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한국의 산불 뉴스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번 산불은 한국 역사상에 기록적인 규모의 피해를 준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때문에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모든 장비를 동원하여 진화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산불로 졸지에 하루 아침에 평생의 삶의 보금자리인 집과 모든 재산을 잃고 임시 거주지에서 걱정과 염려로 보내는 이재민들의 모습은 그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갑자기 불어 닥친 산불로 인해서 제대로 피신도 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명을 잃어버린 분들의 아픔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산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레슨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산불은 인간의 엄청난 기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태우는 불의 위력 앞에서 오직 하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철저하게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서 해결사가 되어 모든 불이 잡히게 되고 모든 상황이 종료가 되면서 소중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연할 것 같았던 매일의 평상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축복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내 것이라고 여겼던 집과 소중한 재산들이 결코 내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점점 예측할 수 없는 위기를 직면하게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일상이 무너질 수 있는 여러 재앙들이 우리 앞에 더 많이 찾아오는 시대가 점점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재앙 앞에서 분명히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깨어서 삶을 준비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재앙에 대해서 종말론적인 현상으로 말씀하시면서 이런 시간 가운데 우리가 더욱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삶에 빠져있는 우리의 영혼을 깨어서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기를 소원하십니다.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기회입니다. 인간은 내가 약함을 인정할 때에 강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위기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스스로 강한 자로 살기를 노력하고 배웁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많은 성취를 얻어내고 성공한 것 같은 만족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여러 가지 위기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인생의 위기의 시간들은 영원한 안전지대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피난처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으로 완성되어야 할 존재들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위기에 포로가 되어 부정적인 인생을 살지 않고 믿음의 결단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의 기회로 삼고 도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이 요동치듯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점점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방향과 속도도 세상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시대를 통해서 과거에는 상상이었던 것들이 삶의 현실이 되는 세상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쳇 지피트를 통해서 모든 궁금하고 힘든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하는 기술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손안에 있는 셀폰을 통해서 모든 삶의 필요를 처리하는 온라인 대세의 세상의 변화를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적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쉽게 내편이 되기도 하고 내편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쉽게 등을 돌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변화의 물결은 세상 뿐 아니라 교회 역시 급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의 기준과 가치로 여겼던 것들을 더 이상 교회가 고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에 대해서 부정하기도 하고 새롭고 다양한 해석을 통한 다양성의 가르침이 미덕이 되었습니다. 공예배에 대해서 지금까지 교회의 기본의 가치로 여겼던 기준들이 무너지고 온라인 예배의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교회의 모습들입니다. 더 나아가 교회를 섬겼던 고난과 희생의 기본적인 가치의 자세를 점점 부인하는 시대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존경받으면서 영향력을 끼치던 교회 안의 모든 영적리더쉽이 점점 세워지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과연 이 변화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이미 예수님은 스스로 하늘의 자리에서 내려와 세상에서 변화하시는 삶을 사실 때에 비판적 변화의 상황화를 하셨습니다. 분명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예수님은 그 몸으로 살아가시면서 세상에 계시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오히려 변화시켜가시는 삶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세상에서 때로 일상적인 세상의 삶을 따라 사시기도 하셨지만 세상의 모든 가치와 기준에 대해서는 아니요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삶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변화의 주체가 되셨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마음과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무비판적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좇아가지 않도록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화하고 흔들려도 마음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키면서 대하여야 합니다. 마치 거친 풍랑 속의 배가 심하게 흔들려도 선장이 키를 단단히 붙잡고 있으면 그 배는 파도를 이깁니다.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붙들어야 할 신앙의 키는 성경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절대 권위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살 때에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면서 변화하는 세상에서 분별력있게 대처하며 변화를 잘 해석하고 이겨내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승리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일부터 교회에서 목장 상담 심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상 가정을 방문하기 쉽지 않는 형편으로 교회 목양실에서 각 목장의 가정별로 만남을 통해서 심방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도 가정별 심방이 어려운 정황에서 교회에서 목장별 상담심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정심방을 할 때에 청소와 접대의 부담 때문에 꺼리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교회에서 심방은 이런 장애물을 갖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을 통해서 자기의 삶을 오픈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객관적인 직면의 시간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점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삶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을 빼면 헛수고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우리 인생은 복되고 형통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인생의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는 하나님을 닮은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은 주님의 마음을 닮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말은 주님의 말씀을 닮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모든 행동은 주님을 닮습니다. 상담의 시간을 통하여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는 기회를 갖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삶이 필요합니다. 내 관점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직장 관계 속에서 우리는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기회를 갖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개방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상담과 같은 객관적인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타인의 관점으로 자기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의 관계를 통하여 나타나는 문제를 통해서 나의 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관계 루틴의 변화를 용기있게 시작해야 합니다. 상담을 통해서 나의 관계의 문제를 돌아보고 새롭게 변화되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신과의 관계의 시작인 마음을 돌아보는 삶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삶이 더할수록 우리는 많은 상처를 받은 채로 살아갑니다. 상처받은 마음으로부터 우리는 분노와 원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특히 힘들고 어렵고 불안정한 이민자의 삶은 더 많은 상처의 현실입니다. 목사로서 이민 교회를 섬기면서 제일 안타까운 사람들은 상처입은 마음으로 살면서 남에게 상처주는 삶을 사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상처를 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상처로 인해서 무감각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시작은 상처의 마음을 개방하고 함께 말씀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맡길 때에 치유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우리는 관계의 존재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 치유 받고 회복해야 할 관계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만남과 관계를 통해서 더욱 온전하게 회복되고 변화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부터 한달에 두 번 수요일마다 교회 소망부 모임이 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찬송, 기도, 말씀을 나누는 영적 교제와 더불어 다양한 활동과 맛있는 식사와 간식을 나누는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모임입니다. 대부분의 소망부 성도님들이 즐겁게 모임에 참가하시면서 주 안에서 위로와 소망을 얻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보기가 좋았습니다. 또 소망부 모임을 위해서 시간과 몸을 헌신하여 섬김을 담당하시는 일꾼들도 기쁘게 섬김을 감당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드리게 됩니다. 그동안 꾸준하게 필요를 느끼고 기도하였던 제목을 하나님께서 준비된 일꾼들을 통해서 일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됨을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의 70세 이상의 소망부도 해마다 점점 숫자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소망부 성도님들을 지켜보면서 누구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을 점점 더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때를 주관하시면서 어린 때의 인생도 허락하시지만 늙은 때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노년의 때를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무엇보다도 그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노년의 몸에는 흘러간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계급장처럼 달려져 있습니다. 하얀 색으로 온통 희어진 머리카락, 깊게 짙어진 손과 얼굴의 주름살, 굽어진 허리의 모습을 통해서 결국 육체의 소망 없음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인생의 노년기를 잘 보내기 위해서 먼저 마음으로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갖아야 합니다. 노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삶의 소망은 오직 성경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노년의 삶에 위로와 소망의 힘이 되는 우선 관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노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소망의 삶을 위해서 제일 중요한 소망의 모임은 교회공동체입니다. 노년의 삶에 교회공동체와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교제하는 삶을 살 때에 마음의 소망의 힘을 얻습니다. 소망의 삶을 위해서 노년에 더욱 교회로 모이기에 힘쓰고 교제하면서 자신의 삶을 세워갈 필요가 있습니다.

노년의 약한 삶을 지속적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노년의 삶을 위해서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도움과 인도의 응답을 허락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노년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면서 기도할 우리의 마음이 치유되고 마음의 새 힘을 얻는 기회가 됩니다. 교회 가운데 노년의 시간을 기도로 보내는 분들을 보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다스리면서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것을 봅니다. 날마다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고 소원을 아뢰며 기도할 때에 공허한 삶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노년의 인생은 마치 저녁에 지는 노을과 같습니다. 분명히 저녁 노을은 한편으로 보면 쓸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노년의 시간이 아름다운 황혼의 시간으로 잘 보낼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그 사역의 가장 핵심은 12명의 제자를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공생애 인생의 여정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제한된 3년의 인생을 사시면서 가장 집중하신 우선순위는 제자삼는 사역이었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여서 그들과 항상 함께 하시면서 말씀으로 여러 가지 기적의 사역들을 행하시면서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삶을 마치시고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가장 강조한 부탁은 모든 민족을 제자삼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공생애의 짧은 시간을 제자삼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집중하였을까를 주목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결국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를 통해서 제자로 세워지기 위하는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 주님의 제자들은 결국 교회를 세우면서 가장 핵심적으로 감당한 사역이 바로 주의 제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기독교가 가장 집중한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세우는 일이 교회의 우선순위였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의 역사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말미암아 이 세상가운데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세상 가운데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목적이 무엇일까? 가장 교회가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 일이 무엇일까? 이렇게 묻는다면 예수님이 세상에서 행하신 그 삶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의 제자를 세우는 일입니다. 교회는 주의 제자삼는 제자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제자를 세우는 모든 과정은 다양하고 종합적입니다. 모든 교회의 예배를 통하여서도 제자를 세워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교제를 통해서도 제자가 세워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양육과 훈련을 통해서도 제자가 세워져야 합니다. 제자삼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제자삼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 우선 순위의 목적이 주의 제자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제자삼기 위해서 교회의 모든 기준을 예수님에게 두고 배우고 따라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의 제자로 세워지기 위해서 먼저 우리들의 생각이 말씀을 통해서 가치관이 바뀌고 세계관이 철저하게 주님 중심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생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말씀의 훈련과 더불어 주님의 뜻을 따르고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반복적인 양육과 훈련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변화하여 주의 제자 삼는 교회로 세워지는 일은 멈추지 말고 지속해야 할 교회의 우선순위입니다.

올해 상반기도 다시 제자훈련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양육과 훈련 시간을 통해서 주님의 장성한 제자로 더욱 세워지는 귀한 교회가 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2주간의 한국 방문의 모든 시간들은 한국을 온 몸으로 경험하면서 힐링이 되는 좋은 추억의 시간이었습니다. 반복되는 미국의 일상을 벗어나서 모처럼 한국에서의 시간은 긴장을 풀고 모든 삶의 짐에서 벗어난 다른 자유를 경험하는 기회였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나고 보고 싶었던 것도 보고 또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을 먹고 체험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양하게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왠지 또한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드는 불편함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 중에 만난 어머니와의 만남은 한편으로는 기쁨이기도 했지만 슬픔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고령의 어머니는 치매 증상으로 인해서 교제가 어려웠습니다. 모처럼 만난 아들과 과거의 제한된 추억 가운데 교제를 갖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랫만에 만난 며느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여서 대하시고 반복적인 말만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미 미국에 있을 때에 전화 대화가 어려웠기 때문에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치매 증상은 심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의 일상의 삶은 무난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다소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국 방문 시간 동안 과거에 시무했던 교회들을 아내와 조용하게 방문했습니다. 첫번째 담임교역자로 시무했던 시골 교회는 힘들고 어려운 시골 환경이지만 여전히 잘 세워져 가고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두번째 시무했던 모교회는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대식으로 잘 세운 교회 건물과 더불어 지역의 대표적인 교회가 되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세번째 시무했던 교회는 비록 외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여전히 성장하는 가운데 잘 세워져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이전의 교회를 둘러보면서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시한번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동안 다양한 한국음식을 경험하면서 나는 찐한국인이라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한국의 맛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오직 한국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한국 토종의 맛들을 체험하는 기회였습니다. 특히 물회와 생선찜들의 음식은 과거 기억을 배신하지 않는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주로 먹었던 순두부 그리고 콩나물해장국과 같은 음식들은 여전히 과거의 맛을 기분 좋게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보다 더욱 활성화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맛은 미국이상의 퀄리티의 맛이었습니다. 음식에 다소 냉정한 편이었던 나에게도 한국의 음식맛을 맛보면서 모처럼 힐링과 더불어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여정의 한국 방문시간이었지만 반복되는 미국 일상을 떠나서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소중한 조국을 다시한번 경험하는 즐거운 인생 기회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시한번 나에게 조국인 한국이 있음을 감사하며 앞으로 조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 더욱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면서 젊은날 고향에서 보냈던 과거 기억이 소환되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나의 젊은 20대 후반 시절 나는 영월 고향 교회의 교육전도사 사역을 하던 중에 의료원의 간호사였던 아내를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에 주중에는 신학대학원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토요일과 주일에는 교회 사역을 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영월에서의 기억을 돌아보면 공부 시간도 부족하고 재정도 부족하고 특히 잠이 부족해서 너무도 힘든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때 그 시간이 가장 열정과 꿈이 넘쳤던 은혜의 시간 이었고 평생의 목회자로서 살 수 있었던 기본기를 연단받았던 언약의 시간이었습니다.

신학대학원 졸업식을 앞두고 나는 고향 영월의 작은 시골교회의 담임전도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강권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어느날 담임목사님이 시골 면소재지의 수요예배 설교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름 후에 나는 작은 면소재지 시골교회의 담임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아직 목회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순종함으로 목회에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회의 현장에서 많은 경험과 훈련을 통해서 목회자로 세워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나는 이 모든 것이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 목회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가장 훌륭한 배움은 시골 교회를 통한 사역의 현장에서 보고 깨닫는 언약의 시간이었습니다.

시골교회 전도사의 자리에서 강도사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에 나는 부목사로 훈련을 받고 이번에는 고향 모교회 담임목사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학창시절과 교육전도사 시절을 보냈던 고향교회에서 담임목사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도 무거운 압박감이었습니다. 그러나 6년 동안 교회가 담임목사가 부재한 가운데 도저히 교회 요청을 거부할 수 없어서 담임목사의 부름에 순종했습니다. 30대 중반에 고향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나는 철저하게 나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목회자로서 자신을 더욱 복종하고 훈련해야 함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돌아보면 그 무거운 사명의 자리를 버티고 순종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바라는 언약의 시간이었습니다 .

모처럼 한국을 방문하고 고향 영월을 방문하면서 나의 목회의 20대 그리고 30대를 돌아보면서 하나님 그 크신 섭리의 은혜를 돌아보는 기회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결정과 시간들은 우연처럼 보여지는 필연적인 하나님 섭리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들을 언약의 시간을 따라 목적을 갖고 인도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십니다. 물론 매순간 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많은 경우 나중에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나의 삶에 대한 언약의 목적을 갖고 언약의 시간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매 순간 마다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뉴욕을 출발한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 약 보름 간의 한국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 또 느끼는 것은 아직도 나는 한국의 정서가 더 많은 토종 한국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공항을 나와서 오랫만에 맡는 한국땅의 독특한 냄새를 맡으면서 나의 마음은 평안하였습니다. 공항 택시를 타고 도로를 달리면서 익숙했던 한국의 거리 풍경을 보면서 마치 매일 보았던 풍경처럼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거리에 오가는 나와 같은 대부분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의 경계심도 없이 자유함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서울날씨는 눈과 추위 기상특보가 발표된 상황이었습니다. 첫날도 둘째날도 냉동고의 추위였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온통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꺼운 점퍼로 무장하고 다녔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경험하였던 추위와는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과거에 경험했던 한국에서의 추위였기 때문에 모처럼 한국의 매서운 추위의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도 그렇지만 한국은 더 분명한 사계절이 있어서 좋습니다.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이지만 날씨부터 모든 것이 빠르고 다양한 변화가 있는 나라입니다.

서울에 숙소로 준비한 에어비엔비는 새롭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 호텔과 같은 숙소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더 자유롭고 편안했습니다. 현대식으로 잘 준비된 숙소 내부의 시설은 오히려 호텔이상으로 모든 필요를 해결하면서 가격은 오히려 더 저렴해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숙소 근처에 위치한 한국 식당의 다양한 메뉴의 식사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숙소 근처에 위치한 한국 병원을 이용할 수 있어서 자가용이 없는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한국은 살아가기에는 좋은 시스템의 나라입니다.

모처럼 한국에서 맛보는 한국음식은 미국의 한인식당에서 맛보는 맛과 좀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첫음식은 설렁탕이었습니다. 구글의 리뷰를 보고 선택한 지역의 맛집이었습니다. 담백하고 시원한 김치맛과 더불어 깔끔한 국물과 비린내가 전혀 없는 고기맛이 넘 좋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좀처럼 이용하기 힘든 한국의 사우나를 경험하면서 오랫만에 갖아보는 시원한 목욕의 기쁨을 경험하였습니다. 모처럼 한국에서 경험하는 일상은 새로운 힐링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일상을 벗어난 한국에서의 오랫만의 다양한 경험은 다른 힐링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나의 인생의 50대가 넘어가면서 삶의 새로운 습관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동안 사소하게 여기고 무시하던 것들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갖고 나의 삶의 습관으로 길들이기를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삶의 습관이 지금까지 아내의 일이라고 여겼던 청소, 설거지, 쓰레기 정리, 빨래하기 등의 일들입니다. 50대 이전까지는 이런 일들과는 담을 쌓고 오직 성경과 독서와 나의 삶에 집중했던 가정에서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50대에 새로운 삶의 습관이 가능했던 이유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찾았기 때문입니다.

변화하기 이전의 나의 과거의 삶 가운데 청소하는 일, 설거지 하는 일, 빨래하는 일, 쓰레기를 버리는 일들은 좋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그 일들을 무가치한 의미로 여겼습니다. 내가 하는 묵상, 기도, 독서를 통한 의미보다는 이 일들은 너무도 가치가 없었으므로 나의 삶의 우선순위의 선택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모든 일을 믿음으로 주를 위하여 할 때에 그 일이 거룩한 일이 될 수 있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하여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새로운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설거지를 할 때에 더러운 그릇이 깨끗한 그릇으로 변하는 모습가운데 마음의 기쁨이 만들어지고 더러운 곳이 깨끗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서 마음의 감사가 만들어지는 의미를 갖으면서 새로운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저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삶을 역기능으로 인도하고 삶을 더 변명하게 만들면서 정체하게 하고 심지어는 퇴행하게 합니다. 성경을 못 읽는 이유가 있고 기도를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배에 늦은 이유가 있고 봉사를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집에서 청소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고 지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평생 우리는 그 이유가 말하는 의미를 붙들고 그 의미대로 인생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제 잘못된 삶의 습관들에 대해서는 이유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감정대로 내 생각대로 좇았던 삶을 거부하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에 대해서 우리는 새롭게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가치를 붙들고 의미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바른 가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의미를 붙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더욱 고민하면서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주신 지금 나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우리가 할 수 있고 그 새로운 삶을 도전하면서 우리는 더욱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새로운 삶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진리의 빛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마음을 비추고 그 주신 의미를 가치로 여기고 새롭게 도전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1월 20일에는 미국의 47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취임식의 여러 가지 정책 선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식적으로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별이 존재한다” 내용이었습니다. “여권 비자 입국카드를 포함한 모든 신분 확인 서류에서 성별은 남자와 여자만으로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트랜스젠더나 성전환자들의 주관적 성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3의 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남성과 여성 2개의 성별만 존재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모든 인종과 젠더를 공공 생활과 사생활에서 인정하고 주입하려고 했던 모든 정책을 포기하는 선언이 되었습니다.

트럼프의 남성 여성만을 인정하는 양성 선언은 성경의 하나님의 선언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미국은 남성과 여성외에 제3의 성을 인정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남성과 여성의 선언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정책은 성소수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에 성경의 내용을 부인하고 제3의 성을 주장하는 성소수자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정책을 통해서 성경을 부인하였습니다. 이런 미국의 정책을 따라서 미국의 교단인 미국 감리교(UMC) 미국 장로교(PCUSA, RCA) 등에서도 동성애자들의 결혼과 안수를 허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절대 권위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시점에 남성과 여성의 두성만을 인정하는 미국의 정책은 교회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 믿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종교다원주의시대를 맞아서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하고 심지어는 성경까지도 상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종교다원주의 시대의 교회들이 성경을 상대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을 상대적으로 인정하고 해석하는 것은 결국 패망의 길입니다. 지금까지 동성애를 인정하는 미국 교회들의 어리석고 미련한 선택은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포장되어 주장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성경의 절대 권위를 부인하고 진리의 길에서 벗어날 때에 세상 나라의 대통령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회복하고 보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감사하면서도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을 더욱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성경을 절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시간과 문화를 초월한 초문화적인 진리입니다. 교회는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는 먼저 우리 개인의 삶 가운데 무오한 성경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삶의 기준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성경의 원칙 아래에 세워져가는 성경중심의 가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공동체가 무오한 성경 말씀이 기준이 되어 교회는 성경의 원칙 아래에 세워져야 합니다. 지금 교회는 인본주의, 세속주의, 상대주의와 같은 시대 사조를 단호하게 버려야 합니다. 오직 성경을 기준으로 신본주의 신앙과 삶의 선택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더욱 성경 무오에 대한 바른 믿음으로 세워져가는 성경중심의 교회공동체로 세상 가운데 세워져 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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