다소 냉정한 편이었던 나에게도 한국의 음식맛을 맛보면서 모처럼 힐링과 더불어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여정의 한국 방문시간이었지만 반복되는 미국 일상을 떠나서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소중한 조국을 다시한번 경험하는 즐거운 인생 기회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시한번 나에게 조국인 한국이 있음을 감사하며 앞으로 조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 더욱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면서 젊은날 고향에서 보냈던 과거 기억이 소환되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나의 젊은 20대 후반 시절 나는 영월 고향 교회의 교육전도사 사역을 하던 중에 의료원의 간호사였던 아내를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에 주중에는 신학대학원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토요일과 주일에는 교회 사역을 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영월에서의 기억을 돌아보면 공부 시간도 부족하고 재정도 부족하고 특히 잠이 부족해서 너무도 힘든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때 그 시간이 가장 열정과 꿈이 넘쳤던 은혜의 시간 이었고 평생의 목회자로서 살 수 있었던 기본기를 연단받았던 언약의 시간이었습니다.

신학대학원 졸업식을 앞두고 나는 고향 영월의 작은 시골교회의 담임전도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강권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어느날 담임목사님이 시골 면소재지의 수요예배 설교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름 후에 나는 작은 면소재지 시골교회의 담임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아직 목회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순종함으로 목회에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회의 현장에서 많은 경험과 훈련을 통해서 목회자로 세워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나는 이 모든 것이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 목회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가장 훌륭한 배움은 시골 교회를 통한 사역의 현장에서 보고 깨닫는 언약의 시간이었습니다.

시골교회 전도사의 자리에서 강도사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에 나는 부목사로 훈련을 받고 이번에는 고향 모교회 담임목사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학창시절과 교육전도사 시절을 보냈던 고향교회에서 담임목사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도 무거운 압박감이었습니다. 그러나 6년 동안 교회가 담임목사가 부재한 가운데 도저히 교회 요청을 거부할 수 없어서 담임목사의 부름에 순종했습니다. 30대 중반에 고향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나는 철저하게 나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목회자로서 자신을 더욱 복종하고 훈련해야 함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돌아보면 그 무거운 사명의 자리를 버티고 순종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바라는 언약의 시간이었습니다 .

모처럼 한국을 방문하고 고향 영월을 방문하면서 나의 목회의 20대 그리고 30대를 돌아보면서 하나님 그 크신 섭리의 은혜를 돌아보는 기회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결정과 시간들은 우연처럼 보여지는 필연적인 하나님 섭리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들을 언약의 시간을 따라 목적을 갖고 인도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십니다. 물론 매순간 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많은 경우 나중에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나의 삶에 대한 언약의 목적을 갖고 언약의 시간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매 순간 마다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뉴욕을 출발한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 약 보름 간의 한국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 또 느끼는 것은 아직도 나는 한국의 정서가 더 많은 토종 한국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공항을 나와서 오랫만에 맡는 한국땅의 독특한 냄새를 맡으면서 나의 마음은 평안하였습니다. 공항 택시를 타고 도로를 달리면서 익숙했던 한국의 거리 풍경을 보면서 마치 매일 보았던 풍경처럼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거리에 오가는 나와 같은 대부분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의 경계심도 없이 자유함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서울날씨는 눈과 추위 기상특보가 발표된 상황이었습니다. 첫날도 둘째날도 냉동고의 추위였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온통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꺼운 점퍼로 무장하고 다녔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경험하였던 추위와는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과거에 경험했던 한국에서의 추위였기 때문에 모처럼 한국의 매서운 추위의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도 그렇지만 한국은 더 분명한 사계절이 있어서 좋습니다.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이지만 날씨부터 모든 것이 빠르고 다양한 변화가 있는 나라입니다.

서울에 숙소로 준비한 에어비엔비는 새롭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 호텔과 같은 숙소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더 자유롭고 편안했습니다. 현대식으로 잘 준비된 숙소 내부의 시설은 오히려 호텔이상으로 모든 필요를 해결하면서 가격은 오히려 더 저렴해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숙소 근처에 위치한 한국 식당의 다양한 메뉴의 식사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숙소 근처에 위치한 한국 병원을 이용할 수 있어서 자가용이 없는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한국은 살아가기에는 좋은 시스템의 나라입니다.

모처럼 한국에서 맛보는 한국음식은 미국의 한인식당에서 맛보는 맛과 좀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첫음식은 설렁탕이었습니다. 구글의 리뷰를 보고 선택한 지역의 맛집이었습니다. 담백하고 시원한 김치맛과 더불어 깔끔한 국물과 비린내가 전혀 없는 고기맛이 넘 좋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좀처럼 이용하기 힘든 한국의 사우나를 경험하면서 오랫만에 갖아보는 시원한 목욕의 기쁨을 경험하였습니다. 모처럼 한국에서 경험하는 일상은 새로운 힐링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일상을 벗어난 한국에서의 오랫만의 다양한 경험은 다른 힐링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나의 인생의 50대가 넘어가면서 삶의 새로운 습관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동안 사소하게 여기고 무시하던 것들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갖고 나의 삶의 습관으로 길들이기를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삶의 습관이 지금까지 아내의 일이라고 여겼던 청소, 설거지, 쓰레기 정리, 빨래하기 등의 일들입니다. 50대 이전까지는 이런 일들과는 담을 쌓고 오직 성경과 독서와 나의 삶에 집중했던 가정에서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50대에 새로운 삶의 습관이 가능했던 이유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찾았기 때문입니다.

변화하기 이전의 나의 과거의 삶 가운데 청소하는 일, 설거지 하는 일, 빨래하는 일, 쓰레기를 버리는 일들은 좋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그 일들을 무가치한 의미로 여겼습니다. 내가 하는 묵상, 기도, 독서를 통한 의미보다는 이 일들은 너무도 가치가 없었으므로 나의 삶의 우선순위의 선택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모든 일을 믿음으로 주를 위하여 할 때에 그 일이 거룩한 일이 될 수 있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하여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새로운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설거지를 할 때에 더러운 그릇이 깨끗한 그릇으로 변하는 모습가운데 마음의 기쁨이 만들어지고 더러운 곳이 깨끗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서 마음의 감사가 만들어지는 의미를 갖으면서 새로운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저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삶을 역기능으로 인도하고 삶을 더 변명하게 만들면서 정체하게 하고 심지어는 퇴행하게 합니다. 성경을 못 읽는 이유가 있고 기도를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배에 늦은 이유가 있고 봉사를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집에서 청소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고 지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평생 우리는 그 이유가 말하는 의미를 붙들고 그 의미대로 인생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제 잘못된 삶의 습관들에 대해서는 이유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감정대로 내 생각대로 좇았던 삶을 거부하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에 대해서 우리는 새롭게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가치를 붙들고 의미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바른 가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의미를 붙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더욱 고민하면서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주신 지금 나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우리가 할 수 있고 그 새로운 삶을 도전하면서 우리는 더욱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새로운 삶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진리의 빛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마음을 비추고 그 주신 의미를 가치로 여기고 새롭게 도전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1월 20일에는 미국의 47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취임식의 여러 가지 정책 선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식적으로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별이 존재한다” 내용이었습니다. “여권 비자 입국카드를 포함한 모든 신분 확인 서류에서 성별은 남자와 여자만으로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트랜스젠더나 성전환자들의 주관적 성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3의 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남성과 여성 2개의 성별만 존재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모든 인종과 젠더를 공공 생활과 사생활에서 인정하고 주입하려고 했던 모든 정책을 포기하는 선언이 되었습니다.

트럼프의 남성 여성만을 인정하는 양성 선언은 성경의 하나님의 선언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미국은 남성과 여성외에 제3의 성을 인정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남성과 여성의 선언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정책은 성소수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에 성경의 내용을 부인하고 제3의 성을 주장하는 성소수자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정책을 통해서 성경을 부인하였습니다. 이런 미국의 정책을 따라서 미국의 교단인 미국 감리교(UMC) 미국 장로교(PCUSA, RCA) 등에서도 동성애자들의 결혼과 안수를 허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절대 권위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시점에 남성과 여성의 두성만을 인정하는 미국의 정책은 교회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 믿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종교다원주의시대를 맞아서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하고 심지어는 성경까지도 상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종교다원주의 시대의 교회들이 성경을 상대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을 상대적으로 인정하고 해석하는 것은 결국 패망의 길입니다. 지금까지 동성애를 인정하는 미국 교회들의 어리석고 미련한 선택은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포장되어 주장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성경의 절대 권위를 부인하고 진리의 길에서 벗어날 때에 세상 나라의 대통령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회복하고 보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감사하면서도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을 더욱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성경을 절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시간과 문화를 초월한 초문화적인 진리입니다. 교회는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는 먼저 우리 개인의 삶 가운데 무오한 성경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삶의 기준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성경의 원칙 아래에 세워져가는 성경중심의 가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공동체가 무오한 성경 말씀이 기준이 되어 교회는 성경의 원칙 아래에 세워져야 합니다. 지금 교회는 인본주의, 세속주의, 상대주의와 같은 시대 사조를 단호하게 버려야 합니다. 오직 성경을 기준으로 신본주의 신앙과 삶의 선택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더욱 성경 무오에 대한 바른 믿음으로 세워져가는 성경중심의 교회공동체로 세상 가운데 세워져 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가장 필요한 습관이 있다면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순종을 통해서 주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이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번 두 번은 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묵상을 순종하고 지속적으로 기도를 순종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변화를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지속적인 순종을 위해서는 그동안 반복하여 순종을 가로막던 우리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지속적인 순종을 위하여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먼저 지속적인 순종을 가로막는 가장 장애물은 부정적인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는 순종에 대하여 거부하고 무시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려고 했던 마음처럼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안티의 마음이 있습니다. 먼저 부정적인 마음을 버리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우리의 삶이 변화가 없고 순종이 힘든 이유는 바로 순종에 대해서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고 하는 새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음 순종을 위해서 작은 목표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도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일 성경 1장 읽기 매일 10분 기도하기등 작은 목표를 세워서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작은 목표를 통해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갖고 도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작은 목표를 반복하여 성취함으로써 변화하는 자신을 도전하는 것입니다. 먼저 영적으로 돌보고 가꾸기 위해서 작은 도전을 반복하여 갖을 때에 결국 내안에 새롭게 변화가 나타나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을 지속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의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보통 우리는 사람들이 보는 관점의 화끈하게 이루어내는 일에 열광하곤 합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은 대부분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도 잘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때로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지속적으로 순종하며 조급한 사람의 생각을 내려놓을 때에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순종을 지속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복종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몸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이론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분주하고 바쁜 삶 가운데 우리의 몸은 세상적으로 흘러가기 너무 쉽습니다. 그때에 먼저 생각을 잘 다스려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위해서 나의 몸을 그 하나님의 뜻대로 내어드려야 합니다. 특히 묵상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새로운 삶을 살기를 결단하였다면 몸을 쳐서 순종의 삶으로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내 몸을 쳐서 순종의 자리로 내어드리는 반복적인 삶이 결국 나를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2025년 한해를 살아가면서 주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서 순종하는 삶의 목표를 세우고 우리의 마음과 몸을 온전하게 내어드리며 지속적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쁘게 경험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한해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우선일까? 대부분 한해를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비전을 향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열심히 시간을 사용하여서 무언가를 세상에서 이루어내는 결과를 만드는 것을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기준일 수 있고 또한 나의 기준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이루고 더 소유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원하는 우선적인 삶은 소유에 있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선적인 삶에 대한 소원은 거룩입니다.

요즘 새벽마다 묵상하는 여호수아서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먼저 원하는 것은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 개인에게서도 거룩을 먼저 원하시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해서 먼저 거룩을 원하셨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가나안의 땅을 소유하는 것이고 그 땅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철저하게 거룩을 기준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거룩을 제한하고 깨는 더러운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하시고 징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하나님이 먼저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개인적인 삶, 교회 공동체를 향하신 뜻은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십자가의 거룩한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하시고 또한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를 믿는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하여 기대하시는 것도 거룩입니다.

먼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음 가운데 생각이 거룩해야 합니다. 마음의 생각 가운데 부정하고 더러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미움과 시기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에 대한 탐심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 마음의 생각이 거룩할 때에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생각이 더러운 가운데 있도록 허용할 때에 성령님을 소멸하고 마귀의 도구가 되고 세상에 속한 미련하고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각을 하도록 우리를 훈련하고 세워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룩하지 못한 생각에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생각을 거룩하게 지켜가는 삶의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말과 행함의 거룩이 필요합니다. 가장 우리의 거룩을 위해서 날마다 결단해야 할 것이 입술의 말의 거룩입니다. 말은 지금 이 땅에서 우리의 영성의 현주소를 가장 경험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더럽고 악하고 부정적인 말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한번 나쁘고 더러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반복적으로 계속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말의 거룩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몸의 행함 가운데 습관의 거룩이 필요합니다. 거룩하지 못한 삶의 행동이 있다면 결단하고 끓어야 합니다. 습관적인 게임, 도박, 거친 운전, 담배 피우기와 술을 마시는 습관 등과 같은 것들 결단하고 끓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몸과 삶이 먼저 구별되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한해동안 하나님 앞에서 먼저 거룩하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뻐하시고 영광이 나타납니다. 내가 무엇을 행하는 Doing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Being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거룩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과 승리를 경험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2025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또 새로운 한해를 도전하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의 바른 자세입니다. 경주의 출발선상에 도열한 선수처럼 최선을 다해서 경주를 달리기 위한 최선의 바른 마음을 갖고 한해를 향해 도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과거의 삶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새해에 대한 꿈과 목표를 갖고 새롭게 도전하는 열정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올해 우리 교회는 ‘첫사랑을 회복하는 교회’라고 하는 표어를 갖고 더욱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하며 도전하는 한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 공동체를 넘어서 가정과 개인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사랑의 장성한 분량에 더욱 이르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올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더욱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는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일대일의 지속적인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면서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일정한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리고 그 말씀에 기초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알아갈 수 있습니다. 한해동안 먼저 마음을 다해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관계하면서 그 사랑을 알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다음, 올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욱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는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첫만남의 설레임이 다시 살아가는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뒤에 있는 모든 상처들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맡기고 오직 겸손하게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대부분 관계가 깨어지게 된 것은 우리는 조심성이 없고 무례함으로 자기 중심적인 조급함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기대가 너무 크고 앞선 만큼 결국 절제되지 못하는 언어와 마음으로 쉽게 상대방과 관계하다가 쉽게 상처를 받곤 합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좀 나의 기대를 내려놓고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의 틀을 내려놓고 주님의 기준대로 포용하며 받아주는 넉넉한 사랑의 마음을 회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올해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더욱 내려놓음을 통해서 더 넓은 마음을 키우고 회복하는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너무 우리는 나의 생각으로 가득차 자기 왕국을 세워가려고 합니다. 그 결과 다름의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의 고정 관념의 노예가 되곤 합니다. 끓임 없는 독서와 공부로 자신을 개발하지 못하면 우리는 자기 독단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너무 큽니다. 특히 인생의 후반기로 갈수록 마음을 키우지 못하면 결국 괴팍한 인생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너무 큽니다. 먼저 내 안의 나와 우리는 화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새롭게 무장하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새해를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주님의 제자의 삶으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귀한 한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인생은 결국 관계입니다. 새해에는 인생의 가장 기본이 되는 3가지 관계가 사랑으로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가 온전한 사랑의 관계로 회복되어서 복되고 즐거운 한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인생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마무리를 잘 하는 것입니다. 시험도 마무리를 잘할 때에 좋은 성적을 냅니다. 일도 마무리를 잘 할 때에 좋은 결과를 냅니다. 교회 봉사도 마무리를 잘 할 때에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관계도 마무리를 잘 할 때에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부 지간의 삶도 노년의 마무리를 잘할 때에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통하여 신앙의 공동체 생활도 마무리를 잘 할때에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믿음에 깨어있는 사람들 중에는 마무리를 잘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인생의 순간까지 믿음의 마무리를 위하여 전심전력하며 아름답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마무리가 아름다운 사람은 마음을 지키는 사람입니니다. 인생의 출발은 마음에서 시작하여 마음에서 마무리가 됩니다. 마음을 지키는 사람은 마음이 넓고 크고 풍성합니다. 지난 1년동안 매일 가장 힘쓴 것이 있다면 마음을 지키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마음을 지켜내기 위해서 먼저 자기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더럽고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매일 집의 쓰레기를 청소하듯이 마음의 쓰레기를 먼저 비워야 마음을 아름답게 지킵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버리고 주의 생각을 지속적으로 품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버리고 주의 마음을 갖기를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을 지키는 일은 마치 한올 한올 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오직 마음을 지키고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마무리가 아름다운 사람은 신실한 사람입니다. 신실한 사람은 반복을 잘 합니다. 무엇보다도 신실하신 하나님과의 일정한 관계의 반복의 시간을 잘 갖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신실함의 무기인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관계하는 사람은 일관성있게 꾸준함으로 모든 삶의 발란스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신실한 사람은 결코 세상에 무릎꿇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봅니다. 때로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일이 일어나더라도 오직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이겨냅니다. 감정에 요동치지 않고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고 주의 신실함을 경험하면 삶의 자리를 지키고 평상의 삶을 아름답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난 1년동안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묵상 가운데 생각을 지키고 기도가운데 갈길을 인도하여 주심으로 매일이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생은 마무리가 아름답습니다.

마무리가 아름다운 사람은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인내는 모든 삶을 이기게 하는 최고의 능력입니다. 죄로 인한 인간의 부패한 자기의는 너무도 조급하여서 기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시는 시간은 오랜 기다림이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시간도 기다림의 시간들입니다. 오직 주님의 일하심은 참는 사람만이 그 약속의 성취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직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일하심을 믿고 그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인내합니다. 모든 삶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맡기는 사람이 인내합니다. 한해동안 삶은 인내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믿고 인내하며 아름다운 마무리의 삶이 복된 인생입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 또 연습하고 연습해야 할 것은 인생의 자세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날마다 마음을 훈련하면서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인내하면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성탄절을 맞아 거리마다 집마다 교회마다 아름다운 장식들이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우리 교회도 아름다운 불빛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우리 마음을 밝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분명히 눈에 보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전쟁의 소식과 높은 물가와 답답하고 갑갑한 세상 나라의 정치이야기로 어둡던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고 밝게 해주는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라디오에서 울려 나오는 크리스마스 노래들은 우리의 마음을 안정되게하고 기쁘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노래를 통해서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오심의 의미를 더욱 생각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며 우리가 받은 구원의 선물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를 더욱 깨닫는 시간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죄로부터 용서와 더불어 그 죄의 지배를 벗어나는 자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인간 최대의 복입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죄의 유혹과 힘으로부터 오는 불완전함의 삶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죄를 이기면서 날마다 구원받은 새사람의 삶을 사는 것은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우리 인생의 최대의 복이 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우리 삶의 최고의 관계를 아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삶의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세상은 점저 더 어두워져가고 있습니다. 올 한해도 세상은 그 어떤 해보다도 전쟁으로 영혼이 더 어두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경제가 발달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많아지고 영혼의 세계는 더 어두워지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21세기 현대의 세상에도 더욱 필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미 예수님은 2천년전에 오실 때에 빛으로 오셔서 어둠의 세상에 갇힌 자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더욱 더 어두워지는 세상의 어둠 가운데 예수님만이 기쁨과 소망의 비전을 갖게 하십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경험되도록 마음을 비우고 간절하게 구해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우리들의 삶의 무게는 더욱 더해지면서 우리의 마음의 높이도 더 높아져갈 수 있습니다. 올해도 살아온 한해의 부담의 무게만큼 지치고 상하고 높아진 우리들 마음은 더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높은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낮고 천한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히 낮아짐의 삶을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올해도 성탄절을 맞이하며 우리는 마음을 다해 주님의 낮아짐을 배워야 합니다. 물질과 지식과 상처로 높아진 우리 마음이 돌아가야 할 곳은 예수님이십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마음이 더 낮아질 때에 주님이 통치하시는 하늘나라의 평강을 체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며 구원의 기쁨과 더불어 주님으로 말미암는 삶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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