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제자훈련을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그동안 훈련일정에 자원하여 참여하여 모든 과정을 마친 한분 한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특히 8주간 매주간마다 최소한 3시간 이상 훈련을 위해서 시간과 몸을 내어 참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스케쥴인데 모두가 잘 감당하였습니다. 주중에 낮시간에 직장이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제대로 저녁도 먹지 못하고 참여하는 힘든 훈련 스케줄이지만 잘 극복하였습니다.무엇보다도 요절 암송, 매일 묵상, 독후감, 과제 예습, 설교 요약등 만만치 않은 훈련 과정의 고난의 대가를 잘 이겨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은 훈련 과정도 중요하지만 훈련 이후에 제자도의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성경에서는 제자라는 용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소개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제자라는 단어는 일정한 업종의 학생이나 일정한 직업의 도제에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에 제자는 일종의 선생에게 배우는 학생이거나 일정한 직업의 기술을 배우는 자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당시의 세상적인 개념의 제자라는 뜻과 구별되게 적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12명의 제자를 부르셨고 그들을 훈련하셨고 제자도의 삶을 살기를 기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제자도는 단지 12명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기준입니다.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제자도는 당시 세상의 제자들과는 구별되는 제자도를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제자도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주님이 기대하시는 일은 자기 부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기 길을 가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가 바로 주님의 제자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주인 되어 내마음대로 주장되어 살던 삶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철저하게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스스로 옳다고 여기면서 교만하게 내가 주인 되었던 나의 삶을 먼저 주님에게 맡기고 주님의 뜻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제자도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죄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통해서 반복하여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모든 과제물은 순종을 위한 훈련이었습니다. 이제 제자훈련을 마치고 나서 숙제로 배운 순종의 삶이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발적인 순종의 삶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행하는 자들입니다. 결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마음과 삶에서 의식하면서 순종을 통해서 주의 제자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자들입니다.

제자훈련 그 이후에 점점 제자도의 삶을 사는 자들이 더해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의 모든 제자훈련 과정이 형식적인 시간이 아닌 진정한 주님의 제자도를 배우고 변화되어져가는 아름다운 열매들을 더욱 맺기를 기대합니다.

미국의 새로운 리더로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되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까지 여론 조사는 박빙 선거를 예측했지만 결과는 의외로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의 압승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결론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국민들의 민심의 결과였습니다. 많은 패널들이 트럼프의 승리가 경제와 이민정책과 같은 것들에서 너무 민심을 거스르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약자들의 권리에만 집중하여 동성애, 낙태와 같은 문제들을 풀어나가려고 했던 민주당의 정책들이 다수의 국민들의 민심을 얻지 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는 대통령 뿐 아니라 하원과 상원 미국 의회도 공화당이 독점하게 된 것을 보면 그동안 지켜보던 민심이 폭발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 살면서 몇 번의 선거를 지켜보았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마치 시소게임을 보는듯합니다. 민주당이 한번 집권하면 다음에는 공화당이 집권을 하는 양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도 그렇듯이 미국의 경우에도 지역별로 도시별로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아주 뚜렷한 양상이 보입니다. 주로 동북부 주와 도시들 그리고 미국 서쪽의 도시와 주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바이블벨트를 중심으로 한 중남부도시들은 대부분 공화당을 지지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에는 그동안 보여왔던 일반적인 패턴들이 좀 무너지기도 한 것이 독특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정한 정치색을 추구합니다. 이렇게 정당지지도의 일정한 패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넓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치는 믿음보다 더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신앙의 가치 위에 선 나라 미국이 점점 성경과 멀어지고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점점 미국 교회들이 동성애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미 스타벅스, 판네라 같은 공공 장소에서는 더 이상 남성 여성의 표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동성애를 찬성하는 교회들은 그것을 공공연하게 자랑하듯이 무지개깃발을 교회당 앞에 당당하게 내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T.V 쇼나 광고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자랑스럽게 출연하고 그것이 어떤 문제가 될 수 없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공립학교의 교과서에서 아이들에게 노골적인 동성애 관련 내용이 가르쳐진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미국은 더욱 많은 기도가 필요한 나라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미국의 장점은 다양성이라고 꼽고 싶습니다. 다양한 민족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삶을 살기에 미국은 좋은 나라입니다.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추구할 때에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서 도전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기본적인 미국이라는 나라의 바탕은 성실하게 노력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다양한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인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를 보면서 더욱 느끼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아직도 여자대통령이 뽑히는 것에 대해서는 또 쉽게 허락하지 않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면이 많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세계경찰국가로서 세계평화와 질서를 감당하는 나라로 세워져가는 나라인 것을 분명합니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하나님의 많은 복을 받은 나라인 것을 봅니다. 앞으로도 미국이 하나님의 복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하나님 말씀의 기준 위에 세워져가며 세계 역사에 아름답게 쓰임받고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10월 마지막 목요일 저녁에는 교회에서 홀리 윈 나잇 행사를 갖았습니다. 세상 문화인 할로 윈 데이를 거부하고 우리의 교회학교 어린자녀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거룩을 위한 구별된 시간을 공동체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교회당으로 초대되어온 모든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예배하고 함께 즐거운 교제와 나눔을 갖음으로써 세상 문화와 구별되고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서 살도록 거룩을 훈련하는 귀한 기회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거룩을 함께 훈련하기 위해서 시간과 몸을 내어서 다음 세대를 섬겨주신 교회의 거룩한 일꾼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올해는 우리 교회 중심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제한적으로 초대하여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을 위한 교제와 훈련의 공동체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세상의 교회가 먼저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뜻은 세상에서 거룩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훈련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처럼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거룩한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모이게 하시고 거룩한 성화를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의 우선적인 의미는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마음에 믿음으로 새생명을 얻게 하시어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거룩의 씨를 이미 마음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믿는 자의 마음 가운데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믿는자들의 모임인 교회공동체를 통하여 함께 거룩을 훈련하고 연습하면서 거룩을 이루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함께 교회공동체를 경험하면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가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가 먼저 훈련해야 할 거룩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삶입니다.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 세상에 임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우선적인 은혜와 복음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닮은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지배하는 거룩한 마음은 세상을 본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통치를 순종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살게 됩니다. 세상의 헛된 정욕과 야망에 요동치지 않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온전한 마음으로 살게 합니다. 우리는 함께 교회공동체의 시간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마음을 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세상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거룩한 사명을 훈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과 행실의 삶의 방식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을 등불처럼 밝히고 부패한 세상을 소금처럼 썩지 않도록 보전하고 새롭게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구별되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온 천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구별되게 더욱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 실천해야 합니다. 또 교회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거룩한 사명을 갖고 세상의 학교와 일터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로서 항상 거룩으로 무장하여 거룩한 주의 마음을 품고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거룩한 사명을 온전하게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에베소서(Ephesians) 4:25 – 32

이종서 목사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일은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념하여 교회들이 지키는 기념일입니다. 그 당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질문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의롭지 못한 인간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루터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많은 행위를 동원하였지만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는 그 답을 위해서 성경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답을 성경 롬1:17에서 찾았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성경이었습니다.

루터가 깨달은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하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루터는 이 진리를 깨닫고 카톨릭의 부정한 모든 행위에 대항하여 개혁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루터의 개혁을 위하여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부흥으로 말미암은 자기 개혁이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마음의 부흥은 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과 방망이처럼 믿는 자들의 마음에 새힘과 능력을 주어서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습니다. 당시에 루터의 카톨릭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은 루터가 말씀에 포로가 된 결과였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개혁운동이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에 카톨릭의 부패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철저한 영적 타락에 근거했습니다. 당시에 사제들은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믿는 것보다 헛된 고행과 기도와 금식같은 인간의 행위의 의를 자랑하고 강조함으로써 결국 교회를 더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의인 복음을 강조할때에 교회는 개혁되고 회복되었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회복되고 개혁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성경대로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헛된 공로와 의를 앞세우는 것들을 버리고 오직 성경대로 하나님의 의를 믿는 일입니다. 교회가 다시 카톨릭처럼 인간의 의를 자랑하고 앞세우는 순간 교회는 카톨릭의 부패를 반복하는 일일 것입니다.

지금 21세기 교회는 과거 종교개혁시기의 카톨릭만큼이나 여러 가지 부패와 타락으로 인한 위기가 있습니다. 지금 교회가 필요한 것은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성경대로 믿고 영적으로 개혁을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이땅에 이루어내는 개혁의 증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얼마전 한국축구가 월드컵 예선전에서 이라크에게 승리했습니다. 그 경기에 앞서 많은 한국의 축구팬들은 한국의 간판 공격수 손흥민이 빠진 한국팀에 대해서 경기력에 대해서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 투입된 어린 선수들은 기대 이상으로 경기를 잘하고 결국 골을 넣음으로써 모든 근심이 기우였음을 증명했습니다. 스포츠와 같이 몸을 바탕으로 하는 체력 운동은 경기력 지배를 위해서 젊고 건강한 선수들을 투입해야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국가대표팀과 같은 경우의 리더들은 팀을 위해서 세대교체를 잘 준비하고 때가 되면 과감하게 선택을 하는 모험적인 리더쉽이 필요합니다.

교회도 스포츠의 팀과 같이 젊은 일꾼으로 적절한 세대교체가 필요합니다. 특히 교회 현장에서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의 경우에는 모든 면에 있어서 영육이 애를 쓰고 수고하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영육이 건강한 젊은 사람들이 금상첨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교회의 경우에 20대에는 공부와 취직 준비 그리고 30-40대는 아이 양육에 집중하는 문제 때문에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관계로 교회에서 함께 팀을 이루어서 사역을 하는 경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교회의 경우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나이인 50대 이상의 경우가 되어서 교회가 섬김의 사역을 위해서 팀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더욱 활력있게 세워져가기 위해서는 더 젊은 일꾼들이 역동성을 갖고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교회가 눈으로 보여지는 주의 일들을 위해서 더 젊은 일꾼들이 참여하고 중심이 되도록 도전해야 합니다. 물론 교회적으로 더 많은 경험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안정적인 사역도 중요하지만 비록 지금은 부족하지만 젊은 일꾼들에게 기회를 주고 교회가 더 주의 나라를 위해서 도전하는 기회를 갖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경험이 많은 시니어들은 눈에 보이는 사역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물려주지만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도의 자리와 영적인 영역의 자리와 같은 곳에서 묵묵히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가운데 변화를 주도하고 역동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젊어지기를 함께 결단해야 합니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한해를 돌아보면서 새해의 새로운 교회를 향하여 여러 가지 사역을 준비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담임목사 뿐 아니라 모든 교회가 함께 그 방향을 위해서 마음을 모으고 함께 선택해야 합니다. 내년도에는 더욱 젊은 일꾼들이 교회의 중심적인 사역을 하면서 교회를 더 젊게 세워가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년도에는 교회공동체적으로 더 젊고 활력있는 일꾼들이 공동체를 위해서 세워지기를 준비하며 기도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더 젊은 일꾼들이 교회를 세우는 중심이 되어서 변화를 이루고 더욱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도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는 교회의 핵심 사역자들이 함께 모여서 사역을 평가하고 준비하는 사역자 모임을 했습니다. 모든 교회 사역자들이 함께 모여서 지나간 교회 사역을 평가하고 앞으로 해야 하는 교회 사역을 함께 준비하는 시간을 갖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역자 모임을 하는 이유는 주관적인 사역이 되지 않고 객관성을 함께 나누고 공동체 교회를 유익하게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사역자 서로를 격려하기도 하고 사역자 각자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역을 얼마나 잘하는가 못하는가 능력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역자들은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세를 갖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역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자원하는 동기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발적으로 소원함을 갖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도록 자원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자원하는 마음을 갖고 사역의 자리로 나갈 때에 하나님이 능력을 주심으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고 그 결과 사역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자원하는 목회자는 고난 중에서도 목회 사역을 능력으로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교회 직분자들의 경우에 누가 시켜서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마음으로 자원하여 섬김을 감당할 때에 주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사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원하는 자세는 오직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회가 되어 사역의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교회 사역자들은 팀웍을 이루는 하나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팀웍을 위해서 나와 다른 사역자를 수용하고 그 사역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사역을 인정하기 위해서 서로에 대해서 경쟁 의식을 갖아서는 안됩니다. 마치 우리 몸의 모든 지체가 모두 귀하듯이 우리의 모든 지체의 모든 사역이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높여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때로 나와 맞지 않아도 인정하고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 팀웍을 이루는 다양한 사역자들의 사역을 통해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 팀웍을 이루는 사역을 통해 우리는 더욱 주님을 닮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사역자들은 하나님이 공급하신 은혜로 사역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은혜의 힘으로 하는 사역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님을 드러내는 사역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은혜의 사역이 되면 모든 사역의 자리에서 은혜의 힘으로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사역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무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핵심 사역에 선 일꾼일수록 더욱 묵상이 필요합니다. 더욱 기도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더욱 은혜의 힘에 의해 사역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은혜로 무장되는 삶이 없으면 사역자가 가장 먼저 사소한 것들에 의해 실족할 수 있습니다. 은혜의 사역자들을 통해서 교회는 더욱 은혜롭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역하는 일꾼들에게 먼저 은혜를 베푸시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올 한해 동안도 하나님은 세운 사역자들에게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귀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수고한 모든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은 개별적인 큰 은혜와 평강으로 함께 하여 주십니다. 더욱 앞으로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세로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사역자들로 하나님의 통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어느새 10월을 맞이하며 더 깊어가는 가을을 보내게 됩니다. 이제 새벽 공기는 코 끝을 약간 시리게 하고 목 사이에 서늘함을 느끼며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아침 저녁 때에는 긴옷을 입지 않으면 몸의 냉기를 느낄 정도로 온도가 찹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더위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에어콘을 찾던 기억을 무색하게 합니다. 도로 옆의 푸르렀던 나뭇가지의 나뭇잎들은 점점 붉고 노란색으로 무르익어가면서 단풍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들판의 오곡백과는 더욱 무르익어 농부들은 기쁨의 풍성한 열매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가을은 모든 만물이 아름답게 결실을 맺는 풍성한 계절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을은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교과서와 같습니다.

가을은 우리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레슨합니다. 가을은 꽃이 피는 봄의 하루 하루, 뜨거운 태양의 여름 하루 하루들이 연결된 결국입니다. 봄에 씨를 뿌릴 때에 그 밭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던 밭이었는데 어느 새 가을에는 풍성한 것들로 그 밭을 채우고 있습니다. 인생과 계절의 공통점은 매일 매일 시간으로 동행합니다. 매일 매일의 시간은 때로 너무 소용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때가 되면 열매의 시간이 됩니다. 인생의 가을 모든 열매를 돌아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의 순간 순간이 너무도 소중했던 시간임을 기억하게 됩니다. 매일 매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삶 가운데 살아갈 때에 때가 되면 아름다운 열매를 반드시 맺습니다. 매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삶이 결국 승리하는 삶입니다. 이 가을에 더욱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매일의 삶을 승리하는 우리 인생이 되면 좋겠습니다.

가을은 우리에게 감사를 레슨합니다. 계절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가장 경험하는 계절이 가을입니다. 때로는 이른 봄의 꽃샘추위와 여름의 폭풍의 비바람과 모든 것을 녹일 것 같은 폭염의 시간들을 넘어서 가을을 맞이하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감사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게 됩니다. 수많은 시간 우리는 원망하고 분노하고 상처받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때가 되어 감사하는 삶을 배웁니다. 어떤 분들에게 감사는 사치의 단어요 나와 상관없는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가장 배워할 하나님의 뜻은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들판의 꽃한송이까지 섭리하시듯이 우리의 삶의 사소한 것 하나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시고 열매맺게 하시는 주권자이심을 절대적으로 깨닫는 시간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가을 앞에서 감사로 굴복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가을은 우리에게 죽음을 레슨합니다. 나무의 낙엽이 어느새 나무에서 땅에 떨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가을에 점점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바람 속에서도 모질게 붙어있던 나뭇잎들이 가을이 되면 스스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푸르고 아름다운 잎과 꽃을 자랑했던 나무에는 결국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는 것을 봅니다. 모든 나무와 꽃들은 자연의 순리를 조금도 거역하지 않고 그대로 순응합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잎은 나무에서 떨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가을에 가장 배우고 순응해야 할 것이 내려놓음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떠남입니다. 우리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과정에 내려놓음과 떠남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내 삶 가운데 맞이하는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 가을을 보내면서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도록 내려놓음과 떠남의 시간을 잘 준비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요즘 시대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너무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면서 불편했던 삶이라면 지금은 너무 자신의 관점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공공연하게 아무 스스럼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주관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주관적이고 자유로운 삶은 분명히 과거보다는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장점이 있고 자기 자신을 알리는 기회가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자기의 관점에만 머물면서 때로는 남을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문제를 낳게 합니다. 점점 주관적인 자기 시선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관계가 힘이 들고 삶이 불편한 세상이 자연스럽게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삶의 기준이 되어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자신을 기준으로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의식하면서 정직하고 겸손하게 삶을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자기 주관대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은 자기 감정과 자기 뜻을 앞세우면서 굉장히 요란하고 시끄럽게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분들을 보면 교회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분들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게 되면 그분들의 존재감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목회자로서 제일 존경스러운 분들은 바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살아가며 자기 자신을 죽은 것같이 여기는 분들입니다. 사실은 이런 분들이 교회를 지켜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귀한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사는 분들은 자신의 죄악을 바라보며 깨닫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을 누리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과 관계에 있어서 작은 것일지라도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며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한 사람들은 죄악과 철저하게 타협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 힘들고 외롭지만 주를 바라보면서 때로 고독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시선을 바라보며 위로를 삼으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악할수록 타락할수록 더욱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하고 행동하면서 구별된 삶을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은 결코 사람들의 죄악 된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은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보다도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열심을 더욱 경험합니다. 요즘 매일성경 열왕기하서를 묵상하는 가운데 많은 이스라엘의 왕들의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시선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때로 인생의 초반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했던 성경의 인물이었지만 인생 후반기에 하나님의 시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사람과 타협하고 죄악과 타협하는 것을 봅니다. 초심을 유지하면서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시선을 끝까지 의식하며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열심을 더욱 붙들고 가야 함을 경험합니다. 점점 내 시선이 중심이 되어 인생을 주관하려고 하는 시대에 하나님의 시선 앞에 민감하게 깨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정결하고 정직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민교회의 현장은 선교지입니다. 이민교회는 이미 선교적 교회로서 정체성을 갖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민자로서 다른나라에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르고 힘든 현장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세워간다는 것은 이미 선교의 땀과 헌신을 한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이미 이민교회는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선교를 순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민 교회는 또 다른 열방을 품고 더욱 선교의 지경으로 나아갈 거룩한 사명이 있습니다. 특히 이민교회는 더욱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경험한만큼 더욱 열방에 대한 선교의 비전을 품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이민교회는 개교회의 성장을 넘어서서 더욱 열방 가운데 선교의 성장을 위해서 교회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민교회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만큼이나 다른 민족을 품고 더욱 선교의 지경을 넓히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나는 지난 14년 전에 뉴욕마하나임선교교회에 부임하면서 우선적으로 갖았던 우리 교회에 대해 안타까움이 교회 자체의 어려움 때문에 열방에 대한 선교의 구체적인 비전과 도전이 없었던 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선교 비전을 갖고 함께 선교 헌금을 지원하고 함께 단기선교를 하면서 점점 선교지경을 확장하여 지금은 점점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50주년을 맞아서 선교부흥회를 통해서 더욱 선교의 열정이 더해지고 그 지경이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단순히 선교사를 기도와 물질로 지원하고 단기선교로 함께 하는 선교에서 더 나아가 교회가 직접 선교사를 키워서 파송하고 선교지에 직접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울 수 있는 교회로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한 목사들만 선교사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남침례교단은 얼마든지 평신도 단기선교사로도 지원과 파송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점점 전문적인 생활 기술을 갖고 있는 평신도 선교사들이 더욱 필요한 현실입니다. 요즘은 평생은 아니더라도 짧게는 1년 그리고 몇 년동안 선교의 현장에서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평신도 선교사들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런 자발적인 선교의 헌신이 생겨나길 소원합니다.

교회 50주년을 맞이하여 선교 부흥회를 함께 갖으면서 앞으로 우리 교회는 더욱 선교의 비전으로 선교에 도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선교부흥회를 통해서 바라는 것은 꾸준히 선교를 위한 기도의 헌신,물질의 헌신, 몸의 헌신에 더욱 함께 하는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내년에는 더욱 우리 교회가 물질과 기도로 지원하는 선교지가 더해지는 기회가 되며 구체적으로 선교를 위하여 헌신하는 지원자들이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그 결과 최소한 수년내에 단독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와 학교가 세워지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증거들이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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