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서 결혼 35년차를 맞이하게 됩니다. 신학대학원 시절 5월 봄날에 나는 아내와 고향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결혼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 결혼입니다. 그러나 그 큰 하나님의 선물인 결혼은 가장 큰 인생의 모험이기도 합니다. 서양 격언에 “ 바다의 항해를 할 때에는 한번 기도하여라, 전쟁터에 나갈 때에는 두 번 기도하여라, 그러나 결혼식장에 갈 때에는 세 번 기도하여라” 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거친 파도보다 죽음의 전쟁터보다도 결혼은 힘든 모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혼은 단지 힘든 모험만은 아닌 인생의 가장 복된 경험이기도 합니다.
결혼 제도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 가운데 남자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갈빗대로 여자인 하와를 만드셔서 서로 결혼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적인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 질서입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남자와 남자가 때로 여자와 여자가 결혼한다고 하는 것은 창조질서를 허무는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남자와 여자로 연합하게 하신 것은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서로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살아갈 때에 외롭지 않고 부족함을 해결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선물의 복이 되기 위해서는 결혼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먼저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믿고 경외해야 합니다. 남자가 중심이 되거나 여자가 중심이 될 때에 가정의 연합은 어렵습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면서 세워져가는 결혼 생활이 될 때에 하나님의 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인격적 경험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남자 그리고 여자는 서로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고 순종하면서 결혼 생활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결혼의 복이 경험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거룩한 책임이 요구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책임이 없는 결혼 생활은 지옥의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점점 결혼했던 부부들이 고통 가운데 이혼을 하고 상처 속에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된 결혼 생활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남자는 남자의 위치에서 여자는 여자의 위치에서 먼저 각자가 자신을 잘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주시는 날마다의 결혼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의 원칙대로 각각의 수고와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이 우리의 삶 속에서 복되게 열매맺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성경대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으로 적용되어 생육하고 번성하며 풍성한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에도 부활절을 맞이하며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세상은 절망의 뉴스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점점 치열하게 국가 간의 힘의 경쟁을 앞세운 냉전 관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자연 가운데서도 많은 위기의 징조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점점 지진의 소식, 기후 변화로 인하여 나타나는 생태계의 이상 변이의 소식, 심한 홍수와 토네이도와 같은 재앙의 소식들이 난무하는 현실입니다. 점점 우리의 눈에 보이는 교회들도 쇠퇴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현실 가운데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은 지금도 계속해서 회복의 삶으로 일하십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먼저 주님의 마음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하는 세상의 부정적인 삶은 평안을 빼앗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익숙하게 만듭니다. 문제는 우리의 어둡고 부정적인 마음을 통해서 사탄은 더욱 우리를 부정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을 살면 살수록 더욱 부정적인 마음의 패더라임이 견고합니다. 부정적인 어두운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제한합니다. 더 이상 내 마음에 부정적인 마음, 부정적인 말들을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회복되고 충만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주님과 관계의 회복을 갖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의심과 불신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때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제자들처럼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불신하면서 주님과 관계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성경의 베드로와 제자들이 주님에게 멀어졌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제자들과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소원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나의 부족과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담대히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 사랑의 관계를 맺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친구, 이웃들과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서로 주안에서 서로 사랑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죄에 대해서 죽고 생명 가운데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죄에 종노릇하지 않고 새롭게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더 이상 부활의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미움에 종노릇하지 않고 시기와 증오의 관계에 매이지 않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것은 이전과 다른 삶의 부활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이제 믿는 자들과 지금 여기에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핵심 신앙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은 모든 죄에 대하여 주님과 함께 장사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님과 함께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증거가 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삶이 새롭게 회복되는 생명의 증거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대부분 교회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 교회도 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을 갖으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대부분 이민자로서 바쁜 삶의 일정상 매일 새벽기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주간과 같은 특별한 시간의 날은 몸과 마음을 구별하여 새벽 시간을 통하여 주님을 묵상하는 구별된 삶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자신의 삶과 신앙을 십자가에 비추어보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무장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내가 믿는 예수님을 성경을 통해서 믿음으로 바라보는 묵상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역사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건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목박혔다고 선언하면서(갈2:20)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해서 죽은 자입니다. 고난 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서 죽은 죄성의 지배를 벗어나 예수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믿음의 삶을 각성하면서 몸으로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에게 연합된 자로서 성령님에 의하여 우리의 삶이 주님에 의해 다스려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을 쳐서 주님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타락한 죄성으로 인하여 태어난 육적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그결과 예수님을 마음에 믿고 구원받은 영생의 새생명이 우리의 영혼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육체는 과거의 죄성을 좇게 됩니다. 그 결과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육신적인 성향을 좇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 머물러 삶을 사는 기간동안 몸으로부터 솟구치는 이전의 죄성에 대해서 부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 옛사람의 죄성은 철저하게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만 이길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출발은 자기 부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의 육신에 대해서 철저하게 아니요라고 부정해야 합니다. 자기 부정이 없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날마다 자기를 부정하고 나를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에게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앞에 갈 때에 비로서 성령님의 도움으로 나를 부인하게 하십니다. 모든 문제의 중심 그리고 모든 승리의 중심에는 바로 나가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주님이 살고 내가 살면 주님은 죽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은 자로 여기는 사람 가운데 주님이 살아 역사하는 삶이 됩니다. 내가 사망 선고를 확실하게 선포하는 날 주님이 내 안에 승리를 주시게 될 줄 믿습니다.
고난주간을 통해서 십자가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내가 장사된 것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인생은 반복되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은 우리의 분별력의 결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바른 분별력을 갖을 때에 바른 선택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특히 누구랑 결혼할지 어디에서 살아야할지 어떤 직업을 갖아야 할지 큰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또 삶의 작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할지 어떤 메뉴의 점심을 먹어야 할지 어떤 곳에서 시장을 보아야 할지 날마다 선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일이 보여주시면서 삶을 인도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분별하게 하시고 선택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 속의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알고 믿고 깨달을 때에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우리가 분별을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과 생각과 뜻들이 성경대로 더욱 온전함에 이르도록 자라야 합니다. 우리는 분별을 위해서 주의가 요구됩니다. 우선은 어린아이처럼 성경의 부분만을 보고 마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나의 관점을 갖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나를 부인해야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우리를 배우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별력을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자신을 부인하는 일입니다. 나를 부인하지 않는 마음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면 바른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운동 레슨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지 않으면 코치가 좋은 레슨을 해주어도 적용이 안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생각을 내려놓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내가 알고 따라가기 위해서 먼저 내 안에 자신을 부인하는 가난한 마음이 요구됩니다. 내가 부인될 때에 주의 말씀을 받으면 주의 뜻대로 마음의 분별력이 생기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꾸준한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날마다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알아가는 거룩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분별력의 근육은 날마다 반복하는 삶을 통해서 평생을 지속하는 견고함 가운데 얻어질 수 있습니다. 제일 무서운 사람이 책 한권 읽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편적인 성경 지식으로 분별력은 얻어질 수 없습니다. 분별력있는 선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합당한 분별력으로 선택되어진 삶은 의와 평강과 희락을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체험하게 합니다.
또 우리 곁에 찾아온 봄을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을 개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내면을 채워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분별력있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간 한국의 산불 뉴스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번 산불은 한국 역사상에 기록적인 규모의 피해를 준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때문에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모든 장비를 동원하여 진화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산불로 졸지에 하루 아침에 평생의 삶의 보금자리인 집과 모든 재산을 잃고 임시 거주지에서 걱정과 염려로 보내는 이재민들의 모습은 그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갑자기 불어 닥친 산불로 인해서 제대로 피신도 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명을 잃어버린 분들의 아픔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산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레슨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산불은 인간의 엄청난 기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태우는 불의 위력 앞에서 오직 하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철저하게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서 해결사가 되어 모든 불이 잡히게 되고 모든 상황이 종료가 되면서 소중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연할 것 같았던 매일의 평상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축복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내 것이라고 여겼던 집과 소중한 재산들이 결코 내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점점 예측할 수 없는 위기를 직면하게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일상이 무너질 수 있는 여러 재앙들이 우리 앞에 더 많이 찾아오는 시대가 점점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재앙 앞에서 분명히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깨어서 삶을 준비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재앙에 대해서 종말론적인 현상으로 말씀하시면서 이런 시간 가운데 우리가 더욱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삶에 빠져있는 우리의 영혼을 깨어서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기를 소원하십니다.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기회입니다. 인간은 내가 약함을 인정할 때에 강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위기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스스로 강한 자로 살기를 노력하고 배웁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많은 성취를 얻어내고 성공한 것 같은 만족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여러 가지 위기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인생의 위기의 시간들은 영원한 안전지대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피난처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으로 완성되어야 할 존재들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위기에 포로가 되어 부정적인 인생을 살지 않고 믿음의 결단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의 기회로 삼고 도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이 요동치듯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점점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방향과 속도도 세상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시대를 통해서 과거에는 상상이었던 것들이 삶의 현실이 되는 세상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쳇 지피트를 통해서 모든 궁금하고 힘든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하는 기술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손안에 있는 셀폰을 통해서 모든 삶의 필요를 처리하는 온라인 대세의 세상의 변화를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적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쉽게 내편이 되기도 하고 내편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쉽게 등을 돌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변화의 물결은 세상 뿐 아니라 교회 역시 급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의 기준과 가치로 여겼던 것들을 더 이상 교회가 고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에 대해서 부정하기도 하고 새롭고 다양한 해석을 통한 다양성의 가르침이 미덕이 되었습니다. 공예배에 대해서 지금까지 교회의 기본의 가치로 여겼던 기준들이 무너지고 온라인 예배의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교회의 모습들입니다. 더 나아가 교회를 섬겼던 고난과 희생의 기본적인 가치의 자세를 점점 부인하는 시대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존경받으면서 영향력을 끼치던 교회 안의 모든 영적리더쉽이 점점 세워지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과연 이 변화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이미 예수님은 스스로 하늘의 자리에서 내려와 세상에서 변화하시는 삶을 사실 때에 비판적 변화의 상황화를 하셨습니다. 분명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예수님은 그 몸으로 살아가시면서 세상에 계시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오히려 변화시켜가시는 삶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세상에서 때로 일상적인 세상의 삶을 따라 사시기도 하셨지만 세상의 모든 가치와 기준에 대해서는 아니요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삶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변화의 주체가 되셨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마음과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무비판적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좇아가지 않도록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화하고 흔들려도 마음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키면서 대하여야 합니다. 마치 거친 풍랑 속의 배가 심하게 흔들려도 선장이 키를 단단히 붙잡고 있으면 그 배는 파도를 이깁니다.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붙들어야 할 신앙의 키는 성경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절대 권위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살 때에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면서 변화하는 세상에서 분별력있게 대처하며 변화를 잘 해석하고 이겨내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승리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일부터 교회에서 목장 상담 심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상 가정을 방문하기 쉽지 않는 형편으로 교회 목양실에서 각 목장의 가정별로 만남을 통해서 심방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도 가정별 심방이 어려운 정황에서 교회에서 목장별 상담심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정심방을 할 때에 청소와 접대의 부담 때문에 꺼리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교회에서 심방은 이런 장애물을 갖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을 통해서 자기의 삶을 오픈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객관적인 직면의 시간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점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삶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을 빼면 헛수고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우리 인생은 복되고 형통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인생의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는 하나님을 닮은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은 주님의 마음을 닮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말은 주님의 말씀을 닮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모든 행동은 주님을 닮습니다. 상담의 시간을 통하여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는 기회를 갖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삶이 필요합니다. 내 관점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직장 관계 속에서 우리는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기회를 갖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개방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상담과 같은 객관적인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타인의 관점으로 자기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의 관계를 통하여 나타나는 문제를 통해서 나의 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관계 루틴의 변화를 용기있게 시작해야 합니다. 상담을 통해서 나의 관계의 문제를 돌아보고 새롭게 변화되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신과의 관계의 시작인 마음을 돌아보는 삶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삶이 더할수록 우리는 많은 상처를 받은 채로 살아갑니다. 상처받은 마음으로부터 우리는 분노와 원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특히 힘들고 어렵고 불안정한 이민자의 삶은 더 많은 상처의 현실입니다. 목사로서 이민 교회를 섬기면서 제일 안타까운 사람들은 상처입은 마음으로 살면서 남에게 상처주는 삶을 사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상처를 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상처로 인해서 무감각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시작은 상처의 마음을 개방하고 함께 말씀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맡길 때에 치유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우리는 관계의 존재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 치유 받고 회복해야 할 관계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만남과 관계를 통해서 더욱 온전하게 회복되고 변화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부터 한달에 두 번 수요일마다 교회 소망부 모임이 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찬송, 기도, 말씀을 나누는 영적 교제와 더불어 다양한 활동과 맛있는 식사와 간식을 나누는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모임입니다. 대부분의 소망부 성도님들이 즐겁게 모임에 참가하시면서 주 안에서 위로와 소망을 얻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보기가 좋았습니다. 또 소망부 모임을 위해서 시간과 몸을 헌신하여 섬김을 담당하시는 일꾼들도 기쁘게 섬김을 감당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드리게 됩니다. 그동안 꾸준하게 필요를 느끼고 기도하였던 제목을 하나님께서 준비된 일꾼들을 통해서 일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됨을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의 70세 이상의 소망부도 해마다 점점 숫자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소망부 성도님들을 지켜보면서 누구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을 점점 더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때를 주관하시면서 어린 때의 인생도 허락하시지만 늙은 때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노년의 때를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무엇보다도 그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노년의 몸에는 흘러간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계급장처럼 달려져 있습니다. 하얀 색으로 온통 희어진 머리카락, 깊게 짙어진 손과 얼굴의 주름살, 굽어진 허리의 모습을 통해서 결국 육체의 소망 없음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인생의 노년기를 잘 보내기 위해서 먼저 마음으로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갖아야 합니다. 노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삶의 소망은 오직 성경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노년의 삶에 위로와 소망의 힘이 되는 우선 관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노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소망의 삶을 위해서 제일 중요한 소망의 모임은 교회공동체입니다. 노년의 삶에 교회공동체와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교제하는 삶을 살 때에 마음의 소망의 힘을 얻습니다. 소망의 삶을 위해서 노년에 더욱 교회로 모이기에 힘쓰고 교제하면서 자신의 삶을 세워갈 필요가 있습니다.
노년의 약한 삶을 지속적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노년의 삶을 위해서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도움과 인도의 응답을 허락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노년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면서 기도할 우리의 마음이 치유되고 마음의 새 힘을 얻는 기회가 됩니다. 교회 가운데 노년의 시간을 기도로 보내는 분들을 보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다스리면서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것을 봅니다. 날마다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고 소원을 아뢰며 기도할 때에 공허한 삶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노년의 인생은 마치 저녁에 지는 노을과 같습니다. 분명히 저녁 노을은 한편으로 보면 쓸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노년의 시간이 아름다운 황혼의 시간으로 잘 보낼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그 사역의 가장 핵심은 12명의 제자를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공생애 인생의 여정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제한된 3년의 인생을 사시면서 가장 집중하신 우선순위는 제자삼는 사역이었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여서 그들과 항상 함께 하시면서 말씀으로 여러 가지 기적의 사역들을 행하시면서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삶을 마치시고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가장 강조한 부탁은 모든 민족을 제자삼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공생애의 짧은 시간을 제자삼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집중하였을까를 주목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결국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를 통해서 제자로 세워지기 위하는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 주님의 제자들은 결국 교회를 세우면서 가장 핵심적으로 감당한 사역이 바로 주의 제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기독교가 가장 집중한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세우는 일이 교회의 우선순위였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의 역사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말미암아 이 세상가운데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세상 가운데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목적이 무엇일까? 가장 교회가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 일이 무엇일까? 이렇게 묻는다면 예수님이 세상에서 행하신 그 삶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의 제자를 세우는 일입니다. 교회는 주의 제자삼는 제자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제자를 세우는 모든 과정은 다양하고 종합적입니다. 모든 교회의 예배를 통하여서도 제자를 세워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교제를 통해서도 제자가 세워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양육과 훈련을 통해서도 제자가 세워져야 합니다. 제자삼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제자삼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 우선 순위의 목적이 주의 제자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제자삼기 위해서 교회의 모든 기준을 예수님에게 두고 배우고 따라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의 제자로 세워지기 위해서 먼저 우리들의 생각이 말씀을 통해서 가치관이 바뀌고 세계관이 철저하게 주님 중심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생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말씀의 훈련과 더불어 주님의 뜻을 따르고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반복적인 양육과 훈련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변화하여 주의 제자 삼는 교회로 세워지는 일은 멈추지 말고 지속해야 할 교회의 우선순위입니다.
올해 상반기도 다시 제자훈련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양육과 훈련 시간을 통해서 주님의 장성한 제자로 더욱 세워지는 귀한 교회가 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2주간의 한국 방문의 모든 시간들은 한국을 온 몸으로 경험하면서 힐링이 되는 좋은 추억의 시간이었습니다. 반복되는 미국의 일상을 벗어나서 모처럼 한국에서의 시간은 긴장을 풀고 모든 삶의 짐에서 벗어난 다른 자유를 경험하는 기회였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나고 보고 싶었던 것도 보고 또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을 먹고 체험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양하게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왠지 또한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드는 불편함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 중에 만난 어머니와의 만남은 한편으로는 기쁨이기도 했지만 슬픔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고령의 어머니는 치매 증상으로 인해서 교제가 어려웠습니다. 모처럼 만난 아들과 과거의 제한된 추억 가운데 교제를 갖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랫만에 만난 며느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여서 대하시고 반복적인 말만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미 미국에 있을 때에 전화 대화가 어려웠기 때문에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치매 증상은 심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의 일상의 삶은 무난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다소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국 방문 시간 동안 과거에 시무했던 교회들을 아내와 조용하게 방문했습니다. 첫번째 담임교역자로 시무했던 시골 교회는 힘들고 어려운 시골 환경이지만 여전히 잘 세워져 가고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두번째 시무했던 모교회는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대식으로 잘 세운 교회 건물과 더불어 지역의 대표적인 교회가 되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세번째 시무했던 교회는 비록 외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여전히 성장하는 가운데 잘 세워져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이전의 교회를 둘러보면서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시한번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동안 다양한 한국음식을 경험하면서 나는 찐한국인이라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한국의 맛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오직 한국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한국 토종의 맛들을 체험하는 기회였습니다. 특히 물회와 생선찜들의 음식은 과거 기억을 배신하지 않는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주로 먹었던 순두부 그리고 콩나물해장국과 같은 음식들은 여전히 과거의 맛을 기분 좋게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보다 더욱 활성화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맛은 미국이상의 퀄리티의 맛이었습니다. 음식에 다소 냉정한 편이었던 나에게도 한국의 음식맛을 맛보면서 모처럼 힐링과 더불어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여정의 한국 방문시간이었지만 반복되는 미국 일상을 떠나서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소중한 조국을 다시한번 경험하는 즐거운 인생 기회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시한번 나에게 조국인 한국이 있음을 감사하며 앞으로 조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 더욱 기도해야 하겠습니다.